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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4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4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9화

 

249화

 

 

 

 

 

 

아수비를 보호하던 아극령이 몸을 날려서 철추를 잡아챘다.

 

동시에 그가 움켜쥐고 있던 단검이 적의 목을 그었다.

 

취이익!

 

핏줄기가 뿜어지면서 아극령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가 벗어난 사이 네 명의 무사가 아수비를 덮쳤다.

 

그들은 아수비가 안고 있는 포대에 아기가 담겨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기만 뺏는다면 보물과 교환할 수 있을 터. 결국 아기가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수비는 혼신을 다해서 환신술을 펼치며 네 사람의 공세를 피했다.

 

그러나 지친 몸으로 그들의 공세를 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악!’

 

한 사람의 손가락이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살점이 떨어질 것 같은 충격에 한 팔이 마비되는 듯했다.

 

아수비는 이를 악물고 그들의 공세를 빠져나왔다.

 

염소수염의 중년인은 아수비가 수중에 들어오기라도 한 듯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흐흐흐, 이제 잡았구나, 이년!”

 

그때였다.

 

“죽일 놈!”

 

하늘에서 분노에 찬 욕설과 함께 강력한 힘이 염소수염 중년인의 머리를 짓눌렀다.

 

우드득!

 

“끄억!”

 

그 직후, 다른 세 사람도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콰광! 서걱!

 

“케엑!”

 

“으악!”

 

처절한 비명을 터트린 그들은 구겨지고 꺾어진 채 사방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아수비의 앞에 네 명의 노인이 내려섰다. 그 중 한 노인은 붉은 머리가 뿔처럼 솟아 있었다. 신원창과 용무승, 공손완, 화경선이었다.

 

그 사이 상대하던 자들을 제거한 공손천우는 네 노인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르신들께서 어떻게……?”

 

신원창은 착잡한 표정으로 아수비와 아극령, 아극타를 바라보았다.

 

아극타는 아극령의 가슴에 안겨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갈라진 가죽 사이로 핏덩이가 뭉클거리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황산에서부터 이 사람들을 뒤쫓아 왔다. 용서를 빌 게 있거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신원창은 공송천우가 바라보는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공손완과 용무승, 화경선도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공손천우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어, 어르신? 증조부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신원창 등은 여전히 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듣고 나면 알게 될 테니까.

 

“우리는 천외천의 사람들이네. 먼 과거에는 천상신문이라 불렸지. 조상들의 죄를 대신해서 용서를 비네. 본래는 벽라동으로 가서 사죄비라도 세우려 했는데, 황산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못했네. 그 와중에 자네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뒤쫓아 왔는데, 늦긴 했어도 아주 늦지는 않은 것 같구먼.”

 

“쿨럭, 쿨럭.”

 

아극타의 입에서 기침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핏물이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저 아이들을 부탁……, 하겠습니다.”

 

“걱정 말게. 저 두 사람만큼은 반드시 지켜주겠네.”

 

“셋……입니다. 아기까지…….”

 

공손천우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갑자기 천외천의 최고원로들이 나타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거늘, 그들이 사죄 운운하며 용서를 빌다니.

 

하지만 신원창의 말을 듣다 보니 가물가물하던 전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그럼 그게 모두 사실이었단 말인가?’

 

“아저씨!”

 

그때 아극령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렸다.

 

아극타가 아극령의 손을 꼭 잡은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아수비도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아극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흑흑흑, 아저씨…….”

 

아극타가 아수비를 향해서 남은 손을 뻗었다.

 

아수비는 연아가 담긴 가죽 포대를 아극타의 가슴에 안겨 주었다.

 

“진짜 손자처럼……, 키우고 싶었는데…….”

 

“연아에게 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벽라족의 용사였다고 전해줄게요.”

 

아극타는 미미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보이진 않지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잊지…… 마라. 너희는…… 자랑스런…… 벽라족의…… 마지막…… 핏줄이란 걸…….”

 

“예, 아저씨!”

 

“아저씨이이이이! 안 돼요!”

 

순간, 아수비의 악에 가까운 연아를 쓰다듬던 아극타의 손이 밑으로 툭 떨어졌다.

 

 

 

신원창을 비롯한 노인들은 아극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공손천우도 그때쯤에는 마음을 가라앉힌 상태였다. 그는 가죽 포대를 꼭 껴안고 있는 아수비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슬퍼 마시고 기운을 차리십시오.”

 

“아저씨도 편한 마음으로 가셨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공자.”

 

그때 신원창이 물었다.

 

“왜 황산에서 여기까지 왔는가? 지진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공손가의 사람이긴 하지만 용서를 비는 것으로 봐서 자신들을 해칠 것 같지는 않다.

 

잘하면 목적지까지 갈 동안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한 아수비는 사실대로 말했다.

 

“저희는 풍천이란 분을 만나기 위해 상구로 가는 중인데…….”

 

공손천우는 아수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풍천의 이름을 듣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풍천?”

 

아수비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분이 상구 금산의 천풍장에 산다고 했어요. 그러니 그곳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신원창은 풍천이 대풍이라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공손천우를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이냐?”

 

“예? 예, 어르신.”

 

공손천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수비에게 물었다.

 

“풍천이라는 사람과는 무슨 사입니까?”

 

“그분은……, 그분은……, 이 아기의 아버지에요.”

 

헉!

 

‘뭐라? 아기의 아, 버, 지?’

 

공손천우는 멍한 표정으로 가죽 포대 속의 아기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고 방긋 웃는데 너무나 예뻤다.

 

하지만 그는 아기가 예쁜 것보다 다른 이유로 웃음이 떠올랐다.

 

‘저 아기가 풍천의 아이란 말이지? 그럼 풍천이 다른 곳에서 씨를 뿌렸단 말? 흐흐흐, 백초령이 그 사실을 알면……?’

 

그는 대소를 터트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아니지. 이 아기와 여인을 인질로 해서 풍천에게 백초령의 곁을 떠나라고 협박할까?’

 

그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조금 치사한 방법이어서 그렇지.

 

좌우간 짙은 구름이 껴서 막막해 보이던 하늘에 햇살이 비친 기분이었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행복한 고민을 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지만 두 번째 방법은 나중에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많았다. 당장만 해도 천외천의 최고 원로 세 사람이 보고 있지 않은가. 들키면 백초령을 얻기 전에 맞아 죽을지 몰랐다. 풍천이 밤에 찾아와서 복수를 하려고 하면 그것도 큰일이고.

 

‘그래, 자연스럽게 떨쳐내는 거야. 찍소리도 못하게. 흐흐흐 하하하하!’

 

그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아수비를 바라보았다.

 

아수비의 얼굴도 다른 두 사람처럼 두꺼운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왜 얼굴을 가린 것인지 알 순 없지만, 목소리만큼은 천상의 선녀만큼이나 맑고 아름다웠다.

 

“일단 저분의 상처를 치료하고 신검문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기다리시면 풍천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아수비도 신검문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공손천우의 말을 듣고 반색했다.

 

“아! 맞아요. 그분도 신검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고마워요, 공자.”

 

“별말씀을.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잘하면 백초령에게서 풍천을 쫓아내 줄지 모르는데!

 

공손천우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다 상처가 심하니 정양에 도착하면 마차를 한 대 구해야 할 것 같군요.”

 

 

 

그날 밤. 정양에 도착한 공손천우는 모자를 벗은 아수비의 얼굴을 보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하얀 얼굴은 백옥처럼 고왔고, 맑은 벽색 눈은 신비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이향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로구나.’

 

그는 감탄하는 한편으로 속이 쓰렸다.

 

풍천의 뭐가 잘나서 저런 여인들이 죽고 못 산단 말인가?

 

‘그 자식, 혹시 그 기술이 뛰어난가? 아니면 그게 크던가.’

 

그런데 속도 모르고 공손완이 물었다.

 

“천우야, 백무천의 둘째 딸과 혼인한다는 말이 들리던데, 어떻게 되었느냐?”

 

공손천우는 속이 쓰렸지만, 희망이 생겼기에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말은 오갔는데,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증조부님.”

 

‘하지만 곧 결정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2

 

 

 

아침에 마차를 구한 공손천우는 아수비 일행과 신원창 등을 인도해서 신검문에 도착했다.

 

공손천우는 그들을 천외천 사람들이 머물던 별원으로 안내하고 곧장 백초령을 찾아갔다. 얼굴 가득 득의의 웃음을 지은 채.

 

백초령을 만난 그는 자세한 이야기는 피한 채 넌지시 말했다.

 

“별원에 풍천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 가서 한 번 만나보지 그래?”

 

“풍천을?”

 

“그래. 남쪽에서 보물을 가진 사람이 마도무리에게 쫓긴다는 말을 듣고 어르신들과 함께 구했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 그리고 아기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풍천을 찾아가는 사람이더군.”

 

백초령은 공손천우의 말에서 의문점을 두어 가지 발견했지만, 그보다는 풍천을 찾는다는 사람들이 누군지 더 궁금했다.

 

 

 

별원으로 가서 아수비 일행을 만난 백초령은 석상처럼 몸이 굳었다.

 

아수비 일행의 해괴한 복장은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여인의 가슴에 담긴 아이였다.

 

“포대에 담긴 아기가 풍천의 아이라는군.”

 

공손천우의 말을 들은 백초령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푸, 풍천의……, 아기라고요?”

 

아수비는 이미 공손천우에게 말을 한 터라 그녀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예, 아가씨.”

 

풍천의 아기란다. 저 아이의 아버지가 풍천이란다.

 

말도 안 돼! 풍천, 그 인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으드득!

 

백초령은 이를 갈면서 움켜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가만 안 두겠어! 어디서 나를 속여?’

 

공손천우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모습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그래, 분노해라, 백초령! 그깟 놈은 잊어버려! 그런 사기꾼 같은 놈을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크하하하하!’

 

그는 속으로 대소를 터트리며 슬며시 몸을 돌려서 방을 나갔다. 자신이 좋아하고 있는 걸 보면 백초령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랐다.

 

그런데 공손천우가 방을 나간 직후였다.

 

백초령은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아수비의 가슴에 안긴 가죽 포대를 바라보았다.

 

“아기를…… 한 번 봐도 될까요?”

 

아수비는 그제야 백초령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거절할 수도 없는 일. 그녀는 가죽 포대를 반쯤 벗기고 백초령에게 넘겨주었다.

 

백초령은 이를 악물고, 가죽포대 속의 아기를 바라보았다.

 

티 한 점 없는 하얀 피부, 검은 눈동자. 아기가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웃는다.

 

한순간 백초령은 멍한 표정으로 아기만 바라보았다.

 

“너무 예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분노도, 원망도…….

 

 

 

3

 

 

 

하오문 식현분타에 도착한 풍천은 괴인들을 쫓던 혈방 무사들이 정양 근처에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정양 쪽으로 올라갔다.

 

하오문 정양분타에서는 가죽옷을 뒤집어쓴 괴상한 사람과 기이하게 생긴 노인 넷, 청년 하나가 마차를 구해서 천중산 쪽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풍천은 노인들의 생김새를 듣고 신원창이 아수비 일행과 만났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아수비 일행이 그들과 함께 신검문으로 갔다는 걸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네.’

 

그때 초웅이 물었다.

 

“형, 누군데 밥도 안 먹고 급히 달려온 거야?”

 

풍천을 따라 하루를 꼬박 달려온 사람들은 궁금증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초웅이 마침 질문을 하자 눈을 반짝이며 풍천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들에 대해서 뭐라고 한단 말인가?

 

막상 대답하기가 애매해진 풍천은 대충 얼버무렸다.

 

“어, 있어. 그런 사람들이.”

 

왠지 수상쩍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더 물어봐야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초웅이 눈치 빠르게 물었다.

 

“여자도 있어?”

 

“어.”

 

사람들은 더욱 수상한 눈으로 풍천을 흘겨보았다. 특히 공손이향은 차갑던 얼굴에서 더욱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풍천은 어정쩡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자자, 여기서 식사하고 신검문으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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