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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3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3화

 

13화

 

 

 

 

 

 

 

5장. 태원행

 

 

 

 

 

휘이이이잉.

 

서쪽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눈을 따갑게 할 정도로 거세게 불던 시월의 어느 날 정오 무렵.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죽립을 머리에 쓴 네 사람이 산양(山陽)에 들어섰다.

 

산양은 대동(大同)에서 이백 리 남쪽에 있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청의인 셋과 흑의인 하나. 등에 봇짐을 하나씩 맨 그들은 삭막하게 느껴지는 대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건물들은 모래를 뒤집어써서 온통 누렇게 보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래바람에 굴복당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종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로를 반쯤 통과하던 네 사람은 거친 모래바람에 떠밀리다시피, 황풍객잔이라고 써진 깃발이 찢어질 것처럼 펄럭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후우, 바람이 너무 세서 숨쉬기도 힘들군.”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간 자가 죽립을 벗고 입과 코를 막은 천을 떼어 내며 말하는데, 다름 아닌 이정한이었다.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간 이정한이 죽립을 벗고 입과 코를 막은 천을 떼어 내며 말했다.

 

 

 

뒤따라 들어간 동호량과 초강도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면서 객잔 안쪽의 비어 있는 탁자로 갔다.

 

북궁천은 죽립을 벗고 천을 떼어 냈다. 그리고 초강의 바로 뒤를 따라가면서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객잔 안에는 십여 명의 손님이 탁자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사꾼으로 보이는 자, 마을주민으로 보이는 자, 그리고 무기를 찬 무인도 셋이나 되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선 북궁천 일행을 잠깐 바라보더니, 곧 신경을 끄고 고개를 돌렸다.

 

 

 

북궁천 일행이 자리에 앉자 점소이가 잽싸게 달려왔다.

 

“아이고, 바람도 센데 먼 길을 오셨나 봅니다요. 이거 좀 마시십쇼.”

 

일행은 일단 점소이가 가져온 엽차를 입안에 털어 넣어서 모래로 막힌 목구멍을 뚫었다.

 

그제야 조금 숨 쉬는 것이 편해졌다.

 

“뭘 드시겠습니까요?”

 

점소이가 때를 놓치지 않고 주문을 받았다.

 

이정한은 양고기와 야채 요리 두어 가지를 주문하고 술 한 병을 추가했다.

 

점소이는 미리 준비라도 해 놓은 것처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요리를 들고 왔다.

 

이정한은 술병을 들고 먼저 북궁천에게 내밀었다.

 

“대형, 한잔하슈.”

 

이정한과 동호량과 초강은 비무의 강도를 높인 후부터 북궁천을 대형이라 불렀다.

 

북궁천이 나이가 그들보다 많기도 했고, 실력과 하는 행동을 봐도 대형 대접을 해 줄 만했다.

 

그리고 대형이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사정을 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눈곱만큼은 담겨 있었다. 결과는 결코 좋지 않았지만.

 

북궁천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시지 않을 거니 자네들이나 마시게.”

 

그의 하대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랜 세월 그렇게 지내 온 것만 같았다.

 

“저번에는 드셨잖습니까?”

 

동호량이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도 북궁천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그땐 진 사부 말씀대로 곡차였지. 이건 술이고.”

 

“뭐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대신 나중에 달라고 하기 없깁니다?”

 

이정한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동호량과 초강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렇게 술이 한 순배 돌 즈음, 객잔의 문이 열리더니 모래바람과 함께 갈의를 입은 무사 여섯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정한이 그들을 보고 반색했다.

 

“어? 백풍문(白風門)의 상 당주님이시잖아?”

 

들어온 자들도 이정한을 보고 아는 척했다.

 

“이게 누군가? 오랜만이군.”

 

나이가 사십 전후로 보이는 갈의중년인이 거친 수염 사이로 웃음을 보이며 북궁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정한은 벌떡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상 당주님.”

 

동호량과 초강도 일어나서 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중년인은 웃으며 두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하하하, 반갑네. 전에 만났을 때도 거친 사풍이 불던 날이었는데, 자네들과 난 사풍과 인연이 있나 보군.”

 

“그때도 정말 모래바람이 세게 불었죠.”

 

상 당주. 대동 백풍문(百風門)의 도영당(刀影堂)을 맡고 있는 상우군은 이정한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일거리를 알아보려고 나온 건가?”

 

“예, 상 당주.”

 

“흠. 저 친구는 처음 보는데, 같은 사문의 사람인가?”

 

상우군은 북궁천을 슬쩍 바라보고는 이정한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일어나 있는데 그만 앉아 있는 것이다.

 

“아, 여기 단 형님은 저희 태극문 제자가 아닙니다.”

 

“그래?”

 

상우군은 다시 북궁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의 뒤로 다가온 그의 일행 중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젊은 친구가 예의가 없군. 그 정도 말했으면 일어나서 자신을 밝히는 게 기본 아닌가?”

 

솔직히 북궁천은 그래야 할 하등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여태껏 남이 자신을 대하고 고개 숙이는 것만 봤지, 자신이 일어나서 먼저 인사한 적은 없었다.

 

태극당에서의 일은 사정이 조금 달랐고. 자신이 아쉬웠으니까.

 

하지만 그게 강호의 예의라면 따르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나을 듯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강호에 처음 나오다 보니 모르는 것이 많소. 이해해 주시오. 단화린이라 하오.”

 

“도영당의 부당주인 위조현이네. 그런데 강호초출이라고? 다른 사람에 비해서 조금 늦게 나왔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소. 그런데 그게 그렇게 이상하오?”

 

“아니, 뭐 이상할 것은 없지.”

 

상우군의 뒤에 서 있던 장한, 위조현은 대충 얼버무리고 북궁천의 위아래를 쓱 훑어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특별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묘한 놈이군. 강호초출의 애송이치고는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상우군이 입을 열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자자, 일단 자리에 앉지. 우리도 이 옆자리에 앉자고.”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분위기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상우군도 엽차로 입을 축이고는 이정한에게 다시 질문했다.

 

“일거리를 알아본다고 했는데, 계획하고 있는 거라도 있는가?”

 

“아직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단 형님을 태원까지 모셔다 드린 후에 찾아볼 생각이지요.”

 

그 말을 듣고 상우군의 눈빛이 반짝였다.

 

“태원? 그럼 지금 태원으로 가는 길인가?”

 

“그렇습니다.”

 

“그거 잘됐군.”

 

“예?”

 

“우리 역시 태원으로 가는 중인데, 동행하지 않겠나? 태원까지 함께 가면서 우리를 도와준다면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네.”

 

대동에서 태원까지 천 리 길이다. 백풍문의 무사가 태원에 가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라 볼 수 없었다.

 

더구나 단순 전령도 아니고 당주가 직접 나서지 않았는가.

 

동호량이 그 점을 눈치채고 넌지시 물었다.

 

“중요한 일인 모양이군요.”

 

상우군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입을 열었다.

 

“문주님의 명으로 용천보에 가는 길이네.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지.”

 

“저희 같은 별 볼 일 없는 무사들이 당주님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네. 잡다한 일만 처리해 주면 되니까. 물론 엉뚱한 일이 생기면 싸울 수도 있으니, 그것도 생각하고 대답하게.”

 

한마디로 일반 보표의 임무나 비슷한 일거리.

 

백풍문의 당주가 직접 움직이는 일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태원으로 가는 길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것저것 따져 본 이정한은 먼저 수당을 물어보았다.

 

“저희에게 얼마를 주실 생각이십니까?”

 

“일인당 은자 두 냥씩 주지.”

 

태원까지 사나흘 거리. 그 정도면 단순한 일거리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을 하려는 그에게 북궁천이 물어보았다.

 

“정한, 위험한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수당을 따로 주는가?”

 

백풍문의 당주가 함께 가는데 설마 별일이 있을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이정한은 상우군을 바라보았다.

 

“그런 경우 위험수당도 생각해 주실 수 있습니까?”

 

상우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인정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일인당 다섯 냥씩 주지.”

 

일인당 다섯 냥이면 보표를 보름은 해야 벌 수 있는 액수.

 

이정한은 그 정도에서 만족했다.

 

“그리 생각해 주시겠다니 고맙습니다, 당주님. 그럼 그렇게 결정하기로 하지요.”

 

“저 친구도 자네들과 함께할 건가?”

 

상우군의 눈이 북궁천을 향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 이정한은 북궁천을 돌아보았다.

 

“대형, 어떻게 하시겠수?”

 

북궁천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같이 가면서 나만 빠질 순 없지. 나도 자네들과 똑같이 일하겠네.”

 

그도 돈이 필요했다.

 

북천령을 계속 쪼개 쓸 수는 없는 일. 될 수 있으면 벌어서 쓸 생각이었다. 북천궁으로 돌아갈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게다가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돈이 있으면 려려를 찾는 게 조금이라도 쉬워질지 몰랐다.

 

 

 

* * *

 

 

 

백풍문 사람들과 북궁천 일행은 산양을 출발해 남쪽으로 향했다.

 

모래바람은 오전보다 더욱 기승을 부렸다. 황량한 들판을 빠르게 걸어가는 그들을 쓰러뜨리지 못해 안달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그토록 거세던 바람도 기세가 한풀 꺾였다.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노숙할 곳을 찾아보았다.

 

 

 

어둠이 짙어질 무렵, 집채만 한 바위가 이리의 이빨처럼 솟아 있는 계곡에서 모닥불 두 개가 시뻘건 혓바닥을 내밀며 타올랐다.

 

북궁천은 태극문 제자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고는 바위 밑에 자리를 잡았다.

 

평평한 바닥에 마른풀을 깐 다음 그 위에 천을 하나 덮은 것이 잠자리 준비의 전부였다.

 

대충 노숙 준비가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 황풍객잔에서 사 온 육포를 꺼내 씹었다.

 

북궁천도 바위에 등을 기대고, 봇짐에서 손바닥만 한 육포를 하나 꺼냈다.

 

검은 휘장이 드리워진 하늘에 들어찬 별빛은 센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았다.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녹색…….

 

형형색색의 별빛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그중 인간들이 이름을 붙인 유난히 큰 별들이 수억 개의 별 사이에서 오롯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중에 아버지 어머니의 별은 어떤 것일까?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이지만 자신을 낳아 주신 분이다. 그립지 않을 수 없었다.

 

조부님께선 어머니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는데, 아버지가 조부님의 뜻을 어기고 별 세력도 없는 중소문파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점은 자신도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조부님이 살아 계셨으면 또 난리가 났겠지.’

 

조부님은 참 독한 분이셨다.

 

어릴 때, 또래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웃고 노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런데 조부님은 자신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더욱 혹독하게 다그쳤다.

 

하나 있는 손자를 왜 그리 힘들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야속하기만 했다.

 

물론 조부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북천궁은 패도를 추구하는 세력. 힘이 없는 궁주는 수하를 다스릴 수가 없다. 그러니 조부님으로선, 당신이 돌아가신 후 북천궁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를 매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수련시킨 것은 지금 생각해도 씁쓸하기만 했다.

 

오죽 힘들었으면 북천궁에서 도망치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을까.

 

꿈에서 깨어난 후 자신이 북천궁에 있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더 큰 절망감에 빠져야 했지만.

 

‘그때는 어린 마음에도 미칠 것 같았는데…….’

 

문득 쓴웃음이 나왔다.

 

고조부께서 일으킨 북천궁을 자신이 내팽개쳤으니, 아마 조부님께서 아시면 무덤에서 뛰쳐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권좌를 누리는 것만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니니까.

 

만약 자신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절대 그런 삶을 살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해 보라고 해야겠어.’

 

북궁천이 씨도 뿌리지 않고서 추수한 곡식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십여 줄기 유성이 천공을 가르며 흘렀다.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는 광경.

 

‘정말 멋지군!’

 

그런데 바로 그때, 지상에서도 유성이 솟구쳤다. 붉은 유성이.

 

북궁천은 비스듬히 기댄 등을 세우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붉은 유성은 허공으로 솟구치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거리는 대충 오 리 정도.

 

씹던 육포를 삼킨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지 못한 듯, 모두가 편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서 육포를 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대형?”

 

초강이 먼저 그의 이상한 태도를 보고 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정한과 동호량도 말을 멈추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솟구쳤던 붉은 유성은 보이지 않는 상태.

 

북궁천은 상우군이 있는 곳을 향해 물었다.

 

“혹시 귀하들의 뒤를 따라오는 자가 있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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