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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28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28화

 

128화 

 

 

 

 

 

 

한 시진 후.

 

풍천은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곧장 웅이산을 향해 나아갔다.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한 해동산이 옆에서 나란히 걷고 강매설 등은 이 장의 간격을 두고 따라왔다. 그동안 송구도 운기를 해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상태였다.

 

시원한 바람이 웅이산 쪽에서 불어와 머리카락을 옆으로 날리자 풍천의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천응단이 멍청하지 않다면 길목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은 겉모습을 바꾸었고 옆에는 천의맹 사람들이 있었다.

 

‘머리통 터지게 고민해봐라, 이놈들. 크크크크.’

 

 

 

2

 

 

 

장 노인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진기를 조절했다.

 

호가장을 떠난 즉시 도망쳤으면 천의맹의 추적망에 걸려들 일이 없었다. 하지만 살해당한 고향 친구를 놔두고 이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걸음을 늦춘 게 실수였다.

 

그는 본래 천의맹의 움직임을 살펴본 뒤 호가장으로 돌아가서 호은명의 죽음을 좀 더 조사해보려 했다.

 

그런데 천의맹의 추적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치밀했다. 그리고 집요했다.

 

호은명이 죽은 지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천의맹의 추적대와 마주친 것이다.

 

결국 그는 장로 둘과 비룡당 무사 셋의 합공을 받아야만 했다.

 

비룡당 무사들이야 별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종남의 속가장로인 부운검 종상섭과 화산의 허청자는 혼자서 상대하기에 부담이 가는 고수들이었다.

 

더구나 낮에는 자신의 장기인 신법의 덕도 볼 수가 없으니 상대하기가 더 어려웠다.

 

결국 삼십여 초 만에 부상을 입은 그는 전력을 다해서 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천의맹은 아직 추적을 그친 것이 아니었다.

 

‘제기랄, 확실히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지나친 의욕이 결국 부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단 도주한 뒤 나중을 기약했어야 하거늘. 자신이 서두른다고 해서 친구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미안하네, 은명. 아무래도 조금 더 걸릴 것 같군.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내 반드시 놈을 죽여서 자네의 한을 풀어주겠네.’

 

장 노인은 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주위를 살펴보았다.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천의맹의 추적대는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다행이라 생각한 그는 서쪽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오십여 장을 걸어 숲을 완전히 벗어났을 즈음 한 사람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이는 쉰 정도? 백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무기는 없는 듯했다.

 

장 노인은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걸 알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외길이어서 몸을 돌리기도 어정쩡했다.

 

상대의 강함을 느낀 것은 거리가 십 장 안으로 줄어들었을 때였다.

 

푸석거리는 땅인데도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이는 먼지가 그의 몸 한 치 떨어진 곳에서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절정 고수. 그것도 최상승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정상인 몸으로도 상대가 쉽지 않은 자를 부상당한 상태에서 만나다니.

 

‘빌어먹을!’

 

장 노인은 걸음을 늦추며 재빨리 눈을 굴려 지형을 먼저 확인했다. 그때 걸어오던 자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설의 살수라 해서 찾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만났구려.”

 

자신을 알고 왔다. 목적이 있다는 뜻. 더구나 목소리에 살기가 실려 있다.

 

장 노인은 부인하지 않고 상대의 정체를 확인해보았다.

 

“그대는 누군데 나를 아는 거지?”

 

“그건 지옥에 가보면 알 거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색 장포인의 몸이 앞으로 죽 미끄러졌다.

 

장 노인은 뒤로 물러서며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일시지간, 두 사람의 거리가 이 장으로 줄어들었다.

 

순간이었다. 백색 장포인이 두 손을 가슴으로 올리더니 흩뿌리듯 흔들었다.

 

장 노인은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거센 압력을 느끼고는 이를 악문 채 쌍장을 내밀었다.

 

찰나, 두 사람의 장력이 일 장의 간격을 두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쾅!

 

‘흐읍!’

 

신음을 속으로 삼킨 장 노인은 상대의 장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함을 알고 더 이상 부딪칠 생각을 버렸다.

 

충격을 이용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린 그는 백색 장포인과의 거리를 오 장으로 벌리며 허리에서 연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백색 장포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시 신형을 날리며 쌍장을 뿌렸다.

 

바로 그 순간 장 노인의 두 눈이 상대의 장심을 향한 채 홉떠졌다.

 

은은한 홍광이 흘러나오는 백색 장포인의 손바닥은 그가 호은명의 몸에서 본 것과 같은 크기였던 것이다.

 

“네놈이었구나!”

 

분노가 치민 장 노인은 혼신을 다해서 연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부상당한 몸으로 상대하기에는 백색 장포인이 너무 강했다.

 

콰르르릉.

 

굉음과 함께 장 노인의 신형이 뒤로 튕겨졌다.

 

‘크윽, 이자가 누구기에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천의맹의 두 장로를 합친 것보다 더 강한 자는 강호에 그리 많지 않았다. 천의맹을 모두 뒤진다 해도 열을 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상대가 천의맹의 십대고수 안에 들어간다는 말.

 

장 노인은 머뭇거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몸을 뒤로 뺐다.

 

분노해서 달려들던 장 노인이 곧바로 도망갈 줄은 생각을 못 했는지 백색 장포인은 냉랭한 노성을 내지르며 땅을 박찼다.

 

“여우 같은 늙은이로군!”

 

그 사이 장 노인은 혼신을 다해서 자신이 나왔던 숲으로 뛰어들었다.

 

분해도 어쩔 수 없었다. 복수도 살아야 할 수 있으니까.

 

간발의 차로 장 노인을 놓친 백색 장포인은 숲 앞에 내려서서 망설였다.

 

상대는 전설의 살수라는 흑야살이었다. 은신술과 암습에서 천하제일을 다투던 자. 그런 자를 잡기 위해 나무가 우거진 숲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흥,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 내 손을 벗어날 순 없을 거다, 늙은이.”

 

그동안에도 장 노인은 가슴에서 핏덩이가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숲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은명, 자네를 죽인 놈을 만났네. 정말 강하더군. 하지만 걱정할 것 없네. 놈이 아무리 강해도 오늘 내가 살아나면 놈은 내 손에 죽을 거야.’

 

반드시!

 

 

 

 

 

제2장. 호랑이 굴속에서 일어난 일

 

 

 

 

 

1

 

 

 

초여름의 어느 날.

 

웅이산 첩첩산중에 자리한 백하촌에 일단의 무사들이 들어섰다. 승려와 도인이 섞인 일행, 풍천과 천의맹의 사람들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정도로 오지마을인 백하에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은 오가다 말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졸지에 구경거리가 된 풍천 일행은 쉴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남소를 떠난 지 이틀. 그간 풍천이 지닌 육포와 약간의 건량 덕분에 굶지는 않았지만 험준한 산길을 오래 걷다 보니 하룻밤 정도는 편히 쉬고 싶었다.

 

백하는 사냥꾼과 약초꾼이 많이 드나들고, 가죽과 약초를 사기 위해 상인들이 오가는 곳. 어딘가 객잔이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의 중앙으로 가자 이 층으로 지어진 객잔이 두어 곳 보였다.

 

풍천은 그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을 택했다. 객잔 앞의 기둥에는 마로 만든 천에 제법 그럴듯한 필체로 [백하객잔]이라고 써진 깃발이 꽂혀 있었다.

 

백령객잔만은 못해도 ‘백’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정감이 갔다.

 

 

 

백하객잔의 건너편에서 약초상을 하던 나기응은 백하객잔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승려와 도사, 그리고 네 명의 속인. 아무래도 천의맹 사람들 같았다.

 

수경대의 이향주로 천외천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백하 일대의 순찰을 책임진 지 삼 년, 가끔 불귀곡을 찾아가겠다고 온 자들이 있긴 했지만 천의맹 사람들이 다수로 백하에 들어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왜 저들이 이곳에 온 거지?’

 

잠시 풍천 일행을 주시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 전 천응단의 단주 등가위가 수하들과 함께 백하에 들어왔다. 그는 수상한 자가 보이면 즉시 보고하라고 했다.

 

천의맹 무사들을 수상한 자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백하에 들어온 것 자체는 분명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들의 목적을 알아봐야겠군.’

 

 

 

한편,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풍천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찝찝했다. 뭔가 신경을 건드리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은근히 짜증이 난 그는 점소이가 가져다준 차를 단숨에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그는 자신이 왜 그런 기분을 느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투박한 엽차 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 길을 오가는 사람들, 하다못해 다른 장사를 하는 사람들까지. 적어도 그들 중 반 정도는 한가락 하는 자들이었다.

 

한마디로 마을 사람들 반이 일류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들이라는 말이었다.

 

‘제기랄, 호랑이 아가리 속에 들어왔군.’

 

앞에 있는 자들은 그걸 알고 있을까?

 

풍천의 속도 모르고 황보안이 물었다.

 

“대 형, 언제쯤 돼야 그대가 말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소?”

 

‘이미 만났다네, 이 사람아. 자네 옆에, 뒤에, 객잔 밖에 구더기처럼 구물구물하잖아?’

 

하지만 풍천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담담히 말했다.

 

“누구처럼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쇼. 잘하면 오늘내일 중으로 만날지 모르니까.”

 

엽차 잔을 움켜쥔 송구의 손이 잘게 떨렸다.

 

남소에서 백하까지 이틀이 걸렸다. 뒤만 쫓아가는 게 짜증이 나서 놈들을 언제 볼 수 있느냐, 혹시 거짓말한 거 아니냐고 한마디 했더니 그걸 가지고 틈만 나면 트집을 잡는다.

 

무공만 약하면 당장 무릎 꿇려놓고 치도곤을 낼 것이거늘!

 

그럴 수 없는 게 한이었다.

 

‘두고 보자, 이놈.’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마음을 지닌 송구가 이를 갈든 말든, 풍천은 주위를 신경 쓰며 계산하기에 바빴다.

 

‘불귀곡을 찾으려던 사람들이 강호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곳 백하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적어도 황금 열 냥은 받을 수 있는 정보였다. 잘하면 그 몇 배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진작 정보 파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천풍장도 벌써 멋지게 고쳤을 텐데. 엉뚱한 청부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역시 남자는 세상을 좀 더 넓게, 멀리 돌아다녀 봐야 해.’

 

최소한 황금 열 냥이 눈앞에서 굴러다닌다. 그 생각만으로도 배가 불러진 풍천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고 해동산이 넌지시 물었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나?

 

풍천은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다.

 

“그렇습니다.”

 

강매설과 황보안, 명진, 대주는 못 미더운 눈치면서도 풍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송구도 속으로는 씩씩거리면서 귀만큼은 열어두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풍천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반 각이 지나자 답답함을 참지 못한 황보안이 물었다.

 

“어떤 계획인지 말해보시오, 대 형.”

 

풍천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무슨 계획 말입니까?”

 

“조금 전에 좋은 생각이 있다 하지 않았소?”

 

“그야 그랬죠. 그런데 그것과 계획이 무슨 상관입니까?”

 

얼굴이 살짝 상기된 황보안은 뜨거워진 가슴을 억지로 식히며 최대한 조용히 물었다.

 

“그럼 좋은 생각이 뭔지 그거라도 말해보시오.”

 

“그걸 왜 알고 싶단 겁니까? 제 개인적인 일인데.”

 

황보안은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반쯤 남은 차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금방이라도 입에서 하얀 김이 부글거리며 뿜어질 것 같았다.

 

그때 강매설이 입을 열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만 하면 우리가 어떻게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있겠어요?”

 

만나게 해줘? 한 놈 잡아올까?

 

풍천은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유혹을 참았다.

 

이들이 죽으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다. 천응단마저 근처에 있다면 자신조차 위험해질 것이고.

 

“믿으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풍천이 눈에 힘을 주고 말하는데 점소이가 요리를 가져왔다.

 

풍천은 눈을 번들거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요리에 손을 대려고 하자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만 기다리쇼.”

 

그러고는 불만 가득한 사람들의 칼날 같은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젓가락을 뻗어서 요리의 일부분을 떼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황보안이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도 자주 찌푸리다 보니 이러다 보기 좋은 인상이 신경질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

 

“왜 그러는 거요?”

 

“그들의 영역이 가까워졌으니 모든 걸 조심해야 하오. 독이라도 들어 있으면 큰일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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