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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68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68화

 

168화

 

 

 

 

 

 

제8장. 동상이몽(同床異夢)

 

 

 

 

 

1

 

 

 

태양이 서산으로 처박히며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는 시각. 회남의 북쪽 대로로 삼남일녀(三男一女)가 들어섰다. 천풍장을 떠나온 풍천 일행이었다.

 

악진표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신검문 사람과 마주칠 경우를 대비해서 인피면구를 하나 구해서 쓰고 따로 움직이라고 했다.

 

풍천 일행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면서 적련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 각가량이 지났을 때 드넓은 산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장원 앞에 섰다.

 

“드디어 도착했군.”

 

풍천은 감회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넓이가 삼 장이나 되는 정문 앞에는 네 명의 위사가 서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커다란 현판이 달려 있었다.

 

풍천은 이 장 길이에 높이가 다섯 자나 되는 거대한 현판을 보니 너무나 부러웠다. 천풍장의 글자도 잘 보이지 않는 현판과 비교가 된 것이다.

 

‘돈도 있겠다, 장원을 다 고치고 나면 현판도 새로 만들어야지.’

 

“무슨 일로 본방을 찾아온 거요?”

 

풍천이 멀뚱히 서서 현판만 바라보고 있자 정문을 지키던 위사 중 하나가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설마 현판 구경하겠다고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그런 의문이 어린 표정이었다.

 

공손이향과 허무정, 이곡은 풍천을 힐끔거렸다.

 

궁금한 점이 많았다.

 

구룡회를 도와서 신마성과 싸울 거라는 말을 듣긴 했다. 하지만 그뿐 아직 정확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비밀이라며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둘이 알면 이미 비밀이 아니라나?

 

어쨌든 회남까지 오는 사흘 동안 풍천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파악한 터라 위사가 다가오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설마 또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건 아니겠지?’

 

허무정과 이곡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짓고, 공손이향은 실소를 지었다.

 

‘정말 재미있는 분이야.’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서면 일은 빨리 진행되는데 대신 풍천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영성의 객잔에서 점소이와 말다툼할 때도 그랬고, 숙주에서 흑도건달들과 시비가 붙었을 때도 그랬다.

 

누군가가 나서서 일을 다 무마시켜놓으면 풍천은 마치 그 일을 그 사람이 일으킨 것처럼 말했다. 정말 짜증 날 일이었다.

 

‘알아서 하겠지 뭐.’

 

그 후부터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참견하지 않았다.

 

풍천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뜸 호자충의 이름부터 꺼냈다.

 

“호자충이란 분을 찾아왔는데, 계쇼?”

 

위사의 눈이 커졌다.

 

“호 장로님을 찾아오셨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위사는 풍천의 위아래를 쓱 훑고는 뒤에 서 있는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마른 대나무처럼 뼈다귀만 남은 놈에다가, 말대가리, 어? 모자 쓴 건 여자네? 햐, 몸매 기가 막히는데?’

 

최근 찾아온 사람들 중 가장 희한한 일행이었다.

 

특별한 자들 같진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져서 무시하진 않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비상이 걸려 있는지라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소이다.”

 

“삼산에서 온 대풍이라고 하면 알 거요.”

 

“잠깐만 기다리시오.”

 

위사는 동료에게 자리를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풍천은 그가 돌아올 동안 다른 위사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몇 사람이나 모였느냐, 신마성 놈들이 장강을 건너왔다는데 왜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느냐, 위사를 하면 몇 냥이나 받느냐, 그 돈으로 먹고 살 만은 하느냐, 자식들이 말썽은 부리지 않느냐 등등…….

 

그러다 결국 대답하기 지친 위사들이 짜증을 내자 질문을 멈췄다.

 

“거참, 적련방 사람들은 인심이 박하군.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그 정도 대답도 못 해주나?”

 

일행들은 그때도 끼어들지 않고 모른 척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앞날을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저런 자에게 잡혀서…… 귀수괴의만 찾으면 떠나야지.’

 

‘앞으로는 절대 함부로 약속하지 않겠어!’

 

오직 공손이향만이 조금 다르게 생각할 뿐.

 

‘정말 순진해.’

 

안으로 들어갔던 위사가 나온 것은 풍천 일행이 적련방에 도착한 지 반 각가량이 지날 즈음이었다.

 

풍천은 빙긋 웃으며 위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정문 안쪽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막 풍천 앞에 도착한 위사는 입을 열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급히 고개를 숙이고 상황을 설명했다.

 

“나오셨습니까, 우 당주님. 이분이 호 장로님을 찾는다고 하셔서…….”

 

적련방의 호련당주 우태산은 위사의 말을 듣고 풍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풍천에게 머물렀던 시선은 눈 한 번 깜박이는 사이 옆쪽으로 이동했다.

 

순간 허무정 등을 본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함이 느껴졌다.

 

‘저자들은 누구지?’

 

표정이 굳어진 그는 급히 정문으로 나갔다.

 

풍천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가슴으로 올려 포권을 취하려 했다.

 

“저는…….”

 

그런데 풍천을 그냥 지나친 우태산이 허무정 등을 향해서 포권을 취하는 게 아닌가.

 

“호련당을 맡고 있는 우태산이라 하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시오?”

 

허무정 등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풍천을 바라보았다. 풍천이 가슴까지 올렸던 손을 내리고 우태산의 뒤통수를 째려보고 있었다.

 

우태산은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자신의 뒤를 향하자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옆구리에 덜렁거리는 특색 없는 검만큼이나 특이할 게 없는 청년이 서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평범한 얼굴, 색 바랜 짙은 감색 무복. 며칠 동안 적련방을 찾아온 수많은 낭인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왜 모두가 저 청년을 보는 걸까?

 

그때 풍천이 우태산을 째려보며 대답했다.

 

“저희는 삼산에서 왔습니다. 어떤 분이 호 장로님을 소개해주셔서 만나러 왔죠.”

 

우태산은 풍천의 태도를 보고 기분이 상했다. 어른의 질문에 째려보면서 대답하다니.

 

앞으로 나서서 위사와 대화를 하는 걸 보니 저들의 수하쯤 되는 것 같은데, 윗사람들을 믿고 그러는 것인가?

 

‘건방진 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하지만 묵묵히 서 있는 세 사람을 생각해서 화를 억눌렀다.

 

“그래?”

 

우태산은 풍천을 더 상대하지 않고 허무정 등을 향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호 장로님은 무슨 일로 만나 뵈려는 거요?”

 

그때였다. 풍천이 슥 걸음을 내딛어 일 장의 거리를 좁히더니, 손을 뻗어서 우태산의 어깨를 턱 짚었다.

 

“이보쇼, 왜 자꾸 그쪽만 보는 거요?”

 

‘헉!’

 

간이 철렁인 우태산은 재빨리 어깨를 틀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저 잠깐 고개를 조금 돌렸을 뿐이다. 젊은 놈은 분명 자신의 시선이 파악하고 있는 반경 안에 있었다. 그런데 움직이는 걸 느끼지도 못했거늘, 언제 다가와서 자신의 어깨를 짚었단 말인가.

 

만약 상대가 자신을 해치려고 했다면……?

 

‘이따위 놈에게 빈틈을 보이다니. 빌어먹을!’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 든 우태산은 슬그머니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풍천은 우태산의 기분이야 어떻든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사정을 잘 모르니까 저하고 얘기하자니까요.”

 

그제야 우태산은 상황이 이상함을 느끼고 눈알만 돌려서 풍천과 허무정 등을 번갈아 보았다.

 

눈치가 제일 빠른 이곡이 우태산의 심정을 읽고 슬쩍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령주님께 물어보시지요.”

 

령주님?

 

‘설마 이 건방진 놈이 저들의 상관? 말도 안 돼!’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빌어먹게도 그게 사실이라는 걸 역설하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판단 착오를 했다는 말.

 

‘끄응, 뭐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우태산은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 좋아. 공자가 말씀해보게. 무슨 일로 호 장로님을 찾으시는가?”

 

우태산의 달라진 말투에 풍천의 찡그러진 이마가 펴졌다.

 

“하하, 그야 강호의 정의를 세우는 일에 도움이 될까 찾아온 거죠.”

 

아무리 봐도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놈이었다. 그런 놈이 강호의 정의를 운운하니 기도 안 찼다.

 

한쪽에 서 있는 세 사람만 아니면 코웃음을 치고 한 소리 쏘아줬을 텐데…….

 

하지만 느닷없는 상황이긴 해도 자신의 어깨를 짚은 것은 무시할 수가 없는 일. 우태산은 어차피 참은 것 한 번 더 참고 입을 열었다.

 

“신마성과 싸우는 일을 돕기 위해서 왔단 말씀이신가?”

 

“그렇습니다. 하, 하, 하.”

 

풍천은 서 푼짜리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고 대뜸 적련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안내 좀 해주시죠. 저희는 적련방의 지리를 잘 모르거든요. 거기, 뭐하쇼? 빨리 따라와요.”

 

우태산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풍천을 쳐다보았다.

 

당주인 자신에게 직접 안내하라고?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저만치 서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수하가 보였다.

 

그런데 그가 수하를 부르기도 전에 풍천이 말했다.

 

“설마 호 장로님의 거처를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하, 하, 하. 농담입니다. 그냥 해본 말이니 표정 푸십시오. 자, 앞장서시죠. 저희들은 당주님만 따라갈 테니까요.”

 

꼭 우태산이 자신을 무시해서 강요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높은 사람이 안내하는 걸 보게 되면 사람들이 앞으로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어쨌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남에게 맡기기도 어정쩡해진 우태산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안내를 맡았다.

 

“따라오게.”

 

 

 

2

 

 

 

호자충은 우태산이 데려온 풍천 일행을 보고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허허허, 자네가 대풍인가?”

 

은밀하게 찾아와야 할 사람이 당주를 안내인으로 내세우고 오다니. 감능하에게 대충 말을 듣긴 했지만 정말 어이가 없는 놈이었다.

 

“하, 하, 하. 반갑습니다. 무백이란 분이 찾아가라 해서 왔는데 분위기를 보니 잘 온 것 같군요.”

 

풍천은 너스레를 떨듯이 웃으며 말하고 호자충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비밀로 하고 싶을지 몰라도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거든?’

 

호자충의 표정이 썩은 땡감을 깨문 것처럼 이지러졌다.

 

‘대공의 함자까지 밝히다니. 이놈이 미쳤나?’

 

하지만 우태산이 있는 자리가 아닌가. 겉으로라도 웃으며 대해주는 수밖에.

 

“허허허허, 그리 생각하니 다행이군. 안으로 들어가지. 우 당주, 이 친구들 안내하느라 수고하셨네.”

 

우태산은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풍천과 호자충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풍천이 그를 보고 말했다.

 

“함께 들어가시죠.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우태산은 더 있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장로원까지 오는 동안 틈만 나면 온갖 질문을 퍼붓던 놈이었다. 따라서 들어가 봐야 뭘 알아보기는커녕 대풍이란 놈의 질문에 대답해주기 바쁠 것 같았다.

 

“나는 바빠서 그만 가봐야겠네. 그럼 편히 지내시게나.”

 

풍천은 도망치듯 떠난 우태산의 모습이 완전하게 사라진 후에야 호자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시죠. 당신들도 따라오쇼.”

 

 

 

풍천은 시비가 차를 따르고 밖으로 나가자 먼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은은한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무슨 차인지 몰라도 향이 괜찮군.’

 

그때 호자충이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

 

“령주, 왜 그리 함부로 행동하시는가?”

 

‘난 당신과 입장이 다르거든.’

 

풍천은 속마음을 감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죠?”

 

“어떻게 했기에 호련당의 당주가 령주를 안내한단 말인가? 그리고 대공의 함자는 왜 또 함부로 꺼낸 건가?”

 

“지금…… 저를 다그치자는 겁니까?”

 

풍천이 허리를 펴고 정색하며 물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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