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3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33화
233화
제4장. 청광석은 피바람을 일으키고
1
대월산장을 빠져나온 천룡회 무사들은 곧장 철목보까지 후퇴했다.
갈 때는 천오백이었던 무사들이 돌아올 때는 칠백으로 줄어든 상태. 천룡회와 신마성 간의 전쟁 중 최악의 패배였다.
창백한 얼굴, 분노를 씹으며 철목보에 돌아온 탁능한과 공손선우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적이 언제 철목보를 공격할지 몰랐다. 철목보마저 적에게 뺏기면 회남이 위험한 상황.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만 했다.
쾅!
“빌어먹을!”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친 탁능한은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공손선우는 그런 탁능한을 보지도 않고 이를 갈듯이 말했다.
“아버님께 지원을 요청했으니 곧 지원무사들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견디지요.”
“잠영이 조금만 더 정확한 정보를 줬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공손선우의 눈이 탁능한을 향했다.
“지금 본천을 원망하시는 겁니까?”
“원망하는 게 아니네. 사실을 말한 것이지.”
공손선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고개를 돌려 허공을 노려보았다.
탁능한의 말대로 잠영은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했다.
이번에 신마성이 꾸민 계획은 하루아침에 세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대월산장을 뺏기 전에 세웠을 게 분명했다. 아니라면 그들은 철목보까지 쳐들어왔어야 했다.
신마성과 천혈궁에도 잠영이 있거늘, 그들은 모두가 간부들이거늘, 왜 적의 계획을 몰랐단 말인가?
‘무용지물 같은 인간들…….’
그때였다.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친 그는 싸늘한 눈빛을 빛냈다.
‘만약 신마성이 잠영의 존재를 눈치 챘다면……?’
그렇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천외천의 정보력은 잠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들이 정보입수를 차단당한 상태라면 천외천은 한쪽 눈이 감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맞아. 최근 들어서 잠영의 연락이 뜸해졌어. 혹시 놈들에게 당해서?’
공손선우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장한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전음으로 명을 내렸다.
[아버님께 연락해서 잠영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전해라.]
장한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도 탁능한은 이런저런 불만을 털어놓았다.
“놈들의 지원무사들이 오기 전에 좀 더 강하게 공격했어야 했어. 그때 최대한 피해를 주기만 했어도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 게야. 제기랄, 그딴 놈들에게 당하다니…….”
공손선우는 계속되는 탁능한의 불평불만에 짜증이 났다.
“성주, 먼저 이곳을 방어할 계획을 세워봅시다.”
탁능한은 공손선우의 짜증이 가득한 말에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입술을 씹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이곳마저 뺏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디 자네 생각을 말해 보게나.”
하지만 그들은 오래 이야기 나눌 겨를이 없었다.
콰당.
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성주!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탁능한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야? 얼마나 가까이 왔느냐?”
“오 리까지 접근했습니다!”
공손선우는 이를 지그시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끝장을 보자는 건가? 오냐, 혁련후! 대월산장에서는 기습을 받아 당했지만, 이곳에서는 다를 것이다!’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탁능한을 주시했다.
“탁 성주, 당분간만 지휘를 일원화합시다.”
“무슨 말인가?”
“지휘가 둘로 나누어져 있으면 빠르게 대응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놈들을 물리칠 때까지 한 사람이 지휘하자는 말이지요.”
탁능한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그려졌다.
“그러니까, 자네가 지휘를 맡겠단 말인가?”
“당분간일 뿐입니다.”
탁능한은 지휘권을 넘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건방진 놈. 지금 회주의 아들이라고 위세 떠는 거냐?’
하지만 무사 팔백을 잃은 지금 가장 큰 전력은 이백에 이르는 천외천 무사들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차피 자신이 지닌 지휘권은 반쯤 빈껍데기나 다름없었다.
탁능한은 이를 악물고 짓씹듯이 말했다.
“대신 잘못될 경우 자네가 모두 책임져야 하네.”
공손선우는 책임 전가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릴 벌이라고 해봐야 뻔했으니까.
“그렇게 하지요.”
2
천룡회가 대월산장을 공격할 때 그러했듯이 마도연합세력 역시 대화를 배제한 채 철목보를 공격했다.
마도연합세력의 무사 일천오백 대 천룡회와 철목보의 무사 팔백.
대월산장을 공격할 때와 거꾸로 된 상황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천룡회는 지원무사가 배후를 치기로 계획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작전을 지휘하는 사우는 철목보 공격에 장강 이북으로 건너온 신마성 전력과 천혈궁, 북천맹, 서천무련의 무사 중 거의 팔 할을 쏟아 부었다.
철목보에 있는 자들만 무너뜨리면 천룡회 전력의 사 할이 무너진다. 그럼 회남의 본진도 바람 앞의 등불일 뿐.
철목보가 가까워지자 사우의 일성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전력을 다해서 천룡회를 치시오! 이 달이 가기 전에 적련방에서 축배를 듭시다!”
신마성 쪽에선 건곤신마 섭위릉과 신월마신 좌궁화가 남을, 천혈궁주 구인창이 동의 방위를 맡고, 북천맹의 북성마검 연좌평이 서를, 서천무련의 만독마존이 북쪽을 책임졌다.
승리를 확신한 마도연합세력의 무사들은 먹이를 앞에 둔 늑대처럼 철목보를 향해 달려들었다.
누런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며 밀려갔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천공을 뒤흔들었다.
피가 비처럼 내리고, 비명과 악다구니가 천둥처럼 울렸다.
혁련후는 그 광경을 보며 피가 끓었다.
“공손선우! 승리의 기념으로 네 목을 잘라서 공손무백에게 보내주마!”
공력이 실린 그의 일성이 철목보의 하늘에 울려 퍼지자 마도연합세력 무사들의 입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천외천 놈들을 하늘 밖으로 돌려보내자!”
“죽여라! 그 동안 세상을 우롱한 천외천을 멸하라!”
와아아아아아!
콰르르릉!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듯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혈우가 누런 땅을 붉게 물들였다.
“천외천의 무사들이여! 모두 전력을 다해서 놈들을 막아라!”
열세를 온몸으로 느낀 공손선우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불길처럼 타오르는 마도연합세력의 사기를 의욕만으로 꺾기에는 전력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났다.
천룡회 무사 중 가장 강하다는 탁능한도 구인창과의 팽팽한 접전으로 몸을 뺄 여력이 없었고, 도룡단주 사공화도 섭위릉을 상대하느라 남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건 천외천 무사들의 무위가 마도연합세력 무사에 비해 현격히 높다는 것 정도.
그러나 마도연합세력도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신마비원의 고수 이십 명은 물론, 삼패천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를 투입한 상태였다.
공손선우는 그 와중에 좌궁화와 염사진을 상대했다.
그 둘은 풍천을 합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존심에 연연하지 않았고, 뜻도 잘 통했다.
그들은 공손선우가 자신들 둘을 막아내는 걸 보고 경악했지만, 합공의 장점을 살려서 밀어붙였다.
공손선우는 팽팽한 접전이 이십여 초 이어지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천외천의 십대 무공 중 하나인 광한신공을 이용해서 천궁십이검을 펼치는데도 시간이 갈수록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이러다 패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패배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자신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빌어먹을! 이곳에서 죽을 순 없어!’
자신을 호위하던 천궁전의 호위무사들은 적과 어우러져서 자신을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상황을 봐서 철목보를 빠져나가기로 작정했다.
두 배의 전력인 마도연합세력의 공격을 받고 이 정도까지 버틴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아버지라 해도 자신을 탓하지 않을 것이었다.
공손선우는 전력을 다해서 좌궁화와 염사진을 밀쳐내고 몸을 뒤로 뺐다.
동시에 세 명의 천궁전 무사가 그의 앞을 막았다.
찰나의 여유가 생긴 그는 좌우를 둘러보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혁련후가 그를 향해서 신형을 날렸다.
“동료들을 놔두고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목을 내밀어라, 공손선우!”
공손선우는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혁련후를 보며 이를 갈았다.
혁련후가 소리친 바람에, 이제 자신이 조금만 더 물러서도 사람들은 도망가려고 하는 줄 알 것이 아닌가.
“오냐, 혁련후! 오늘 누가 죽는가 보자!”
3
풍천 일행과 삼파 무사들은 바위처럼 굳은 채 야산 위에서 철목보를 지켜보았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격전이 이미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승부가 갈라진 격전. 상황이 너무 확실해서 사람들은 도와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조차 일지 않았다.
돕기는커녕 적이 자신들을 발견하고 달려올까 봐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판이었다.
‘아주 작정하고 공격했군.’
풍천은 철목보의 격전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찢기고 무너져서 바닥에 깔린 천막에 시뻘건 선혈로 지옥이 수놓아져 있었다.
아무리 그가 신마성과 천외천의 동시 멸망을 바란다 해도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는 일은 즐거울 수가 없었다.
‘공손선우, 이 멍청한 놈.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도망갔어야지, 왜 엄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어? 도주도 병법이란 걸 모르나?’
천룡회의 패배는 기정사실, 이제 얼마나 많은 자가 도주할 수 있을지 그것이 관건이었다.
문제는 사방이 막혀서 빠져나가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마도연합세력이 은근슬쩍 북쪽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쥐도 빠져나갈 구석이 없으면 고양이를 문다 했다. 물기 전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
그뿐이 아닐 것이다. 사냥하는 기분으로 도주하는 자를 쫓을 게 분명하다.
풍천은 그 모습을 상상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최대한 몰아붙인 후, 반발하기 직전에 구멍을 만들어 주다니. 그것도 가장 적절한 때에.
‘혁련후가 저렇게 여우같은 놈이었나?’
계략을 쓰긴 해도 잔재주를 부리는 자는 아니라고 들었다. 그의 부친인 혁련궁처럼.
그렇다면 대월산장에서 배후를 친 것도 그렇고, 저러한 계획을 세운 것도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신마성 쪽에 대단한 모사꾼이 있는 것 같군.’
한 명의 뛰어난 모사꾼은 절정 고수 열 명보다도 무서운 법이었다.
자신이 봤을 때, 마도연합세력을 움직이는 자는 최소한 교비은보다 한 수 위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진대원이 철목보를 노려보며 풍천에게 물었다.
풍천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요? 도와줘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풍천의 일행과 삼파 무사들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창백해졌다.
돕는다고?
저 상황을 직접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네가 무슨 무신이라도 돼?
대부분이 그런 표정이었다.
초웅은 칼부터 잡았지만.
“형, 내가 먼저 갈까?”
풍천은 초웅을 흘겨보며 말을 수정했다.
“저기로 가서 돕는다는 게 아니고, 앞으로 가서 도망가는 사람들을 돕자는 거지. 산 사람이라도 살려야 할 것 아냐?”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에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동료의 죽음을 보고도 나서지 못한 게 안타까웠지만, 죽을지 모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 갑시다. 빨리 쫓아가야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거요.”
마도연합세력의 무사들은 천룡회 무사들을 이십 리 정도 쫓은 후 걸음을 멈췄다.
천룡회 무사들은 추적이 멈추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걸음을 늦췄다.
풍천 일행과 삼파 무사들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