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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9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95화

 

195화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부상자들은 의원에 맡기고 직접 찾아나서든지, 아니면 풍천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든지.

 

먼저 허무정이 말했다.

 

“령주는 신마성 금귀옥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사람이오. 찾는다고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좀 더 기다려봅시다.”

 

마동춘도 그 의견에 찬성했다.

 

“길이 엇갈리면 더 복잡해질 수가 있소. 그리고 신마성 놈들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테니, 차라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 령주를 도와주는 일 같소이다.”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공손이향이 말했다.

 

“이틀을 더 기다려본 후 령주가 오시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요. 그때쯤이면 부상당한 두 분도 그럭저럭 움직일 정도는 될 거예요.” 

 

은양은 풍천이 동암을 무사히 벗어났다고 했다. 남쪽에서의 격전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 싸움이 꼭 풍천 때문에 벌어졌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은양 아저씨는 령주가 마음만 먹으면 천하의 누구도 잡지 못할 거라 했어. 괜찮을 거야. 부상을 치료하고 나면 돌아오겠지.’

 

사람들은 평소 풍천과 가장 가까웠던 그녀가 냉정하게 떠나자고 하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령주가 돌아오면……?”

 

마동춘이 머뭇거리며 묻자 공손이향은 미리 생각해놓은 듯 바로 대답했다.

 

“우리가 객잔에 없으면 남궁세가의 제운당을 찾을 거예요. 그러니 제운당에 우리의 행선지를 남겨놓도록 해요.”

 

허무정이 공손이향을 쳐다보았다.

 

“어디로 가실 생각이오?”

 

공손이향의 눈이 남궁용화를 향했다.

 

“령주가 찾아오시면 단천문으로 갔다고 말해주세요.”

 

남궁용화는 벌게진 얼굴을 급히 숙였다. 면사 사이로 흘깃 보이는 공손이향의 미모는 젊은 그의 심장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소저.”

 

 

 

 

 

제9장. 격변강호(激變江湖)

 

 

 

 

 

1

 

 

 

얼굴이 검버섯과 골 깊은 주름으로 뒤덮인 노인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무침상으로 다가갔다.

 

침상 위에는 청년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는데, 노인은 청년의 맥을 짚어보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군. 분명 죽을 것 같았는데…….”

 

사흘 전, 약초를 캐기 위해 백아곡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젖은 빨래처럼 외나무다리에 걸쳐져 있는 청년을 발견했다.

 

청년의 허벅지에는 뾰족한 가지가 박혀 있었는데, 반 뼘만 위쪽에 박혔어도 영원히 남자 구실을 못 했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 가지가 아니었다면 떨어져서 박살이 났겠지.’

 

노인은 부러진 검을 움켜쥐고 있는 청년을 외나무다리에 그대로 놔둔 채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청년의 상세는 죽는다는 게 당연할 정도로 심각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이 그나마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맥을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노인은 청년을 그 자리에 놓고 떠났을 것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무인들의 참혹한 시신이 널려 있었다. 자칫하면 강호인들의 싸움에 휘말려서 자신의 평온한 삶이 깨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의원으로서의 호기심과 자존심이 청년을 구하게 만들었다.

 

대체 이 청년의 몸속에 있는 기운의 정체는 뭘까?

 

귀수괴의라 불리는 자신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기운이라니.

 

고심하던 귀수괴의 역조생은 결국 청년을 업고 천주산 깊숙한 곳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갔다.

 

그런데 그렇게 사흘이 흐른 지금, 맥이 구했을 때보다 배는 더 강해져 있었다. 죽을 줄 알았던 청년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대로 놔두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정상적으로 살리자니 적잖은 세월을 투자해야 할 판이었다.

 

“제기랄, 품속에 엄청난 돈과 보물이 든 걸로 봐서 도둑놈 같은데…….”

 

도둑질을 하지 않고서야 황금과 보석, 희귀한 보물을 품속에 지니고 다닐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된단 말인가.

 

더구나 찢어진 옷 재질과 행색을 봐서는 절대 그런 거금의 주인이 될 수 없는 놈이었다.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도 수상했고.

 

아마 자신이 돈을 욕심내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죽이고 돈주머니와 보물만 챙기지.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은 놈이었다.

 

“흘흘흘, 좋아, 어디 네놈 운이 어디까지 가는가 보자꾸나.”

 

고심하던 역조생은 결국 자신이 구한 청년, 풍천을 살리기로 결정했다.

 

풍천의 몸뚱이는 그가 지금까지 본 어떤 몸보다도 괴이할 정도로 특별났다.

 

사실은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뜯어보면 재미있는 게 많을 것 같다는 것이.

 

 

 

2

 

 

 

회남으로 천외천의 무사들이 들어선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숫자는 이백여 명. 공손무백과 교비은이 선두에서 걸었다.

 

“드디어 회남이군.”

 

“주군께서 세상을 향해 포효하기에 적당한 곳이지요.”

 

“대붕(大鵬)도 둥지가 있어야 하는 법. 일단 적련방으로 가볼까?”

 

난데없이 이백여 무사가 몰려들자 적련방이 술렁였다.

 

모두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무사들이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이 천의맹 사람들과 함께 온 공손선우라는 걸 알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시했다.

 

하지만 나름 고수라 불리는 자들은 그들을 보고 놀라서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맙소사! 어디서 저런 고수들이 떼로 몰려왔단 말인가?

 

그런 표정들이었다.

 

 

 

공손무백은 호자충의 방에서 공손선우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몇 마디 듣기도 전에 신광을 쏟아내며 물었다.

 

“천응단이 몰살을 당했다고? 어떻게 된 일이냐?”

 

공손선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둘러댔다.

 

“등 숙부께서 천응의 복수를 하겠다는 말을 하고 나가셨는데, 아무래도 지난날의 일을 잊지 못하셨나 봅니다.”

 

“바보 같은 놈!”

 

공손무백은 일갈을 내지르고 공손선우를 노려보았다.

 

은은한 광채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순간!

 

파스스스스.

 

그의 앞에 놓였던 찻잔에 반쯤 차 있던 차가 김이 되어서 사라지고, 찻잔은 가루가 되어서 주저앉았다.

 

공손선우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소자가 극구 말렸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유천삼위가 보이지 않는데, 그들은 어딜 간 거냐?”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말리기 위해 보냈는데, 신마성 놈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몸을 피하지도 못할 만한 고수들이 나왔단 말이냐?”

 

공손선우는 동암 분타에 건곤신마와 무영신마, 신월마신이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공손무백의 굵은 눈썹이 바늘에 찔린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들이 등 숙부를 비롯한 천응단원들의 시신 몇 구와 유천삼위의 시신을 천혈궁 총단으로 가져갔습니다. 아마도 시신을 분석해서 정체를 알아내려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헛일이 될 것입니다만…….”

 

공손무백은 시선을 돌려 교비은을 바라보았다.

 

“잠영과 연락을 취해서 최대한 빨리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도록 해라.”

 

“예, 주군.”

 

공손무백은 다시 공손선우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빛은 전과 다름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 이제 와서 책임을 따져봐야 소용이 없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네가 비록 내 아들이라 해도 용서치 않을 것이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공손선우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았다. 설령 똑같은 경우가 또 벌어진다 해도 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었다.

 

공손무백은 교비은이 새롭게 가져다 놓은 찻잔을 들며 공손선우에게 물었다.

 

“천의맹은 어떻게 할 것 같더냐?”

 

“본천의 잠영들이 어느 정도 장로들을 설득해놓았습니다. 문제는 맹주인 공지대사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너무 미적거려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흥, 소림에 처박혀서 불경이나 연구해야 할 늙은이가 맹주를 맡고 있으니 마도가 이리도 판을 치지.”

 

“너무 심려 마십시오. 소자가 천의맹의 중간 간부들 몇과 친분을 맺었습니다. 그들을 잘 이용하면 곧 천의맹도 아버님의 뜻대로 움직일 겁니다.”

 

“그래? 잘했다.”

 

“그건 그렇고, 구룡회가 정원에서 신마성과 대치하고 있는데, 아버님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공손무백의 입가로 조소가 번졌다.

 

“후후후후, 곧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우리는 그들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움직이면 된다. 기왕이면 물에 빠져서 죽기 전에 건져줘야 더 큰 고마움을 느낄 게 아니겠느냐?”

 

공손선우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본천을 알리는 일은……? 조부님께선 여전히 반대하고 계실 텐데…….”

 

공손무백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조부와 숙부도 더 이상 나를 막지 않기로 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잘된 일입니다, 아버님.”

 

“네 조부님은 이제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판단이 흐리시다. 뒤로 물러나실 때도 됐지. 세상은 앞으로 본천과 이 애비를 전설처럼 기억하게 될 것이야.

 

공손선우는 격동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아버님.”

 

 

 

3

 

 

 

혁련후가 부가장을 공격한 것은 공손무백이 적련방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공격해! 놈들을 쓸어버려라!”

 

구룡회는 백무천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신마성을 상대했다.

 

“놈들을 막아라!”

 

천붕성과 적련방에서 오백 이상의 무사가 더 부가장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백무천을 총회주처럼 따랐다.

 

그때만큼은 탁능한도, 담청도 백무천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백무천은 부가장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상태로 철저히 방어의 차원에서 적을 막았다.

 

무인들의 싸움에서는 흔하지 않은 궁수대를 조직하고, 부가장 주변에 간단한 기문진을 펼쳐서 신마성의 무사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 효과는 작지 않았다. 그러한 공격이 최소한 사오백 명의 무사 역할을 해준 것이다.

 

덕분에 숫자에서 밀리는 것을 해결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계가 지나자 신마성의 무사들이 저지선을 뚫고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백무천은 직접 나서서 혁련후를 상대했다.

 

경천동지의 대결은 백여 초가 지나도록 어느 쪽으로도 승부가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이어졌다.

 

탁능한은 단리욱과 악초당을 상대했는데, 승기를 잡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미세하게 밀리는 기색이 엿보였다.

 

그 와중에도 천의맹의 무사들이 합류한 구룡회와 신마성의 무사들은 핏발 선 눈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난생 처음 전쟁이나 다름없는 세력 싸움을 경험한 무사들은 광기 들린 사람처럼 날뛰며 상대의 심장에 도검을 쑤셔 박았다.

 

구룡회의 무사도, 신마성의 무사도 마찬가지였다.

 

천의맹 무사들 역시!

 

그들은 누구도 동료의 잔인함을 욕하지 않았고,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더럽게 여기지 않았다.

 

심신수련을 위해 무공을 익힌다는 말은 모두 헛소리였다.

 

무공이 경지에 이르면 도를 깨닫는다는 말도 미친 개소리였다.

 

칼은 상대의 목을 자르기 위해서, 창검은 심장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 존재했다.

 

두 손은 상대의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붙어 있는 것이고.

 

그곳에서 인간의 도리를 찾는다는 것부터가 멍청한 짓이었다.

 

정의도 없었다.

 

오직 죽음과 삶이 있을 뿐!

 

혁련후는 예상 외로 구룡회의 저항이 강력하자 한 시진 만에 후퇴를 명령했다.

 

신마성이 물러간 부가장 일대는 일천에 가까운 시신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골이 파인 곳에선 핏물이 내가 되어 흘렀다.

 

부상자는 더 많아서 양쪽의 부상자를 치료하라면 인근 성의 모든 약재를 모조리 긁어모아야 할 판이었다.

 

 

 

“백 문주! 도망치는 적을 이대로 놔둘 것이오? 쫓아가서 아예 끝장을 봅시다!”

 

탁능한이 기회라는 듯 적을 쫓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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