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28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28화
228화
공손이향의 인피면구는 풍천이 직접 붙여 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손이향만큼은 잘못 붙여서 이상하게 보이는 걸 원치 않았다.
공손이향은 풍천의 손길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자신의 얼굴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지 않을까? 혹시 붉어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풍천은 무정하게 보일 만큼 무덤덤한 표정으로 인피면구를 붙여 주었다.
공손이향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아, 내가 무슨 생각을…….’
일각에 걸쳐서 공손이향의 얼굴에 인피면구를 붙인 풍천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점검했다.
그렇게 반 시진에 걸쳐서 점검이 끝나자 풍천이 말했다.
“분위기를 봐서는 오늘 내일 사이에 움직일 것 같수. 그때 뒤따라와서 신검문 사람들 속으로 합류하쇼.”
3
둥! 둥! 둥! 둥……!
비상고가 조용하던 적련방을 뒤흔든 것은 풍천이 회남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풍천은 갑작스런 비상고 소리에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가고 있었다.
‘마침내 시작인가?’
그때 방문이 열리고 백승문이 들어오며 다급히 말했다.
“조장님, 모두 대연무장으로 모이랍니다.”
“어디서 불났어?”
“예?”
“불난 거 아니야?”
풍천의 싸구려 농담에, 막 방을 나서려던 사조원들은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낀 사람처럼 움찔했다.
설마 정말로 불난 것으로 생각한 것 아니겠지?
백승문은 풍천의 농담을 재치 있게 돌려서 받아쳤다.
“육안에서 불났데요. 철목보로 가야 한다니 빨리 일어나세요.”
풍천은 구시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제길, 멀리서도 났네. 초웅아, 허 형, 갑시다.”
그때 초웅이 황소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형, 불 끄러 가는데 물통은 왜 안 가지고 가?”
“물통은 놔두고 칼이나 챙겨. 여차하면 다 부숴야 하니까.”
적련방을 출발한 천룡회 무사들은 다음 날 점심 무렵 철목보에 도착했다.
철목보에는 대월산장에서 후퇴한 천룡회 무사 이백여 명과, 탁능한과 공손선우가 이끄는 천룡회 무사 일천이 머물고 있었다. 지금은 연속된 접전으로 삼백 명이 줄어들어 총 구백 명 정도지만.
철목보주 상은진은 오백의 인원이 더 도착하자 이십여 개의 천막을 더 세워서 임시거처를 만들었다.
탁능한은 추가병력이 도착한 즉시 간부들을 모이게 했다.
곧 철목전에 이십여 명의 간부들이 모였다.
탁능한은 왼쪽에 앉아 있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나이 사십 후반의 싸늘한 표정을 지닌 중년인, 그는 천외천 도룡단의 단주인 사공화로 대월산장에서 후퇴한 무사들 중 수장이라 할 수 있었다.
“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소?”
사공화가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월산장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소.”
대월산장에서 후퇴를 했음에도 그는 패배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대월산장에 있던 육백 명의 무사들 중 사백여 명이 죽었는데, 도룡단 무사 서른다섯 중 죽은 사람은 셋에 불과했다. 도룡단이 약해서 패한 것이 아니라 구룡회의 무사들이 약해서 패한 것이다. 그나마도 도룡단이 아니었다면 살아서 돌아온 숫자가 반도 안 되었을 것이었다.
“현재 놈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오?”
“모두 팔백 정도요.”
“그게 전부요?”
“일각 전까지는 그랬소.”
팔백.
자신들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숫자다. 게다가 자신들은 천의맹과 천외천의 고수들이 무려 오백이나 되지 않는가.
“배후의 적들과 떨어져 있는 거리는 어느 정도요?”
“적어도 오십 리 안에는 대규모 인원이 없었소. 기껏해야 이삼십 명의 소규모 순찰조만 돌아다닐 뿐이오.”
“그래요? 그럼 저녁까지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한 다음 공격 계획을 짜보도록 합시다.”
공손이향 등이 비검당에 합류한 것은 지원무사들이 철목보에 도착한 지 한 시진 가량 흘렀을 때였다.
풍천은 석초산에게 그들의 합류 사실을 알렸다.
“우리 단천문 사람들이죠. 당분간 우리 사조원으로 활동할 것이니 그렇게 아시고, 다른 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려주십쇼.”
그리고 주위를 슬쩍 둘러본 후, 아주 비밀스런 이야기라도 되는 듯 넌지시 말했다.
“수당은 나중에 저를 주시면 됩니다, 당주. 한 사람당 은자 이십 냥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곳보다 싸게 해 드린 겁니다만.”
석초산은 입이 귀에 걸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한 고수가 열 명이 넘게 합류했다. 비검당의 무력이 배 이상 강해진 것이다.
하거늘 그깟 수당이 문젠가?
“알겠네. 걱정 말게.”
어둠이 깔릴 때까지 특별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신마성 무사들은 여전히 대월산장에 있었고, 숫자도 팔백에서 큰 변동이 없다고 했다.
탁능한은 그 정보가 전해지자 다시 간부회의를 열었다.
팔백을 무너뜨리면 적의 삼 할이 무너질 터. 승부의 추가 한순간에 천룡회 쪽으로 기운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신검문에서는 장로 진대원과 비검당주 석초산, 백검당주 이종상이 회의에 참석했다.
반시진 만에 돌아온 그들은 조장 이상의 중간간부들을 불러 모으더니 회의 결과를 말해주었다.
“우리는 경천산장, 검각과 함께 남쪽을 맡기로 했네.”
언뜻 보면 단순히 한쪽 방위를 맡은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몇 사람의 얼굴이 구겨졌다.
삼파의 무사들 숫자는 삼백 정도. 다른 곳과 비슷했다. 하지만 남쪽은 적의 탈출로.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더구나 삼파는 주력고수들이 모두 본문에 있어서 절정고수들의 수가 다른 곳보다 적지 않은가 말이다.
진대원의 설명에 진노교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우리 쪽 무사들만 가는 겁니까, 아니면 천의맹이나 천외천에서 지원을 해주는 겁니까?”
진대원도 질문의 의도를 알기에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만 가네. 하지만 너무 의기소침할 것 없네. 놈들도 바로 후퇴하지는 않을 테니, 우리와 부딪칠 즈음에는 전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일 거야.”
나한조가 굳은 표정으로 진대원을 바라보았다.
“배후에서 놈들이 나타나면 꼼짝없이 양면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그에 대한 대책은 있습니까?”
“나 역시 그걸 우려해서 미리 말해두었네. 만약 적들이 배후에서 나타나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답답한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던 석초산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무래도 배후에 미리 사람을 보내서 놈들의 움직임을 감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천산장과 검각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경천산장과 검각에는 내가 말할 테니, 그 일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어차피 십여 명 정도 빠진다 해서 전력에 큰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장로.”
대책회의는 대충 그렇게 해서 끝이 났다.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있던 풍천은 진대원의 천막에서 나오자마자 넌지시 말했다.
“배후 감시, 우리 조가 하면 어떨까요?”
석초산은 풍천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자네 조가?”
사실 그는 풍천의 사조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배후로 빠지겠다고 하자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자네 조가 빠지면 전력에 많은 차질이 생기는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하지만 풍천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걱정 마쇼. 후퇴하는 자들을 막는 것은 저희가 없어도 당분간 걱정 없을 거요. 저들도 돌대가리가 아닌데 후면에 강자를 배치하겠어요?”
“그건 그런데…….”
“그보다 문제는 배후에 놈들의 정예들이 대기하고 있을 경웁니다. 감시조는 단순히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발걸음을 지체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하죠. 그래야 여차하면 본진이 후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으니까요.”
“설마 자네 조원만으로 그들을 막겠단 말은 아니겠지?”
“미쳤습니까? 우리 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들을 정면으로 막아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말 그대로 그들이 달려오는 시간을 지체시키는 거죠.”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배후를 공격당할 걱정이 반은 덜어진다.
석초산은 풍천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 번 더 확인했다.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다니까요.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말인데 말이죠. 우리 힘만으로 그들을 막아낸다면, 수당을 두 배로 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일까?
석초산은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풍천을 바라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문주님께 말씀드리지.”
4
천룡회의 연합세력 중에서 신검문과 경천산장, 검각이 먼저 움직였다.
우회해서 후면으로 돌아가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적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니 그만큼 더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
어둠을 이용해서 동쪽으로 육안을 우회한 삼파 무사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계곡에서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
풍천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새벽이 두 시진 정도 남았을 때였다. 그가 일어나자 조원들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후방 감시임무에 대한 일은 삼파에 모두 알려진 상황. 따로 출발을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출발하기 직전, 검각 무사들이 있는 쪽에서 세 사람이 다가왔다. 그 중 한 사람은 구양종이었고, 두 사람은 바짝 날이 선 것처럼 보이는 삼십 대 중반의 검사였다.
“지금 출발하나?”
풍천은 구양종의 질문을 받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구양 형도 따라가려고요?”
“자네 조 만으로 배후에서 쳐들어오는 자들을 막는 것은 무리네. 비록 큰 힘이 되진 못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네.”
“함께 움직이려면 제 말에 따라줘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습니까?”
구양종의 입가에 실소가 걸렸다.
“황산으로 갈 때도 그랬는데, 이제 와서 못할 것도 없지.”
확실히 많이 달라졌군.
풍천은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구양종의 뜻을 받아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함께 가죠.”
그런데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은 구양종만이 아니었다. 경천산장 무사들 중에서 곽인청이 일어나더니 풍천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나도 함께 가겠소.”
풍천은 그의 합류를 말리지 않았다.
“좋을 대로 하쇼.”
그때 곽인청이 정중히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아침, 풍 형이 본장까지 쫓아가서 적을 몰아냈단 소식을 들었소. 정말 고맙소.”
“하, 하. 별말씀을. 자, 가시죠.”
풍천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계곡을 출발한 지 한 시진 후.
풍천 일행은 대월산장에서 남쪽으로 십오 리 정도 떨어진 야산의 꼭대기 풀숲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곽산과 대월산장을 잇는 길목이 보이는 곳으로, 날이 새면 육안까지도 어느 정도 감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적이 서쪽의 산을 타고 오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서쪽을 맡은 천의맹 무사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적이 몰려올 거라 보나?”
어스름이 깔린 남쪽을 보며 구양종이 물었다.
풍천은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라면 대월산장을 미끼로 사용할 거요.”
“미끼? 팔백 무사를 미끼로 사용한다고? 그건 혁련후의 간이 아무리 크다 해도 너무 위험한 도박이네.”
풍천은 구양종을 바라보았다.
“위험한 도박을 벌리지 않고 천외천을 이길 수 있다면, 물론 그럴 필요까진 없겠죠.”
“그래도 팔백은 미끼로 너무 많네.”
“때론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여야 크게 성공할 수 있죠. 내가 봤을 때, 구양 형에게 모자란 점은 바로 모험심이 없다는 거요. 그래 가지고 어디 여자 마음을 얻겠수?”
구양종의 미간에 잔주름이 그어졌다.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
풍천은 그런 구양종을 그대로 놔둔 채 고개를 뒤로 돌렸다.
“자 이제 운기를 하면서 놈들이 나타날 때를 대비합시다.”
어스름이 물러나고 여명이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일 무렵, 대월산장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피운 불길의 연기치고는 너무 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 아침, 식사를 마련할 시간이기에 연기가 피어난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초웅이 그 연기를 보고는 그리움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산채에서도 다른 산채의 산적에게 신호 보낼 때 저런 연기를 피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