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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2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5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23화

 

123화

 

 

 

 

 

 

풍천은 어떻게 해야 상대의 기를 확실하게 꺾어놓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사정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굽혔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한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 번 더 손봐줘야 오기가 찌꺼기까지 무너지는 법이다.

 

풍천은 말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특별히 신경 써서 두들겨 팼다.

 

힘없는 사람들 등쳐먹던 놈들이다. 만약 자신에게 힘이 없었다면 이놈들에게 똑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자였다면 훨씬 더 심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풍천은 흑도의 생리를 잘 알기에 두 장한을 조금도 가엽게 여기지 않았다.

 

일어서고 싶어도 일어설 수 없는 상태에서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던 두 장한은 죽을힘을 다해서 다시 엎드렸다.

 

“흑흑흑, 제발…….”

 

“용서를…… 대형!”

 

두 장한이 눈물 콧물 쥐어짜며 사정했다.

 

풍천은 그 정도면 되었다 생각하고 두 장한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흠, 이제야 대답할 준비가 조금 된 것 같군.”

 

두 장한은 황제의 칙서라도 받은 사람처럼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외쳤다.

 

“무, 물론입니다, 대형!”

 

“하명만 하소서!”

 

“남양에 하오문 지부가 있다던데…….”

 

 

 

잠시 후, 풍천은 손바닥을 털며 골목을 나왔다.

 

목적도 달성했고 상관경의의 죽음으로 울적해졌던 마음도 어느 정도 풀어진 상태였다.

 

비록 천외천이 아닌 일개 흑도 놈들에게 화를 풀었지만 그래도 혼자서 속으로 삭이고 있던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남양의 흑도무사들은 인내가 약하군. 전에 신양 놈들은 팔다리 다 부러질 때까지 버티던데.’

 

어찌나 지독하게 손을 썼는지 그 후부터 신양의 흑도 무리들은 그가 나타나면 갑자기 신법의 고수가 되어서 어디론가 번개처럼 사라졌다.

 

“흠, 일단 삼구통으로 가볼까?”

 

풍천은 홍등가의 대로를 그대로 가로질러서 두 장한이 친절하게 가르쳐 준 삼구통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기녀들이 그를 부르면 웃음 진 얼굴로 손을 흔들어서 화답해주었다.

 

‘남자 보는 눈은 있어서…….’

 

 

 

3

 

 

 

삼구통(三狗通)은 남양의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물처럼 퍼져 있는 골목은 좁고 더러웠으며 집이라고 해봐야 금방 무너질 것처럼 생긴 판잣집이 대부분이었다.

 

하오문 남양 분타인 만구점(萬求店)은 그런 삼구통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수?”

 

풍천이 만구점 앞에 서서 글자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더러운 깃발을 바라보고 있는데 안쪽에서 장한 하나가 물었다.

 

만사가 귀찮은 표정, 풍천의 평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풍천은 장한의 그런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님이 왔으면 눈을 말똥말똥 빛내면서 예의 바르게 물어봐야지 말이야. 정말 게을러 보이는 자군.’

 

그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 들었으면 핏대가 솟을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만구점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물품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어떤 것은 나무로 만든 선반 위에 있었고 어떤 것은 탁자 위에 대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쓱, 만구점 안을 살펴본 풍천은 장한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으며 말했다.

 

“주인을 만나고 싶습니다만.”

 

“무슨 일로?”

 

“그야 살 게 있어서 온 거죠.”

 

“나한테 말하쇼.”

 

“주인이쇼?”

 

“주인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건 내가 다 팔 수 있수.”

 

“그럼 뭐 상관없죠. 먼저 최상품 인피면구부터 한번 봅시다.”

 

장한은 움찔하며 풍천을 쳐다보았다.

 

“최상품이라 하셨수?”

 

“하질의 물건은 필요 없수.”

 

값을 떠나서 최상품의 인피면구는 아무에게나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칫 엉뚱한 불똥이 튈 수 있으니까.

 

장한은 재빨리 풍천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낭인무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런 거 팔지 않으니까 다른 데 가보슈.”

 

“하오문 남양 분타에 인피면구가 없다니,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말하는 거요?”

 

장한의 게으름이 가득하던 눈매가 가늘어졌다.

 

“본문에 대해서 알고 온 거요?”

 

“그것 말고도 살 게 몇 가지 더 있으니까 피곤하게 긴말하지 맙시다.”

 

“누구쇼? 누군지도 모르고 그런 물건을 팔 수는 없잖수?”

 

풍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혹시 바람 부는 곳에서 나온 잘생긴 청년에 대해 들어봤는지 모르겠군요.”

 

장한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바람 부는 곳? 헛! 그럼 이 자식이 신양 분타를 뒤집어놓은 그 미친 새끼? 식현의 모 분타주가 이를 갈고 있다는 그놈? 총타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찍어놓은, 천하에서 제일 게으르다는 해결사 놈?’

 

풍천은 장한의 표정만 보고도 장한이 자신에 대해서 들어봤다는 걸 눈치챘다.

 

“흠, 당신 선에서 처리할 수 없다면 주인을 좀 만납시다. 어차피 정보를 몇 가지 사려면 주인을 만나야 할 것 같으니까.”

 

장한은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았다.

 

소문이 정말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안 좋았다.

 

몇 푼 받지도 못하면서 골머리 썩을 일이 뭐 있을까? 이런 놈은 분타주에게 맡기는 게 속편했다.

 

“따라오쇼.”

 

 

 

장한은 오십 대 초로인에게 풍천을 안내했다.

 

초로인은 장한에게서 간단하게 몇 마디 듣고 풍천을 쳐다보았다.

 

“최상품의 인피면구를 구하고 싶으시다고?”

 

“그렇습니다.”

 

“최상품은 은자 오십 냥 이상 줘야 하는데 돈이 있는지 모르겠구먼.”

 

은자 오십 냥? 말도 안 돼!

 

“물건을 보여주지도 않고 오십 냥이라니, 설마 저를 놀리시려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초로인도 만만치 않았다.

 

“싫으면 마시게.”

 

“일단 물건부터 봅시다.”

 

풍천은 의자에 털썩 앉아서 탁자 위에 있는 차를 잔에 따랐다.

 

마치 자신의 집인 양 태연한 풍천의 행동에 초로인은 눈알을 굴렸다.

 

‘소문대로 제멋대로인 놈이군.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놈.’

 

그는 몸을 일으켜서 방 안쪽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함을 하나 꺼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탁.

 

함이 열리자 매미 날개처럼 얇은 가죽이 보였다. 사람의 살과 같은 색깔. 수염은 물론이고 심지어 점까지도 박혀 있었다.

 

“완벽한 인피면구지. 모공까지 살아 있어서 땀도 배출되고 오래 부착해도 괜찮다네.”

 

“정말 사람의 얼굴 가죽인가요?”

 

“죽은 지 반 시진 전에 떼어낸 것을 약물 처리해서 만든 최상품이네. 은자 오십 냥도 거저지.”

 

“그거야 당신 생각이고, 내가 봐서는 스무 냥이면 충분하겠는데 말이죠.”

 

“스무 냥에 이런 물건을 사겠다는 건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를 가진 놈이나 할 소리지.”

 

“이런 걸 만든 놈이 더 도둑놈이죠 뭐.”

 

초로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자신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꼭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마흔다섯 냥. 그 이하로는 절대 팔 수 없네. 그러니 돈이 없으면 중품을 사든가 그도 싫으면 그냥 가시게.”

 

“한 가지 정보만 더 주면 스물다섯 냥을 내죠. 뭐 별로 어렵지 않은 정보니까 손해보는 건 없을 거요.”

 

“글쎄, 그럴 수 없…….”

 

“거래가 잘 되면 괜찮은 정보를 하나 싸게 넘기려고 했더니 꽉 막힌 분이시군요.”

 

“괜찮은 정보?”

 

풍천이 몸을 세우고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초로인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강호가 통째로 들썩일 정보죠. 뭐 한 달 정도 지나면 전 강호가 알 게 되겠지만.”

 

한 달의 차이.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그 차이가 백 년보다도 컸다.

 

“흐음, 괜찮은 정보면 대가를 치를 생각이 있긴 한데…….”

 

“은자 백 냥만 주쇼.”

 

은자 백 냥? 이런 도둑놈이……!

 

초로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때 풍천이 말했다.

 

“신마성과 관련된 건데 말이죠.”

 

초로인은 달아오른 얼굴을 빠르게 식히고 풍천을 노려보았다.

 

“험, 어디 말씀해보시게. 정보비는 내 듣고 판단하지.”

 

“신마성이 구룡회를 칠 거요. 어쩌면 지금쯤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건 초로인도 알고 있었다. 이틀 전에 극비 전서를 통해 전해진 소식이었다. 초로인은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난 또 뭐라고. 그 정도는 본문도 알고 있네.”

 

“그럼 총지휘자가 누군지 알겠군요.”

 

“총지휘자? 그야…… 에, 남천신마의 제자나 팔대신마겠지.”

 

풍천은 입꼬리를 비틀어서 초로인을 가볍게 비웃어주고는 말을 돌렸다.

 

“혹시 신마비원이란 곳을 압니까?”

 

“신마비원?”

 

“모르나 보군요.”

 

“험, 모르긴? 나도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오래되어서 생각이 잘…….”

 

“일도천살 유광도 신마비원 사람이었죠. 얼마 전에 죽었지만.”

 

초로인은 입을 꾹 다물고 풍천을 쳐다보았다.

 

“일도천살 유광이 얼마 전에 죽었다고?”

 

“유광뿐이 아니죠. 팔대신마 중 몇 사람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죠. 어때요? 거래를 할 건지 말 건지 말해보쇼. 나도 더 이상 시간만 보내고 싶진 않으니까.”

 

풍천은 거기서 입을 다물고 차를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그가 신마성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비밀스런 정보가 세상에 많이 드러날수록 신마성이 곤란해질 것이 아닌가 말이다.

 

‘신마성 놈들, 사람 잘못 건드렸다는 걸 확실히 알게 해주마.’

 

그 사이 초로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상대의 말이 정말이라면 초지급으로 총타에 알려야 할 일이었다.

 

총타에서 구룡회에 정보를 팔면 적어도 은자 천 냥은 벌 수 있을 터. 그중 삼 할이 자신에게 배당된다면 은자 삼백 냥을 벌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정보가 거짓이라면 그 돈을 자신이 물어내야겠지만.

 

어쨌든 손익이 세 배 차이라면 모험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결론을 내린 초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좋아. 내 팔십 냥 주지.”

 

“백 냥. 거래하기 싫으면 마시고.”

 

독한 놈!

 

“뭐 그렇게 하지. 오늘 기분도 좋으니 내 인심 쓰겠네.”

 

“하, 하, 하. 말이 통하시는 분이군요. 솔직히 밖에 계신 분을 보고 잘못 찾아왔나 싶었는데 말이죠. 제가 게으른 사람을 워낙 싫어해서 말이죠.”

 

쨍그랑.

 

밖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풍천은 못 들은 사람처럼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사시는 김에 오십 냥짜리 정보 하나 더 사실 생각 없수?”

 

“오십 냥짜리?”

 

“팔면 이백 냥은 받을 수 있을 텐데.”

 

초로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면 살 수도 있지.”

 

“흠, 그럼 스물다섯 냥을 제하면 백스물다섯 냥만 주시면 되겠군요. 아, 제가 물어볼 것도 대답해주시고.”

 

어째 사기당한 기분이다.

 

마음이 찝찝해진 초로인은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빼 든 칼, 그냥 집어넣기도 어정쩡했다.

 

“먼저 자네가 팔고자 하는 정보부터 자세히 말해보게.”

 

풍천은 배부른 강아지처럼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신마비원에 대해 말했다. 팔대신마 중 몇이 죽어서 실제로는 구룡회를 치는 신마성 무사들을 혁련후가 총지휘한다는 것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영사 모인요에 대해 말해주었다.

 

“장강총맹의 간부인 귀영사 모인요가 신마성 금귀옥에서 죽었수. 사실 이건 오십 냥이 아니라 오백 냥을 받아야 하는 건데…… 특별히 생각해서 싸게 해주는 거요. 대신 인피면구나 좋은 걸로 주쇼.”

 

정말이라면 은자 이백 냥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정보다.

 

초로인은 땀을 삐질 흘리며 슬쩍 오른쪽 벽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벽 뒤쪽에 있는 사람이 방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모두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바람이 어쩌고 한 놈과 이야기하는 동안 낙양의 총타로 전서구를 날릴 것이다.

 

이제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황. 그는 마지막 거래를 하기 위해 풍천에게 물었다.

 

“말해보게. 뭘 알고 싶나?”

 

“불귀곡이 어디 있수? 삼산 사이에 있다던데.”

 

 

 

풍천은 은자 백스물다섯 냥어치의 금이 든 작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만구점을 나섰다.

 

기분이 상쾌했다. 물건과 정보를 사러 들어가서 돈까지 생겼지 않은가 말이다.

 

‘역시 좋은 정보는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법이지.’

 

이러다 금산 일대 제일의 부자가 되는 것 아닐까?

 

흐뭇한 웃음을 지은 그는 옷을 사기 위해서 남양의 대로로 향했다.

 

이제 불귀곡으로 갈 생각이다. 찢어지고 피 묻은 옷을 입고 가면 백초령에게 한 소리 들을지 몰랐다.

 

‘초령아, 내가 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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