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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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7화
247화
쩌저저정!
맑은 하늘이 깨져나가는 것 같은 청명한 소리와 함께 사우의 몸이 튕겨졌다.
사우는 전신이 부서지는 충격에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방어로 혁련궁의 죽음을 막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입술을 질끈 깨물어 흐려지는 정신을 일깨운 그는 검을 지팡이 삼아서 비틀거리며 혁련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혁련궁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기운을 내십시오, 성주!”
혁련궁은 핏물이 흘러나오는 입술을 비틀어서 억지웃음을 보였다.
“끝까지 그렇게 부를 것이냐?”
“성주…….”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을 것이냐?”
사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꺼풀을 파르르 떤 그는 가슴에 맺힌 한을 뱉어냈다.
“아닙니다. 아……버님.”
“허, 허허허. 그래……, 너는 내 아들이지.”
“물론입니다, 아버님. 그러니 정신 차리십시오.”
혁련궁은 사우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았다.
혈맥이 토막 나고 단전마저 부서진 상태였다.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평생 동안 그늘에서만 살아온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정말 미안했다, 우아야……. 내 욕심으로 인해서 고통만 받다 죽은 네 어미에게도……, 용서를…….”
“아버니이이임!”
사우는 혁련궁을 끌어안은 채 절규했다.
부친이 힘을 얻기 위해서 어머니를 버렸다는 걸 알고 자신도 혁련이라는 성을 버렸다. 부친의 옆에 있으면서도 지난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뒤바뀐다 해도 그는 어쩔 수 없는 혁련궁의 아들이었다.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공손무백은 사우의 절규를 들으며 검을 불끈 움켜쥐고 시선을 돌렸다.
마침내 혁련궁이 죽었다. 신마성의 주인이며,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남천신마가 자신의 손에 죽었다.
그런데도 그는 기쁨을 누릴 수가 없었다. 공손무헌과 천상선원의 원로들이 온 것을 보고 불길한 생각이 든 것이다.
“무헌이 어떻게 여길……?”
그가 바라보고 있는 사이 공손무헌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모두 멈춰라!”
청천벽력 같은 일성이 천공을 쩌렁쩌렁 울렸다.
“천상령으로써 명하노니! 천외천의 형제들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서라!”
공손무헌과 천상선원의 장로들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뒤이어서 승려와 도인, 속인 삼십여 명이 전장을 향해 다가왔다. 십정과 천의맹의 장로들이었다.
“아, 미, 타, 불! 천의맹의 제자들은 한쪽으로 물러서라!”
3
마도연합의 무사들은 천여 명만이 살아남은 상황이었다. 그들은 혁련궁마저 죽자 사방으로 흩어져서 피로 얼룩진 전쟁터를 벗어났다.
시뻘건 대지에 남은 것은 사천에 이르는 시신뿐.
공손무헌은 시신으로 뒤덮인 전장을 바라보며 울분을 토하듯이 외쳤다.
“천외천의 형제들이여! 세상에 나와 혈우를 맞으니 기분이 어떠한가? 그대들의 가슴에 쌓인 욕망이 해소되던가? 진정 그대들이 원하는 세상이 이런 것이던가? 말해보라! 그대들이 바라는 진정한 꿈은 어떤 것이더냐?”
천외천의 무사들은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공손무헌은 공손무백을 바라보았다.
“형님, 이 많은 형제들의 피를 무엇으로 대신하려 하시는 겁니까? 어찌하여 이 아우로 하여금 형님께 검을 겨누게 하십니까?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바라고 피를 뿌리시는 겁니까?”
공손무백은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이제 승리가 목전에 이른 상태였다. 조금만 몰아붙이면 마도연합을 완벽히 물리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무헌! 네가 정녕 내 뜻에 반할 작정이란 말이더냐!”
“더 이상은 안 됩니다, 형님. 그만 뜻을 꺾으시지요. 아버님께서 저에게 천상령을 내주시며 모든 일을 정리하라 하셨습니다.”
“으하하하하! 천하가 목전에 있거늘, 나에게 뜻을 꺾으라고? 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무헌!”
공손무헌은 참담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천외천의 형제들 중 천상령의 율법에 따를 사람은 한쪽으로 물러나라!”
“어림없는 소리! 이미 본천의 율법은 모두 무너졌…….”
광기 들린 사람처럼 소리치던 공손무백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육백여 천외천 무사 중 사백 명 이상이 공손무헌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구룡회의 무사들 중에서도 적련방과 하남 삼파의 무사들이 그들과 함께 한쪽으로 비켜섰다.
남은 사람은 천외천 무사 이백과 천붕성의 무사를 비롯한 강호무인 백칠팔십 명뿐.
공손무백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얼굴이 벌게져서 버럭 소리쳤다.
“멈춰라! 본좌와 천하웅패의 꿈을 펼치지 않겠단 말이냐!”
소용이 없었다. 몸을 돌린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공손무헌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남은 자들조차 불안한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며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손무백은 상황이 뒤틀어졌다는 걸 깨닫고 사정하듯이 외쳤다.
“무헌! 혁련궁이 죽은 게 보이지 않느냐? 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모든 일을 깨끗이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천외천의 영광을 위해서, 나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 무헌!”
“형님은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셨습니다. 제가 형님을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 상황을 조용히 종결짓는 것뿐…….”
“잠시만 눈감아주면 되는 일이다! 천외천주의 자리는 너에게 넘기마. 도와다오, 무헌!”
“그만 포기하십시오, 형님.”
“이놈! 네가 정녕 형제들끼리 피를 보겠다는 거냐!”
풍천이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다.
“훗! 웃기고 있네. 적반하장이라더니, 형제에게 먼저 검을 겨눈 사람이 누군데?”
홱, 고개를 돌린 공손무백이 풍천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감히!”
풍천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공손무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공은 못할 것 같으니까 내가 하겠수. 막지 마쇼.”
공손무헌은 풍천의 말뜻을 이해하고 참담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하게.”
풍천은 공손무백의 앞으로 걸어갔다.
공손무백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풍천을 노려보았다.
“이제 보니 네놈들이 미리 짜고서 수작을 부린 것이구나!”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를 갈면서 물었다.
“혹시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이 네놈 아니더냐?”
풍천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럼 공손선우가 나를 죽이려고 천응단과 유천삼위를 동원한 것은 괜찮수? 나는 저 양반하고 달라서,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까지 용서할 만큼 마음이 넓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죽였죠.”
공손무백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천응단이라고? 설마 네놈이……, 대풍?”
“신경이 무디군요. 그런 눈으로 무슨 천하를 얻겠다는 겁니까? 하긴 자식 교육을 그따위로 시킨 사람이 천하를 얻는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 안 그래요?”
“죽여버리겠다, 이놈!”
공손무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풍천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 휘황한 광채가 일렁였다.
풍천은 무심한 눈으로 공손무백의 검을 보며 한 걸음 내딛었다.
순간 그의 몸이 스르르 사라지는가 싶더니, 하늘에서 벽광이 번뜩이고 묵빛 번개가 쏟아졌다.
공손무백도 용화신공을 모조리 끌어올리고는 전력을 다해서 풍천의 검에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콰르르릉! 쩌저저저적!
마른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벼락이 쳤다. 땅이 뒤집어지고 하늘로 먼지 구름이 솟구쳤다.
경천동지의 격전이 사오 초 정도 흘렀을 때였다. 갑자기 창천하늘이 일직선으로 길게 갈라졌다.
풍천이 광양검결의 삼초, 무진(無盡)을 펼친 것이다.
공손무백도 용화신공의 절초인 용화무상을 펼쳐서 대항했다.
쾅!
단발의 굉음과 함께 공손무백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얼굴이 석고처럼 창백해진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알고 마지막 모험을 하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여기서 지면 모든 게 끝장인 상황. 삼십여 년 전 천무동의 비고에서 얻은 이후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았던 자신만의 힘을 개방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일순간, 창백한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죽일 놈! 내 모든 것을 다 드러내더라도 네놈을 죽이고야 말겠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핏빛 혈광이 솟구쳤다.
공손무백의 변화를 본 천상선원의 원로들이 경악해서 외쳤다.
“맙소사! 혈천마공이다!”
“무백이 금지된 전설의 마공을 익혔단 말인가?”
“저놈이 제대로 미쳤구나! 어쩐지 욕망을 참지 못한다 했더니…….”
공손무백은 미친 듯이 광소를 터트리며 풍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크하하하하! 이놈, 나와 함께 죽자!”
그가 날아들면서 가공할 압력이 밀려들었다.
풍천은 숨이 턱 막힌 와중에도 천풍신공과 벽라진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분분히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물러서라!”
“충격파에 휩쓸리면 죽는다! 물러서!”
찰나였다.
묵전검에서 묵광과 벽광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씨발,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공손무백!’
풍천은 이를 악물고 두 기운을 충돌시켰다.
순간, 두 기운이 뒤엉키며 눈 부신 빛이 폭발했다.
뇌정천결 중 마지막, 뇌정파천이 펼쳐진 것이다.
콰르르릉!
콰과과광!
두 사람의 기운이 맞부딪친 곳의 바닥이 삼 장 넓이로 움푹 파였다.
풍천은 훌훌 삼 장을 날아가서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세 걸음을 물러선 후 억지로 몸을 세웠다.
반면 공손무백은 주욱 사오 장을 밀려난 후 우뚝 멈춰 섰다.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풍천이 흘러내리는 핏물을 소매로 닦아낼 때였다. 공손무백의 몸에서 피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한참 동안 뿜어지던 피안개가 옅어질 즈음, 공손무백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스르르 주저앉았다.
“손에 다 들어왔거늘,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풍천은 그가 죽어가는 걸 알고 다급히 전음으로 말했다.
<사공정이라는 사람을 모르지 않겠지? 내가 바로 사공정의 아들이다, 공손무백.>
주저앉은 공손무백의 눈빛이 폭풍을 만난 난파선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네, 네가……?”
<하나만 묻겠다. 아버님을 만나 뭐라고 했지? 뭐라고 했는데 어머니와 함께 자결하신 거지?>
공손무백은 빛이 사라진 눈으로 풍천을 주시하며 조소를 지었다.
“네가 살려고 하면……, 모두가 죽을 거라고…… 했지. 모두…… 죽을 거라고…….”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앞으로 꼬꾸라졌다.
풍천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결국 부모님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공손무백의 말대로 자결을 선택한 것 같다. 바보같이!
‘차라리 어디론가 멀리 도망을 치시지…….’
그때 초웅과 단천무령들이 풍천을 향해 달려왔다.
“형!”
“령주!”
창백한 얼굴, 입술을 타고 흐르는 핏물. 풍천도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 보였다. 자칫 방심하면 공손무백을 따르는 자들에게 당할지도 몰랐다.
풍천을 빙 둘러싼 그들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사방을 경계했다.
퉤!
풍천은 피를 한 모금 뱉어내고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초웅, 저기 도망가는 놈을 잡아라. 아직 다 받지 못한 게 있으니까.”
멀리서 공손무백의 죽음을 본 교비은이 도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동안 용사정이 그의 앞을 막았다.
“교비은, 묵천단은 너 따위가 모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라!”
냉랭히 소리친 그는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교비은의 목을 단호하게 잘라버렸다.
공손무헌은 공손무백의 시신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욕망은 결국 죽음으로 종결되었다. 동시에 천외천의 지난 구백 년 세월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의 이 결과가 공손무백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걸. 결국은 천외천 모두의 방심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걸.
이제 자신은 그 마무리를 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다.
형의 죽음, 부친의 절망을 등에 지고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테니까.
공손무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풍천을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늦을 뻔했군.”
“지금이라도 온 게 다행이죠.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상황이 마무리되면 불귀곡으로 돌아갈 것이네. 그리고 다시는 이전처럼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을 거네.”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또 다시 욕망에 물든 자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하지만 풍천은 그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중 일. 어떻게 될지 누가 미리 알 수 있으랴.
“빚은 꼭 갚으쇼. 이자까지 쳐서.”
공손무헌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러지. 안주면 자네가 가만히 있겠나?”
“알면 됐수. 나는 바빠서 이만 가볼 테니 뒤처리는 이공께서 하쇼.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하지 않수?”
풍천은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렸다.
“따라올 사람은 따라오고, 떠날 사람은 알아서 가쇼.”
그때였다. 공손무헌이 그의 뒤에 대고 물었다.
“아버님께 들었네. 정말 가문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