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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7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75화

 

175화

 

 

 

 

 

 

4

 

 

 

응천보의 싸움이 있던 그날.

 

장 노인은 움직이는 데 별다른 불편이 없자 황우연과 초웅에게 천풍장을 맡겨놓고 노마를 데려오기 위해서 선가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틀 후 오후 무렵이 돼서야 선가장에 도착했다.

 

장 노인이 노마를 데려가기 위해서 왔다고 하자 선가장의 무사들은 장 노인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말을 데려가기 위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이 며칠을 걸어오다니.

 

“쯔쯔쯔, 이런 노인을 고생시키다니. 그런 놈인 줄 내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지.”

 

노마의 주인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혀를 차며 풍천을 욕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은 장 노인에게 어른 공경할 줄 모르는 놈 집에서 개고생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말했다.

 

장 노인은 속으로 낄낄거리면서 풍천을 편드는 척하며 비꼬았다.

 

“성격이 조금 이상하고 게을러서 그렇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요.”

 

무사들은 주인을 감싸는 장 노인이 안쓰럽기만 했다.

 

하지만 본인이 그리 생각한다는데 뭐라 할 건가. 그저 이런 하인을 막 부려먹는 주인이 나쁜 놈이지.

 

“조금만 더 늦었어도 헛걸음했을 거요. 헐값에 처분해서 술이나 마실까 하다가 혹시 몰라서 그냥 놔두었소이다. 따라오시오, 노인장.”

 

장노인은 속으로 그들을 비웃으며 마구간으로 갔다.

 

‘노마가 어떤 말인 줄도 모르는 놈들이…… 다행인 줄 알아라, 이놈들아. 처분했으면 네놈들도 노마 신세가 되었을걸?’

 

 

 

노마는 전과 다름없이 비쩍 말라 있었다. 그런데 장 노인을 보더니 잔뜩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닌가.

 

“이놈이 이 어르신을 잊었나?”

 

장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마의 고삐를 쥐었다.

 

노마는 악착같이 버티며 마구간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놈이 왜 이래?”

 

장 노인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노마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노마의 옆에 백설처럼 흰 백마가 있었는데 불안한 듯 자꾸 좌우를 오가고 있었다.

 

그제야 장 노인은 노마와 백마가 수상한 사이란 걸 알고 조소를 지었다.

 

백마의 배가 살짝 부른 걸 보니 노마란 놈이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고민하던 장 노인은 선가장의 장주에게 사정을 말하고 백마를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노마만 데려가면 천풍장으로 가는 길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사정하듯이 쳐다보는 눈빛을 보니 꼭 자신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아서 조금은 불쌍하기도 했고.

 

선가장주 선궁연은 백초령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터여서 기쁜 마음으로 순순히 백마를 내주었다.

 

 

 

순조롭게 노마를 찾은 장 노인은 강호의 소문에 귀를 열어놓고서 천풍장으로 향했다.

 

마차는 노마가 끌고, 백마는 노마보다 한 걸음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노마는 백마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지 평소보다 더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회남에 있던 구룡회가 정원으로 이동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틀째 되던 날, 응천보가 무너졌고 무너진 응천보를 신검문과 중소문파 연합세력이 되찾았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장 노인은 그 소문을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풍천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세상은 능구렁이 같은 장주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풍천은 누구도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바람이라는 걸.

 

 

 

5

 

 

 

선가장을 출발한 지 사흘, 구름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장 노인은 노마의 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마차의 진동을 즐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참았다 내리지.’

 

상구까지 남은 길은 백 리 정도. 비가 계속 오면 하루를 더 지체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마차가 굽이를 돌아서 제법 넓은 관도로 빠져나왔을 때였다. 장 노인의 주름 가득한 눈꺼풀 사이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저만치 앞쪽에 천 년은 묵었을 것처럼 보이는 고목이 있었는데 열댓 명이 그 아래에 서 있었다. 길을 가다가 비가 쏟아지자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그들이 모두 병장기를 든 무인들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범상치 않은 고수들.

 

특히 중앙에 서 있는 당당한 덩치의 중년인은 고삐를 쥔 손에 땀이 찰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다.

 

‘누군지 몰라도 엄청난 고수군.’

 

 

 

등가위는 마차가 보이자 이채를 반짝였다.

 

천응단을 이끌고 천의맹에서 파견된 지원무사들의 뒤를 따라 안휘로 가던 중이었다. 정확히는 공손선우를 지원하기 위해 따라가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쉴 만한 곳도 없는 곳을 지날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는 마침 고목이 보이자 그 아래에서 비가 약해질 때까지만 쉬어 가기로 했다.

 

하지만 비는 쉽게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약해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굵어져서 바쁜 발길을 붙잡았다.

 

응천보의 일이 전해지면서 천의맹 무사들의 이동속도가 빨라진 상황. 거리가 너무 벌어지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거늘.

 

하늘을 올려다본 그는 비가 멈출 것 같지 않자 별수 없이 비를 맞으며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만치 앞쪽의 구비에서 마차가 나타난 것이다.

 

‘잘됐군.’

 

진창길을 걷고 싶지 않은 등가위는 마차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허름하고 작긴 해도 두어 사람 비를 피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그때 우측에 서 있던 천응단 이조장 당추환이 등가위의 마음을 눈치채고 넌지시 물었다.

 

“단주, 저 마차를 얻는 게 어떻겠습니까?”

 

등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고 마차를 넘겨달라고 해라. 넘기지 않겠다고 하면 돈을 안겨주고 마차만 끌고 와.”

 

“예, 단주.”

 

당추환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수하를 데리고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장 노인은 고목 아래 서 있던 무사들 중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보고도 모른 척하며 마차를 계속 몰았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마차를 쫓아오더니 장 노인에게 소리쳤다.

 

“잠깐 멈춰보시오.”

 

장 노인은 천천히 노마를 몰면서 시골의 늙은 마부처럼 힘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요?”

 

당추환은 백마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노인장, 마차와 말을 우리에게 파시오.”

 

“이 말은 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요.”

 

“돈은 충분히 주겠소.”

 

“글쎄, 돈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죠. 보시다시피 새끼를 밴 말이어서 어차피 달리지도 못합니다요.”

 

“상관없소. 어차피 빠르게 달리지 않을 것이니까.”

 

“사정 좀 봐주십쇼, 무사 나리. 말을 끌고 가지 않으면 주인님께 혼납니다요.”

 

그때 당추환 옆에 서 있던 적상유가 눈살을 찌푸리며 냉랭히 말했다.

 

“노인장이 눈치가 없군. 그 정도 부탁했으면 대충 넘기지 말이야. 그럼 노인장도 돈을 챙기고, 우린 말과 마차를 얻고 서로가 좋을 텐데.”

 

장 노인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서 미소를 지어도 이상하게 보였지만 최대한 굽실거리는 태도를 취했다.

 

“주인님의 성격이 워낙 고약해서 잘못하면 죽을지 모릅니다요. 제발 그냥 보내주십쇼.”

 

사실이 그랬다. 아마 풍천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볶아먹을 게 분명했다. 말 한 마리도 지키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풍천의 성격을 알지 못하는 당추환은 장 노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긴말 할 것 없소. 은자 백 냥을 줄 테니 말과 마차를 넘기시오. 그 정도면 노인장의 주인도 이해할 거요.”

 

은자 백 냥이면 적은 돈이 아니었다. 마차와 튼튼한 말 두 마리를 사고도 몇 냥은 남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 말일 때의 이야기였다.

 

금방이라도 꼬꾸라질 것처럼 보이는 노마는 평범한 일반 말이 아니었다. 비록 늙긴 했지만 서역 대완국의 천리마인 한혈보마조차 한 수 아래로 본다는 신혈마의 피를 이어받은 신마였다.

 

그리고 백마야 은자 이십 냥이면 충분했지만 뱃속에 든 새끼가 정말 노마의 씨라면 이십 냥이 아니라 이천 냥도 비싸지 않았다.

 

좌우간 이리저리 계산해도 은자 백 냥은 노마의 이빨 값밖에 안 되는 가격인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령 그 돈을 다 준다 해도 자기 마음대로 팔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팔 수 없습니다요.”

 

적상유가 눈을 치켜뜨고 성을 냈다.

 

“정말 어리석은 늙은이군! 좋게 말할 때 들을 것이지…….”

 

그는 장 노인을 노려보며 마부석으로 다가왔다.

 

장 노인은 말로 해결될 상황이 아님을 알고 재빨리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사이 적상유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장 노인은 고삐에 공력을 살짝 주입해서 노마의 엉덩이를 쳤다.

 

“노마야, 그만 가자꾸나.”

 

여우처럼 눈치가 빠른 노마는 즉시 걸음을 내딛었다.

 

평소처럼 느릿한 걸음이 아니었다. 마차가 튕겨 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당추환과 적상유가 멈칫한 사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저 늙은이가?”

 

분노가 치민 적상유는 즉시 땅을 박차고 마부석으로 몸을 날렸다.

 

“멈추지 못할까!”

 

장 노인은 마차의 꽁무니에 내려서려는 적상유를 향해 왼손에 쥐고 있던 채찍을 휘둘렀다.

 

휘이이잉!

 

공력이 주입된 가죽 채찍은 쇠사슬처럼 강한 힘으로 적상유를 후려쳤다.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공격!

 

“헉!”

 

다급성을 내지른 적상유는 툭 튀어나온 마차의 꽁무니를 박차고 몸을 뒤집으며 뛰어내렸다.

 

장 노인은 상대가 뛰어내리자마자 노마를 더욱 재촉했다.

 

“이랴!”

 

노마는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눈을 부릅뜨고 내달렸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옆에서 달리는 백마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

 

“거기 서라!”

 

“멈춰라, 늙은이!”

 

당추환과 적상유는 노성을 내지르며 마차를 추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등가위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차를 강제로 뺏으려는 것도 아닌데 마차 주인이 도주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천응단의 무사를 떨치고 말이다.

 

“수상한 늙은이군.”

 

그때 조양경이 나섰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계속 거부하면 돈을 던져주고 마차만 끌고 와. 살수는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고.”

 

“예, 단주.”

 

조양경은 짧게 대답하고 빗속으로 몸을 날렸다.

 

 

 

장 노인은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지만 눈 한 번 깜박거리지 않았다.

 

‘일단 거리를 벌린 다음에 놈들을 처리하고 가야겠어.’

 

고삐를 잡아당긴 그는 노마를 숲이 있는 곳으로 몰았다.

 

마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자 당추환과 적상유는 멈칫하며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땅이 질척해서 방향을 바로 틀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완만한 원을 그리며 마차를 쫓아갔다.

 

그로 인해서 거리가 조금 더 벌어졌다.

 

이제 고목이 있는 곳까지 이백여 장의 거리. 장 노인은 숲을 끼고 돌아가면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울창한 숲으로 막혀서 고목이 보이지 않았다. 고목 아래 있는 사람들도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말.

 

중년인과 장한은 이 장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십여 장 거리를 두고 또 한 사람이 달려오는 게 보였는데 앞선 두 사람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

 

‘제기랄, 저놈이 도착하기 전에 하나라도 없애야 해.’

 

마음이 급해진 장 노인은 채찍을 마차 안쪽에 던지고 허리춤에서 연검을 잡아 뽑았다.

 

“노마야, 너는 계속 달려라.”

 

노마에게 소리친 그는 훌쩍 몸을 날려서 뒤에 바짝 따라오는 자들 중 적상유를 먼저 덮쳤다.

 

연검이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허공 가득 검영을 뿌렸다.

 

촤르르릉!

 

바로 그때 이전에 내상을 입었던 가슴 쪽에서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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