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9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91화
191화
‘흡!’
이를 악문 풍천은 땅을 박차고 몸을 뒤로 튕겼다.
동시에 섭위릉이 흑마의 옆에 내려섰다.
그는 심장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흑마를 보고는 노화가 이글거리는 눈을 돌려서 풍천을 노려보았다.
“교활한 놈! 우리가 네놈을 너무 얕보았구나.”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장대한 체구의 노인. 풍천은 상대가 절대지경에 근접한 고수임을 알아보고 검을 고쳐 쥐었다.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군.’
그는 상대의 정체를 짐작하고서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슬쩍 자극해보았다.
“노인장, 싸우기 전에 이름부터 밝혀보시죠?”
“건방진 놈, 노부는 섭위릉이라 한다.”
역시나 짐작대로 건곤신마 섭위릉이었다.
풍천은 상대의 정체를 알고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전신을 치달리는 짜릿한 긴장감!
팔대신마 중 가장 강한 자. 신마성에서 혁련광만이 그를 능가할 뿐이라 했다. 상관경의조차 건곤신마를 호적수라 평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적은 건곤신마만이 아니었다.
“클클클, 정말 대단한 놈이군. 혼자서 천혈쌍마를 죽이다니.”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염사진이 풍천의 오른쪽에 내려섰다.
그리고 묵묵한 표정의 좌궁화가 왼쪽에서 나타났다.
삼재의 방위가 다 막힌 상태. 더구나 상대는 건곤신마와 무영신마, 거기에 신월마신 좌궁화까지 더해진 터였다.
풍천은 오롯이 서서 세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았다. 앞에 있는 세 사람은 개개인이 천혈쌍마를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고수들이었다. 절대 경지를 눈앞에 둔 자들. 그런 세 사람과 정면 승부를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동귀어진을 각오한다면 한두 사람은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의 인생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을 실행으로 옮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팔팔한 내가, 죽을 날 얼마 안 남은 늙은이들과 함께 죽는다는 건 너무 큰 손해지. 아암.’
세월이 녹스는 것도 아니고, 죽여야 할 놈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왜 무리를 한단 말인가.
턱을 쳐든 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설치는 분들이 저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나서다니. 이거 영광으로 알아야 하나요?”
묘한 말투였다. 태도도 영 건방지고.
그러니 말만 영광 어쩌고 하는 것이지, 비꼬는 말이라는 걸 둘러선 세 사람도 모르지 않았다.
사실 자신들 셋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청년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강호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들에게 손가락질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꼴같잖은 태도로 서 있는 저놈이 혼자서 천혈쌍마를 죽였다는 것이다.
좌궁화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되네. 솔직히 혼자서는 자네를 잡을 자신이 없군.”
“이거 큰일인데요? 일대일로 싸우면 몰라도 셋은 저도 자신 없는데.”
풍천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염사진이 나직한 웃음을 터트렸다.
“클클클, 정말 재미있는 놈이군. 목을 잘라서 연구 좀 해봐야겠어.”
“글쎄요. 내 목은 원체 질겨서 노인장의 그 쪼글쪼글한 손으로는 어림도 없을걸요?”
풍천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눈은 전혀 웃지 않는, 조소에 가까운 싸늘한 미소가.
그리고 미소가 번지는 와중에 풍천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켈!”
염사진이 괴이한 웃음을 터트리며 신형을 날렸다.
섭위릉과 좌궁화도 가볍게 몇 걸음 옮기는 것으로 풍천의 퇴로를 차단했다.
풍천은 천풍무영류를 펼치며 먼저 섭위릉과 염사진 사이로 날아갔다.
“참으로 괴이한 신법이로다!”
섭위릉은 경악성을 내지르며 건곤마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실낱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쌍장을 내쳤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기운의 실체도 확실치 않지만 본능에 의지한 그의 장력은 정확히 풍천을 덮쳤다.
풍천은 상대의 장력을 이용해 좌궁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와라, 이놈!”
좌궁화는 아예 눈을 반쯤 감고 오직 감각만을 이용해서 검을 휘둘렀다.
쇳덩이조차 잘라버릴 그물 같은 검기가 풍천의 진로를 차단했다.
천풍무영류를 펼치느라 전력을 공격에 쏟아부을 수 없는 상황. 풍천은 상대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아치지 않고 빈틈을 엿보았다.
그러나 절대 경지를 눈앞에 둔 세 명의 고수가 펼치는 삼재진의 위력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특히 염사진은 천하제일로 불리는 자신의 신법으로도 풍천을 잡지 못하자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세상에 이런 신법이 있다니! 내 모든 것을 걸고 네놈을 잡고 말겠다!”
풍천은 삼재의 방위를 점한 그들의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천풍무영류와 환신술이 통하지 않는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 두 가지를 펼치려면 공격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터. 자칫 약점이라도 보이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것이었다.
‘제기랄, 생각보다 더 강하군.’
신마비원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자도 대여섯 명은 된다 했다. 천혈궁의 부궁주라는 자도 왔고. 그 외에도 천혈오사에 버금가는 고수가 십여 명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몰려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해. 그러지 못하면 이 안에서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몰라.’
풍천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 쏟아내기로 작정하고 검을 든 손에 공력을 집중했다.
순간 그의 검첨에서 석 자 길이의 검강이 쭉 뻗어 나가며 무영신마의 그림자를 베어갔다.
“이크!”
염사진은 대경하며 급히 몸을 틀었다.
동시에 섭위릉의 쌍장이 천둥소리를 내며 허공을 두들겼다.
콰르릉!
뒤이어 좌궁화가 신월검을 뻗어 풍천을 압박했다.
두 사람의 완벽한 합공은 순간적으로 풍천을 고립시켰다.
풍천은 전력을 다해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사 장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면서 낙성천류검을 연이어 펼쳤다.
낙성관암, 낙성단혼, 낙성멸혼.
삼 초식이 줄기줄기 강기를 뿌리며 섭위릉의 장세와 좌궁화의 검세 위로 쏟아졌다.
섭위릉과 좌궁화는 풍천의 공세를 신중하게 받아냈다.
콰과과광!
굉음이 터져 나오고, 광풍폭우와 같은 강기의 회오리가 동암 분타 소연무장을 뒤덮었다.
그렇게 십여 초가 흘렀을 때였다.
섭위릉이 눈빛을 번뜩이며 두 손을 내밀었다.
우우우웅!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가공할 장력이 풍천의 옆구리를 향해 밀려갔다.
풍천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염사진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공격하고, 좌궁화가 검강을 앞세운 채 쇄도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삼재가 막힌 상황.
빌어먹을! 아직은 무린가?
이를 악문 그는 승광과 탄유를 연이어 펼쳤다. 공력이 딸려서 몸에 무리가 갈지 모르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번쩍!
한 줄기 빛이 염사진을 향해 솟구쳤다.
탄유가 꼬리를 물고 펼쳐지며 좌궁화의 검세를 잘게 부수었다.
염사진과 좌궁화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떠더덩! 콰광!
풍천은 그들과 정면충돌한 반탄력을 이용해서 섭위릉에게 날아가며 천라신수를 펼쳤다. 검으로 대항하고 싶어도 승광과 탄유를 연속으로 펼친 바람에 일시지간 검에 공력을 주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섭위릉의 건곤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가공할 위력이 담겨 있었다.
건곤장의 세력권으로 들어가자 가슴이 먹먹하고, 입안에 비릿한 핏물이 고였다.
이를 악문 풍천은 그 와중에도 천라신수를 펼치는 좌수에 공력을 쏟아부었다.
콰르르릉!
건곤장과 천라신수가 정면으로 얽혀들자 좌수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손목이 으스러지고, 팔뼈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듯했다.
풍천은 악착같이 고통을 참으며 섭위릉의 기운을 옆으로 흘려냈다.
그러고는 찰나 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뒤로 튕겼다. 비록 숨 한 번도 못 쉴 짧은 순간이었지만, 검을 든 손에 공력이 모아진 상태였다.
그는 좌궁화과 염사진을 향해 날아가며 검을 뻗었다. 응천보 하늘에서 떨어지던 벼락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간!
콰르르릉!
벽력음이 일면서 뇌전의 광채가 눈부시게 폭사되었다.
마침내 뇌정천결의 절초 중 하나, 뇌전낙류산이 구백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염사진과 좌궁화는 눈을 부릅뜨며 대경했다.
줄기줄기 뻗어 나온 뇌전이 그들을 덮쳐들고 있었다.
이미 이전의 정면충돌로 가벼운 부상을 입은 그들은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풍천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벼락이 그들을 뒤덮었다.
콰과과광!
“크윽!”
“으으음…….”
염사진과 좌궁화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머리가 풀어헤쳐진 염사진의 입가에선 핏줄기마저 보였다.
‘뚫렸다!’
풍천은 삼재진이 무너지자마자 천풍무영류를 펼쳐서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심장이 조여지는 느낌에 숨도 쉴 수 없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놈이 도주한다! 앞을 막아!”
섭위릉이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풍천을 향해 전력을 다해서 건곤장을 펼치며 소리쳤다.
풍천이 날아가는 쪽에서 동마부의 정예 무사 이십여 명이 두 겹의 벽을 형성한 채 날아올랐다.
그들은 풍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도 전력을 다해서 도검을 휘두르고 장력을 떨쳤다. 명이 떨어진 이상 몸으로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차아앗!”
“보이지 않아도 무조건 휘둘러라!”
쉬쉬쉭! 휘리리릭! 쏴아아아아!
달밤에 미친놈 춤추듯 쏟아낸 공격이 순간적으로 십여 장 넓이의 벽을 형성했다.
뒤에서 섭위릉의 가공할 장력이 밀려오는 판에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여유가 없는 상황.
풍천은 벽을 향해 쇄도하며 한 사람만 노렸다.
그때였다. 풍천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아는 사람이 정면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쇼, 엽 형. 그동안 잘 지냈수?]
엽사문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찌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진기의 흐름이 꼬이고 말았다.
‘헉!’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다. 얼굴은 더더욱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꿈속에서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미칠 지경이거늘, 왜 이 순간에 그자의 목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풍천은 엽사문이 멈칫한 사이, 그의 도를 힘껏 후려치고는 그 반발력을 이용해서 몸을 날렸다.
아직 벽이 한 겹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는 섭위릉 등이 쫓아오고 있었다.
이를 악문 풍천은 두 번째 벽을 향해 돌진했다. 부상을 각오하고서라도 벽을 무너뜨려야 했다.
그때, 두 번째 벽을 형성한 자들 중 두 사람이 몸을 부르르 떨며 꼬꾸라졌다.
벽에 구멍이 뚫린 상황.
풍천은 앞뒤 가리지 않고 구멍이 뚫린 곳으로 날아갔다.
섭위릉은 허공에 떠 있던 엽사문이 휘청거리고, 그 뒤에서 벽을 형성한 무사들이 꼬꾸라지는 걸 보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놈이 빠져나간다! 놓치지 마라!”
그는 풍천이 진정으로 두려웠다.
자신과 좌궁화, 염사진이 합공하고도 잡지 못하다니.
오늘 죽이지 못하면 앞으로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구멍이 뚫린 벽으로는 더 이상 풍천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보죠. 그때는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요!”
어둠 속에서 울리는 냉랭한 목소리가 고막을 뒤흔들며 멀어졌다.
반드시 죽여야 돼!
마음이 다급해진 섭위릉은 풍천이 사라진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놈은 상당한 내상을 입었소. 쫓읍시다. 오늘 놈을 잡지 못하면 항상 머리 뒤에 칼을 달고 살아야 할 거요”
좌궁화와 염사진의 마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가 벌어진 상태에서 풍천의 뒤를 쫓는다는 것은 바람을 쫓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염사진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섭위릉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린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놈이 도망치려고 작정한 이상 누구도 잡을 수 없을 거네.’
포위망을 뚫은 풍천은 곧바로 동암을 빠져나왔다.
내상이 심했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섭위릉 등은 자신을 이대로 놓아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뇌정천결만 제대로 익혔어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광양검결의 승광과 탄유만으로는 그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다. 세 번째 초식인 무진을 익혔다면 또 몰라도.
그나마 뇌전낙류산으로 그들의 포위망을 무너뜨린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놈들의 일부를 북쪽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무사히 빠져나갔는지 모르겠군.’
그는 속도를 늦추고 뒤흔들린 진기를 가라앉혔다.
내상 때문에 진기의 흐름이 원활치 않고, 곳곳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제길, 어디 숨어서 내상을 손보고 가야겠어.’
그때 묵직한 기운이 뒤쪽에서 밀려드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