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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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5화
15화
북궁천은 도와줄 수 있음에도 그냥 놔두었다.
노종문과 조곡이 상대적으로 강해 보여도 태극문 제자들 역시 단숨에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열흘간 자신과 비무를 벌이며 매일 혼쭐이 나지 않았던가. 덕분에 저들의 눈에는 달려드는 자들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터. 이 기회에 한 번쯤 강적과 부딪쳐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대신 그는 다른 자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둘을 더 쓰러뜨려서 혹시 모를 위험요소를 제거했다.
북궁천의 생각대로 이정한과 동호량은 겁먹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렸다.
연속 삼초의 공격을 맞받은 이정한과 동호량은 주르륵 서너 걸음을 물러나서 중심을 바로잡았다.
두 사람의 실력이 늘었다 해도 아직 내공에서 차이가 컸다.
그들은 온몸으로 전해지는 저릿한 충격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충격을 받았음에도 표정은 밝았다. 전 같으면 일초도 막기 힘든 고수들의 공격을 삼초나 막아 내고도 무사한 것이다.
오히려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노종문과 조곡이었다.
이름도 없는 애송이들을 단칼에 쓰러뜨리지 못하다니. 수하들 앞에서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가까스로 적의 공격을 막은 이정한과 동호량이 다시 두어 걸음 물러났다.
북궁천은 거기까지가 두 사람의 한계라 생각하고 미끄러지듯 이 장을 이동했다.
쉬익!
이정한과 노종문 사이로 끼어든 그는 묵혼을 뻗어서 노종문의 공격 동선을 잘라 냈다.
“헛!”
기겁한 노종문은 급히 몸을 틀어서 북궁천의 공세를 피하고는, 칼을 번개처럼 휘둘러서 상대의 연속된 공격을 미연에 방지했다.
그사이 북궁천의 검은 조곡을 노리고 뻗어갔다.
변화도 없는 단순한 일검.
그러나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는 번개 같은 공격에 조곡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섬뜩한 기분이 든 그는 몸을 눕히다시피 젖히고는 땅을 박차고 일 장이나 뒤로 물러났다.
북궁천은 두 사람이 물러나자 짧게 소리쳤다.
“부당주, 그만 후퇴하시오!”
노종문과 조곡마저 합세하고 적의 후속대가 이십여 장 거리까지 접근한 상황.
“모두 후퇴해!”
일갈을 내지른 위조현은 몸을 뒤로 뺐다.
태극문의 제자들과 도영당 무사도 그를 따라서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하지만 일행이 물러서는데도 북궁천은 노종문과 조곡의 앞을 막고 오연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형도 물러나십시오!”
물러서던 초강이 멈칫하며 북궁천을 향해 소리쳤다.
북궁천은 노종문과 조곡에게 시선을 둔 채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내 걱정 말고 먼저 가. 적당한 때에 따라갈 테니까. 어서!”
노종문과 조곡이 막히면서 귀도맹 무사들도 멈칫한 상태.
이정한이 초강을 재촉했다.
“대형 실력 알잖아? 우리가 있으면 방해만 되니 먼저 가자!”
동호량과 초강은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검을 사선으로 쭉 뻗은 채 오롯이 서 있는 그의 등이 협곡을 꽉 막은 것처럼 넓게 보였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바로 뒤따라오십시오!”
동호량이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치고 뒤로 빠졌다. 초강도 이를 악물고 두 사형을 따라갔다.
“어딜 도망가려고! 놈들을 잡아!”
자존심이 상한 노종문은 악을 쓰듯이 외쳤다.
그러자 귀도맹 무사들 중 둘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며 북궁천을 공격했다.
달빛을 받은 칼날이 새파란 살기를 흘리며 북궁천을 향해 떨어졌다.
찰나, 묵혼이 사선으로 솟구치며 어둠을 길게 갈랐다.
떠덩! 퍼벅!
귀도맹 무사들의 손에 들린 칼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몽둥이로 이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북궁천을 공격하던 두 사람이 달려들던 것보다 더 빠르게 튕겨나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뒤따라 달려들려던 귀도맹 무사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멈춰 섰다.
그리고 갑자기 적막감이 감돌았다.
추혈대원들은 고르고 고른 정예 무사들이다. 그런 추혈대원 둘을 손짓 한 번에 날려 버리다니.
등골이 서늘해진 노종문은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북궁천은 친절하게 이름을 알려 주었다.
“단화린. 덤비면 삶이 고달파질 것이다. 병신 되기 싫으면 봐줄 때 돌아가라.”
도도한 표정.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말투.
노종문은 치를 떨었다.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북궁천은 발끈하는 노종문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운이 좋군. 려려만 아니었으면 그 말을 한 것만으로도 목이 달아났을 텐데 말이야.”
그때 귀도맹의 후속대가 도착했다.
노종문은 인원이 배로 늘어나자 살기를 번뜩였다.
“저놈을 포위해!”
촤아악.
귀도맹 무사들은 어둠 속의 박쥐 떼처럼 몸을 날리며 북궁천을 둘러쌌다.
북궁천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지. 귀도맹까지 기어가려면 힘들겠지만 그대들이 원한 일이니…….”
노종문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그는 묵혼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래도 죽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도록.”
“미친놈!”
“시작해 볼까?”
“놈을 죽여라!”
노종문이 악을 쓰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귀도맹 무사 중 나중에 합류한 자 셋이 먼저 멋모르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종문과 귀도맹 무사들은 검이라는 것이 찌르거나 베는 것뿐만 아니라 두들겨 패는 용도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검면으로 두들겨 맞는 것이 베이거나 찔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도.
노종문은 팔과 다리가 하나씩 부서진 후에야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미친 듯이 소리쳤다.
“크으으윽. 도, 도망가라!”
6장. 흑옥불상
초강은 오 리가량 떨어진 곳, 바위 뒤에서 북궁천을 기다렸다.
북궁천은 태원이 초행인 만큼 너무 멀리 떨어지면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기에 이정한과 동호량, 그리고 그가 오 리 간격으로 늘어서서 기다리기로 한 터였다.
그로부터 반 각 후. 그가 초조한 표정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한 사람. 걷는 것 같은데도 달려오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초강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그를 주시했다.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다가오는 사람이 북궁천임을 알고 반색하며 뛰어나갔다.
“대형!”
북궁천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길을 잘못 들지는 않았군.”
“무사하셨군요.”
“몇 놈 때려눕혔더니 더 이상 달려들지 못하고 눈치만 보더군. 그래서 나도 그만 싸우고 물러났지. 다른 사람들은?”
“대사형과 이사형이 오 리 간격으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북궁천은 초강이 질문을 더 던지기 전에 걸음을 서둘렀다.
“걱정하고 있을지 모르니 그만 가세.”
동호량과 이정한은 오 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북궁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역시 북궁천이 무사히 돌아오자 환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내가 뭐랬어? 그놈들에게 당할 분이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노종문과 조곡이 형편없이 물러설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이정한은 사제들을 데리고 물러난 게 무안한지 입에 침을 튀겨가며 북궁천을 추켜세웠다.
북궁천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도 무사해서 다행이네. 태극당에서의 수련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아.”
동호량이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귀도맹의 추혈대 정예에게 밀리지 않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흐흐, 나는 노종문과 싸워 보기까지 했잖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작자와 한번 붙어 봐도 되겠던데?”
이정한은 추혈대주 노종문과 일수를 겨뤄 본 흥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당장 달려가서 붙어 볼 것처럼 말했다.
북궁천은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백풍문 사람들은 어디서 기다리기로 했나?”
셋 중 그들과 가장 늦게 헤어진 이정한이 대답했다.
“원평에서 만나기로 했수.”
* * *
북궁천이 이상함을 느낀 것은 이십 리 정도 이동한 후였다.
황량한 관도에 한 사람이 죽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백풍문의 무사였던 것이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핏방울. 근 십여 장 안쪽에 어지럽게 찍힌 수많은 발자국.
아무래도 이곳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 것 같다.
북궁천은 가늘게 뜬 눈으로 남쪽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아무래도 또 다른 자들이 있었던 것 같군.”
초강이 그의 말뜻을 바로 눈치채고 물었다.
“또 다른 자들이라면, 귀도맹 말씀입니까?”
“그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일단은 쫓아가면서 생각해 보세.”
오 리 만에 또 여섯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중 두 구는 백풍문의 무사였고, 넷은 알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넷의 복장과 무기를 봐서 아무래도 귀도맹의 무사들 같았다.
추혈대는 쫓아올 리가 없으니, 또 다른 추적대가 있다는 뜻.
북궁천은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이정한 등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렇게 십 리쯤 달렸을 때였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나 먼저 갈 테니 뒤따라오게.”
북궁천은 이정한 등에게 말하고 튕겨 나가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전력을 다해서 따라가던 이정한 등은 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고 힘이 쭉 빠졌다.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어느 정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안개 속에 빠진 기분이었다.
북궁천은 단숨에 이백여 장을 달려갔다.
싸우는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상우군 일행의 상황이 좋지 않은 듯 처음 듣는 목소리의 주인이 그들을 놀리고 있었다.
“후후후, 상우군. 물건을 내놓으면 목숨을 살려 준다는데도 고집이 세구나.”
“개소리 집어치워라, 백숭!”
가래 끓듯이 거칠게 터져 나오는 상우군의 목소리에서 그의 상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은 언덕 너머 아래쪽.
북궁천은 언덕을 넘자마자 곧장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상우군과 위조현이 칠팔 명에게 포위되어 있고, 그들 옆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은 죽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자신의 힘을 숨기기에는 너무 급박한 상황. 그는 땅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그때였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어쩔 수 없지. 공격해!”
포위한 자들 중 하나가 음침한 목소리로 말하며 명령을 내렸다.
검을 빼 든 북궁천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쏜살같이 나아가면서 일단 상대의 행동부터 중지시켰다.
“잠깐! 나 먼저 볼까?”
다행히 그의 의도는 빗나가지 않았다.
적혈대주 백숭은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홱 고개를 돌렸다.
“웬 놈이냐?”
다른 자들도 멈칫했다.
북궁천은 그 사이 상우군과 위조현을 공격하는 자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찰나간, 묵혼이 어둠을 가르고 좌수에선 북두패왕권이 작렬했다.
상우군과 위조현이 백척간두에 처한 상황. 추혈대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서걱, 쾅!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한 사람은 일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들 옆에 있던 무사 둘이 새로 나타난 적을 향해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이 죽일 놈이……!”
북궁천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묵혼을 휘둘렀다.
따당!
묵혼은 상대의 칼날을 부러뜨리고 가슴마저 갈라 버렸다.
“끄억!”
비명을 토하며 비틀거리는 자의 쩍 갈라진 가슴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와직!
또 다른 자는 갈비뼈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함몰되어서 떼굴떼굴 굴러갔다.
백숭은 눈을 치켜뜨고 신형을 날렸다.
“이노오오옴!”
대갈일성을 내지른 그는 일 장 허공에서 북궁천의 등을 향해 도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