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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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3화
103화
잠마원에서 순식간에 오 리나 멀어진 풍천은 나무에 걸터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크크크, 사조님의 일로 인해서 황금 열 냥을 벌었군. 위험을 감수한 대가치고는 나쁘지 않은데?’
어디 그뿐인가? 신마비원과 잠마원에 대한 것도 알아냈으니 정보상인들에게 팔면 적잖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뱃속은 비었어도 마음이 풍족해진 풍천은 미소를 띤 채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을 보니 갑자기 형이 보고 싶어졌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달에 마지막으로 봤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진 풍천은 입술을 깨물었다.
‘형의 죽음에 대해서 조환이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백무천과 직접 이야기를 해봐야지.’
내심 마음을 결정한 그는 나무에 등을 기댔다.
이제 뇌옥에 들어갈 일만 남았다.
물론 혼자 들어갈 생각은 아니다. 소지환의 말대로라면, 금귀옥은 그가 아무리 유령 같은 신법을 지녔다 해도 들어가기 쉬운 곳이 아니니까.
‘날이 새기 전에 죽인다고 했지만 인시는 넘어야 움직일 거야. 그래야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 그럼 아직 한 시진은 더 있어야 하겠군.’
제2장. 금귀옥(禁鬼獄)
1
소지환이 장로원을 나선 것은 인시가 지나가기 직전이었다.
그는 양조문과 만난 후 혼자서 뇌옥으로 갔다. 그가 뇌옥을 찾은 공식적인 이유는 지하 일층에 갇혀 있는 죄인을 만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 죄인은 삼 개월 전 소지환이 잡아들인 오광이란 자로, 구강에서 신마성 무사들을 살해한 죄로 잡혀 들어왔다.
간단하게 신분을 확인한 뇌옥의 수문위사는 소지환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소지환은 지하 일층으로 내려간 뒤 오광을 만났다. 그는 일 각 동안 오광에게 죄를 추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하 이층으로 내려가 철문 앞에 섰다.
“장로원의 소지환이네.”
자신의 이름을 말한 그는 철문에 난 구멍으로 장로의 신분을 증명하는 은패를 내밀었다.
곧 눈높이에 있는 작은 창이 열리고 회색빛 눈동자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소 장로님?”
“죄인을 만나러 왔지.”
“어떤 죄인을……?”
금귀옥에는 모두 일곱 명의 죄인이 투옥되어 있었다.
소지환은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을 댔다.
“귀영사(鬼影邪)를 만나려고 하네.”
“무슨 일로 그를 만나려고 하시는 겁니까?”
“일층의 오광을 알 거네. 그가 아무래도 귀영사와 관련된 것 같아서 자세한 것을 알아보려고 그러네.”
귀영사 모인요는 장강 최대의 수적 집단인 장강총맹의 거물급 간부 중 하나였다.
한 달 전 그를 몰래 사로잡았는데 신마성에선 그를 금귀옥에 투옥하고 채찍과 당근을 교대로 써가며 회유하던 중이었다.
철컹, 철컹, 철컹.
어린아이 손목 두께의 걸쇠 세 개가 연속으로 풀리고 반 치 두께의 철문이 묵직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그그긍.
문이 완전히 열리자 철문 좌측의 벽에 있는 유등불이 잘게 흔들리며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소지환은 금귀옥 안에서 밀려 나오는 비릿한 냄새에 코를 찡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간수 셋이 들어서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지환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 중 하나가 다시 철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다.
소지환은 세 사람 중 조금 전에 봤던 회색 눈의 사내에게 시선을 주고 물었다.
“귀영사는 어디에 있는가?”
금귀옥의 책임자인 지옥귀(地獄鬼) 안자도가 회색 눈으로 소지환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왼쪽 끝방에 있습니다.”
“그래?”
반문을 던진 소지환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자도가 그를 따라 움직였고, 남은 두 사람은 철문 옆에 서서 따라오지 않았다.
금귀옥은 넓이가 백 평 정도 되었다. 사방 벽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었는데 암석을 파낸 석실 열 개가 중앙 통로 양편에 늘어서 있었다.
두 사람이 통로를 따라 걸어가자 유등불이 춤을 추었다. 그러잖아도 침침하던 통로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두 사람의 그림자로 인해 더욱더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바람 때문에 유등불이 춤추는 것이 아님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어지럽게 흔들리는 그림자 속에서 한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역시.
“바깥바람이 센가 보군요.”
눈살을 찌푸린 안자도가 음침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금귀옥에는 바깥과 통하는 직경 한 자가량의 환기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바람이 제법 들어오고 있었다.
“우기가 다가오지 않는가?”
담담히 대답한 소지환은 왼쪽 끝방에 거의 다 도착해서 오른쪽 석실을 쳐다보았다.
입구를 막은 문이 반쯤은 철창으로 되어 있어서 안의 광경이 그대로 보였다.
그곳은 고문실로 다른 옥실보다 훨씬 넓었는데 중앙의 돌 침상에는 진호량이 묶여 있었다.
“저자가 어제 호송되어 왔다는 잔가?”
“그렇습니다, 장로.”
소지환은 별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귀영사가 있는 석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반 각 후.
귀영사의 석실에서 나온 소지환은 금귀옥을 그대로 나갈 것처럼 걸음을 옮기다가 멈칫했다. 입구 쪽에 서 있던 안자도가 회색빛 눈으로 소지환을 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흠, 저자를 한번 봐도 되겠나? 귀영사가 이상한 말을 했는데 저자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으니 충격을 주어선 안 됩니다. 잠시 후면 지 장로와 악 대장로께서 심문을 하기로 되어 있는 터라…….”
“걱정 말게. 새벽부터 피 볼 생각은 없으니까.”
안자도는 별 의심 없이 고문실 입구의 자물쇠를 풀어주었다.
소지환은 긴장을 최대한 감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돌 침상에 쇠사슬로 묶여 있는 진호량에게 다가갔다.
진호량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잡혔을 당시 얼마나 심한 고문을 당했는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소지환은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고 진호량을 쳐다보았다.
독부용 지민민의 인성을 말살시키는 독과 삼령신마 악초당의 혼을 제압하는 사술이 결합하면 제아무리 정신력 강한 진호량이라 해도 입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제정신이 아닐 테니까.
‘미안하네. 천의 안위를 위함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게.’
소지환은 진호량을 살펴보는 척하면서 우수에 진기를 모았다.
바로 그 순간 한 줄기 전음이 소지환의 고막을 송곳처럼 쑤셨다.
[잠깐만 기다리쇼.]
‘헉!’
소지환은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충격을 받고 몸이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그나마 그 목소리를 전에 들어보지 못했다면 비틀거리며 물러섰을지 몰랐다.
‘어, 어, 어떻게…….’
[잠깐만 등잔불을 가로막고 밖에 있는 자의 시선을 돌려주쇼. 진호량에게 할 말이 있으니까.]
소지환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돌렸다.
입구로 다가간 그는 유등불 앞에 서서 안자도에게 말을 걸었다.
“옥장이 보기에 저자가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안자도는 의아했지만 장로가 묻는데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대로 놔두면 하루 정도 견딜 겁니다.”
“내가 보기에는 치료를 한다 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영약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지겠지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런데 저 몸으로 고문을 해도 견딜 수 있을까 모르겠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풍천은 진호량의 혈도 몇 군데를 격공으로 점했다.
진호량의 몸이 잘게 떨렸지만 소지환과 안자도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그 사이 풍천은 진호량에게 전음으로 말을 걸었다.
[잠풍이오. 목소리가 들리면 눈을 깜박이쇼.]
진호량의 눈꺼풀이 잘게 떨리더니 미미한 깜박임을 보였다.
[상관 령주는 잘 있수. 부상도 치료 중이고.]
진호량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풍천은 그것이 웃음이라는 걸 알고 입맛이 썼다.
지금 진호량의 상태로는 하루 이상을 견디기 힘들었다. 화타나 편작과 같은 신의가 영약을 양손에 든 채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면 모르지만.
결국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마음 편히 죽을 수 있게 돕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웃는 걸 보니 진호량이 천외 사람이라는 것과 상관없이 마음이 시렸다.
[소 장로란 사람이 당신에게 손을 쓸 거요. 그도 천외에서 나온 사람인데 고문을 당하기 전에 고통이라도 덜어주려고 그러는 것 같수.]
다시 한번 진호량의 입술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 역시 그것을 원한다는 듯.
마음이 착잡해진 풍천은 미적거리며 몇 마디 더 해주었다.
[저기, 내 이런 말은 잘 안하는데 그날 저녁에 정말 멋있었수. 알고 보니 당신도 나만큼이나 괜찮은 사람 같습디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진호량의 갈라진 가슴에서 피가 뿜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심장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진호량의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조금 크게 벌리더니 느릿느릿 달싹였다.
풍천은 그의 입술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진호량이 하고자 하는 말이 한 자, 한 자 화인(火印)처럼 새겨지고 있었다.
—진, 청, 군. 내, 아, 들. 사, 랑, 했, 다, 고, 전, 해…… 령, 주, 부, 탁…… 그, 들, 이, 령, 주, 를, 가, 만, 두, 지, 않, 을, 것…….—
풍천은 그가 더 많은 부탁을 하기 전에 급히 말을 끊었다.
[알았수. 놈들이 오기 전에 나가봐야 하니까 짧은 삶을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편히 가쇼.]
진호량은 더 많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풍천이 서두르자 더 많은 말은 못 하고 급히 입술을 달싹여서 중요한 사실 하나만 알려주었다.
—초, 옥. 중, 앙, 파…….—
‘응?’
진호량의 말이 이상하게 생각된 풍천은 다시 진호량의 입을 주시했다.
그때 입구에 있던 안자도가 소지환에게 말했다.
“소 장로, 더 볼일 없으시면 그만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 장로께서 내려오시나 봅니다.”
이런!
흠칫한 풍천은 급히 소지환 쪽을 바라보았다.
소지환도 당황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허허허, 그런가? 그럼 내 한 가지만 물어보고 가야겠군.”
그는 안자도가 제지하기 전에 돌아서서 진호량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세 걸음이나 옮겼을까, 철문 쪽에서 수문위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패를 주십시오.”
“소 장로님.”
안자도가 다시 소지환을 불렀다. 소지환은 물러서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허허허,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 설마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군. 정 입을 안 열면 고문하는 와중에 물어봐야겠어.”
지민민, 악초당과 같은 장로의 신분. 소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기에 안자도는 더 이상 재촉하지 않고 철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풍천은 소지환과 상황이 달랐다.
‘이 양반이 무슨 소리하는 거야? 그럼 나는?’
그의 환신술은 아직 완벽치 않았다. 소지환의 그림자와 움직임을 이용하지 못하면 장로급 고수의 눈을 피해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빨리 손을 쓰고 나가쇼. 그래야 저도 나가죠.]
소지환도 진호량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안자도가 철문으로 간 사이 진호량이 누워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우수를 백회혈에 댔다.
‘잘 가게, 진호량.’
소지환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백회혈을 파고들자 진호량의 몸이 잘게 떨렸다.
바로 죽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뇌가 굳고 일 각가량이 지나면 숨이 멎을 것이다.
소지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뗐다.
그 직후 석실 입구에 네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 중 염소수염처럼 가늘고 기다란 수염을 기른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호오, 소 아우가 이른 새벽에 어쩐 일인가?”
소지환이 몸을 돌리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귀영사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고문을 하려는 걸 보니 이놈이 중요한 놈은 중요한 놈인가 봅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