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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0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0화

 

10화

 

 

 

 

 

 

 

북궁천은 준비라도 한 것처럼 바로 대답했다. 

 

“북도문의 제자입니다. 며칠 전 사부님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지요.”

 

“북도문? 처음 듣는 문파군.”

 

“일인전승되는 문파로, 제자라고는 달랑 저 하나뿐입니다.”

 

진자방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알고 보면 그도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내 제자들은 그래도 사형제가 넷이나 되는데…….’

 

강호에서 위세가 약한 문파의 제자로 살다 보면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는 법이다.

 

앞에 있는 청년도 자신이 겪고, 자신의 제자들이 겪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업신여김이나 무시당하는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 짓밟으려는 자들마저 있을 터. 혼자라면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자신도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젊은 놈이 고생 좀 하겠군.’

 

측은한 마음이 든 그는 북궁천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남쪽으로 간다 했는데 어디로 가는 길인가?”

 

“사실 특별히 정해진 곳은 없고, 일단은 태원으로 가 볼 생각입니다.”

 

“태원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찾을 사람이 있는데, 전에 그곳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합니다.”

 

사대원로가 보낸 자들이 헌원려려의 종적을 마지막으로 찾아낸 곳이 태원이다. 

 

그곳에 가면 실낱같은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가 보려는 것이다.

 

“흠, 그래?”

 

진자방은 그의 말을 듣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넌지시 그에게 말했다.

 

“사람을 찾는다면 내가 괜찮은 사람 하나 소개시켜 줄까?”

 

“……?”

 

“태원 안에서 벌어진 일은 모르는 것이 없는 친군데, 사람 찾는 것도 귀신이지. 돈을 밝힌다는 게 좀 흠이긴 하나, 그래도 내가 보냈다고 하면 싸게 해 줄 거네.”

 

어차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북궁천으로선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찾으면 좋고, 못 찾아도 강호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해 주신다면 저야 좋지요.”

 

“험, 태원에 가거든 북문 근처에 있는 장가의방을 찾아가서 장 의원을 만나 내 이름을 대게나. 꼭 내가 소개해서 왔다고 해야 하네. 그래야 싸게 해 주거든.”

 

꼭 싸게 해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대야 소개비가 자신에게 떨어진다.

 

북궁천이야 그에 대해선 생각도 못했지만.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역시 말이 잘 통하는 젊은이군, 허허허허.”

 

말 몇 마디로 은자 두어 냥을 챙길 수 있게 된 진자방은 기분 좋게 웃으며 이정한을 불렀다.

 

“정한아! 덫에 토끼라도 걸렸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오늘 저녁에는 고기 좀 먹어 보자!”

 

 

 

* * *

 

 

 

사흘이 지났다. 

 

이제는 공력을 오성 정도 움직여도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북궁천은 좀 더 빠른 회복을 위해서 본격적인 요상 수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칠초 사십구식으로 이루어진 북두패왕권(北斗覇王拳)을 반복해서 펼치는 것이었다. 내공은 주입하지 않은 채로.

 

너무 단순해 보여서 삼류 무공처럼 보이는 권법.

 

북두패왕권은 구결에 따라 내공이 주입되면 파천의 위력을 보이는 권법이었다.

 

그럼에도 초식의 형(形)이 단순해서 무리하지 않고 근육과 신경을 단련하기에는 최적의 무공이었다.

 

 

 

북두패왕권으로 요상 수련을 시작한 지 이틀째.

 

그날도 북궁천은 반 시진 동안 쉬지 않고 북두패왕권을 반복해서 펼쳤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정한은 한 수 가르쳐 주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저렇게 단순한 권법을 뭐 저리 신중하게 펼친단 말인가?

 

‘저것밖에 모르는 거 아냐?’

 

조금 이상한 것은, 아무리 봐도 별 볼 일 없는 권법 같은데 막상 지적하려면 지적할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단순하지만 완벽한 권법이랄까?

 

그래도 같은 권법이 계속 반복되자, 지루함을 참지 못한 그가 북궁천에게 물었다.

 

“단 형은 그 무공을 오래 수련했나 보군요.”

 

그는 북궁천의 권법이 완벽한 이유로 수련 기간을 꼽았다.

 

사실이 그러니 북궁천도 솔직히 말했다.

 

“십칠 년 정도 수련했소.”

 

‘그럼 그렇지, 그렇게 오래 수련을 하면 토끼도 그 정도 권법은 완벽히 펼칠 수 있겠네, 뭐.’

 

이정한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 생각하며 넌지시 물었다.

 

“좀 더 뛰어난 무공을 배워 보고 싶은 생각은 없소? 사부님께 말씀드리면 그보다 나은 무공 한두 가지 정도는 가르쳐 주실 텐데 말이오.”

 

대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테지만.

 

북궁천은 간단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무공도 아직 완성하지 못했소.”

 

“싫다면 어쩔 수 없지요.”

 

‘사부님께서 실망하시겠군.’

 

사실 이정한이 그러한 제안을 한 것은 한번 찔러 보라는 진자방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에 대해선 대가를 받을 요량이었고.

 

하지만 싫다는 사람에게 계속 강요하는 것은 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든 생각 있으면 말하쇼.”

 

그래서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섰다.

 

그때 계곡 저 아래쪽에서 세 사람이 나타났다.

 

이정한은 그들을 발견하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두 달 전에 떠났던 사제와 사매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사제! 사매!”

 

 

 

* * *

 

 

 

“사부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안색이 좋으신 걸 보니 그동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사부님?”

 

진자방은 세 제자의 인사를 받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허, 너희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그리고 이 오지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동호량, 초강, 강소하는 그 말을 듣자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봤던 북궁천이 떠올랐다.

 

사부가 말한 손님은 그를 말할 터. 누군데 귀한 손님이라는 걸까?

 

“사부님, 그 사람은 누구예요?”

 

태극문의 제자 중 유일한 여인, 강소하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름이 단화린이라고 하더구나. 이곳에 며칠 묵기로 하고서 본 문의 건립을 위한 자금을 두둑이 내놓았단다.”

 

진자방은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 완곡히 돌려 말했다.

 

그의 제자들은 이유야 어떻든 태극문의 건립 자금이 늘어났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만큼 자신들이 편해질 테니까.

 

이정한의 바로 아래 제자인 동호량도 웃음 띤 표정으로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이번에 벌은 것입니다, 사부님. 마침 괜찮은 일을 맡아서 저번보다 수입이 늘어났습니다.”

 

“호오, 그래?”

 

진자방은 주머니를 열어 보고 표정이 환해졌다.

 

“정말 수고했다. 이제 조금만 더 벌면 본 문의 초석이 될 태극장을 지을 수 있겠구나.”

 

그가 그토록 돈을 밝히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언제까지 심심산골에서만 지낼 수는 없었다. 너무 깊은 곳에 있다 보니 제자를 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하기를 해, 절정신공을 보유하고 있어?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보니 ‘이러다 태극문의 명맥이 끊기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기에 자신이 죽기 전, 밖에다 번듯한 태극문의 터전을 닦고 싶었다. 

 

후대의 태극문 제자들을 위해서.

 

문제는 자금이었다.

 

장원을 짓는다는 것은 은자 몇 십 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약초를 캐고 짐승을 잡아 파는 것으로는 십 년이 지나도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결국 그는 오 년 전부터 제자들을 밖으로 내보내 돈을 벌게 했다.

 

십오 년 전에 입은 부상이 고질병처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그 역시 밖으로 나가 한 팔 거들었을 텐데, 그럴 수 없어 제자들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쨌든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제법 많은 돈이 모였다. 조금만 더 모으면 건물 두세 채짜리 장원을 지을 수 있을 만큼.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안쪽에 집어넣은 진자방은 제자들을 둘러보며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를 잘못 만나 너희들만 고생하는구나. 이제 조금만 참도록 해라.”

 

각진 얼굴을 지닌 초강이 무뚝뚝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야 사부님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모두 죽었을 목숨 아닙니까? 그런 말씀 마십시오.”

 

강소하도 담담히 웃으며 마음 약한 사부, 진자방을 달랬다.

 

“초 사형의 말이 맞아요, 사부님. 사부님께서 다치신 것도 다 저희를 구하시려다 그렇게 된 것이잖아요. 그러니 조금도 미안해하실 필요가 없어요.”

 

진자방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강소하가 진자방의 손을 잡아주었다.

 

“지금보다 훨씬 힘든 일도 사부님만 건강하신 모습으로 저희 곁에 계시면, 저희는 얼마든지 웃으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

 

진자방의 네 제자는 모두 전쟁으로 고아가 된 사람들이었다.

 

십오 년 전, 진자방이 목숨 걸고 뛰어들어서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병사들의 노리개가 되어서 온갖 고통을 당하다 죽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진자방은 그들에게 사부이자 아버지이며, 어머니였다. 그들 역시 진자방에게 제자이자, 자식이었고.

 

“녀석들, 이제 다 컸구나. 이 사부를 놀릴 줄도 알고, 허허허허.”

 

 

 

전각 앞마당 한쪽에서 진자방과 그 제자들의 대화를 듣던 북궁천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찡하니 울렸다.

 

사제 간의 정이라는 게 저런 것인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 생경했다.

 

자신 역시 여러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우긴 했다. 그중에는 수십 년간 고련하며 얻은 깨달음을 사심 없이 전해 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사제 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북천의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라 생각했을 뿐.

 

그런데 진자방과 그의 제자들을 보니 그동안 너무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쓰고 살아온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야율 노인도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는데. 성격이 괴팍한 천광자 노인도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를 곧잘 했고…….’

 

야율소와 천광자는 오 년 전에 천수를 다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이제는 술이라도 받아 주며 따뜻하게 대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사대원로 역시 귀찮은 존재로만 여겼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즐거웠던 때가 적지 않았다.

 

단무영이야 말할 것도 없고.

 

북궁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단 며칠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그중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그러한 변화가 싫진 않았다. 조금 어색할 뿐.

 

‘훗, 사대원로가 알면 눈이 튀어나오겠군.’

 

그가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실소를 지을 때였다. 건너편 전각에서 진자방이 세 제자와 함께 나오며 그를 불렀다.

 

“이보게, 단 공자. 잠깐 이리 오게나.”

 

 

 

진자방은 북궁천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북궁천은 동호량과 초강, 강소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서 진자방이 호언장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신체조건, 맑고 강한 눈빛, 고른 기의 흐름.

 

이정한도 그렇고, 다른 세 제자 역시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자질이 엿보였다.

 

성격은 확연히 차이가 났는데, 눈이 가느다란 동호량은 성격이 꼼꼼했고, 얼굴선이 굵은 초강은 무뚝뚝하면서도 곧은 성격이었다.

 

그리고 홍일점으로, 눈이 크고 얼굴이 동그래서 귀여운 상(相)인 강소하는 남을 편안하게 했다.

 

 

 

‘의외군.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데?’

 

북궁천을 처음 대한 세 사람도 조용하고 왠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지는 북궁천이 싫지 않았다.

 

동호량만이 약간의 경계심을 보였는데, 그것은 순전히 강소하 때문이었다.

 

강소하를 좋아하는 그로선 북궁천에게서 풍기는 묘한 매력에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더 걱정되는 것은, 그런데도 북궁천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 공자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강소하가 저렇게 나이를 묻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여자가 왜 먼저 그런 걸 물어봐?’

 

동호량은 속으로 투덜대며 강소하를 흘겨보았다.

 

그때 북궁천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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