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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06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6화

 

106화

 

 

 

 

 

 

어이가 없었다. 이 마당에 은자 타령이라니.

 

그가 어찌 알까?

 

풍천이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한다는 신마성 금귀옥에 다시 돌아온 이유가 오직 돈주머니를 찾기 위해서라는 걸.

 

풍천의 눈빛을 본 제종완은 정말 청부금을 주지 않으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 웃음이 나왔다. 

 

죽기 전에 웃을 수 있다니.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 재미있는 친구군. 좋아, 그럼 진학에게 그 돈을 달라고 하게. 항주의 술빚을 받으라고 했다면 줄 거야. 그리고 백운암의 주인을 만나서 내가 맡긴 물건을 달라고 하게. 그것은 내가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네.”

 

풍천은 청부를 승낙하기로 했다.

 

일거리가 많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자식을 최소한 다섯은 낳을 생각인데 먹여 살리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더구나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일거리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많이 부지런해졌단 말이야.’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시간 날 때 가보도록 하죠.”

 

그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서 옆방으로 갔다.

 

제종완은 뇌옥을 나가는 풍천의 등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잘하면 사문에 죄를 짓지는 않을 것 같군.’

 

풍천은 옆방의 철문을 열어보았다.

 

그곳의 죄수는 진호량처럼 돌 침상에 눕혀진 채 쇠사슬로 묶여져 있었는데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풍천은 그의 쇠사슬을 풀어주고 다른 방으로 갔다. 귀영사가 있는 방이었다.

 

풍천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수갑을 풀어주자 귀영사가 눈을 번들거리며 웃었다.

 

“우흐흐흐, 금귀옥이 이 지경이 되다니. 혁련궁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게 억울하군. 이봐, 나는 장강총맹의 귀영사 모인요라는 사람이다. 나를 살려서 동정호까지 데려다주면 삼대를 부귀하게 살 수 있는 재물을 주마.”

 

그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얼마나 고문을 했는지 두 다리가 너덜너덜했고 복부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풍천은 시체를 들고 동정호의 수적 소굴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귀영사의 눈빛과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삼대를 부귀하게 살 재물을 주기는커녕 강아지에게 다 뜯어 먹은 뼈다귀 던져주듯 은자 몇 냥 던져주고 말 것 같았다.

 

“알아서 혼자 가쇼.”

 

“이, 이봐!”

 

“장강총맹이 조용한 걸로 봐서 이미 버림받은 사람 같은데 재물은 무슨…….”

 

풍천은 툭 쏘아붙이고 몸을 돌렸다.

 

“내 재산만 해도 황금 천 냥은 되네. 그 반을 줄 테니 제발 나를 데려가 주게.”

 

풍천은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귀영사의 다급하게 사정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니, 다 주겠네. 전부!”

 

풍천은 멈칫하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잔뜩 기대감에 차 있는 귀영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한숨을 푹 쉰 후 사혈을 짚어버렸다.

 

“꺼억!”

 

“목소리 큰 게 죄라 생각하쇼. 밖에서 들으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대신 당신이 신마성에서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는 건 장강총맹에 자세히 알려주겠소.”

 

그럼 장강총맹은 신마성을 원수처럼 대하겠지?

 

‘내가 생각해도 멋진 생각이야.’

 

자신의 결정에 만족한 풍천은 옆 옥실로 갔다. 이제 남은 옥실은 앞쪽의 세 곳뿐이었다.

 

앞쪽 옥실의 세 사람은 쇠사슬이나 수갑으로 묶여 있지 않았다. 풍천이 문을 열자 안에 앉아 있던 노인이 풍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바탕 난리가 난 후 들어온 자가 설마 신마성의 적일 줄은 상상도 못 한 표정이었다.

 

풍천은 노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묶여 있지도 않고 크게 다친 곳도 없는 것 같은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가기 싫으쇼?”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의 반을 덮고,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신마성 사람이 아닌가?”

 

“제가 그렇게 나쁜 놈처럼 보여요?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나가기 싫으면 그냥 여기 계십쇼.”

 

노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노부 역시 나가고 싶지만 무공을 폐지당한 몸으로는 뇌옥조차 벗어날 수 없을 거네.”

 

“그럼 알아서 하쇼. 하지만 나가겠다고 하면 내가 조금 도와줄 수도 있는데…….”

 

“도와준다고? 어떻게 말인가?”

 

“혈도를 짚였습니까? 아니면 근맥이 잘리기라도 했나요?”

 

“혈도를 짚였네. 아주 심하게 당한 데다가 오래되어서 쉽게 회복되지 않을 거네.”

 

“어디 봅시다. 어디 어디 짚였습니까?”

 

노인은 세 군데의 혈도를 불러주었다.

 

풍천은 노인이 불러준 혈도를 점검해보았다. 혈도가 짚인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러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조금 아파도 참으쇼.”

 

풍천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고는 공력을 주입해서 굳은 혈도 부분을 주물렀다.

 

노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러다 혈도가 풀리기도 전에 몸이 터지는 게 아닐지 걱정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동안 당한 고초를 생각하면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풍천은 세 곳의 혈도를 모두 주무른 후 노인에게 말했다.

 

“당장 진기를 쓸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어느 정도는 진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옆방에서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혈도를 찍힌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소. 내 혈도도 풀어주시구려. 죽더라도 바깥 공기를 마시며 죽고 싶소.”

 

풍천은 노인이 운기를 하기 위해서 눈을 감는 걸 보고는 옆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십 대의 중년인이 갇혀 있었다. 풍천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말했다.

 

“나는 무창 대화장의 동방산이라 하오. 구해준다면 은혜를 잊지 않겠소.”

 

무창의 대화장은, 무창은 물론이고 호북에서 가장 큰 거상이었다.

 

‘동방이란 성을 쓰는 걸로 봐서 그곳의 가족인 것 같은데…….’

 

그런데 신마성이 왜 강호인도 아닌 대화장의 사람을 금귀옥에 가두었을까?

 

‘돈이 필요해서 인질로 잡아왔나?’

 

풍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동방산의 혈도를 살펴보았다.

 

동방산의 말대로 노인처럼 굳지는 않은 상태였다. 풍천은 그의 혈도 두 군데를 풀어준 후 마지막 옥실로 갔다.

 

그곳에는 머리를 산발한 장한이 팔베개를 한 채 누워 있었다.

 

얼굴이 진짜 말처럼 길쭉했는데 너무나 태연해서 그가 죄수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괴상한 사람이군.’

 

풍천이 문을 열어주자 누워 있던 자가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마라.”

 

“나갈 생각이 없단 말이오?”

 

“이곳은 신마성의 중심부에 있는 금귀옥이다. 설마 우리가 정말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뭐 노력한다면 못 할 것도 없죠.”

 

“훗, 지금쯤 비상이 걸려서 신마성 내의 무사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우리를 내보내고 혼란해진 틈을 타서 빠져나갈 생각이냐?”

 

“물론 그럴 생각도 조금은 있죠.”

 

이번에는 장한이 괴이하다는 표정으로 풍천을 쳐다보았다. 풍천이 순순히 수긍할 줄은 생각을 못 한 듯했다.

 

“그럼 다른 생각은 어떤 것이지?”

 

“저들은 부상을 당한 젊은 사람만 찾고 있으니 재수가 좋으면 당신들 중 한두 사람은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요. 어차피 이곳에 갇혀서 죽느니 그 정도 확률이면 모험을 해볼 만하지 않겠수?”

 

“전부 다 비참하게 죽을 확률이 열 배는 더 높을 거다.”

 

풍천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생긴 것은 제법 남자답게 생겼는데 겁이 되게 많군.”

 

장한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하지만 풍천의 기를 꺾기에는 어림 턱도 없었다.

 

“그렇게 겁이 나면 여기 남아서 저놈들 비위나 맞추며 계속 사쇼.”

 

풍천은 한마디 쏘아붙이고 몸을 돌렸다.

 

그때 장한이 몸을 일으키더니 잇새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하나만 묻지. 설령 뇌옥 밖으로 나간다 해도 신마성의 무사들이 쫙 깔려 있을 거다. 그런데도 정말 우리를 탈출시킬 수 있다고 보느냐?”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수?”

 

장한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는 죄수들의 현재 몸 상태로는 살아서 신마성을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몸이 정상이라 해도 확률이 반도 안 되거늘, 기껏해야 삼류 무사 정도의 몸으로 신마성을 빠져나간다? 그야말로 개구리가 한겨울에 하품하다가 얼어 뒈질 소리였다.

 

하기에 그는 비웃음을 가득 띤 채 장난처럼 말했다.

 

“내가 만약 살아서 나간다면…… 네놈의 종이 되지.”

 

진짜로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종이 되어도 손해는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풍천은 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몸이 엉망진창인 종은 더더욱 싫었다.

 

“나는 말이죠, 쓸데없이 군입 늘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힘들게 살려줬으면 알아서 먹고 살아야지 내가 왜 당신을 먹여 살립니까?”

 

“…….”

 

장한은 목이 턱 막혀서 일순간 말을 못 했다.

 

아무래도 몸이 엉망이다 보니 자신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풍천을 노려보며 몇 마디 씹어뱉었다.

 

“이 허무정을 쓸데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군.”

 

“허무정?”

 

고개를 갸웃거리던 풍천이 눈을 크게 떴다.

 

“전광마검(電光魔劍)?”

 

“훗, 강호의 친구들은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풍천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흠, 전광마검 정도면 밥값은 할 것 같은데…….”

 

허무정의 얼음장처럼 차갑던 얼굴이 벌게졌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긴 그러니까 저 죽을 줄 모르고 금귀옥에 들어와서 죄수들을 풀어주며 어이없는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일지도…….

 

하지만 풍천은 허무정이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치 않고 씩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당신 몸부터 살펴보죠.”

 

허무정은 자신이 한 말을 취소하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이런 이상한 놈을 따라서 나갔다가는 지금보다 더욱 처참하게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취소하기도 전에 풍천이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남자는 한번 입 밖으로 뱉은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법이죠. 그러니 걱정 마쇼. 내 최대한 노력해볼 테니까.”

 

허무정은 목구멍까지 솟구쳤던 말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 자신이 한 말을 취소한다고 하면 자신을 계집으로 취급하며 비웃고도 남을 놈이었다.

 

죽으면 죽었지 그런 꼴을 당할 수는 없었다.

 

“조, 좋다. 나도 살아난다면 너의 종이 되어주지.”

 

풍천이 힐끔 허무정을 흘겨보았다.

 

“거참, 장 노인하고 똑같이 말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네. 잘 들으쇼. 되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받아주는 거요. 그걸 잊지 마쇼.”

 

허무정의 말처럼 긴 얼굴이 묘하게 뒤틀렸다.

 

‘빌어먹을!’

 

풍천은 그 모습을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로 살아서 찾아오면 노마를 모는 마부를 시켜야지. 둘이 비슷하게 생겼으니 친하게 지낼 거야.’

 

 

 

풍천은 세 사람의 몸을 대충 손보고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주었다.

 

“일단 당신들은 여기 있는 세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으쇼. 그리고 내가 지하 일층의 간수들을 다 제거하면 위로 올라와서 지하 일층의 죄수들을 풀어주시오.”

 

그것만으로도 세 사람은 풍천의 계획을 눈치챘다.

 

“그들이 쏟아져 나가면 놈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럼 오히려 빠져나가기가 더 힘들어질 텐데?”

 

허무정이 토를 달았다.

 

그러나 풍천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걱정 마쇼.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자, 빨리 옷을 갈아입으쇼. 머리와 수염도 좀 단정히 손질하고. 아, 저기 저 간수는 죽이지 마쇼. 내가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하하, 저는 비열한 놈들처럼 약속을 어기는 일을 무척 싫어하거든요.”

 

‘제기랄, 왜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보는 거냐?’

 

허무정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안자도의 옷을 벗겼다.

 

이제는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었다. 나가다가 죽든지 아니면 비열한 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저 이상한 놈의 종이 되든지.

 

 

 

지하 일층의 뇌옥에 있는 간수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

 

금귀옥으로 내려가는 곳을 두 사람이 지키고, 세 사람은 지상에서 내려오는 곳 앞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고, 두 사람은 뇌옥을 순찰하듯이 돌고 있었다.

 

풍천은 금귀옥으로 내려가는 곳을 지키는 두 사람의 심맥을 끊은 후 아래쪽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곧장 입구 쪽에서 졸고 있는 자들에게 날아가서 그들을 영원히 잠들게 만들었다.

 

남은 사람은 순찰을 돌고 있는 두 사람 뿐. 풍천은 돌아 나오는 그들을 향해 다가가며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쇼?”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웃으며 인사하자 멈칫했다. 그리고 곧 그것이 자신들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본 웃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풍천은 천라신수로 두 사람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금귀옥 쪽으로 내려가는 곳을 쳐다보았다.

 

“올라오쇼.”

 

세 사람이 위로 올라왔다. 그들 중 두 사람은 밑으로 던져진 자들이 지니고 있던 검을 들고 있었다.

 

풍천은 영원히 잠든 자들 옆의 벽에 걸려 있는 열쇠를 빼내 세 사람에게 던져주었다.

 

세 사람은 즉시 뇌옥의 문을 열었다.

 

죄수는 모두 백여 명. 그들 중에선 마도의 사람도 있었고 정도의 무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풍천과 세 사람은 차별을 하지 않고 모두 풀어주었다.

 

“이제부터 자유요. 모두 밖으로 나가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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