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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3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35화

 

235화

 

 

 

 

 

 

점포주인의 눈이 커졌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가격을 듣고도 터무니없다는 눈빛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극타는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말하고 다섯을 셀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대답이 없자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제야 점포주인이 마지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 좋소. 오백 냥 드리리다.”

 

 

 

만호점을 나선 아극타는 몇 군데 들러서 필요한 물건을 샀다. 그리고 자신의 몸뚱이만한 보따리를 짊어지고 사당으로 돌아갔다.

 

“이걸 겉에 입어라.”

 

아극타는 무명옷을 꺼내서 아수비와 아극령에게 건네주었다. 가죽옷을 안쪽에 입고 밖에 무명옷을 입으면, 그나마 사람들의 눈길을 덜 받을 것 같았다.

 

아수비와 아극령은 바로 옷을 걸쳤다.

 

옷을 걸치자 살결과 눈빛만 아니면 일반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보다 편한 표정이 된 그들은 아극타가 길거리에서 사온 교자와 고기구이로 저녁식사를 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사 먹는 음식은 맛이 기묘했다. 교자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는데 고기구이는 영 입맛에 안 맞았다. 

 

짜고, 맵고, 거기다 진한 향기까지 나서 몇 점 먹으니 금방 질렸다.

 

아극타는 절반이 남은 음식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는 조금 먹어보고 사야겠다.”

 

그때 아극령이 고개를 들고 눈빛을 반짝였다.

 

밖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짐승의 기척이 아니었다. 짐승은 쇠로 된 물건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

 

“아저씨, 오면서 다른 일 없었어요?”

 

아극타도 느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수비가 상황을 짐작하고 내려놓았던 연아를 안아 들었다.

 

“아저씨가 판 청광석 때문에 찾아온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연아를 업어라.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세 사람이 사당을 나서자 십여 명이 그들을 둘러쌌다.

 

그들 중 커다란 체구의 장한이 칼을 들고 앞으로 나서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흐, 보물을 지닌 게 죄라는 말 들어봤나? 네놈들이 가진 보물과 돈을 내놓아라. 그럼 목숨은 살려주지.”

 

아극타의 두 눈에서 파란 살기가 번뜩였다.

 

황산에서 참고 참은 것은 그곳에 터전을 마련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죄 없는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들. 뭔가를 뺏기 위해서 형제에게 칼을 내미는 자들은 죽어도 싼 자들이었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지.”

 

아극타는 옆구리에 매달린 투박한 도를 빼들고 하얗게 웃었다. 아극령도 아극타가 싸울 의사를 밝히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저도 더 이상 쫓겨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숙부.”

 

장한은 고리눈을 부릅뜨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 자식들이 미쳤나? 네놈들이 그렇게 말하면 겁먹을 줄 알아? 저 계집만 남겨두고 모두 죽여라!”

 

아수비 일행을 둘러싸고 있던 십여 명의 장한들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옥행 마차를 탔다는 걸 그때까지도 몰랐다.

 

“으아악!”

 

“뭐, 뭐야? 조심……, 켁!”

 

“으으으으, 귀, 귀신이다.”

 

갑자기 비명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순식간에 칠팔 명이 쓰러지자 그제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하지만 아극타와 아극령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말썽이 없는 것이다.

 

서걱!

 

아극타는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덩치 큰 장한의 가슴을 길게 쪼갰다.

 

“크억!”

 

장한이 공포에 찬 눈빛으로 아극타를 바라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것으로 열세 명의 주검이 널려 있는 사당 앞이 고요해졌다.

 

아극타는 칼을 집어넣고 아수비와 아극령을 재촉했다.

 

“이곳을 벗어나자. 또 다른 놈들이 올지 모르니까.”

 

그들은 사당 뒤로 난 길을 통해서 그곳을 떠나갔다.

 

그리고 반 각이나 지났을까, 열대여섯 살가량의 소년이 사당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허리를 숙이고 죽은 자들을 살펴본 소년은 뒷걸음질로 그곳을 벗어났다.

 

 

 

사당 앞에서 장한들이 죽은 지 한 시진 후.

 

소년은 죽은 장한들이 속해 있는 안경의 흑도문파, 귀호문의 주인 앞에서 사당 앞의 일을 이야기했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귀호문주 양호는 분노를 터트리며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오십여 명의 수하들이 모이자, 곧장 아수비 일행을 추적했다.

 

소년은 양호가 귀호문 문도들을 데리고 안경을 출발하자, 곧장 흑성당과 천혈궁 안경분타로 달려가서 그 정보를 팔아먹었다.

 

 

 

“한 알에 은자 수천 냥이나 나가는 보물을 주머니 가득 가진 괴인들이 귀호문 사람들을 죽이고 도주하는 중입니다요.”

 

 

 

그날 밤, 백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안경을 떠나 아수비 일행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보물을 가진 세 명의 괴인에 대한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서 단 하루 만에 인근 이백리가 보물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보물을 탐내는 추적자들이 구더기처럼 몰려들었다.

 

 

 

제5장. 동전(銅錢) 한 푼

 

 

 

 

 

1

 

 

 

풍천은 비검당 사조와 함께, 삼파에게 배정된 동쪽 건물에 머물면서 조용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첫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적은 철목보로 돌아가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 날, 적련방에서 무사 오백이 합류했다. 그들을 이끌고 온 사람은 묵천단주 용사정이었다. 그제야 천룡회 무사들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풍천은 그날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삼파가 머무는 동쪽 건물을 벗어나 회령장을 살펴보았다.

 

회령장은 강호의 문파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구조도 강호문파의 장원과 많은 점이 달랐다.

 

건물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커다란 전각보다는 주거를 목적으로 한 작은 건물과 수확한 곡물을 쌓을 수 있는 창고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나 다섯 채의 소규모 장원이 연결되어서 하나의 대장원을 이루는 구조는 회령장만의 특징이었다.

 

풍천은 천풍장보다 족히 스무 배 이상 큰 회령장을 돌아다니며 구조를 익혔다.

 

만약 적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장원의 구조를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차이는 삶과 죽음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층 건물을 돌아서 남쪽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보였다. 다름 아닌 천의맹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십정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천의맹 내의 천외천 무리를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곳의 상황을 알면 좀 더 확실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거늘, 그러지 못한 것이 답답했다.

 

‘그런데 이공은 어디 있는 거야?’

 

천의맹 사람들을 바라보던 풍천의 눈이 반짝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백초령을 구하기 위해서 불귀곡으로 갈 때 만난 황보안이 보인 것이다.

 

‘어? 황보안도 와 있었나?’

 

풍천은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고 황보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아는 척했다.

 

“이게 누구요, 황보 형 아뇨?”

 

황보안은 풍천을 돌아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신지……?”

 

“저는 신검문의 풍천이라 하죠. 일 년 전, 남소에서 만나 백하에서 헤어진 적이 있는데, 모르겠수?”

 

“신검문의 풍천?”

 

풍천의 이름을 되뇌던 황보안은 남소와 백하라는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고 보니 몸집과 행동, 말투가 눈에 익었다.

 

“혹시……, 대 형?”

 

“사정이 있어서 얼굴이 조금 바뀌었죠. 잠깐 이야기 좀 나누었으면 하는데, 괜찮겠수?”

 

황보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저쪽으로 가죠.”

 

 

 

황보안은 이차 지원무사로 왔다고 했다.

 

같은 향에 있던 대주와 명진, 송구도 함께 왔는데, 명진은 부상이 심해서 치료 중이고, 대주는 작년 초겨울 싸움에서 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고 소림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 바람에 이곳에는 송구 도형만 남았지요.”

 

‘성질은 개떡 같은 사람이 운은 억세게 좋군.’

 

하늘이 심술을 부리지 않고서야 어찌 송구만 멀쩡할까? 전생에 덕이라도 쌓았나?

 

풍천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강매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강 소저는 안 오셨수?”

 

“모종의 비밀임무를 맡아서 오지 않았소이다.”

 

비밀임무? 천외천에 대한 조사 때문에 남은 건가?

 

하지만 풍천은 모른 척하고 화제를 돌려 넌지시 물었다.

 

“천의맹에서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수?”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오. 다만 천의대정평의회에서 천룡회에 대한 지원을 보류했다는 말만 들었소.”

 

“황보 형이 볼 때는 어떻수? 천룡회, 아니 천외천이 정말로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고 보쇼?”

 

황보안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천외천의 뜻에 매우 감명을 받았소. 그런데 지금은……, 확신이 서지 않소. 강호의 정의를 위한다는 말이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다른 사람들도 황보 형과 같은 생각이요?”

 

“생각이 조금씩 다르니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군요. 그런데 대 형, 아니 풍 형은 천외천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가졌으면서 왜 이 싸움에 나선 거요?”

 

초령이를 위해서. 정확히는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

 

그리고 돈도 벌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미친놈 보듯 쳐다볼지 몰랐다.

 

“천외천보다 신마성 놈들이 더 싫거든요.”

 

풍천은 그렇게 대충 둘러대고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황보 형, 얼마 전 낙양에 다녀왔는데, 지금 천의맹 내에서 비밀스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디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아는 거 있수?”

 

“그게 무슨 말이오?”

 

반문하는 표정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천의맹에서 맹 내에 오랜 세월 잠입해 있던 세작들을 제거한다는 것 같던데 말이죠.”

 

나직이 말하던 풍천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천외천 사람들이 있다고 하거든요.”

 

“그게 정말이오?”

 

“만약 사실이라면 조심해야 할 거요. 천의맹이 천외천 사람들을 제거하면 천외천도 가만 안 있을 거 아뇨?”

 

표정이 굳은 황보안은 풍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풍 형은 그걸 어떻게 안 거요?”

 

“서문결이라는 사람 아쇼?”

 

황보안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설마……, 검제 서문 대협을 말씀하시는 건……?”

 

“바로 그 사람이 한 말이죠.”

 

“풍 형이 그분을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발이 넓어서 아는 사람이 꽤 되죠. 하, 하, 하.”

 

황보안은 풍천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로선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 봐도 풍천과 서문결을 연관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검제가 누군데, 풍천에게 그런 극비에 가까운 이야기를 함부로 한단 말인가?

 

그는 의문이 많았지만, 그래도 자신을 걱정하는 풍천의 성의를 생각해서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좌우간 알려줘서 고맙소. 상황을 봐서 적절히 대처하지요.”

 

“정확한 소식이 전해지면 나에게도 알려주쇼.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죠.”

 

황보안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리다.”

 

그때 천의맹의 무사 하나가 두리번거리며 나타나더니 그들을 발견하고 똑바로 다가왔다.

 

“향주님, 거기 계셨군요. 당주께서 찾으십니다.”

 

황보안은 작별을 고했다.

 

“그래요? 풍 형,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소. 다음에 봅시다.”

 

풍천은 그쯤에서 황보안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하시죠.”

 

그리고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황보안의 등을 바라보았다.

 

‘천의맹의 일이 늦지 않게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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