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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27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27화

 

227화

 

 

 

 

 

 

풍천이 백초령의 방으로 들어가자, 백초령이 눈빛을 반짝이며 폴짝 뛰어서 안겼다.

 

풍천은 부드럽게 백초령의 몸을 안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백초령의 입에서 무슨 맛이 나나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복숭아 맛이었다.

 

‘언제 맛보아도 황홀한 맛이야.’

 

하지만 하늘도 질투가 났는지 두 사람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많이 주지 않았다.

 

“풍 조장님, 안에 계십니까?”

 

“무슨 일이죠?”

 

“문주님께서 부르십니다.”

 

문주라면 화청백이 불렀다는 말.

 

‘자기를 만나지 않고 장인어른부터 찾아갔다고 약이 올랐나?’

 

풍천은 그다운 생각을 하며 백초령과 떨어졌다.

 

“금방 갔다 올게.”

 

백초령은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나 하늘의 질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화청백을 만난 풍천은 눈을 홉뜨고 반문했다.

 

“바로 회남에 가라고요?”

 

화청백이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힘든 여정인 줄은 알지만 상황이 워낙 다급해서 어쩔 수가 없네. 천룡회에서 마도 연합과 전면전을 벌이기로 작정한 모양이네. 가서 본문의 사람들을 지켜주게.”

 

‘그거 잘됐군. 이 기회에 양쪽 다 확 망해버려라.’

 

풍천은 내심 잘 됐다 생각하면서도 그로 인해서 자신이 바빠지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차라리 본문 사람들을 지금 철수시키면 어떨까요? 괜히 천외천과 마도세력간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피를 흘릴 이유가 없잖수?”

 

“그건 불가하네. 그곳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네. 지금 철수시키면, 강호의 동도들이 우리를 외면할 거야.”

 

풍천도 모르지 않았다. 짜증이 나서 그냥 해본 말일 뿐.

 

풍천은 별수 없이 화청백의 청을 수락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하죠.”

 

오늘 밤에 일을 저지르는 거야!

 

‘초령이도 싫어하지 않겠지?’

 

그런데 화청백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네만 일각 후에 출발해주게. 한시가 급한 일이니까.”

 

고의로 초령이와 자신을 떼어놓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풍천은 화청백을 의심의 눈초리를 째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서둘러 보죠.”

 

 

 

“초령아, 바로 갔다 올게.”

 

“조심해. 다치지 말고.”

 

“걱정 마. 초령이 널 위해서라도 안 다칠 거니까.”

 

풍천과 백초령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막 두 사람의 입술이 부딪치려는데 밖에서 감능하가 불렀다.

 

“령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인간은 눈치도 없나? 하긴 저러니 아직 장가도 못 갔지.’

 

풍천은 감능하를 잘근잘근 씹으며 백초령과 떨어졌다.

 

오늘따라 백초령이 더욱 예쁘게 보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6

 

 

 

풍천이 신검문으로 돌아간 그날, 하남에서 벌어진 일의 전말이 혁련궁의 귀에 들어갔다.

 

“정체불명의 강적들이 합류하는 바람에 남광옥이 죽고, 둘째가 부상을 입은 채 곽산으로 되돌아왔다고?”

 

“예, 성주.”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그들 중 하나의 이름이 풍천이라는 것과, 그들 일행 중에 일 년 전 금귀옥을 탈출한 허무정이 있다는 것 정도이옵니다.”

 

풍천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터였다. 그러나 허무정이라는 이름은 혁련궁의 귀에 못이 박힌 지 오래였다.

 

“지금 허무정이라고 했느냐?”

 

“그렇사옵니다, 성주!”

 

“그 죽일 놈이……!”

 

혁련궁은 허무정에 대해서 유난히 분노했다.

 

허무정은 그의 딸인 혁련소화가 짝사랑하던 놈이었다.

 

딸은 그놈을 너무나 좋아했다. 오죽하면 그놈이 싫다고 하는데도 이 년 동안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사랑을 구걸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딸이 상사병에 걸려서 병석에 누운 후였다.

 

딸은 그놈이 아니면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우기면서, 아버지의 힘으로 그놈을 자신 곁에 머물게 해달라며 사정한 것이다.

 

대 신마성 성주인 자신의 딸을 거부하다니!

 

말대가리 같은 놈이 감히!

 

자존심이 상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마 딸자식을 가진 사람 중 태반은 자신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딸이 그놈 아니면 죽겠다는데.

 

다행히 그놈은 마도의 거물이 될 기질이 다분한 기재였다. 딸과 맺어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결심이 서자, 다음 날 그를 불러서 말했다. 내 딸과 혼인을 하라고.

 

그때만 해도, 그놈이 감사해 하며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런데 건방진 놈이 감히!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딸과의 혼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죽일 놈!’

 

얼굴은 조금 못생겼지만, 마음씨는 정말 착한 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제 놈 얼굴도 딸보다 잘난 것이 없었다.

 

그런데 거부해?

 

화가 나서 딸에게 그딴 놈은 잊으라 했다.

 

‘이 아비는 그놈을 절대 사위로 삼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니 포기해!’

 

그렇게 소리치며 화를 냈다.

 

문제는 그날 밤 터졌다. 충격을 받은 딸이 그만 약을 먹고 자결을 시도한 것이다.

 

놀란 자신은 급히 지민민을 불러서 딸의 독을 해독했다. 하지만 딸은 그 후유증으로 인해서 실어증에 걸려 두 번 다시 말을 할 수 없었다.

 

분노가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쳤다. 그놈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딸이 또 목숨을 걸고 반대했다. 그놈을 죽이면 자신도 죽겠다면서.

 

젠장!

 

어찌나 화가 나는지 딸까지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이 아무리 독한 마음을 지녔다 해도 불쌍한 딸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마음이 약해진 자신은 할 수 없이 그놈을 죽이지는 못하고 금귀옥에 가두었다. 딸에게 가끔 얼굴이라도 보라면서.

 

그런데 일 년 전,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도주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그놈의 소식이 다시 귀에 들린 것이다.

 

‘그러잖아도 찢어 죽이고 싶은 놈이거늘, 감히 본좌의 적으로 나타나다니.’

 

혁련궁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군사각의 부각주인 요서문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도 허무정의 이름을 말하지 마라. 특히 소화의 귀에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알겠느냐?”

 

두 눈에서 넘실거리는 붉은 광채.

 

절로 공포가 느껴지는 눈빛이다.

 

요서문은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성주!”

 

혁련궁은 그 사이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가운 어조로 명을 내렸다.

 

“그리고 즉시, 본 성의 가동 가능한 무사들을 모조리 모아라. 곧 공손무백이 움직일 게야. 내 직접 가서 그놈들에게 강호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려줄 것이니라.”

 

 

 

혁련궁은 요서문이 나간 뒤로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하남을 제압했다면 안휘의 싸움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을 게야. 하지만 실패한 이상 안휘도 쉽지 않게 되었어.’

 

게다가 북천맹과 서천무련으로부터도 더 이상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천의맹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들도 무턱대고 고수들을 빼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전쟁의 불길이 타오른 이상,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어느 쪽이 무너지든 결정이 나야만 타오르던 불길이 꺼질 테니까.

 

‘어쩌면 내가 놈들을 끌어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놈들에게 기회를 준 것일지도…….’

 

암중에서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지금껏 그래왔으니까.

 

그러나 공손무백은 기다렸다는 듯 세상에 자신을 드러냈다. 수백 년간 천하를 구한 영웅의 이름으로.

 

혁련궁은 고개를 들어 천장에 새겨진 ‘신마존(神魔存)’이라는 세 글자를 응시했다.

 

그의 노안에서 점차 강렬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어쨌든 상관없다. 내가 살아봐야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까? 승리한다면 천하를 쥘 터. 남자로 태어나 마음껏 야망을 펼쳤으니, 강호에 몸담은 이 중 나만큼 행복한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숨을 깊게 들이쉰 그는 허공을 향해서 누군가를 불렀다.

 

“십이마영(十二魔影).”

 

십이지(十二支)의 가면을 쓴 그림자가 전후좌우로 내려섰다. 그들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 엎드려서 명을 기다렸다.

 

그들이 바로 신마성의 누구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혁련궁의 비밀호위, 십이마영이었다.

 

“너희들도 함께 갈 것이다. 너희들은 최악의 경우, 후아를 지키도록 하라. 승패를 떠나서, 전쟁이 끝나면 그때부터 신마성의 주인은 후아니라.”

 

십이마영은 묵묵히 이마를 땅에 댔다.

 

 

 

 

 

제2장. 파천(破天)의 신위(神威)

 

 

 

 

 

1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풍천은 일행과 함께 회남에 도착했다.

 

그는 오지회 다섯 사람과 공손이향, 은양, 쌍무혼, 감능하, 사공수에게 자신이 부를 때까지 회남 외곽의 객잔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천외천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 일이 이상하게 꼬일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남궁도영은 남궁세가로 보냈다. 정말 건곤일척의 결전이 벌어질 경우, 남궁세가의 움직임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분산시킨 풍천은 초웅과 허무정, 관추양만 대동하고서 적련방으로 들어갔다.

 

석초산은 풍천이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판에 세 명의 고수가 합류하자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흐흐흐,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 왔군. 풍천 곁에는 대체 저런 자들이 얼마나 있는 거지?’

 

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며칠 굶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날 석양이 질 무렵, 풍천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구양종이 부련당으로 찾아왔다.

 

“오랜만이군, 풍 조장.”

 

“하하,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그런데 용케 살아났군. 기관이 다 무너져서 죽은 줄 알았는데 말이야.”

 

죽지 않아서 아쉽다는 표정이다. 아마 백초령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운이 좋았죠. 제 명이 긴가 봅니다.”

 

“일 년이 넘어서 돌아온 걸 보니 부상이 심했나 보지?”

 

“많이 다쳤죠. 여기저기 부러지고 찢겨서 의원도 죽지 않은 게 신기하다고 했으니까요.”

 

구양종은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그때 자네 덕분에 살아났지. 이제야 고맙다는 말을 하는군.”

 

어쭈? 제법인데? 고맙다는 말도 할 줄 알고.

 

“너무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그거야 구양 형의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럴 수도 있겠지. 좌우간 당분간 함께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았으면 좋겠군.”

 

“당연하죠. 구양 형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사하십쇼.”

 

“고맙군. 그럼 나중에 보세.”

 

구양종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발걸음이 그냥 떨어지지 않는지 결국 한마디 하고 걸음을 옮겼다.

 

“저번 봄, 검각에 다녀오다가 신검문에 들렀네. 그런데 둘째 소저가 자네를 무척 생각하는 것 같더군. 잘해 보게.”

 

“고맙수.”

 

‘당신도 좋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사쇼.’

 

 

 

2

 

 

 

다음 날. 풍천은 밖으로 나가서 하오문의 사람을 만났다. 

 

하오문 사람에게 몇 가지 물건을 구한 그는 객잔에 있는 천외천 사람들을 찾아갔다.

 

“이걸 쓰쇼.”

 

풍천은 작은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십여 장의 인피면구가 들어 있었다.

 

인피면구를 꺼낸 그는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일인 당 하나씩 건네주었다.

 

“거금 들여서 산 거니까,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다루쇼. 각자의 얼굴을 가늠하고 샀으니까 얼추 맞을 거요.”

 

하나에 은자 이십 냥짜리 상등품 인피면구다. 전에 남양에서 산 것만은 못해도 능히 고급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물건이다.

 

“둘이 짝을 지어서 서로 상대의 얼굴이 붙여주쇼. 먼저 이걸 칠하고, 꼼꼼히 붙여요. 완전히 붙을 때까지는 움직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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