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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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04화
204화
아극타와 아수비, 아극령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반드시 가지고 나가야 할 물건들만 챙겼다.
그 사이 천장의 갈라진 부분이 점점 벌어지고 돌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극타는 아수비와 아극령이 가죽옷에 물건을 담아서 방을 나오자 다급히 소리쳤다.
“령아, 네가 앞장서라!”
아극령은 통로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예, 아저씨!”
아수비도 아기를 꼭 끌어안고 아극타의 뒤를 따라갔다.
지금 상황에서 통로가 무너져 안에 갇히면 꼼짝없이 굶어 죽어야 한다.
그럴 순 없었다.
‘난 죽어도 좋아! 하지만 아기를 죽게 놔둘 순 없어!’
통로를 반쯤 올라갔을 때였다. 통로의 천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극타는 이를 악물고 두 번째 차단벽을 열었다.
하지만 천장의 바위가 어긋나서 쉽게 열리지 않았다.
“령아! 함께 밀어라!”
아극령이 아극타와 함께 석문을 밀었다. 가까스로 석문이 두 자쯤 열렸다. 아극령이 아수비를 향해 소리쳤다.
“누나! 빨리 나가!”
아수비는 망설이지 않고 열린 문 사이로 나갔다. 뒤이어 아극령이 나가고, 아극타가 석문을 놓으며 빠져나갔다.
쩌저적.
그때 갈라진 바위 하나가 아극타의 어깨를 스치며 떨어졌다.
퍽!
“크윽!”
“아저씨!”
아극타는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난 괜찮다! 어서 올라가!”
아수비와 아극령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뒤를 보면서 주춤거렸다. 그러다 아극타가 어깨를 손으로 감싼 채 빠르게 올라오자 다시 마지막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제기랄!”
아극령은 한소리 내지르고 석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관문 옆의 석벽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기울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문제는 석문이 석벽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석문을 열면 그 석벽이 그대로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비켜라. 내가 열어보마.”
뒤따라온 아극타가 기관과 이어진 쇠사슬을 잡았다.
아극령이 급히 그를 말렸다.
“아저씨, 잘못하면 석벽 전체가 무너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극타는 멈추지 않았다.
“문이 열리면 재빨리 빠져나가라. 아직 밤이어서 괜찮을 것이다.”
“아저씨는요?”
“너희들이 나가면 나도 따라 나갈 거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움직여라.”
“아저씨…….”
아수비는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아극타를 바라보았다.
아극타의 말처럼 쉽게 나갈 수 없는 상황이란 걸 그녀가 왜 모를까.
그럼에도 아극타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으니 더욱더 가슴이 아렸다.
그때 천장이 흔들리며 저 아래쪽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우르르릉, 콰과광!
통로가 아래쪽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듯했다.
아극타는 씩 웃으며 쇠사슬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연아가 크면 이 아저씨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어라. 못생겼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고.”
아수비는 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 말은 아저씨가 하세요. 아저씨는 꼭 사실 거예요.”
“물론 그러면 더 좋지. 하하하.”
아극타가 웃으며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거대한 석문이 조금씩 열렸다.
석문이 열리면서 기대어져 있던 석벽도 점점 더 기울어졌다.
아극타는 초조한 표정으로 더욱 힘껏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석문이 두 자 정도 열리면서 기울어진 석벽과의 사이에 세모꼴로 공간이 생겼다. 높이는 석 자 정도. 한 사람 정도는 빠져나갈 수 있을 듯했다.
“비아야, 아이를 령아에게 맡기고 먼저 나가라!”
아수비는 아극타를 한 번 돌아다보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허리를 숙인 채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언제 위에서 석벽이 무너져 몸을 덮칠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그녀는 공포심을 느낄 새도 없이 틈을 빠져나가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녀가 다 빠져나가자 아극령이 아기를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즉시 아극타에게 다가가서 쇠사슬을 함께 잡아당겼다.
석문이 반 자 정도 더 열렸다.
대신 석벽도 그만큼 더 기울어져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아극타는 쇠막대로 쇠사슬을 고정시킨 후, 쇠막대를 꽉 잡고 아극령을 향해 소리쳤다.
“령아, 너도 어서 나가!”
“아저씨! 같이 나가요!”
“어서 나가라니까!”
“같이 안 나가면 저도 안 나가요!”
“정말 말 안 들을 거냐?”
“아저씨는 누나나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잖아요! 어떻게 저보고 아저씨를 놔두고 나가라고 그러세요?”
“너 이 자식……!”
아극타의 딱딱하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두 눈에 물기가 고였다.
아극령은 씩 웃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눈물을 닦지도 않고 아극타의 손을 잡았다.
“제가 셋을 셀게요. 셋을 셀 때 함께 나가요. 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나가면 둘이 빠져나갈 수 있어요.”
그때였다.
쩌저저적!
머리 위의 천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극타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세려면 빨리 세, 인마!”
“그럼 세요! 하나, 둘, 셋!”
셋을 셈과 동시에 아극령과 아극타는 쇠막대와 쇠사슬을 놓고 공간 속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쇠막대에 고정되었던 쇠사슬이 튕겨지며 석문이 원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울어졌던 석벽도 쩍쩍 갈라지며 밑으로 무너졌다.
아극타는 한 발 앞서서 공간을 빠져나가는 아극령의 다리를 힘껏 밀었다.
“가라!”
“아저씨!”
콰과과광.
귀청을 먹먹케 하는 굉음과 함께 석벽이 무너지고, 원위치로 돌아가던 석문이 멈췄다.
아수비는 아극령이 빠져나온 공간을 바라보며 악을 쓰듯이 외쳤다.
“아저씨! 안 돼요!”
아극령은 급히 몸을 돌리고 공간을 향해 몸을 밀어 넣었다.
아수비가 급히 말렸다.
“령아야!”
하지만 아극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저씨를 저대로 죽게 놔둘 순 없어, 누나!”
아극령은 눈물을 흘리며 몸뚱이만 한 바위를 잡아당겼다.
바위가 빠져나온 순간, 안쪽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극령은 잡아당긴 바위를 밖으로 빼냈다. 그러자 바닥에 엎드린 채 바위에 눌려 있는 아극타가 보였다.
아극령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아극타를 불렀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걸까?
만근 바위가 위를 덮고 있다. 바위에 깔려서 잘못된 건 아닐까?
그때 바위 아래에서 아극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울지 말고…… 내 손을 천천히 잡아당겨라. 바위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하고.”
“아저씨!”
아극령은 활짝 웃으며 아극타의 손을 잡았다.
무너진 바위가 석문과 석벽 사이에 끼면서 하락이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충격을 주면 그 바위가 떨어져서 아극타의 머리와 몸을 부술지 몰랐다.
아극령은 조금씩, 조금씩 아극타의 몸을 잡아당겼다.
아수비는 그 모습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아기를 꼭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모두가 살아나서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날이 새면 해가 뜰 테니까.
아극령이 아극타를 밖으로 빼내자 아수비가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어깨는 탈골이 되었고, 왼쪽 정강이뼈가 부러진 듯 퉁퉁 부어 있었다.
“령아, 네가 아저씨를 업어. 일단 이곳을 나가서 동굴이라도 찾아보자.”
“알았어, 누나.”
2
해가 지기 직전 회남에 도착한 풍천은 천룡회가 있는 적련방으로 향했다.
인피면구를 벗은 상태. 검도 전에 지녔던 것과 달랐다.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했다.
설령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잠풍이나 대풍이 아닌 풍천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전 강호의 눈이 집중된 적련방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에 짓눌려 있었다.
인원이 기존 적련방 인원의 배가 넘는데도 겉에서 보기에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무슨 일로 오셨소?”
풍천이 정문으로 다가가자 정문위사가 앞을 막으며 물어보았다.
“신검문에서 왔소. 나는 비검당의 사조 조장인 풍천이라 하오.”
위사는 풍천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풍천은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본문의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죠?”
정문위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쪽 부련당 사호 별채 쪽으로 가보쇼.”
백 명에 가깝던 신검문 사람들은 육십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구룡회 내에서의 위상도 백무천이 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그것은 백무천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탁능한이 암중으로 짓눌러서 그리된 것이기도 했다.
풍천은 신검문이 진영원에서 부련당 구석에 있는 사호 별채로 쫓겨난 것만 보고도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속 좁은 인간. 문주님을 시기하더니, 하는 짓하고는…….’
탁능한을 욕하며 투덜댄 풍천은 신검문 문도들이 기거하는 부련당 사호 별채로 갔다.
마침 죽 늘어선 방문 중 하나가 열리고 안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풍천은 그를 보고 활짝 웃으며 반가워했다.
“어이구, 이거 진 조장님 아니쇼?”
석초산의 방을 나선 진노교는 자신의 방으로 가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석상처럼 몸이 굳은 그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저, 저, 저게 누구야?’
바로 앞에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풍천이 환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자, 자네 정말 유령총에서 죽었다던…….”
풍천은 손을 들어서 재빨리 진노교의 입을 막았다.
말하는 걸 보니 백무천이 아직까지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듯했다.
“부당주님 계십니까?”
진노교는 풍천이 말한 부당주가 석초산임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시네.”
풍천은 진노교를 따라 석초산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심코 고개를 들던 석초산은 빙그레 웃으며 다가오는 풍천을 보고 입을 반쯤 벌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풍천이 탁자 맞은편의 의자에 털썩 앉자 그제야 말문이 터졌다.
“자네…… 정말 풍천이지?”
석초산은 풍천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은 줄 알았던 풍천이 살아서 돌아오다니!
“오랜만이군요.”
“살아 있었군.”
“운이 좋았죠.”
풍천은 그 정도만 말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피했다.
석초산은 그저 반갑기만 했다. 상대해서 좋을 게 없었던 전날의 기억은 까맣게 잊어서 생각나지도 않았다.
하긴, 유령총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도 반은 풍천 덕분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밥 잘 먹고, 상처가 나을 때까지 치료하면서 편히 지냈죠.”
풍천다운 엉뚱한 대답이다. 그 속에 깃든 뜻은 조금 달랐지만, 석초산은 그 대답조차 반가워서 빙그레 웃었다.
“다 나았다니 정말 다행이군.”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죠.”
“뭔가?”
“그동안 제가 제대로 일을 못 했는데, 문주님이 녹봉을 줄까요?”
“그, 그게…….”
“일 때문에 그리된 거니 당연히 주겠죠?”
“글쎄…….”
“부당주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놀러 가서 실종된 것이 아니라는 거.”
“그거야 알지.”
“그럼 부당주님이 증인이 되어주시는 거죠?”
“증인? 뭐, 못 서줄 것도 없지.”
풍천은 그쯤에서 농담을 접고 슬며시 본론을 꺼냈다.
“아참, 오면서 들으니 둘째 제자인 영호 공자가 문주가 되었다던데, 어떻게 된 일이죠?”
석초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태상문주님께서 임명하신 거라 나로선 뭐라 말할 수가 없군.”
문득 백초령을 찾아가던 날 저녁, 영호관과 용후정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영호관의 표정이 무척 심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날, 그 둘이 무슨 작당이라도?’
용후정은 천외천의 사람. 충분히 가능한 추리였다.
“지금도 신무전을 용 전주가 맡고 있어요?”
“아니네. 그는 지난 가을에 죽었네. 신무전은 지금 손헌이란 사람이 맡고 있지.”
용후정이 죽었다고? 손헌은 또 누구지?
“설마 둘째 공자가 반역을 해서 태상문주님을 쫓아낸 건 아니겠죠?”
“반역은 무슨…….”
대답하는 석초산의 눈빛이 흔들렸다. 찰나 간이었지만 풍천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해보쇼. 어떻게 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