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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6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6화

 

16화

 

 

 

 

 

 

 

어둠 속에 오연히 서 있던 북궁천이 고개를 돌린다 싶은 순간, 한 줄기 묵빛 번개가 백숭의 도를 후려쳤다.

 

콰앙!

 

가공할 경력이 도를 후려치자, 백숭의 몸뚱이가 옆으로 날아갔다.

 

그는 땅에 내려선 후로도 다섯 걸음을 더 물러나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

 

해쓱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사이 북궁천은 멈칫한 귀도맹 무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직후 뇌전이 뻗어 나가며 어둠을 갈랐다.

 

“크억!”

 

“흐읍!”

 

귀도맹 무사 셋 중 둘이 비명을 내지르며 꼬꾸라지고, 하나는 운 좋게 뇌전을 막았지만 손아귀가 찢어지며 칼을 놓치고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때 백숭이 칼을 움켜쥐고 상우군과 위조현 쪽으로 접근했다.

 

백숭의 움직임을 눈치챈 북궁천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귀도맹 무사의 칼을 묵혼으로 휘감아서 뒤쪽으로 날렸다.

 

쒜에엑!

 

공력이 실린 칼은 소름끼치는 기음을 발하며 어둠을 갈랐다.

 

백숭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칼을 휘둘렀다.

 

쩡!

 

날아들던 칼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북궁천이 백숭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기겁한 백숭은 튕기듯이 뒤로 몸을 날려서 거리를 벌렸다.

 

북궁천은 그를 쫓지 않고 상우군과 위조현 곁에 내려섰다.

 

두 사람은 온몸이 피로 물들고, 어둠 속에서도 창백하게 느껴질 만큼 안색이 좋지 않았다. 몸이 잘게 떨리는 걸로 봐서는 그대로 놔두어도 잠시 후면 쓰러질 것 같았다.

 

‘그야말로 숨 한 번 쉴 시간만 늦었어도 죽었겠군.’

 

내심 다행으로 여긴 그는 백숭을 바라보았다.

 

그때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백숭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보아하니 백풍문의 무사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상우군을 돕는 것이냐?”

 

“왜 돕냐고? 그야 당연히 이유가 있지. 나는 저 사람들과 보표 계약을 했어. 그런데 저 사람들이 죽으면 내 평생 처음으로 버는 돈이 날아가 버리지.”

 

백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럼 적혈대가 보표 하나에게 무너졌단 말인가?

 

“돈은 내가 주마! 저들이 주기로 한 것보다 몇 배 더 줄 테니 상우군을 우리에게 넘겨라. 아니, 상우군의 품속에 든 물건만 넘겨라.”

 

“남자는 한 번 한 약속을 어기는 법이 아니라는 걸 모르나 보군. 지금부터 셋을 셀 테니 그 안에 떠나라. 그럼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다.”

 

북궁천은 백숭의 표정이 일그러지든 말든, 손을 들어 올리고 손가락을 하나씩 꺾었다.

 

셋을 셀 시간이면 태극문 제자들이 도착할 터. 그들에게 상우군과 위조현을 맡겨 놓고 상황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전에 상대가 물러가면 그만큼 편할 것이고.

 

“하나…… 둘…….”

 

아니나 다를까, 셋을 세기도 전에 이정한이 언덕 위로 올라와서 소리쳤다.

 

“대형! 괜찮습니까?”

 

북궁천이 손을 내렸다.

 

“아우들이 왔으니 셋은 셀 필요도 없겠군.”

 

‘헉!’

 

화들짝 놀란 백숭은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뒤로 몸을 날렸다. 손아귀가 찢어진 무사도 기다렸다는 듯 그를 따라서 도주했다.

 

북궁천은 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상우군과 위조현을 돌아다보았다.

 

상우군과 위조현은 긴장이 풀리자 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상우군의 부상은 겉보기보다 더 심했다. 칼날이 옆구리를 스치면서 갈비뼈까지 끊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위조현은 그보다 더 심한 상태여서 어깨와 옆구리 등 서너 군데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호흡하는 것마저 힘들어 했다.

 

북궁천이 혈을 눌러 지혈을 해 놓자, 이정한과 초강이 보따리 속의 천을 찢어서 두 사람의 상처를 싸맸다.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본 적이 없는 북궁천은, 그들이 금창약을 뿌리고 상처를 꼼꼼하게 싸매는 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경험이 많은지 이정한은 깔끔하게 매듭을 지어서 움직임을 편하게 했다.

 

그렇게 치료가 대충 끝나자 북궁천이 상우군에게 물었다.

 

“그자들도 귀도맹의 사람들이었소?”

 

상우군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네. 적혈대였지.”

 

“추혈대에 이어 적혈대까지 쫓아오다니, 용천보로 보내는 물건이 뭔지 더 궁금해지는군요.”

 

상우군은 북궁천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자네의 정체가 더 궁금하네.”

 

북궁천은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히 말했다.

 

“단화린이라 했잖소. 강호초출의 애송이.”

 

그 말에 누워 있던 위조현의 몸이 잘게 떨렸다.

 

 

 

* * *

 

 

 

북궁천과 태극문 제자들이 상우군과 위조현을 교대로 업고 원평까지 이동했다.

 

새벽녘, 원평에 도착한 그들은 객잔문을 부수다시피 두들겨서 점소이를 깨웠다. 그리고 방을 잡은 다음 두 사람을 눕혔다.

 

“쉬고 있으시오. 나가서 의원을 데려올 테니까.”

 

북궁천이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가려는데 상우군이 머뭇거리며 붙잡았다.

 

“잠깐…… 기다려 보게.”

 

“왜 그러시오?”

 

상우군은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부탁이라…… 계약을 추가하자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소?”

 

북궁천은 제법 능숙하게 부탁을 계약으로 돌렸다.

 

상우군도 차라리 그게 편했다. 책임 소재를 가리기에는 계약이 나았다. 부탁은 잊거나 빼앗겼을 경우 책임을 묻기가 곤란하니까.

 

“그것도 괜찮겠군.”

 

“어디 무슨 일인지 먼저 말해 보시오. 어떤 일인 줄 알아야 수당을 책정할 수 있지 않겠소?”

 

“우리 대신 물건을 용천보에 전해 주게.”

 

태원까지 남은 길은 육백 리. 그런데 자신은 걷기도 힘든 판이었다. 위조현은 혼자서 일어날 수도 없는 몸이고.

 

추혈대가 올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모르는 그로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물건의 운송을 맡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행히 그가 본 태극문의 제자들은 신의가 있었고, 단화린이란 자는 적혈대주 백숭을 능가하는 고수였다.

 

북궁천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용천보에 볼일이 있는 그였다.

 

결정을 내린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얼마 줄 거요?”

 

“이전 것과 합쳐서 은자 백 냥을 주겠네.”

 

태극문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인당 은자 스물다섯 냥. 설령 북궁천이 반인 오십 냥을 가져가도 자신들에게 오십 냥이 떨어진다.

 

그 돈을 벌려면 적어도 다섯 번의 보표 일을 해야 했다. 기간으로 따지면 두 달에서 석 달 정도. 그런데 태원까지 이삼 일 거리이니 별일 없이 마무리되면 횡재나 다름없었다.

 

북궁천은 그들의 반응을 보고 상우군의 청을 승낙했다.

 

“좋소. 그럼 이제 물건이 뭔지 말해 보시오. 운송을 하려면 내용물을 알아야 하지 않겠소?”

 

상우군은 품속에서 사각진 물건이 담긴 작은 보따리를 꺼냈다.

 

크기는 손바닥만 했고, 두께는 한 치 다섯 푼가량 되었다.

 

상우군은 그 보따리를 북궁천에게 넘겨주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안에 든 물건에 대해 말했다.

 

“그 안에는 세 개의 흑옥불상(黑玉佛像)이 들어 있네.”

 

“흑옥불상? 어떤 불상인데 귀도맹주가 악착같이 뺏으려 하는 거요?”

 

“운강석굴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 알뿐, 나도 그 이상은 모르네. 그자가 욕심을 낼 때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그 물건은 반드시 보주님께 직접 전하게. 보따리 안에 문주님의 서찰이 들어 있으니 그걸 보여 주면 보주님을 만날 수 있을 거네.”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는 것 같다.

 

북궁천은 그에 대해서 더 묻지 않고, 받아 든 보따리를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서려다가 고개를 틀고서 상우군을 바라보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물어보게.”

 

“오늘 같은 경우 말이오. 강호에서 대협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했을 거라 보시오? 그들도 나처럼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사람을 죽였을 것 같소?”

 

뜬금없는 질문.

 

상우군은 물론 태극문의 세 제자도 의아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이 마당에 왜 그런 쓸 데 없는 질문을 하는 걸까? 심각한 표정으로 봐선 장난으로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상우군은 창백한 얼굴을 찌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글쎄. 마음이 아무리 넓고 손에 자비가 넘치는 대협이라 해도 몇 사람은 죽이지 않았겠나? 자네처럼 독하게 손을 쓰진 않겠지만.”

 

북궁천은 사람들의 의문에 찬 눈길을 뒤로한 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돌아섰다.

 

‘그런 상황에서도 손에 사정을 둬야 하다니. 대협이 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군.’

 

 

 

* * *

 

 

 

메마른 대지에 이슬비가 내리던 날. 태원의 북문으로 네 사람이 들어섰다.

 

원평을 출발한 북궁천 일행이었는데, 다행히 태원까지 오는 동안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태원에 들어선 북궁천은 이정한 등과 함께 진자방이 말한 장가의방으로 향했다.

 

용천보는 태원성 서남쪽 외곽에 있었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인만큼 장가의방에 먼저 들렀다가 가도 충분했다.

 

이정한 등은 표정이 매우 밝았다. 태원에 도착한 이상 임무는 완수한 거나 다름없었다.

 

“단 형님, 장 의원은 교활한 인간이니 처음부터 돈을 많이 준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이정한이 장가의방의 주인인 장만호에 대해서 주의를 주었다.

 

북궁천도 확실치 않은 정보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번 돈을 함부로 쓸 생각이 없었다. 헌원려려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또 몰라도.

 

“걱정 말게. 나도 사람 다루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줄 아니까.”

 

 

 

장가의방은 북문에서 멀지 않은 골목 안에 있었다.

 

입구는 환자도 찾지 않을 만큼 허름했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니 기다리는 환자가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북궁천은 그 모습을 보고 장만호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솜씨가 좋은 모양이군.”

 

이정한이 묘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솜씨가 좋다기보다는, 말만 잘해도 공짜로 치료를 받거나 약을 얻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죠.”

 

“공짜? 자넨 그의 심성이 안 좋다고 하지 않았나?”

 

“심성과는 상관없죠. 공짜라고 해서 그냥 공짜가 아니라, 그만한 정보와 바꿀 뿐이니까요.”

 

그제야 북궁천은 이정한의 말을 이해했다.

 

“환자에게 정보를 얻는다? 그거 참 괴이한 발상이군.”

 

“원래 무인들이 부상을 자주 입지 않습니까? 그러니 장 의원은 앉아서 정보를 수집하는 거죠.”

 

그때 의생복을 입은 삼십 대 의원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정한 등을 아는지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무슨 바람이 불어서 모두 몰려왔나? 누가 다쳤어?”

 

이정한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 의원은 장만호의 제자인 고원이었다.

 

“아닙니다, 고 형. 장 의원님 좀 뵈려고요.”

 

“그래? 그럼 안채로 들어가게. 사부님은 안에 계시니까.”

 

 

 

회랑을 지난 북궁천 일행이 안채로 들어가자, 방문이 열리고 오십 대 후반의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코 옆에 커다란 점이 있었는데, 마치 고약을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어떤 놈들인가 했더니, 진 영감의 제자들이었군.”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은 장만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다, 장 의원님.”

 

“무슨 일로 온 것이냐?”

 

“하하, 여기 단 형님께서 뭐 좀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셔서요.”

 

장만호는 주름진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 북궁천을 향해 눈짓을 하며 물었다.

 

“누구야?”

 

이정한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가 대형으로 모시고 있는 분입니다.”

 

“내 신조가 공짜는 사절이라는 걸 알고 왔겠지?”

 

“물론입니다. 사부님이 그걸 모르고 소개하셨겠습니까?”

 

“좋아, 그럼 들여보내게.”

 

이정한은 북궁천을 돌아다보았다.

 

“대형, 들어가시죠. 저희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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