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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1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9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19화

 

119화

 

 

 

 

 

 

제8장. 바람 부는 날에는 잠도 못 자게 해주마!

 

 

 

 

 

1

 

 

 

당하를 벗어난 풍천일행은 곧장 북서쪽으로 향했다.

 

부상으로 인해서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적이 쫓아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십 리쯤 달리자 두 사람의 상처에서 피가 제법 많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기서 상처를 손보고 가죠.”

 

풍천이 바라보는 곳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상관경의와 관추양은 풍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지혈을 하기 위해 혈도를 눌러놓은 터여서 다리가 먹먹했다. 내력도 들끓어서 진정시키지 않으면 내상이 깊어질지 몰랐다.

 

소나무 숲으로 백 장쯤 들어가자 초지가 펼쳐진 공터가 나왔다.

 

풍천은 그곳에서 상처를 치료하기로 하고 두 사람에게 옷을 벗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옷을 벗는 동안 품속에서 금창약이 든 옥병을 꺼내 안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금창약이 반쯤 남아 있었다.

 

옷을 벗던 상관경의와 관추양은 풍천이 금창약을 꺼내자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냥 천으로 싸매기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꼭 저 약을 발라야 하나?

 

하지만 풍천은 그들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어디 봅시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풍천은 상처를 천으로 대충 닦아낸 다음 거침없이 약을 뿌렸다.

 

“나 아니면 누가 이런 비싼 약을 공짜로 마구 씁니까? 고마운 줄 아쇼.”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신음을 내지르면 보나마나 엄살을 피운다고 한소리 들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들의 눈에는 풍천의 웃는 모습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부상자들 앞에서 웃다니.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취미라도 있나?’

 

‘강호가 넓긴 넓군. 저렇게 이상한 성격을 지닌 친구도 있다니.’

 

그때 상관경의의 허벅지 상처를 살짝 벌려본 풍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상처가 제법 깊은데요? 안쪽에다 뿌리면 상처가 더 빨리 나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할까요?”

 

상관경의의 얼굴이 썩은 땡감을 입에 문 것처럼 일그러졌다.

 

“꼭 그럴 필요는…….”

 

“그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은데…….”

 

관추양도 상관경의를 거들었다. 상관경의 다음은 분명 자신의 차례가 될 테니까.

 

풍천은 무척 아쉬운 표정으로 금창약 가루가 든 옥병의 뚜껑을 닫았다.

 

“그럼 나야 좋죠 뭐.”

 

관추양은 풍천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이 장 정도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옷자락을 찢어서 상처를 싸맸다.

 

풍천은 먼저 상관경의의 상처를 싸매주고 관추양에게 다가갔다. 관추양도 상처를 거의 다 싸맨 상태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거요?”

 

관추양은 이를 악물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글쎄…….”

 

은인의 복수를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몸으로 나종화를 찾아간다는 것은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것과 같았다.

 

죽는 거야 두려울 것 없었다. 하지만 허무하게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았다.

 

관추양의 마음을 짐작한 풍천이 다시 물었다.

 

“무창으로 돌아갈 거요?”

 

“아직 모르겠네.”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내가 한곳을 추천해줄 수 있는데.”

 

“어딘가?”

 

풍천은 힐끔 상관경의를 살펴보았다. 상관경의는 내상을 다스리느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풍천은 관추양만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거의 전음에 가깝게 말했다.

 

“상구현 금산에 가면…….”

 

장 노인이 천외를 조사한답시고 장원을 비웠을지 몰랐다. 백무천을 청부한 놈들이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해동산과 초웅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관추양은 맘 편히 부상을 치료하고, 천풍장은 괜찮은 호장무사 하나를 값싸게 쓰고. 겸사겸사 서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관추양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결정을 뒤로 미루었다.

 

“일단 몸부터 추스르고 나서 생각해봐야겠네.”

 

바로 그때 풍천이 고개를 들더니 눈을 가늘게 좁혔다.

 

“왜 그런가?”

 

“깜박했습니다. 당하에서 나올 때 객잔에 잠깐 들어가서 먹을 걸 좀 가져왔어야 하는데 말이죠.”

 

상관경의와 관추양은 이 상황에서도 먹을 것 타령하는 풍천이 어이없었다.

 

“너무 걱정 말게. 이 숲을 지나서 십 리쯤 가면 마을이 있네.”

 

상관경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풍천은 그래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으니 문제죠.”

 

“무슨 말……?”

 

상관경의는 반문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보았다.

 

묵직한 기운이 자신들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풍천은 상대를 아는 듯 검을 빼며 투덜댔다.

 

“역시 호의를 가지고 나온 것 같지는 않군요. 배고픈 상태에서 싸우면 힘이 덜 나는데, 제길.”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상관경의와 관추양도 벌떡 일어나서 도검을 뽑았다.

 

찰나였다.

 

스스스스스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부대끼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곧 공터 전면과 좌우의 소나무 숲에서 갈색 무복을 입은 아홉 명의 무사가 나타났다.

 

그들을 본 상관경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천응단인가?”

 

그때였다. 후루룩 허공에서 한 사람이 풍천 일행 앞에 내려섰다.

 

삼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뒷짐을 진 채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령주.”

 

상관경의는 그를 바로 알아보았다.

 

“조양경, 무슨 일로 내 앞을 막은 거냐? 설마 천에 반기를 들 생각은 아니겠지?”

 

“제가 어찌 감히 천에 반기를 들겠습니까? 저는 그저 단주의 명에 충실할 뿐이지요.”

 

“등 단주가 나를 제거하라 하던가? 그에게는 그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을 텐데?”

 

“그것이 어찌 그분의 뜻이겠습니까?”

 

상관경의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그어졌다.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악다문 상관경의의 잇새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럼 혹시 대공께서……?”

 

“제가 령주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다 해드린 것 같습니다. 그럼…….”

 

조양경은 상관경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상관경의가 다급히 물었다.

 

“천주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을 텐데?”

 

조양경의 입가에 가느다란 비웃음이 걸렸다.

 

“천주께서는 대공께 잠영과 묵천을 맡기셨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령주께서 더 잘 아실 터, 저승에 가시더라도 저를 너무 원망하지 마시길.”

 

“잠깐! 저 사람들은 나와 상관없다. 보내주도록 해라, 양경.”

 

“령주의 검을 쓰는 자가 령주와 상관없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지요.”

 

잠자코 있던 풍천이 코웃음을 쳤다.

 

“훗! 정말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이제 보니 천외는 완전히 제멋대로인 곳인가 보군. 아랫사람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대공인가 뭔가 하는 작자의 말만 듣고 상관을 죽이려 하다니 말이야.”

 

홱 고개를 돌린 조양경의 두 눈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네놈이 감히……!”

 

“왜? 찔려? 진호량이 왜 죽어가면서 걱정했는지 조금은 알겠어. 저런 족제비 같은 인간말종들이 널려 있으니 어디 죽어도 편히 죽기나 하겠어?”

 

새파랗게 젊은 놈이 턱을 쳐들고 째려보면서 비웃는다.

 

그걸 보고도 제정신을 간직할 수 있을 만큼 수양을 쌓았다면 조양경도 진즉 절대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정도 수양이 되지 않았고 풍천의 의도를 간파할 정도로 눈치가 빠르지도 못했다.

 

“이 건방진 놈이……! 놈을 죽여라!”

 

조양경의 명이 떨어지자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움직였다.

 

미리 지시가 내려진 듯 상관경의와 관추양을 향해 네 사람이 움직이고 셋은 풍천을 에워쌌다. 그리고 조양경은 두 사람과 함께 도주로를 막았다.

 

젊은 놈만 죽일 수 있다면 상관경의의 목숨은 자기 손안에 든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놈을 놓친다면 상관경의를 죽인다 해도 뒤가 찜찜해질 것이다.

 

조양경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에서 풍천을 죽일 생각이었다.

 

‘상관경의의 제자를 살려 보낼 순 없지.’

 

천응단 무사 셋이 자신을 감싸자 풍천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흥! 그래도 눈깔은 있어서 이 공자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셋이 합공하는 걸 보니 말이야.”

 

풍천의 비아냥거림에 갈색 무복의 무사들 표정이 이지러졌다. 영 못마땅한 표정들이었다.

 

저런 놈을 셋이 합공하다니, 부단주가 잘못 안 거 아닐까?

 

그들이 멈칫한 순간 풍천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헛! 조심해라! 놈이 사술을 쓴다!”

 

감히 고금제일신법 천풍무영류를 사술이라니!

 

풍천은 괘씸죄로 그 말을 한 자를 제일 먼저 공격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오자 천응단 십이호는 기겁하며 급히 몸을 틀었다.

 

“헛!”

 

찰나, 풍천의 검이 그의 어깨를 가르며 지나갔다.

 

그는 부상을 입긴 했지만 당장 움직임이 불편할 정도는 아닌 상태였다. 풍천은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천응단 무사들을 보고 바짝 긴장되었다.

 

‘제길, 구화장의 무사들 하고는 확실히 다르군. 단천무령보다는 못하지만 만만치 않겠어.’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열 명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둘을 합친 것만큼 강하고.

 

자신이 과연 몇이나 상대할 수 있을까? 셋? 넷?

 

설령 자신이 다섯을 상대한다 해도 다섯이 남는다. 반면 상관경의와 관추양은 연이어서 부상을 입은 형편이 아닌가.

 

‘숫자를 줄이는 게 급선무군.’

 

그게 쉽지 않아서 문제지, 염병할!

 

아무런 기척도 없이 상대에게 접근한 풍천은 낙성천류검과 비월신검을 적절히 펼치며 상대를 압박했다.

 

또다시 불쑥 튀어나온 검에 한 사람의 가슴이 길게 갈라지며 피가 배어 나왔다.

 

조양경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침착하게 상대해라! 놈이 느껴진다 싶은 곳을 일제히 공격해!”

 

그는 순식간에 두 사람이 부상을 당하자 상관경의와 관추양을 공격하던 자들 중 둘을 풍천 쪽으로 돌렸다.

 

“칠호와 팔호도 저놈을 공격해라!”

 

천응단 무사들은 이상한 느낌만 들면 검기가 일렁이는 검을 휘둘러서 풍천의 공세를 막았다.

 

그리고 풍천이 공격하면서 발출하는 기운이 느껴지면 거의 동시에 달려들어서 허공을 난자했다.

 

구화십이검수에 비해서 한 박자 빠른 그들의 반격은 풍천의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그들의 검에서는 시퍼런 검기가 넘실거려서 스치기만 해도 상당한 부상을 입을 것이 뻔했다.

 

한두 놈을 죽이겠다고 부상을 당할 수는 없는 일, 풍천은 모험을 하지 않고 신중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천응단 무사들은 풍천보다 몇 배 더 긴장했다.

 

벌써 두 명이 작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 확실히 부단주의 판단은 잘못된 면이 있었다.

 

이런 놈을 셋이 상대하면 충분하다고 하다니!

 

다섯 명의 합공을 받은 풍천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그들 사이를 누볐다.

 

번쩍! 한 줄기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피가 튀었다.

 

순간, 천응단 무사 넷이 풍천을 향해 공격했다.

 

두 명이 더해진 천응단의 공격은 조금 전과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풍천을 정확히 잡아내진 못해도 거의 근접한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바람에 풍천은 두 번째 공격을 하지 못하고 상대의 공세를 피했다.

 

한편 몸이 온전치 못한 상관경의와 관추양은 각기 한 사람씩 상대하면서도 뒤로 밀렸다.

 

그나마도 상관경의는 경험으로 관추양은 독기로 버티면서 상대의 공세를 막아냈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또 다른 자들이 올지 모르네! 자네라도 빠져나가게!”

 

상관경의가 풍천을 향해서 악을 쓰듯이 외쳤다.

 

솔직히 풍천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상관경의는 그저 백초령을 구하기 위해서 이용하려는 자였을 뿐이고, 관추양은 길 가다 만나서 안면을 텄을 뿐이었다. 자신이 왜 이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단 말인가?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이대로 떠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게다가 상관경의가 없으면 백초령을 구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질 것이 아닌가 말이다.

 

고금제일 해결사의 자존심이 있지, 어디 누가 죽는지 보자!

 

이를 악문 풍천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공세를 강화했다.

 

번쩍!

 

허공에서 검광이 번뜩이자 천응단 무사 하나가 급히 뒤로 몸을 눕혔다.

 

풍천은 좌수로는 천라신수를 펼치면서 우수의 검으로 또 다른 자를 노렸다.

 

쾅!

 

몸을 반쯤 눕혔던 자의 옆구리에 천라신수의 수영이 틀어박혔다.

 

그자가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는 사이, 풍천의 검은 수면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가르듯이 또 사람의 목을 향해 뻗어갔다.

 

쉬이익!

 

그때 기회만 노리고 있던 조양경이 눈을 번뜩이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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