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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45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4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45화

 

145화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힌 풍천은 행여나 눈을 깜박이면 앞에 있는 책이 사라질까 봐 눈을 일절 깜박이지 않고 천천히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다음 장을 본 순간 이를 악문 채 눈을 부릅떴다.

 

 

 

아아아, 참으로 어리석었도다. 본인의 능력이 벽력의 주인과 같을 수 없음을 모르고 욕심을 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랴. 한 근 무게의 머리만 믿고 달려든 죄로 온몸의 기혈이 모두 터져버려 공력을 잃고 말았으니…….

 

 

 

쾅!

 

풍천은 책을 탁자에 세차게 내려놓았다.

 

“이런, 젠장! 잘 나가다가 왜 거기서 꼬꾸라져? 차라리 말을 하지 말지!”

 

조사인 공손곽과 동시대의 인물. 벽력의 주인.

 

분명 뇌정천결의 주인에 대한 말인 것 같았다. 그래서 숨이 멎을 것처럼 흥분해서 잔뜩 기대를 품었거늘 연구하다가 기혈이 터져버렸다니…….

 

어쩌라고!

 

‘빌어먹을. 그럼 익혀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그날 언덕에서 벼락을 봤을 때만 해도 기대에 부풀었는데, 금방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에휴, 내 복이 그렇지 뭐. 차라리 일찌감치 책 덮고 잠이나 잘걸. 이런 책을 밤새면서 읽은 내가 미친놈이지.”

 

풍천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책을 내려다보았다.

 

기혈이 터져버렸다는 곳 이후의 내용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결국 그분의 능력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진기운용을 두 갈래로 나누어서 할 수 없는 몸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결론만을 내리고 말았노라. 그래도 정확한 구결을 알지 못한 채 무공을 익힌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절실하게 깨달은 것 또한 적지 않은 배움이니, 말미에 그에 대한 내용을 적어서 후예들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한다.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에 걸쳐서 보완하고 또 보완해서 만들어진 구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들어 있음이니,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백 번, 천 번의 참오가 있어야 하고…….

 

 

 

‘뭐?’

 

풍천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후다닥 책을 집어들고는 그 부분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머리에 벼락이 내리꽂힌 것 같은 느낌!

 

산 정상에서 솟구치는 샘물에 머리를 담근 것처럼 잠이 확 깨면서 머리가 느닷없이 맑아졌다.

 

‘진기운용을 두 갈래 길로 나누어서 할 수 있는 몸? 뭐야? 나잖아?’

 

풍천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확실히 착하게 사니까 복이 오는군. 역시 남자는 끈기가 있어야 돼. 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으니까 하늘도 알아주잖아? 우흐흐흐흐.”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을 까맣게 잊은 듯 풍천은 조석지변보다 더한 변화무쌍함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신예는 싱글벙글 웃으며 방에서 나오는 풍천을 보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왜 그런 표정이세요? 밤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어? 어, 조금.”

 

“혹시…… 잠자면서 엉뚱한 생각한 것은 아니죠?”

 

“엉뚱한 생각? 어떤 생각?”

 

신예가 더듬거리며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 뭐, 이향 아가씨를 생각했다든가 아니면 초령 아가씨를 생각했다든가, 그런 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풍천의 표정이 빠르게 식어갔다.

 

뇌정천결을 익히는 것은 나중 일, 백초령과 공손이향에 대한 것은 당장 눈앞의 일이었다.

 

순식간에 시무룩한 표정이 된 풍천은 자신의 기분을 식게 만든 신예를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식사는 아직 안 가져왔냐?”

 

“지금 가려고요. 헤헤, 깜박 늦잠을 잤거든요.”

 

“그래? 그럼 그냥 놔둬라. 아니, 가서 네 것만 먹고 와. 오늘은 내가 직접 가서 먹을 테니까.”

 

“그러실래요?”

 

“어, 내려가는 김에 들를 곳도 있고…….”

 

“설마 천상궁에 가시려는 건 아니죠?”

 

어린 것이 눈치는 빨라서!

 

“그냥 여기저기 둘러볼 거다. 그러니 너는 식사를 마치는 대로 먼저 올라오도록 해라.”

 

“저도 비연당에 좀 들렀다 오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럼 그러든가.”

 

“고마워요, 령주님.”

 

그래도 꾸벅 인사를 하는 게 조금은 귀엽게 보였다.

 

“고맙기는…….”

 

“아 참, 올라오기 전에 홍련 언니를 만나려고 하는데 전에 말씀드린 금두와 은자는 언제 주실 거예요?”

 

살구향이 나는 목소리로 밝게 말한 신예는 눈빛을 샛별처럼 반짝이며 풍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풍천은 신예의 눈빛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슴 저린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지금 주지 뭐.”

 

그 순간만큼은 신예가 털끝만큼도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토끼가 아니라 여우라니까. 그것도 돈 밝히는 여우.’

 

 

 

5

 

 

 

풍천은 천외천 무사들의 식사를 만드는 선요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뭇가지로 이를 깔짝이며 천상궁으로 향했다.

 

지나가던 사람들 중 몇이 풍천을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눈이 마주칠 경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른 척 눈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노골적으로 경멸하듯이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풍천은 그들의 얼굴을 차곡차곡 기억창고에 쌓아놓았다.

 

‘당신들은 나중에 나를 만나지 않는 게 좋을걸?’

 

누가 들으면 속이 좁다고 할지 모르지만 풍천은 자신을 경멸하는 자들까지 웃으며 대할 마음이 없었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귀하가 단천무령의 신임 령주이신 대풍이란 분이오?”

 

풍천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 뒷짐을 지고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소만, 그렇게 묻는 댁은 뉘쇼?”

 

“나는 용조성이라 하오.”

 

“그런데 왜 부른 거요?”

 

“단천무령 신임 령주께서 어떤 분인지 궁금해 부른 거요.”

 

“그래, 궁금증은 풀렸수?”

 

“하하하, 어찌 말 몇 마디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겠소? 나이도 엇비슷할 것 같고 말이 통할 분 같은데, 어디 가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소만.”

 

호탕한 말투와 다르게 눈빛이 좌우로 많이 흔들린다. 누군가의 눈치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흐음…….”

 

풍천은 생각하는 척하면서 재빨리 좌우를 훑어보았다.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의 눈빛이 다른 사람과 달리 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는데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무슨 꿍꿍이지?

 

좋은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풍천도 그들의 뜻이 어떻든 피할 생각이 없었다.

 

천상궁에 가는 것도 하등 급할 것이 없는 일이고.

 

“그것도 괜찮겠군요. 어디 괜찮은 곳이 있으면 안내해보쇼.”

 

용조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갯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풍천은 급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용조성의 뒤를 따라갔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두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만을 바라는 표정들이었다.

 

그때 젊은 청년 몇이 나서더니 따라가려는 사람들을 제지했다.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모두 삼대가문의 직계임을 알고 걸음을 멈췄다.

 

 

 

용조성은 풍천을 데리고 전각이 운집한 곳을 벗어났다.

 

풍천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뒤만 따라갔다.

 

그렇게 칠십여 장 정도 따라가자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제법 넓은 공간이 보였다.

 

용조성은 풍천을 그 안으로 안내했다.

 

“호오, 좋은 곳이군요.”

 

풍천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용조성을 따라서 절벽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절벽 사이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청년 넷이 입구에 나타났다. 모두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의 청년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지닌 자들이었다.

 

용조성은 그들이 나타난 후에야 조용히 웃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군요.”

 

풍천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곳이오.”

 

“마음에 드십니까?”

 

“물론이오.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오.”

 

그때 입구에 나타난 청년 넷이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용조성이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형님, 령주께서 마음에 드신답니다.”

 

“그거 다행이군.”

 

청년들 중 각이 진 얼굴을 지닌 강인한 인상의 청년이 웃음을 띤 표정으로 답했다.

 

풍천이 고개를 돌리고 그를 향해 물었다.

 

“나도 할 일이 있는데 이야기를 빨리 끝냈으면 좋겠군요.”

 

“오지회(五指會)를 맡고 있는 공손승이라 하오. 이렇게 단천무령주를 뵙게 돼서 반갑소.”

 

다른 세 사람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용조완이오.”

 

“공손막이라 하오.”

 

“등원명이외다.”

 

오지회? 아마 이들의 모임 이름인 것 같다.

 

풍천은 그들을 만난 것이 정말 반가운 듯 밝게 웃었다.

 

“하하하, 이거 천외천을 이끌어갈 삼대가문의 공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군요.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자고 이곳으로 데려온 거요?”

 

공손승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단천무령주는 본천의 핵심요직이외다. 그런데 갑자기 외부에서 들어온 분이 령주의 지위를 맡았지 뭡니까? 해서 그분이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모신 겁니다.”

 

말은 그럴 듯했다. 하지만 내용은 별것이 없었다.

 

―네까짓 것은 단천무령주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런 뜻이었으니까.

 

풍천은 그의 말에 숨어 있는 뜻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아하, 그러니까 실력이 없으면 관둬라, 그 말이군요.”

 

묵묵히 서 있던 용조완이 냉랭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그래도 말귀가 어두운 분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구려. 사실 그 자리는 상관 령주 이후 여기 계신 공손 형님이 맡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귀하가 끼어든 것이지요.”

 

‘오호라, 그래서 불만이 많단 말이지?’

 

풍천이 단천무령주의 지위를 맡은 것은 백초령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맡을 이유도 없었고 그 일만 끝나면 그만두지 말라 해도, 바짓자락을 붙잡고 울며 매달려도 냉정하게 돌아서서 떠나버릴 생각이었다.

 

벽라동과 원수지간인 천외천을 위해서 일하면 아수비가 원망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강요에 의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그럼 어디 나를 이겨보쇼. 그럼 그만둘 테니까.”

 

“그게 정말이오?”

 

“난 말입니다. 어떤 인간들처럼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공손승은 그 말이 꼭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풍천과는 처음 보는 사이. 설마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싶었다.

 

“공손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리다. 그대에게 진다면 진심으로 령주로서 대하고 오늘의 일에 대해서 사죄하겠소이다.”

 

‘어쭈, 제법 대가 있는데?’

 

차기 단천무령의 령주로 거론되었다더니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닌 것 같다.

 

풍천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두 팔을 쳐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래, 다섯이 모두 함께 덤빌 거요?”

 

“…….”

 

공손승 등은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지금 저자가 뭐라고 한 거지?

 

제일 먼저 용조성이 눈을 치켜뜨고 다그쳤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지금 우리를 모욕하겠다는 거요?”

 

“다섯이 함께 덤비기 싫으면 한 사람씩 차례대로 덤비든가. 누가 먼저 하겠수?”

 

얼굴이 벌게진 공손승이 버럭 소리쳤다.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을 함부로 하는군!”

 

“형님, 굳이 형님이 나설 것도 없습니다. 제가 삼초비무로 저자의 실력을 알아보겠습니다.”

 

등원명이 풍천을 노려보며 앞으로 나섰다.

 

풍천은 그들이 화내는 게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혼자 싸울 생각이었수?”

 

분노를 억누른 공손승은 손을 들어서 등원명을 막고 풍천의 질문에 답했다.

 

“당연한 말 아니오?”

 

“그러다 다치면?”

 

“뭐요? 이……!”

 

공손승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등원명이 더 참지 못하고 신형을 날렸다.

 

“어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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