마정록 1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8화
18화
“그 아이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하남 어딘가에 친척이 있는 모양이더군.”
“그 친척이 누군지 아십니까?”
“과거 그의 아비와 약간의 인연이 있어서 잠시 보살피긴 했다만, 더 자세한 일은 알지 못한다. 그 아이도 친척에 대해선 깊이 말하지 않았지. 말하는 투로 봐서 평범한 집안은 아닌 것 같던데…….”
사마주광도 그 이상은 모르는 것 같다.
북궁천은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녀가 하남으로 갔다는 사실을 확인한 걸로 만족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주. 혹시라도 그녀를 찾게 된다면 오늘의 도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허허허허,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군.”
사마주광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헌원려려에게는 신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며 산 청년이라면 어느 누구든 세상을 뒤져서라도 그녀를 찾고 싶을 것이다.
‘젊음이 좋긴 좋군.’
7장. 의협을 행하는 자는 신의가 첫째다
용천보를 나온 북궁천은 다시 장가의방을 찾아갔다.
그는 사마주광에게 들은 말 중 친척에 관한 정보를 건네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열 냥을 깎았다.
그리고 주름진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 장만호를 뒤로 한 채 의방을 나와서 이정한 등과 함께 객잔에 방을 얻었다.
이정한 등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북궁천의 또 다른 능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린고비 저리 가라는 장 의원에게 돈을 열 냥이나 깎다니!
만약 사부님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방바닥을 구르며 사흘은 웃을 게 분명했다.
어둠이 밀려들 무렵.
객잔의 일 층으로 내려간 그들은 오랜만에 평온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갈 즈음, 그동안 조용하던 초강이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형, 그럼 바로 하남으로 가실 겁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
초강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말했다.
“허락하신다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그 말에 이정한과 동호량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제, 형님을 따라간다고?”
“정말 따라갈 생각이야?”
북궁천은 의외의 말에 초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은 일을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 본 문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함께 다니면서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테니 허락해 주십시오, 대형.”
초강은 간절한 눈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이정한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너만 가면 우린 어떡하고? 가려면 함께 가야지. 석 달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상황 봐서 그때쯤 돌아오지 뭐. 호량, 너는 어떻게 할 거냐?”
“저야 사형이 가신다면 당연히 따라가야죠. 이번에 많이 벌었으니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단 형님은 강호를 잘 모르시니 우리가 함께 다니면서 도와 드리죠.”
북궁천은 세 사람이 동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호량의 말대로 아직 강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 잡다한 일을 이들이 도와준다면 헌원려려를 찾는 것도 조금은 쉬워질 것 같고.
“좋아, 그럼 함께 가지.”
다음 날 아침.
북궁천은 이정한 등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객잔을 나섰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한 날씨는 그들의 하남행을 축하하는 듯했다.
그런데 객잔을 나선 그들이 성문을 이십여 장 남겨 놓았을 즈음 십여 명의 무사들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용천보의 무사들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사운도도 있었다.
사운도는 북궁천 일행을 발견하고 곧장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아직 떠나지 않았군.”
왠지 싸늘한 표정. 무사들이 반원형으로 둘러싸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정한 등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때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챈 북궁천이 사운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자네들을 찾는 중이었네.”
“말해 보시오.”
“어제 그 물건에 대해서 누구에게 말했나?”
“우리는 누구에게도 그 물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소.”
“정말인가?”
의심이 가득한 눈빛과 말투다.
북궁천은 눈살을 찌푸리고 무심한 어조로 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소. 그리고 저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의를 얻은 사람들이오. 그러지 않았다면 상 당주가 물건을 맡기지도 않았을 거요.”
사운도는 북궁천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하지만 곧 북궁천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상한 일이군.”
“그 물건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소?”
사운도는 말 못 할 것도 없다는 듯 사실대로 말했다.
“자네들이 가져온 상자가 어젯밤에 사라졌네.”
“그래서 우리를 의심한 것이오?”
“의심한다기보다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네. 그 물건에 대한 말을 들은 자가 있다면 그자를 용의선상에 놓아야 하니까 말이야.”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그 물건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훔치지도 않았소. 그럼 먼 길을 가야 하니 이만 가 보겠소.”
북궁천이 단호하게 말을 맺고 돌아서려 하자 사운도가 손을 뻗어 막았다.
“잠깐 멈추게.”
“더 할 말 있소?”
그때 사운도와 함께 온 용호단 무사들 중 하나가 나서며 눈을 부라렸다.
“단주께서 멈추라 하면 멈출 것이지, 뭔 말이 그리 많으냐!”
북궁천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내가 왜 당신네 단주의 명령을 따라야 하지?”
“뭐야? 순순히 대해 주니까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보군!”
“우습게 보진 않지만 대단하게 보지도 않아. 그러니 비켜 주었으면 좋겠군.”
“이 건방진 놈이!”
발끈한 무사는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검을 뽑더니 북궁천의 미간을 향해 뻗었다.
그는 그냥 겁만 줄 속셈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북궁천이라는 것이다.
덥석, 코앞의 검을 좌수로 잡아서 홱 당긴 북궁천은 번개처럼 우수를 뻗어 무사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무슨 짓이냐! 손을 놓아라!”
또 다른 무사가 일갈을 내지르며 북궁천의 좌측을 공격했다.
북궁천은 좌수에 잡힌 검을 가볍게 털었다.
목을 잡힌 자는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충격에 검을 놓았다.
북궁천은 그 검으로 좌측에서 공격해 오는 자의 검을 쳐냈다.
쩡!
공격해 오던 자가 강력한 반탄력에 비틀거리며 옆으로 밀려났다.
“멈춰!”
생각지도 못 한 상황. 사운도가 다급히 소리쳤다.
주위의 용천보 무사들도 무기를 잡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북궁천은 그들의 움직임에 일절 반응하지 않고, 목을 움켜쥔 자의 눈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나는 누가 나에게 검을 겨누는 걸 좋아하지 않아. 능력도 없으면서 자신이 속한 세력의 위세만 믿고 그러는 것은 더욱 못 봐 주지. 앞으로 검을 빼서 남을 겨눌 때는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뽑도록.”
그러고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무사를 한쪽에다 집어던졌다.
사운도는 굳은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어제 처음 볼 때부터 북궁천이 예사롭지 않은 자라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챈 터였다. 심하게 다그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상대한 것 역시 그때문이다.
그런데 용호단원 둘을 가볍게 상대하는 모습을 보니 예상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내 수하가 먼저 잘못을 했으니 자네를 탓하진 않겠네. 하지만 그냥 보낼 수 없는 내 입장도 생각해 주었으면 싶군. 갈 길이 아주 급한 게 아니라면 보주님을 뵙고 가는 것은 어떻겠나?”
“보주님을?”
“자네를 찾으면 데려오라 하셨네.”
잠시 생각해 본 북궁천은 헌원려려를 생각해서 그의 청에 응하기로 했다.
게다가 태극문 사람들은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라도 깨끗이 정리하는 게 나았다.
“좋소, 앞장서시오.”
* * *
사마주광은 물건을 잃어버렸는데도 그리 급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흑옥불상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다만 사위가 맡긴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사실과 자신의 집무실이 털렸다는 게 화날 뿐.
“나는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본 보의 체면만 손상되니까. 해서 도둑 잡는 일을 너희에게 맡겨 볼까 하는데, 해 보겠느냐?”
북궁천 일행은 물건을 가져온 당사자다. 그들과 용천보의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물건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상황. 그들이 물건을 되찾는다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능력인데, 귀도맹의 손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능력은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고 봐야 했다.
더구나 사운도가 넌지시 한 말에 의하면, 용호단 무사가 단 한 수에 제압당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마음이 급한 북궁천은 그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보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저희는 남쪽으로 가야 하는지라 이곳에 머물 여유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범인이 귀도맹 사람이라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사마주광이 기분 나빠할지 몰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사마주광은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남쪽으로 간다면 잘됐군. 도둑의 흔적을 추적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놈이 남쪽으로 내려간 것 같다. 너희도 의심을 털어 버릴 겸, 가는 길에 놈을 잡아 보면 어떻겠느냐?”
남쪽으로 내려갔다면 귀도맹 사람이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잘하면 부수입도 얻을 것 같고.
북궁천은 잠시 생각해 보고 입을 열었다.
“내려가면서 나름대로 신경을 쓰겠지만 오래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그냥 떠나야 할지도 모르니, 그 점을 이해해 주신다면 도와 드리지요.”
“좋다, 납득할 만한 상황이라면 너희들이 떠난다 해도 탓하지 않으마.”
“좋습니다. 그럼 은자 오십 냥을 선수금으로 주시지요. 그리고 저희가 물건을 찾으면 백 냥을 더 주십시오.”
은자 백오십 냥이 흑옥불상의 값어치보다 더 많은 금액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마주광으로선 더 많은 돈이 들더라도 찾아야 했다. 용천보의 자존심을 살리고, 사위에게 체면을 세우려면.
“그렇게 하지.”
간단하게 오십 냥을 선수금으로 챙긴 북궁천은 이정한 등의 감탄에 찬 눈빛을 받으며 사운도를 바라보았다.
“정확한 상황을 알고 싶소만.”
“따라오게. 현장을 보여 주지.”
물건이 보관된 곳은 용무전의 이 층 내실이었다.
그런데 사마주광은 상자를 비밀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고 했다.
누가 감히 용천보주의 방에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가랴, 그렇게 생각한 듯했다.
북궁천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물었다.
“지키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아무도 그자를 보지 못한 거요?”
“보주님께서 안 계실 때는 따로 무사를 배치하지 않고 용무전의 일반 경비무사만이 주위를 도네. 아무래도 놈이 경비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도둑이 남쪽으로 간 것은 어떻게 알았소?”
“밤에 비가 조금 와서 창문 밖과 아래쪽에 희미하게나마 발자국이 남아 있었네. 마침 사람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도둑이 든 걸 알아서 발자국을 쫓아갈 수 있었지. 그런데 발자국이 남쪽으로 향하더군.”
“발자국의 특징은?”
“길이는 여덟 치 닷 푼. 폭은 세 치 대여섯 푼 정도. 그리고 엄지발가락에 유난히 힘을 많이 주는 걸음걸이였네.”
“지금도 쫓고 있소?”
“소문나지 않게 쫓으려다 보니 추룡당 무사 중 일부만 움직이고 있네. 내가 문서 하나를 써 줄 테니 그들을 만나면 보여 주고 서로 협조하도록 하게.”
북궁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을 한 번 더 둘러본 다음 방을 나섰다.
제법 값나가는 물건이 여기저기 보였다. 개중에는 보물이라 할 만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도둑은 왜 값나가는 다른 물건을 놔두고 흑옥불상을 훔친 걸까?
‘흑옥불상에 대해서 잘 아는 잔가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