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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97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97화

 

97화

 

 

 

 

 

 

운조평은 의아한 표정으로 사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혁련궁을 응시했다.

 

혁련궁은 손을 들어서 운조평의 입을 막고, 한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사우를 바라보았다.

 

“강호에 그런 놈들을 움직일 만한 세력이 있으면 말해보거라.”

 

사우는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주력도 아니고 일개 조직일 뿐이다. 그런 자들이 신마비원의 고수보다 더 강한 실력을 지녔다.

 

더구나 그들의 수장은 팔대신마 중 둘이 합공하고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삼왕, 오제, 칠절, 구마존에 비해 아래가 아니라는 말.

 

그 정도의 고수를 품고 있는 세력은 강호를 통틀어도 열 곳을 넘지 않는다.

 

오패천 중 나머지 네 곳과 구룡회, 신주오세(新州五勢) 정도?

 

그러나 오패천 중 대혈교(大血敎)나 서천무련(西天武聯), 북천맹(北天盟)은 강서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 있다. 그들이 강서까지 사람을 보내서 소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은 천의맹(天義盟)뿐. 맹을 이루는 기둥 중 하나인 남궁세가가 유령총에서 큰 피해를 봤지 않은가.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위태곤을 죽이기 위해서 비밀에 쌓인 고수를 파견했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남은 것은 구룡회와 신주오가 정도.

 

그런데 신주오세에 그럴 힘이 있을까?

 

단언하자면 없다. 물론 전력을 기울인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지만.

 

구룡회의 각 세력 역시 신주오세와 다르지 않다. 이번에 남창으로 들어온 신검문의 사람들만 봐도 그들에 비하면 어림없는 전력이었다. 다른 곳 역시 신검문과 비슷한 정도의 무력이고.

 

게다가 그들은 유령총에서 정체불명의 고수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었지 않은가.

 

결론을 내린 사우는 고개를 저었다.

 

“현재로선 없습니다.”

 

혁련궁은 사우의 대답을 듣고 싸늘한 냉소를 지었다.

 

“맞아, 그런 세력은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본좌는 이번 일을 빌미로 삼아서 한 곳에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사우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한 줄기 번개가 뇌리를 친 것이다.

 

“혹시 구룡회를……?”

 

“좋은 기회가 아니더냐? 유령총에서 본성의 무사들을 공격한 것과, 남창까지 와서 본좌의 둘째 제자를 죽이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할 것 같다만.”

 

사우의 눈빛이 사이하게 번뜩였다.

 

“등왕각에서 신검문의 무사들이 둘째 공자를 공격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 저들은 결코 변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혁련궁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 사우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성주님께서 바라시는 건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 같습니다만…….”

 

“후후후, 우리가 그들을 치면 암중에 숨어 있는 자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우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미를 노리는 버마제비를 참새가 보게 되면 그냥 둘 리 없겠지요.”

 

혁련궁은 거대한 용상에 몸을 묻고 냉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는 버마제비가 아니라 사냥꾼이 되는 거지.”

 

그 순간, 영문을 모른 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운조평의 뇌리에 상관경의의 말이 떠올랐다.

 

 

 

“곧 알게 될지도 모르겠소. 오늘 그대들을 만남으로써 하늘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혁련궁이 그에게 물었다.

 

“조평,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구룡회를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남창에 들어왔던 자들의 배후를 끌어내기 위한 공격입니까?”

 

“클클클, 아직 머리가 녹슬진 않았군.”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아직 모른다. 그걸 알기 위해서 놈들을 끌어내려는 것이지. 덤으로 구룡회의 버릇도 고치고 말이야.”

 

신마비원을 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세상으로 나갈 생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했다. 그걸 알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가슴이 다른 이유로 뛰었다. 이상할 정도로 불안했다.

 

‘성주님께선 저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아닐까?’

 

하지만 감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고 다른 질문을 했다.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혁련궁이 담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아도 이제 세상에 나갈 때가 되긴 했지.”

 

순간, 운조평은 물론이고 사우의 눈마저 커졌다.

 

혁련후.

 

그는 딸만 둘이었던 혁련궁이 둘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이다.

 

현재 나이는 서른셋. 자신을 워낙 드러내지 않아 강호에선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만, 팔대신마인 운조평과 군사인 사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그는 혁련궁에 뒤지지 않는 고수였으며, 냉철하고 냉혹했다. 대제자 단리욱이나 둘째 위태곤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그동안 감추고 있던 그를 내놓겠다는 것은 그의 무공이 완성되었다는 말. 신마성에 또 하나의 마존이 탄생했다는 뜻이다.

 

사우는, 성주가 어쩌면 자신에게 말하기 이전부터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공자라면 구룡회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조평도 불안감을 털어냈다. 혁련후라면 모험을 해볼 만했다.

 

“그동안 천하는 본성이 머릿수로 마도를 지배한다고 비웃었습니다. 한데 본성에 또 하나의 마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흘흘흘, 저들의 놀라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게야.”

 

 

 

 

 

제9장. 바람은 신마성으로 스며들고

 

 

 

 

 

1

 

 

 

위태곤이 천라지망을 펼쳐 남창에서 구강까지 수색하고 있을 때, 풍천은 해동산의 집 지하에서 편히 지냈다.

 

원래는 곧바로 배를 타고 남창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선창에 온통 신마성 무사들이 깔린 걸 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 후 해동산의 집으로 간 그는 상관경의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동안 못 잔 잠부터 잤다.

 

잠이 안 올 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잔 풍천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상관경의를 바라보았다.

 

상관경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서 땀이 구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혼신을 다해서 운공조식을 하는 듯했다.

 

풍천은 지하 밀실에서 밖으로 나가 해동산이 입던 옷을 찾아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도둑이 들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남창의 도둑들 중 감히 해동산의 집을 털 만큼 배짱 있는 도둑은 없었다. 도둑들은 아는 것이다. 해동산이 살수라는 걸.

 

덕분에 해동산의 옷을 쉽게 찾은 풍천은 옷을 갈아입었다. 조금 작긴 했지만 그래도 피 묻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았다.

 

‘누가 삼류 살수 아니랄까 봐 칙칙한 옷만 있군.’

 

그래도 그 바람에 그의 인상이 전과 완전히 달라 보였다. 전에는 덜 떨어진 삼류 건달 같았는데, 칙칙한 옷을 입자 흑도의 삼류 무사 정도는 되어 보였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 그는 의방을 찾아가 몇 가지 약을 샀다.

 

의원은 풍천이 어찌나 약값을 깎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검을 보고 차마 큰소리를 지르진 못했다.

 

하지만 풍천도 그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디서 엉터리 약으로 바가지를 씌우려고 그래?’

 

풍천은 은자 두 냥을 달라는 것을 한 냥 삼십 문으로 깎아서 계산하고 의원을 나섰다. 그 후 몇 가지 요리재료를 산 다음 해동산의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동포동의 주루로 가서 말만 하면 음식을 한 보따리 싸올 수 있지만, 이제부터는 누구도 믿어선 안 되었다.

 

 

 

풍천은 약을 달이는 동안 사온 재료와 부엌에 남아 있는 것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요리를 만들었다.

 

장 노인이 천풍장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한 그였다.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이 종에게 매일 요리를 해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장 노인이 온 후 자신은 일절 손도 안 댔지만, 사실 그의 요리솜씨는 어지간한 여자들보다 나았다.

 

풍천이 옷 한 벌은 어깨에 걸치고, 약과 요리를 양손에 들고서 지하 밀실로 들어갔을 때 상관경의는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어? 이제 정신이 드셨어요?”

 

정신이야 진즉 들었다. 그러니까 누워 있던 사람이 벽에 기대앉아서 운공조식을 했지.

 

상관경의는 대답 대신 코를 벌름거렸다. 구수한 냄새에 침이 고였다.

 

하지만 풍천은 구수한 냄새가 나는 요리는 한쪽에 놓고 질문만 해댔다.

 

“몸은 좀 어때요?”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군.”

 

“혈도는 좀 뚫렸수?”

 

“아직 세 군데가 막혀 있네.”

 

“너무 무리하지는 마쇼. 도지면 책임 못 지니까. 이거 마시고 거기 누워보쇼. 약 좀 바르게.”

 

상관경의는 인상을 쓰며 그릇에 담긴 약을 다 마셨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안간힘을 다해 누웠다.

 

풍천은 일절 도와주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고통이 심할수록 치료해준 고마움도 더 크게 느끼는 법 아니겠어?’

 

반면 고통이 심할수록 도와주지 않는 것에 한을 품는 사람도 있었다. 

 

풍천이야 눈곱만큼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그가 본 상관경의는 그 정도로 원한을 품을 사람은 아닌 듯했다.

 

풍천은 어깨의 상처를 싸맨 천을 풀고 상태를 살펴보았다. 상처 부위가 붉게 변한 채 부어 있고, 일부분은 곪으려는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조금 아플 거요.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참으쇼.”

 

풍천은 그 말만 하고 상관경의의 어깨와 가슴에 양손을 얹은 후 힘을 주었다.

 

순간, 상관경의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차마 소리는 내지 못했다. 신음이라도 내면 풍천이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할지 몰랐다.

 

‘끄으으으, 조금 아플 거라고? 나쁜 놈의 새끼!’

 

그는 처음으로 풍천에게 욕을 퍼부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었다.

 

풍천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상관경의의 어깨에서 한 대접의 썩은 피를 뽑아냈다.

 

풍천이 손을 떼자 상관경의의 몸이 축 처졌다. 풍천은 상관경의의 몸을 닦아낸 후 다시 손을 뻗었다.

 

“한 번 더 뺍시다.”

 

그러고는 상관경의가 놀랄 틈도 없이 내력이 실린 손으로 상처를 쥐어짰다.

 

‘크억!’

 

상관경의의 몸이 막 잡아 올린 잉어처럼 펄떡였다.

 

“엄살 부리지 마쇼. 나는 열 살 때부터 이 정도 상처를 몸에 달고 살았수. 수련이 어찌나 힘든지…….”

 

‘거짓말하지 마라, 이놈!’

 

“사실 사부님이 좀 심하긴 했죠. 그래도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뭐라고 하겠수, 꾹 참아야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어쩌라고? 나보고 참으라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나쁜 놈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나쁜 놈이 아니거든요. 하, 하, 하.”

 

‘끄으으, 오, 오냐, 고맙다. 이 빌어먹을…….’

 

상관경의는 차마 욕을 할 수가 없었다.

 

풍천은 자신의 치료가 마음에 든 것인지, 아니면 고통을 참은 상관경의가 마음에 들었는지 몰라도 빙긋 웃음을 지었다.

 

“흠, 이제 피가 제 색깔이군요. 원하면 한 번 더 뽑아줄 수 있는데…….”

 

기겁한 상관경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돼, 됐네.”

 

“그래요? 어때요, 별로 안 아팠죠?”

 

뭐라고 하랴, 아팠다고 하면 엄살쟁이가 될 판인데.

 

“으으음, 그럭저럭…… 견딜 만하군.”

 

“하하하, 제 사부님도 제 손이 약손이라고 했죠. 자, 그럼 약을 발라볼까요?”

 

풍천은 웃음을 지으며 상관경의의 상처 부위에 가루로 된 금창약을 골고루 뿌렸다.

 

상관경의는 입을 딱 벌리고 눈을 부릅떴다.

 

약이 상처에 닿자 불에 달구어진 꼬챙이로 상처를 지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풍천이 깜박 잊었다는 듯 말했다.

 

“아차, 이 약부터 발라야 덜 아픈데. 거꾸로 썼네.”

 

그러고는 상관경의를 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참을 만하죠?”

 

상관경의는 뼈가 부서진 왼손을 들어서라도 풍천을 한 대 치고 싶었다.

 

풍천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약을 다 바른 후 왼손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어긋난 뼈가 있다며 그렇잖아도 부서진 뼈를 주물럭거려서 꼼꼼히 맞추었다.

 

덕분에 상관경의는 그만큼 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풍천이 비웃을까 봐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놈을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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