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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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47화
147화
쩌정! 쾅!
안간힘을 다해서 풍천의 공세를 막아낸 두 사람은 그 충격에 좌우로 튕겨졌다.
풍천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멀찌감치 날아갔다.
용조성과 공손막도 풍천을 쫓지 않고 잔뜩 긴장한 채 공손승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표표히 내려서는 풍천을 바라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들과 삼 장 거리에 내려선 풍천은 한가롭게 보일 만큼 느긋한 눈길로 공손승을 바라보았다.
심장에 천 근짜리 철추가 박혀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알면 알수록 답이 안 나오는군. 천외천의 상위서열에도 들어 있지 못한 사람이 팔대신마보다 강하다니.’
어디 그뿐인가? 나머지 네 사람도 능히 팔대신마와 자웅을 겨룰 정도는 될 듯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말했다.
“뭐 이 정도면 대충 결론은 난 것 같은데…… 안 그렇수? 정 불만이면 다시 해보든가. 단, 이번에는 피를 볼 각오를 해야 할 거요.”
공손승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천주께서 단천무령주로 임명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풍천을 직접 보고 천주께서도 이제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서 자신들의 힘으로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으려 했거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사람을 잘못 판단한 것은 자신들이 아닌가 말이다.
‘공손승, 이 어리석은 놈아. 어찌 너의 한 줌 되지도 않는 머리로 천주의 뜻을 헤아리려 했단 말이냐.’
그는 스스로를 꾸짖으며 소매로 입술에 묻은 피를 훔쳤다. 그리고 이를 악물더니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더 할 것 없소. 패배를 인정하겠소, 령주.”
주위로 모여든 네 사람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공손승의 말에 반박하고 싶어도 사실이 그러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들 역시 한쪽 무릎을 꿇고 핏줄이 드러나도록 움켜쥔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령주의 처분을 달게 받겠소이다.”
“뭐든 명을 내리시오.”
풍천은 검을 집어넣고 다섯 사람을 둘러보았다.
천하를 암중으로 조종하는 천외천의 차세대 고수들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개 강호의 해결사에게 말이다.
처음 대하는 광경.
가슴이 뜨거워졌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저 하늘에 있는 사부님께 자랑하고 싶었다.
―사부님! 보셨죠? 음하하하하, 제자가 이렇게 컸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웃음을 지은 채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잊지 마쇼. 나에게 빚진 게 있다는 걸. 그럼 다음에 봅시다.”
승자로서 뭔가를 요구할 수 있음에도 풍천은 공손승 등을 다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담담하게 대할수록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었다. 다섯 사람이야 두고두고 가슴에 송곳이 박힌 기분을 느끼며 지내겠지만.
돌아서는 풍천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삼대가문의 자식들이니 이용할 곳이 많을 거야.’
챙길 때 최대한 챙기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 이용하는 것이 뛰어난 해결사로서의 덕목이 아니던가.
꼭 돈이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기분이 괜찮군. 아주 괜찮아. 초령이가 조금 전의 광경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풍천은 앙천광소라도 터트리고 싶은 기분을 간직한 채 절곡을 나왔다.
뒤에서 몸을 일으키는 다섯 사람이야 죽을상이었지만.
제9장. 풍천, 단천무령을 뽑다
1
느긋이 앉아서 차를 마시던 양곽연은 천상궁으로 다가오는 풍천을 보고 재빨리 찻잔을 내려놓았다.
‘응? 멀쩡하네?’
공손승이 이끄는 오지회가 대풍을 데리고 연수곡으로 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놀러 간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쯤은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언제 봤다고 함께 놀러 간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이 알기로 그들은 대풍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싫어하면 싫어했지.
풍천의 기를 꺾을 생각인가 보군.
결국 그렇게 결론 내린 그는 수하들에게 모른 척 그냥 놔두라고 했다.
대풍이란 놈은 기가 꺾여도 괜찮았다. 아니 공손승이 꼭 놈의 기를 꺾어주었으면 싶었다. 조금 심하게 밟아줘도 괜찮고.
공손승의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천외천의 청년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 차후 몇 년만 지나면 천외천의 최고위 간부가 되고도 남을 기재였다.
대풍처럼 입만 산 놈이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금쯤 자신이 원하는 일이 벌어졌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거늘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그것도 환하게 웃으면서!
그때 양곽연을 발견한 풍천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셨습니까, 대주님.”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양곽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하, 하. 천주님께 물어볼 게 있어서요.”
“뭘 물어보려고?”
“그건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군요. 천주님께서 내려주신 무공에 대한 거라서 말이죠.”
풍천은 적절한 핑계를 대고 씩 웃었다.
양곽연은 그 웃음이 마치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 이유 때문에 온 것 같진 않은데…….“
하지만 풍천의 앞을 막을 만한 마땅한 사유가 없는 그로선 꼴 보기 싫어도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식사를 막 마치셨을 거네.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가게.”
“잘됐군요. 저도 조금 전에 식사를 했는데 천주님께 차라도 한 잔 얻어 마셔야겠습니다. 하, 하, 하. 그럼 수고하십쇼.”
웃는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양곽연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썩을 놈. 말하는 꼴 보니 천주님께 뭐라도 얻을까 해서 온 모양이군.’
그렇다면 혼자 들어가게 놔둘 수 없었다.
“함께 가지.”
“대주님은 마시다 만 찻잔이나 비우시지 그러쇼?”
“입맛에 안 맞아서 마시다 만 거네.”
“뭐 그럼 좋을 대로 하시죠.”
풍천은 홱 몸을 돌리고 천상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양곽연을 까칠하게 대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흥, 내가 모를 줄 알고? 나에 대해서 그런 소문을 퍼뜨릴 사람이 당신밖에 더 있겠어?’
백초령을 구하는 일만 아니었으면 역공을 취했을 텐데…….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백초령을 구하는 일을 마치고 나면 상관경의가 부탁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시 돌아와야 하니까.
‘그때 확실하게 빚을 갚아주죠.’
뒤따라가는 양곽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풍천을 노려보았다.
‘며칠 사이에 많이 달라졌군. 역시 보통 놈이 아니야. 화 노야의 공격을 막아낸 게 우연한 일이 아니라면 공손승이 막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조심해야겠어.’
그래도 설마 자신이 밀리기야 하려고?
말도 안 되지!
천상궁으로 들어간 풍천은 공손량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밝게 웃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셔야 몸에 좋다는데 그렇게 드셨죠?”
공손량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괴상한 아침 인사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클클클, 늙은이 식사야 항상 그렇지.”
“온 김에 천주님께서 드시는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싶은데, 괜찮죠?”
“물론이지, 괜찮고말고. 그리 앉게. 양 대주도 않아.”
양곽연은 풍천의 뒤통수를 노려보면서 의자에 앉았다.
공손량은 담담히 웃으며 한쪽을 향해 말했다.
“향아야, 양 대주와 대 령주가 왔구나. 차 좀 더 내오너라.”
“예, 천주님.”
안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풍천의 두 눈 깊은 곳에서 가느다란 열기가 피어올랐다가 스러졌다.
‘역시 공손이향은 천주의 시비였군.’
비연당의 시비를 쓰지 않고 친족의 여자를 시비로 쓴 것은 안전 때문인 듯했다.
풍천은 억지로 공손이향의 목소리가 들린 곳은 보지 않고 광양검결에 대해서 질문했다.
“저번에 주신 것 말인데요. 그것 익히려면 따로 내공법을 익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열여덟 개의 검영 사이에서 빛이 솟구쳐야 하는데 빛은커녕 안개도 솟구치지 않거든요.”
담담히 웃고 있던 공손량이 멈칫하며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러니까 열여덟 개의 검영을 만들긴 했다, 그 말이냐?”
“아직 완벽한 모습을 갖춘 건 아니고요. 희미한 검영만 보여요. 숫자는 열여덟 개가 분명한데 말이죠.”
공손량은 풍천이 단 나흘 만에 광양검결의 첫 번째 초식인 승광을 흉내낼 정도까지 깨달았다고 하자 어이가 없었다.
풍천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 정도로는 빛을 솟구치게 할 수 없는 건가요?”
“검영이 뚜렷해져야 그 다음 단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게야. 하지만 나흘 만에 그 정도까지 이루었다니. 허허허, 정말 대단하구나. 역시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어.”
“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따로 있죠.”
풍천은 그 말을 하면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꼭 양곽연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양곽연은 풍천이 자신을 보고 그런 말을 한 거라고 확신했다.
그때 공손이향이 찻잔을 들고 나왔다.
풍천은 양곽연이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손이향을 훔쳐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슬쩍 웃어주었다.
공손이향은 풍천이 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양곽연과 풍천의 찻잔에 차례대로 차를 따를 때 공손량이 말했다.
“어제 만났다며?”
“예?”
“향아가 그러더구나. 은천원에 다녀오다가 만났다고 말이야.”
풍천은 머리를 긁으면서 머쓱하게 웃었다.
공손이향은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뒤쪽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양곽연이 풍천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혹시라도 엉뚱한 생각하고 있으면 당장 그만두도록 하게.”
“양 대주님도 참, 제가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한다고 그러세요?”
“나에게 장난치는 건 좋은데 내 조카에게 장난치면 절대 참지 않을 거네.”
조카?
풍천은 동그래진 눈으로 양곽연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멧돼지처럼 생긴 사람의 조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조카입니까?”
“내 여동생의 딸이네. 나는 내 조카딸이 자네 같은 사람과 어울리는 꼴을 죽어도 못 보네.”
‘제길,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설마 양곽연이 공손이향의 외삼촌일 줄이야.
아직 공손이향에 대해서 이렇다 할 확실한 마음은 없었다. 그저 신비하도록 아름다운 여인이 치유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것이 불쌍하게 생각될 뿐.
그런데 양곽연의 그 말을 듣자 자신이 정말 공손이향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참나, 제가 뭐 어째서 그런 말을 하세요? 아니, 천외천에 저보다 잘생긴 사람 있어요, 아니면 저처럼 순진한 사람이 있어요? 거기다 지위도 단천무령의 령주고. 그 정도면 되지 얼마나 더 멋진 남자를 바라는 겁니까?”
양곽연은 풍천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무리 잘나도, 높은 지위에 있어도 무조건 싫네. 그 얼굴은 더더욱 싫고.”
“성격 참 희한하시네.”
“자네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소용없네. 그러니 머릿속에서 내 조카에 대한 생각은 싹 지우게. 알겠나?”
양곽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오랜만에 승리자의 표정을 지었다.
풍천은 입술을 씰룩이면서 양곽연을 째려보았다.
‘좋기도 하겠수. 하여간 생긴 것하고는 영 딴판이라니까.’
그러니까 자신에 대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는가 한번 보자구요. 사람은 말이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거든요?’
풍천은 일단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천주님, 언제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서 강호에 있다는 단천무령을 만나 봐야겠는데 말이죠. 나가는 김에 새로운 단천무령도 몇 명 뽑고요.”
“단천무령을 뽑으려면 실력으로 굴복시켜야 하는데 자신 있느냐?”
“하, 하, 하. 저도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상관 노형께서도 인정하셨다니까요?”
화문오가 찾아가서 별 득을 보지 못한 채 물러났다고 했다. 그 정도라면 당장 나간다 해도 대문파의 수장이 아니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부부터 정리해야 했다.
“그래도 본천 내에서 먼저 몇 명 뽑고 그 다음에 바깥에 나가서 사람을 뽑도록 해라.”
“그렇게 하죠. 마침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몇 있는데…….”
2
풍천은 감능하를 찾아가서 아주 좋은 뜻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감능하는 악몽이 현실로 다가오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저에게…… 단천무령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왜, 싫어요? 싫어도 하쇼. 나는 그래도 저 양 대주처럼 수하를 괴롭히지는 않거든요.”
“안 하면…… 안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