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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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20화
120화
풍천은 자신의 몸을 양단할 것처럼 떨어지는 조양경의 검을 보고도 뻗어나간 검을 회수하지 않았다.
쉭!
“큭!”
풍천의 검이 천응단 무사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자 핏줄기가 솟구쳤다. 동시에 조양경의 검이 풍천의 허리를 향해 떨어졌다.
일순간 풍천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퍽 꺼졌다.
조양경은 몸을 바람개비처럼 휘돌리며 찰나 간에 구검을 내뻗었다.
운 좋게 그중 한 줄기가 풍천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윽!’
풍천은 신음을 참고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보복이라도 하듯 또 다른 천응단 무사를 덮쳤다.
떠더덩!
검과 검이 얽혀들며 맑은 검명이 울리고 비명과 함께 핏줄기가 분수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크억!”
연속 동료들이 당하자 천응단원들은 눈이 벌게진 채 풍천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일제히 공격했다.
쉬쉬쉭! 쒜에엑!
풍천은 땅에 바짝 붙은 채 그들의 공세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가 좌수로 땅을 짚고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릴 때였다. 전 공력을 끌어올리고 감각을 극대화시킨 채 기회만 노리던 조양경이 땅을 박차고 풍천을 공격했다. 허공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딜 도망가려고!”
줄기줄기 뻗어 나온 검기가 한순간에 풍천의 진로를 막고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풍천은 허공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고 낙성천류검 중 일초인 낙성비류를 펼쳤다.
조양경은 진호량에 비해서 하수가 아니었다. 그런 조양경의 전력을 다한 공세는 풍천에게도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풍천 역시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는 상태였다. 그의 무공은 이제 신법의 유리함이 없어도 절정고수들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일취월장한 상태인 것이다.
따다다당! 쩌정!
순식간에 일곱 번의 공방이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신형이 뒤로 튕겨졌다.
‘별거 없잖아?’
풍천은 진호량 못지않은 자와의 정면대결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자 자신감이 붙었다.
“어디 다시 한번 피해봐!”
자신감에 찬 일성을 내뱉은 풍천은 다시 천풍무영류를 펼치며 천응단 무사들을 공격했다.
기척 없이 천응단 무사에게 접근한 풍천은 조금이라도 기운을 감추기 위해서 검 대신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천라신수가 바짝 긴장해 있는 천응단원의 가슴에 벼락처럼 떨어졌다.
쾅!
가슴이 함몰된 천응단 무사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조양경과 천응단원들은 쓰러지는 동료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그 상황을 보이지 않는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기회로 삼아서 풍천을 공격했다.
수십 줄기 검기가 초지를 휩쓸었다.
쏴아아아아!
검기의 광풍이 초지를 휩쓸면서 풀들이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일순간 세상천지가 초록으로 물들었다.
와중에도 풍천은 미친 칼바람에 몸을 숨기고 좌충우돌했다.
칼바람에 옷이 잘리고 섬뜩한 느낌이 시시각각 그를 위협했다.
그렇게 오초가 지날 때였다. 갈수록 완숙해진 그의 낙성천류검에 또 한 명의 천응단원이 팔을 잘린 채 쓰러졌다.
조양경은 이를 갈며 수하들을 다그쳤다.
“단주께서 오시기 전에 놈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절대 놓치지 마!”
적이 또 있다는 말.
풍천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개자식들, 상관 노형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작정했군!’
그런데 풍천이 조양경과 네 명의 천응단 무사들을 상대하고 있는 동안 상관경의와 관추양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특히 상관경의는 다리 쪽만이 아니라 어깨와 가슴에서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내상마저 심각해져서 안색이 석고처럼 창백해진 상태였다.
상관경의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지자 풍천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는 틀렸네, 자네라도 어서 떠나라니까!”
상관경의의 외침을 들은 풍천은 눈을 부릅떴다.
‘지미, 나도 그러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놈의 정이 뭔지,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문제였다.
풍천은 공격하려던 천응단 무사를 놔두고 상관경의와 관추양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바람이 역으로 흐르자 풍천의 의도를 눈치챈 조양경이 악을 썼다.
“놈이 령주를 구하려 한다! 막아!”
천응단원들은 풍천의 뒤를 따라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빨라도 풍천보다 빠르진 못했다.
눈 깜짝할 순간에 관추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풍천은 그때까지도 사태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천응단원을 덮쳤다.
천응단 무사는 뒷덜미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자 급히 몸을 돌리며 뒤를 막았다.
순간 텅 빈 허공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떠덩! 쉭!
“크으윽!”
관추양과 싸우던 자는 어깨가 꿰뚫린 채 정신없이 물러났다.
풍천은 곧장 상관경의를 상대하는 자를 공격했다.
상관경의를 몰아붙이던 자는 지레 겁에 질려서 뒤로 물러서며 방어에 치중했다.
풍천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상관경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전음으로 소리쳤다.
[고집부리지 말고 내게 몸을 맡기쇼!]
풍천의 손이 허리를 감자 상관경의의 눈빛이 암울하게 가라앉았다.
풍천은 상관경의의 허리를 끌어당기고 숲속으로 몸을 날리며 관추양을 향해 소리쳤다.
“관 형, 그만 튀쇼!”
관추양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서 소나무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모든 것이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박할 순간에 벌어졌다.
조양경은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광분했다.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놈들을 잡아!”
풍천은 악에 바친 목소리를 들으며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관추양도 죽을힘을 다해서 풍천의 뒤를 쫓아갔다.
그들의 뒤에서는 이십여 장의 간격을 두고 조양경과 천응단원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조금 기이한 것은 조양경이 충분히 앞서갈 수 있는데도 다른 천응단원들과 나란히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숲으로 뛰어들자 풍천이 소리쳤다.
“내가 죽더라도 제일 앞에서 오는 놈은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천응단원 다섯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든 놈이 한 소리였다.
조양경조차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놈들!’
그는 이를 갈며 풍천의 등을 노려보았다.
상관경의를 업고 가면서도 자신들보다 느리지 않았다. 아니, 옆에 관추양만 없었다면 자신들을 떨쳐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놈들은 자신들이 범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서 자신은 단주에게 욕을 먹을지 몰랐다. 그래도 어쨌든 저 기분 나쁘게 생긴 놈만 죽일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2
풍천은 상관경의를 업고 달리면서 푸념을 했다.
‘벌써 두 번째군. 나하고 이 양반하고 전생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나? 아니면 형제라도 되었던 거야?’
그때 등 뒤에 업혀 있던 상관경의가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조양경의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천응단주 등가위가 온 것 같네. 나를 내려놓고 가게. 그는 자네라 해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자라네.”
“잔소리 말고 몸이나 가볍게 하쇼.”
“천외는 삼산(三山) 사이의 불귀곡(不歸谷)에 있네. 부디 백초령을 찾아서 무사히 돌아가길 바라겠네.”
풍천은 하마터면 발이 꼬일 뻔했다. 하지만 악착같이 중심을 잡고 더욱 빨리 달렸다.
“쳇, 백초령을 구하는 것보다 그 잘난 이공(二公) 공손무헌이라는 분이 다칠까 봐 더 걱정인 거죠?”
“후후후,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돈을 못 받을지도 모르는데 약속은 무슨…….”
“이공을 만나게 되거든 내가 황금 이백 냥을 주라고 했다는 말을 하게. 그러면 더 묻지 않고 내줄 거네.”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만약 그 양반이 내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요?”
“그분은 진실된 분이네. 자네도 그분을 만나보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게 될 거야.”
“그런 분이라면 왜 상관 노형을 죽게 놔두는 겁니까?”
“그분이 그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네. 그럴 만한 이유가…….”
상관경의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풍천은 흠칫해서 상관경의를 불렀다.
“상관 노형.”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손을 통해서 느껴지는 맥박이 기이할 정도로 약해지긴 했어도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거늘.
기절한 건가? 아니면 자신이 미처 모르는 부상이라도 당한 건가?
그때였다. 하늘에서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직후 상관경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천응…… 그가 직접 왔군.”
풍천은 독수리가 내려앉을 때부터 기이한 압박감을 느끼고 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그가 멈춰 섰을 때 독수리가 내려앉은 나무 아래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갈의를 입은 그는 상관경의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였는데 당당한 덩치에 부리부리한 눈이 인상적이었다.
“상관 령주,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안타깝구먼.”
그가 입을 여는 사이 좌우로 열두 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그들 역시 모두 갈색 무복을 입은 천응단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조양경도 네 명의 무사와 함께 풍천 일행의 퇴로를 막았다.
‘환장하겠군. 겨우 빠져나왔다 했더니…… 후우우우.’
풍천이 한숨을 푹푹 쉬는데 상관경의가 말했다.
“나를 내려주게.”
풍천은 상관경의를 내려주었다.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선 상관경의는 흔들리려는 몸을 겨우 안정시키고 빙그레 웃었다.
“등 단주, 그대 같은 사람이 대공에게 휘둘리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천외천의 서열 십이 위이며 천응단의 단주인 등가위는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품고 있는 꿈이 있지. 그런데 나는 대공과 꿈이 같아서 함께하기로 한 것뿐이네.”
“천하는 대공이나 등 단주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라오. 아마 내 말이 아니어도 곧 알게 될 것이오.”
“후후후, 두어 번 실패하더니 많이 의기소침해졌군. 의외야, 천하의 상관경의가 그리 힘없는 소리를 하다니.”
“의기소침이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소이다. 알고 보니 세상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크지 뭐요? 그대나 대공 따위가 감히 욕심을 낼 수 없을 만큼 말이오.”
등가위의 굵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말이 심하군. 죽음을 앞두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지?”
“오히려 너무 잘 보여서 탈이오. 왜 진즉 보지 못했는지 한스러울 정도요. 아마 당신들도 오래지 않아 내가 봤던 것을 보게 될 거요.”
상관경의의 말에 등가위는 비웃음을 지었다.
“훗, 죽을 때가 되니 헛것이 보이나 보군. 그간의 인연을 생각해서 저승길이 외롭지 않도록 저놈들도 함께 저승으로 보내주지.”
풍천은 은근히 기분이 나빠졌다. 자기를 장기판의 졸처럼 취급하다니.
“이보쇼, 등씨 양반. 말 함부로 하지 마쇼.”
“뭐, 뭐야?”
“당신이 뭔데 나를 자승으로 보내네 마네 하는 거요?”
‘등씨 양반’에 이어 ‘당신’까지.
등가위의 눈매가 역팔자로 꺾어졌다.
“새파란 애송이가 어디서 감히……!”
그때 조양경이 다급하게 말했다.
“단주님, 조심하십시오. 보통 놈이 아닙니다.”
등가위는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저딴 놈을 처리하지 못해서 자신까지 나서게 만들다니.
그는 보이지 않는 천응단원들이 상관경의에게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기에 상관경의가 심각한 중상을 입은 걸 알고, 이곳의 일이 천에 알려지기 전에 신속히 일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저놈의 목을 잘라와라!”
그의 명이 떨어지자 뒤에 서 있던 자들 중 셋이 전면으로 몸을 날렸다.
상대가 셋이니 셋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한 듯 그들은 좌우로 갈라져서 각기 한 명씩 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조양경이 대경해서 외쳤다.
“안 돼! 셋이서 그놈 하나만 상대해! 모두 저놈을 공격해!”
그러고는 수하들과 함께 몸을 날렸다.
조양경이 등가위와 함께 있던 천응단원들과 몸을 날린 시간 차이는 숨 한 번 쉴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풍천은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관추양에게 상관경의를 맡긴 그는 전력을 다해서 천풍무영류를 펼쳤다.
조양경의 느닷없는 외침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세 명의 천응단원은 풍천이 갑자기 사라지자 멈칫했다.
순간 허공이 시퍼런 검기에 쩍 갈라지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비월신검의 일초가 그들 중 하나의 목을 쓸고 지나갔다.
“컥!”
풍천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자를 향해 천라신수를 펼쳤다. 그리고 유령처럼 옆으로 유영하며 낙성천류검 중 낙성일광(落星一光)을 펼쳤다.
쾅! 서걱!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커다란 손 그림자와 벼락같은 검기가 떨어지자 천응단 무사 둘은 치욕을 따질 새도 없이 바닥을 굴렸다. 하지만 그러고도 풍천의 공세를 완전히 피해내지는 못했다.
천라신수에 한 사람은 어깨가 부서지고, 한 사람은 팔꿈치 아래가 잘린 채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조양경이 수하들과 함께 풍천이 있을 만한 곳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