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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0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05화

 

205화

 

 

 

 

 

 

석초산은 머뭇거리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다만 문주님께서 본문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급작스런 일이 벌어져도 동요하지 말고 임무에만 충실하라고 해서 그러려니 하고 있네. 영호 공자가 신임 문주로 임명된 후에 내려온 명령도 별다르지 않고.”

 

이상했다. 왜 그런 명을 내렸을까?

 

‘그리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인데…… 그럼 정말 정식으로 영호관에게 문주 자리를 넘긴 건가? 그거 참, 알 수 없네.’

 

하지만 석초산에겐 별다른 표를 내지 않고 물었다.

 

“신검문은 천외천과 어떻게 지내고 있죠?”

 

“작년 늦가을부터 천외천 사람들 삼십여 명이 본문에 상주하고 있네.”

 

“누군지 알아요?”

 

“이름이나 신분은 잘 모르네. 다만 본문의 일에 별 상관을 하지 않아서 소 닭 보듯 지내는가 보더군.”

 

풍천은 눈빛을 반짝이며 머리를 굴렸다.

 

‘혹시 이공이……?’

 

공손무헌도 밖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신검문으로 갔을 가능성이 컸다. 살아 있다면 말이다.

 

‘초령이 때문에라도…… 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풍천은 석초산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가씨들은 괜찮아요?”

 

“자네, 둘째 아가씨가 돌아온 것 아나?”

 

“우와, 정말요? 어떤 대단한 사람이 그렇게 멋진 일을 해냈죠?”

 

풍천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했다.

 

“대풍이라는 사람인데, 천외천까지 들어가서 아가씨를 구한 것 같더군.”

 

“정말 굉장한 사람이군요. 보나마나 얼굴도 잘생기고 멋진 사람일 것 같은데요?”

 

“전에 봤는데, 몸집은 자네와 비슷하고 나이는 서너 살 많아 보이더군. 하지만 얼굴은 별로였지. 가만? 그러고 보니 얼굴만 아니면 자네와 비슷한 면이 많군. 그때는 왜 몰랐지?”

 

“그래요? 하, 하, 하. 어쩐지 그렇게 멋진 일을 했다 했더니, 저를 닮은 사람은 역시 다르다니까요.”

 

석초산은 풍천의 너스레에 실소를 지었다.

 

느낌이 조금 이상했지만, 설마하니 풍천이 그 대풍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좌우간 그 후로 둘째 아가씨는 별 탈 없이 지내고 계시네.”

 

그때 풍천이 초조한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초령이가 혼인을 했다든가, 뭐 그런 일은 없죠?”

 

“무슨 혼인? 누구하고?”

 

공손무헌이 신검문에 있다면 공손천우와 함께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물어본 건데, 다행히 두 사람이 혼인을 하지는 않은 듯햇다.

 

풍천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아, 하, 하, 하. 혹시 몰라서요.”

 

“사실 둘째 아가씨보다 큰아가씨가 문제네.”

 

“왜요? 서령 아가씨가 다치기라도 했어요?”

 

석초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용후정의 아들인 용원명과 혼인을 하기로 한 모양인데, 작년 가을에 용원명이 그만 용후정과 함께 죽고 말았네. 그런데 큰아가씨는 용원명을 신임 문주께서 죽였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야. 그 바람에 매일같이 신임 문주님을 원망하면서 반쯤 넋이 나간 채 지내고 있다더군.”

 

그녀가 형을 사랑하고 있을 때였다면 안쓰럽게 생각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형을 잃고 몇 달 만에 혼인을 한다며 들떠 있던 그녀였다. 형이 죽었을 때는 담담했던 그녀가 용원명이 죽었다고 넋이 나가 있다니.

 

그러고 보니 그녀가 형에게 보낸 연서의 내용도 왠지 가식처럼 느껴졌다.

 

‘쳇, 죽은 형만 불쌍하지 뭐.’

 

마음이 착잡해진 그는 용후정의 가족이야기가 나온 김에 용수명의 근황을 물어보았다.

 

“용수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일이 벌어지기 며칠 전에 본문을 떠났네. 그리고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나마 신검문의 용가 중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어쨌든 백무천과 백초령은 별일이 없는 것 같다. 더 알고 싶어도 회남에서 겨울과 봄을 보낸 석초산으로선 아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 같고.

 

‘어쨌든 문주님이 건재하시다니 다행이군.’

 

내심 안도한 풍천은 화제를 돌렸다.

 

“여긴 누가 지휘하고 있습니까?”

 

“진대원 장로님이 지휘하고 있지.”

 

“화 공자님은요?”

 

“태상문주님의 명을 받고 군사님과 함께 본문으로 돌아가셨네.”

 

“그 양반도 기분이 씁쓸하겠군요. 사제가 문주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서 비검당의 당주를 나에게 물려주고 수호검단의 단주직만 유지하시고 계시네.”

 

“그럼 부당주님이 비검당주가 되신 거예요?”

 

“그렇다네. 왜, 불만인가?”

 

“아뇨. 축하할 일이죠. 하, 하, 하.”

 

석초산은 피식 웃고는 풍천에게 물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건가?”

 

풍천은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은 신검문에 가보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듯했다.

 

‘초령이도 나를 무척 보고 싶어 할 거야.’

 

어쩌면 죽은 것으로 알고 너무 슬퍼서 병에 걸렸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손천우가 치근댈까 봐 걱정이었다.

 

‘천풍장은 서신을 보냈으니 나중에 가도 되겠지.’

 

그는 백초령을 만난 후 회남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고금제일의 해결사가 되려면 미해결 사건이 있어선 안 되는 법. 그는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청부를 완수하기로 했다.

 

당연히 복수도 하고!

 

‘나중에 초령이와 알콩달콩 재밌게 살려면 일단 세상이 조용해져야 돼. 기왕이면 신마성과 천외천, 양쪽 다 쫄딱 망하면 더 좋은데 말이지.’

 

그는 사악한 꿈을 꾸며 물어보았다.

 

“제가 맡았던 사조는 지금 누가 맡고 있죠?”

 

조용히 있던 진노교가 대답했다.

 

“여태완이란 친구였는데, 안타깝게도 저번 달에 그만 죽고 말았네. 왜, 복귀할 건가?”

 

“복귀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비검당의 조장으로 있으면서 움직이면 남들 눈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석초산이 넌지시 말했다.

 

“자네가 복귀하겠다면 내 자리라도 주지.”

 

풍천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에이, 당주 자리는 골치 아파서 싫습니다. 사조 조장 자리 비어 있으면 그 자리나 맡죠. 단, 신검문에 다녀와서요.”

 

 

 

3

 

 

 

석초산의 방을 나온 풍천은 사조의 조원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덜컹!

 

문을 연 풍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뭐요? 왜들 이렇게 기운이 없수? 비검당 사람들이 이렇게 기운이 없어서 되겠수?”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도 잠시, 풍천을 알아본 몇 사람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벌떡벌떡 일어났다.

 

“저, 저, 저, 저…….”

 

“조, 조장님!”

 

“살아 계셨군요! 와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게 누구야? 정말 조장님, 맞지?”

 

기종탁, 여공위, 백승문, 서문경, 은초당.

 

일곱 명의 사조원 중 아는 사람이 다섯이나 되었다. 당시의 일로 인해서 생명력이 강해진 것인지, 아니면 운이 좋은 건지 몰라도, 과거의 사조원들은 한 사람의 희생도 없었던 것이다.

 

“뭐요, 이거? 내가 죽었길 은근히 바란 눈치들이잖아? 괜히 왔나 본데?”

 

기종탁이 긴 턱을 좌우로 흔들며 절대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험, 그럼 계산부터 합시다. 그때 내기에 걸었던 내 돈, 누가 먹었수? 솔직히 자수하쇼.”

 

죽은 조상이 살아서 돌아온 것처럼 좋아하던 다섯 사람의 몸이 갑자기 굳어졌다.

 

풍천은 굳어 있는 그들을 쓱 훑어보며 나직이 말했다.

 

“자수하고 술 한잔 사면 봐줄 것이고, 입 싹 닦으면 탈탈 털어낼 거요.”

 

다섯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 돈을 다섯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서 가진 것이다.

 

“거, 제가 삽죠.”

 

“저도 내겠습니다.”

 

“이봐, 승문, 자네가 가서 사오게.”

 

“왜 제가 사옵니까? 어이, 조대구, 자네가 좀 다녀오게.”

 

한쪽에 멀뚱히 서 있던 키 작은 청년이 돈을 받아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날 저녁.

 

신검문이 머물고 있는 부련당 구석의 사호 별채에 작은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작은 바람이 태풍의 전조라는 걸. 태풍의 눈이 사지(死地)에서 돌아왔다는 걸.

 

 

 

 

 

제3장. 독비(毒匕)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1

 

 

 

회남을 출발한 지 이틀, 천궁산에 도착한 풍천은 멀리서 신검문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신검문의 겉모습은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내부 상황은 겉모습과 달리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상태였다. 그가 본 모습을 드러내고 들어가기 껄끄러운 상황.

 

풍천은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린 후 달빛을 벗 삼아 담장을 넘었다. 그리고 곧장 검향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검향원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대여섯 사람이 검향원을 향해 걸어가는 게 보였다.

 

풍천은 그들 중 한 사람을 알아보고 재빨리 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영호관이잖아?’

 

그랬다. 다섯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는 자는 신검문의 신임 문주인 영호관이었다.

 

그가 검향원의 월동문으로 다가가자 경비무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로 검향원에 가는 걸까?

 

저녁 식사를 마쳤으면 쉴 시간이거늘.

 

이마를 좁힌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풍천은 영호관 일행이 검향원으로 들어간 직후, 나무에서 나무로 몸을 날렸다. 바람보다 더 고요한 그의 움직임에 경비무사들은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영호관은 검향원 가장 안쪽에 있는 무검각(無劍閣)으로 갔다.

 

백무천은 부인과 사별한 후 그곳과 신검전을 오가며 생활했는데, 태상문주로 물러난 뒤부터는 항상 무검각에서 지냈다.

 

영호관은 호위무사들을 밖에 남겨두고 무검각으로 들어갔다. 호위무사들은 전에도 몇 번 경험이 있는 듯 영호관이 안으로 들어가자, 네 명이 무검각을 둘러싸고 한 사람이 지붕으로 올라갔다.

 

풍천은 귀를 쫑긋 세우고 청력을 집중했다. 무검각까지 십오 장 정도의 거리.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의 감각은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의 인사말 외에는 한마디도 들을 수가 없었다.

 

‘제길,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보군. 아니면 음파를 차단했든지.’

 

마음먹고 움직이면 들키지 않고 스며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무리를 할 이유는 없었다.

 

‘나중에 직접 물어보지 뭐.’

 

아쉬움을 접고 그곳을 빠져나온 풍천은 백초령의 거처가 있는 전각으로 갔다.

 

 

 

자신이 죽은 줄 알고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혹시나 자신의 죽음 때문에 병이 난 것은 아닐까?

 

풍천은 백초령을 걱정하며 방으로 접근했다.

 

바로 그때였다.

 

“깔깔깔깔,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여자의 웃음소리와 남자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렸다.

 

방정맞은 웃음소리의 주인은 백초령이었고, 남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공손천우였다.

 

백초령의 방으로 접근하던 풍천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저것들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한바탕 휘저어?

 

공손천우를 작신 패버려?

 

풍천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에서는 계속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글쎄 그 계집아이가 ‘우리 령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해요.’ 하면서 막잖아.”

 

계집아이? 우리 령주님?

 

‘신예를 말하는 건가?’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 사람은 안 돌아오니까 더 기다리지 말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막 악을 쓰고 울면서 돌을 던지더군.”

 

“돌에 맞았어요?”

 

“맞긴, 피했지. 그리고 사람들이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기에 그냥 돌아왔지. 꼭 내가 그 계집아이에게 이상한 짓이라도 한 것처럼 보더라니까.”

 

“호호호호, 하긴 그렇게 오해할 만하네요.”

 

백초령의 웃음소리가 고막을 쩌렁쩌렁 울린다.

 

문고리를 잡은 풍천은 손끝이 잘게 떨렸다.

 

왜 공손천우가 초령이의 방에 있는 것이지?

 

초령이는 뭐가 즐거워서 저렇게 웃는 거야?

 

설마 자신이 죽은 줄 알고 공손천우와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심란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긴, 실종된 지 일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그런데 왜 하필 공손천우란 말인가!

 

백초령에겐 자신이, 일 년도 못 기다리고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나?

 

들어가자. 들어가서 백초령에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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