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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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84화
184화
좌궁화도 사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그러한 자들이 있단 말인가?”
“저도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 공자를 공격했던 자들을 추적하면서 성주님께서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으으음.”
좌궁화는 침음을 흘리며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어젯밤, 천혈궁에 도착하자마자 구인창과 함께 사우로부터 설명을 들은 터였다.
오래전에 벌어진 괴사와 얼마 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고수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좌궁화와 구인창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혁련궁은 철저한 사람이었다. 확실치 않은 가정만 가지고 무모하게 일을 벌이지 않는 사람.
그런 그가 전쟁을 일으킬 작정을 했을 때는 어느 정도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럼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봐야겠군. 어디 군사의 생각을 말해보게. 군사가 직접 나선 걸 보면 대응책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사우는 담담한 눈으로 구인창을 바라보았다.
구인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말해보라는 듯.
사우는 내전에 앉아 있는 아홉 명의 최고 수뇌부를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먼저 동암 분타를 친 놈들을 잡아야 합니다. 놈들만 잡는다면 신비의 세력도 숨어만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지요. 하남을 치면 놈들이 움직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일이 풀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우는 말을 끊고 구인창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들의 하수인 하나하나가 절정고수들입니다. 운 장로와 등 장로께서 둘을 상대할 수 없을 정도지요.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는 두 분이 상대하고도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동 장로와 전 장로님은 유령총에서 돌아가셨고 말입니다. 놈들을 상대하는 일에 있어서 과소평가는 금물이라는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구인창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신이라 해도 팔대신마 두 사람을 상대하려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도 승부를 자신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일개 하수인을 이끄는 자가 그토록 강하다니.
“그런 자들을 잡으려면 어중간한 사람들로는 안 되겠군.”
“너무 많은 숫자가 움직이면 놈들이 경계하고 접근하지 않을 겁니다. 최고의 정예로 해서 오십 명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구인창은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부궁주이자 자신의 동생인 구인악과 천혈궁의 대장로인 천혈쌍마가 서 있었다.
“인악, 네가 쌍마(雙魔)와 함께 사람들을 선별해서 동암으로 가라. 오사(五邪)도 데려가도록.”
“예, 궁주.”
구인창이 결정을 내리자 사우는 좌궁화와 무영신마, 건곤신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좌 부주와 장로들께서도 나서주셔야겠습니다.”
“어떤 놈들인지 한번 붙어보고 싶군.”
좌궁화는 그의 성격답게 호승심이 일었다.
무영신마와 건곤신마는 말려도 나설 작정이었다.
그들에게 두 사람이 죽었다. 게다가 운조평과 등청이 한 사람을 합공하고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같은 팔대신마에 속한 사람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그 두 사람이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 해도 말이다.
“사나운 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지, 클클클.”
“놈들의 머리를 잘라서 동광후와 전우림의 혼을 달래줘야겠어.”
2
신마성과 천혈궁의 고수들이 머리를 맞댄 채 풍천 일행을 잡을 궁리를 하던 그 시각.
풍천은 남궁세가의 세력권인 서성(舒城)의 객잔에서 식사를 마치고 느긋이 이를 쑤셨다.
“쩝쩝, 지금쯤 구인창이 머리꼭대기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펄쩍펄쩍 뛰고 있겠군요.”
천혈궁의 동부 최대 분타인 동암 분타가 풍비박산 났다.
분타주인 안평과 숙주오마를 비롯해서 백오십여 명이 죽었고, 나머지도 반 이상이 부상을 입은 상태.
그 소식을 듣고도 제정신이면 구인창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했다.
반면 풍천 일행은 열 명 중 조금이라도 다친 사람이 일곱이고, 풍천과 공손이향, 허무정만 멀쩡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악진표와 감능하가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악진표는 뺨에 길게 난 상처를 매만지며 풍천을 흘겨보았다.
‘제길, 그러잖아도 남들이 인상 험하다고 말하는데…….’
피로 범벅이 된 상태였는데도 중상을 입진 않았다. 하지만 자잘한 상처를 대여섯 군데나 입어서,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욱신거리면 당시의 일이 떠올라 이가 저절로 갈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이 도주하려 했던 것을 풍천이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엄지발가락을 살짝 움직여보았다. 약간 시큰거렸지만 풍천에게 당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휴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담장을 넘어갔으면 저 인간이 두고두고 씹었을걸?’
그때 풍천의 눈이 그를 향했다.
재빨리 흘겨보던 눈을 거둔 악진표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천혈궁 놈들이 우리를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 겁니다. 당분간 조심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령주.”
“당연히 그래야겠죠. 하지만 놈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듯이 놈들의 허를 찔렀으면 싶은데, 어디 좋은 생각 있는 분 없어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감능하가 한마디 했다.
“좀 더 정보를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자들이 움직일 것인지 알아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보를 모으려면 시간이 걸릴 터. 그러다 보면 지원 무사들이 올지 몰랐다. 지금쯤 동암 분타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을 테니까.
‘지원 무사가 오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기다리는 시간 동안은 편하겠지.’
하지만 악진표와 이곡은 그의 의견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보를 모으는 일이라면 결국 두 사람의 일이 아닌가 말이다.
‘저 배신자가…….’
‘자기는 안 시킬 거라 이거지?’
그때 이마를 좁힌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남궁도영이 말했다.
“세가의 정보망을 이용해보는 게 어떻겠소?”
풍천의 눈이 그를 향했다.
“남궁세가의 정보망을?”
“이번 동암 분타의 일은 세가에게도 낭보라 할 수 있으니, 적절한 선에서 요청하면 세가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오.”
“흠, 그것 괜찮은 생각이군요.”
정보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동안 구룡회와 천외천의 정보망 중 어느 것도 이용할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남궁세가의 정보망을 이용할 수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문제는 비밀유지인데 남궁도영을 통한다면 그것도 어느 정도 해결될 터. 풍천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남궁 형이 가서 한번 말해보쇼. 단, 우리가 하려는 일에 대한 비밀은 철저히 지켜주기로 약속해야 합니다.”
“물론이오. 남궁세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확답을 하지 않으면, 아쉽지만 그냥 돌아오겠소.”
남궁도영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남궁도영의 말대로 남궁세가의 정보망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럼 그만큼 편해질 것이고, 안전해질 테니까.
특히 악진표와 이곡은 누구보다도 절실한 마음으로 남궁도영이 일을 잘 처리하기를 기원했다.
“수고해주시오, 남궁 형.”
“잘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남궁도영이 객잔을 나가자 풍천이 악진표와 이곡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그럼 남궁 형이 돌아올 때까지 일단 악 형과 이 형이 천혈궁 총단에서 어떤 자들이 나오는지 알아보도록 하쇼. 놈들이 알아볼지 모르니까 동암으로 들어갈 때 철저히 변장하는 것 잊지 마쇼.”
악진표는 다시 감능하를 째려보고, 이곡은 무심한 표정으로 풍천에게 말했다.
“령주, 감 형과 함께 갔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면 잠입을 하는 게 최고인데, 밖에서 망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감 형이라면 눈치가 빠르니 적격일 것 같습니다만.”
악진표도 이곡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령주.”
땡감을 씹은 사람처럼 얼굴이 구겨진 감능하는 자신만 고생할 수 없다는 심경으로 두 사람을 물고 늘어졌다.
“고 형과 응 형도 함께 가죠.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셋이 나을 것 같은데.”
고복수와 응초는 감능하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3
팔월이 시작되던 날 정오 무렵.
각양각색의 무복과 도복, 승복을 입은 천의맹의 무인 이백여 명이 회남의 적련방에 도착했다.
그들은 구룡회가 이미 정원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단 적련방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여주에서 회남까지 이천 리 길을 달려온 터였다. 오던 중에 비를 만나기도 했고, 불길처럼 쏟아지는 열기 속을 달리기도 했다.
제아무리 고수라 해도 어느 정도는 지친 상태. 하기에 지친 몸으로 찾아가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온전한 몸을 만든 후 찾아가는 것이 구룡회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천의맹 사람들과 함께 회남에 도착한 공손선우는 그날 저녁 호자충을 만났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단천무령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호자충은 스스럼없이 단천무령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공손선우는 그의 말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단천무령주가 신검문을 따라서 응천보로 갔단 말이지요?”
“그렇소, 대공자. 이곳에 있으라 했더니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어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다며 부지런을 떨지 뭐요? 그런데 잠영 구호에게서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그들이 응천보를 떠나 합비 쪽으로 간 것 같소.”
“합비로?”
“오전에 천혈궁의 동암 분타가 소수의 고수들에 의해서 무너졌다는 소식이 급보로 전해졌는데, 단천무령의 짓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소.”
공손선우는 싸늘하게 눈을 반짝였다.
“아버님께선 대기하라는 명을 내렸다 들었는데, 제멋대로 움직였단 말입니까?”
“백무천이 시킨 것 같소. 아무래도 천혈궁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움직이면 하남이 위험해질 테니 미연에 방지할 생각으로 말이오.”
“흥, 아버님의 명을 어기고 백무천의 부탁을 들어줬단 말이지요?”
“사실 적절한 공격이긴 했지요. 신마성의 고수들이 천혈궁에 합류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는데, 동암 분타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바로 하남을 치거나, 아니면 구룡회의 뒤를 쳤을지도 모르오.”
“신마성의 고수들이 천혈궁에 합류했다고요?”
“오늘 밤이면 좀 더 자세한 정보가 들어올 것이오만, 알려진 것만으로도 상당한 고수들이 몰려온 것 같소.”
“흐으음…….”
신마성의 움직임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였다. 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구룡회와 신마성을 양패구상으로 몰고 가려는 게 천외천의 계획이 아니던가.
결정적일 때 천외천이 나서서 신마성을 평정한다면 강호 진출에 더욱 큰 효과가 있을 것이고 말이다.
공손선우는 그 일보다 단천무령이 더욱 신경 쓰였다.
특히 단천무령주 대풍이.
새롭게 단천무령주로 임명된 대풍이 객잔에서 만났던 그놈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천의맹에 도착한 후였다.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며칠 동안 이가 시려서 과일을 먹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그 후 그놈을 회유했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철저히 이용한 후 버릴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즐겁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께름칙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말 몇 마디로 농락하던 그놈을 어렵지 않게 회유했다고? 어딘지 모자라는 놈처럼 보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그 말이 더 마음에 걸렸다.
‘다들 그놈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