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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8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83화

 

83화

 

 

 

 

 

 

화청백 일행은 셋이 더 삼층으로 올라와서 모두 아홉이 되었다.

 

신마성의 본거지가 있는 남창으로 들어가 백초령을 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어찌 일반 무사들일까.

 

그들 중에는 장로도 둘이나 끼어 있고, 수호검단의 부단주와 신검문에 빈객으로 머물고 있던 고수들마저 섞여 있었다.

 

그들은 단순 암습자로 생각했던 청의인들이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걸 알고 경악했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들은 화청백의 말이 떨어지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두세 명씩 합공해서 전력을 다해 청의인을 몰아붙였다.

 

막상막하의 접전이 오륙 초 이어지고, 기파가 터져 나가는 충격에 등왕각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당장 승부가 날 것 같지도 않고, 위태곤이 도주해서 언제 신마성의 무사들이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 서로가 마음만 다급해져 갈 무렵이었다.

 

삐이익!

 

기다란 소성이 남창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청의인들은 서로 눈짓을 하더니 부서진 창문으로 신형을 날렸다.

 

 

 

4

 

 

 

한편, 풍천은 해동산을 등왕각으로 보내고 자신은 등월루로 갔다. 어스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등왕각에서 경치를 구경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각. 위태곤과 백초령이 아직 그곳에 있다 해도 곧 등월루로 올 것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 창문가에 앉자 등왕각이 보였다.

 

거리는 팔십 장이 조금 넘는 정도. 어스름 속에 우뚝 솟은 등왕각은 낮에 봤을 때보다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다.

 

그가 등왕각을 바라보고 있는데 점소이가 다가와 엽차 잔을 내려놓았다.

 

“음식은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요?”

 

풍천은 간단하게 두어 가지 요리를 시켰다. 점소이는 풍천을 흘겨보더니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희 등월루에서는 그런 싸구려 음식을 안 팝니다요.”

 

“그럼 제일 싼 게 뭔데? 아니 얼마짜린데?”

 

“제일 싼 것도 동전 이십 문은 내야 합죠.”

 

“그래? 그럼 그걸로 가져와.”

 

“저기, 돈이 부족하시면 다른 곳에 가서 드시죠. 저쪽으로 가면 싼 곳도 많은데.”

 

“걱정 말고 가져와.”

 

“뭐 원하신다면…….”

 

점소이는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저게…….’

 

풍천은 점소이의 건방진 태도를 고쳐줄까 했지만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꾹 참았다.

 

그런데 요리가 나오기 직전, 등왕각 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기운이 터져 나가는 소리…….

 

등월루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확실치는 않았지만 제법 큰 소란이 벌어진 듯했다.

 

풍천은 등왕각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걸 알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갔다.

 

순간, 주문을 맡았던 점소이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그의 앞을 막았다.

 

“손님! 요리 시킨 것은…….”

 

풍천은 점소이의 멱살을 확 잡아당기고 대뜸 소리쳤다.

 

“걱정 마! 돌아와서 먹을 테니까!”

 

그러고는 멍한 표정으로 눈이 반쯤 풀어진 점소이를 놔두고 등월루를 나갔다.

 

그런데 그가 등왕각 쪽으로 달려갈 때였다. 저 멀리, 한 줄기 인영이 어스름을 뚫고 지붕을 타넘는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하나야 둘이야?’

 

이상한 느낌이 든 풍천은 걸음을 늦추고 잠시 망설였다.

 

등왕각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누군가가 지붕을 타넘는다. 둘이 찰싹 달라붙어서 하나처럼 보이지만, 풍천은 매처럼 밝은 눈으로 누군가가 한 사람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쫓아가 볼까?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때가 아니었다.

 

풍천은 잡생각을 접고 곧바로 등왕각을 향해 접근했다. 등왕각에서 벌어진 싸움은 더욱 격렬해져서 이러다 등왕각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데 등왕각과의 거리가 이십여 장 남았을 무렵, 등왕각 중간쯤 창문이 부서진 곳에서 한 사람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청백! 다음에 보자!”

 

‘위태곤?’

 

풍천은 목소리의 주인이 위태곤임을 알고 걸음을 멈췄다.

 

‘왜 저 인간 혼자지? 초령이는?’

 

화청백이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백초령은 등왕각 안에 있는 건가?

 

그는 위태곤을 쫓아가지 않고 등왕각을 올려다보았다.

 

우르릉. 쩌저정! 콰르릉!

 

등왕각 안에서는 여전히 천둥이 치고 격렬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위태곤은 나왔지만, 아직 강적이 남아 있다는 말. 그는 다시등왕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가 등왕각 바로 밑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여기네.”

 

오른쪽 정자 구석에서 해동산이 손을 흔들었다.

 

풍천은 방향을 틀어서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떻게 된 거죠?”

 

“정확하게는 모르겠네. 내가 왔을 때는 이미 위태곤이 호위 무사들과 함께 위로 올라간 뒤였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삼층에서 싸움이 벌어졌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

 

신검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해동산이 말했다.

 

“싸움이 벌어진 직후 또 아홉 명이 등왕각으로 들어갔네. 그리고 싸움이 더욱 격렬해졌지.”

 

앞서 들어가 있던 자들이 신검문일까, 아니면 뒤에 들어간 자들이 신검문일까? 아니면 둘 다 신검문?

 

풍천이 이마를 찌푸린 채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성이 울렸다.

 

직후 부서진 창문에서 서너 명이 더 튀어나왔다. 그리고 등왕각 안이 조용해졌다.

 

풍천은 잠시 망설이다가 옷자락을 찢어 얼굴을 대충 가렸다.

 

백초령이 안에 있는지 확인해봐야 했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의 생존사실을 밝힐 때가 아니었다. 신검문 사람들에게도.

 

물론 변용을 해서 바로 알아보진 못하겠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도 조심해야 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모두들 어떻게 살아났는지 궁금해할 것이 분명하니까.

 

‘눈치 빠른 놈들은 내가 유령총 안에 들어가지 않았나 의심하겠지.’

 

그럼 세상의 눈이 모두 자신에게 집중될 것이다. 특히 유령총에선 만난 놈들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그는 그놈들에게 평생 쫓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얼굴을 가린 풍천은 해동산을 바라보았다.

 

“해 형은 한쪽 구석에서 기다리쇼.”

 

해동산도 상황이 궁금하긴 했지만 목숨을 걸 마음은 없었다.

 

“알았네. 조심하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풍천은 훌쩍 몸을 날려 등왕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막 안으로 들어간 순간, 위층에서 곧바로 뛰어내리던 자들 중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검을 뻗었다.

 

“흥! 한 놈이 더 남아 있었군!”

 

‘이크!’

 

연기처럼 흐느적거리며 공격을 피한 풍천은 주먹으로 상대의 안면을 날려버리려다 멈칫했다. 뒤따라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서 화청백이 보인 것이다.

 

‘신검문 사람?’

 

그래도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고,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아름드리 기둥 쪽으로 상대의 진행 방향을 교묘히 틀었다.

 

“헛!”

 

풍천을 공격한 자는 수호검단의 부단주 고중산이었다.

 

그는 상대가 사라지고, 자신이 갑자기 아름드리 기둥으로 돌진하자 대경해서 황급히 손을 뻗었다.

 

퍽!

 

풍천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즉시 몸을 뒤로 날려서 등왕각을 빠져나왔다.

 

누군가가 노성을 내지르며 그를 쫓아왔다.

 

“어딜 도망가려고!”

 

그때 화청백이 그자를 말렸다.

 

“진 장로님, 놔두십시오. 그런 자 하나 잡는 것보다 초령이를 찾는 게 더 급합니다. 신마성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지요.”

 

백초령이 안에 없다는 말.

 

유령처럼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지붕으로 올라간 풍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히 위태곤과 함께 들어갔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위태곤은 혼자 도망쳤다. 나중에 나온 자들 중에도 백초령은 없었다. 그래서 화청백과 함께 있을 줄 알았거늘.

 

문득 머릿속이 번쩍하더니 지붕을 넘어가던 자가 떠올랐다.

 

그의 옆구리에 길쭉한 뭔가가 붙어 있었다. 거리가 먼 데다 어스름이 짙어져서 확실치는 않았지만, 사람인 듯 보였었다.

 

‘이런 젠장!’

 

풍천은 그제야 그자의 옆구리에 붙어 있던 게 백초령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갈았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더라니!’

 

그는 화청백 일행이 등왕각에서 나오는 걸 보며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추었다.

 

화청백 일행은 등왕각을 나온 즉시 남창 성내로 스며들었다.

 

풍천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지붕 위에서 내려왔다. 그때 해동산이 구석진 곳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해 형, 지리를 잘 알죠?”

 

풍천의 질문에 해동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창은 작은 골목길도 다 내 손바닥 안에 있지.”

 

풍천은 그의 말이 허풍처럼 들렸지만 지금으로선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죠.”

 

조금 늦긴 했지만 백초령이 살아 있기만 한다면 아주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걸 보면 죽일 마음은 없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5

 

 

 

어둠이 깔린 지붕 끝에는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살펴보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풍천이었다.

 

그는 지붕 위의 이끼가 살짝 밀려서 벗겨진 것을 보고 몇 가지 상황을 추리해냈다.

 

‘그 정도의 고수가 이런 흔적을 남겼다는 건 상당한 무게가 더해졌다는 뜻. 그런데 바닥을 짚은 흔적이 하나인 걸로 봐서 안거나 옆구리에 끼고 있나 보군.’

 

거기에 더해 이끼가 밀린 방향을 보고 상대의 진로를 유추했다.

 

‘그가 향한 방향은 동북쪽,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남쪽으로 내려가진 않을 거다. 신마성에서 언제 쫓아올지 모르니까. 그럼 결국 강을 건너든가 호수를 건널 거란 말인데…….’

 

그는 백초령과 함께 움직이는 자가 도약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당시에 봤던 그자의 경공실력을 떠올리며 지붕에서 신형을 날렸다.

 

 

 

해동산은 정신없이 풍천을 따라갔다.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보고 저리 자신만만하게 이동하는 걸까?

 

풍천이 걸음을 멈춘 것은 오 리가량 북쪽으로 전진한 후였다.

 

해동산은 기회라 생각하고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자가 이곳으로 간 것은 확실한가?”

 

“지금까지는 분명합니다. 발자국이 이리 이어져 있었으니까요.”

 

“바, 발자국? 그럼 지금까지 그자의 발자국을 보고 쫓아왔다는 건가?”

 

“물론이죠. 다행히 그자가 지나간 후에 다닌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제길, 이제부터가 문제군요.”

 

물론이라고? 그게 지금 정상적인 대답이야? 사람이 어떻게 밤중에 발자국을 보고 적을 쫓아? 그것도 보통 고수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다그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자신이 원하던 사람을 찾을 때도 발자국을 쫓아가서 찾지 않았던가? 절름거리는 사람의 발자국은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다면서 말이다.

 

‘이 친구는 이 일을 하면서 발자국을 많이 연구한 모양이군. 하긴 뭐, 뭐든 자신의 일을 위해서 연구하는 것은 좋은 자세지. 역시 요즘 젊은이와는 많이 달라.’

 

그렇게 생각한 해동산은 풍천의 추적술을 이해하기로 하고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풍천은 한숨을 쉬며 턱을 치켜들어 앞을 가리켰다.

 

“후우,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자는 걸음이 일반 사람과 조금 달라서 발자국이 특이한데도, 이미 많은 사람이 지나다녀서 분간할 수가 없게 돼버렸어요.”

 

홍등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술시, 술꾼들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해동산은 풍천의 말을 이해하고 눈을 반짝였다.

 

“혹시 그자의 체구나 특징 같은 거 아는 거 없나?”

 

풍천은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말하는 것처럼 자신 있게 설명했다.

 

“키는 여섯 자에서 한두 치 빠지는 정도. 몸무게는 백이십 근가량. 그리고 그는, 다섯 자 세 치에 일흔다섯 근 나가는 예쁜 여자를 데리고 있죠.”

 

해동산은 풍천을 흘겨보았다.

 

“정확한가?”

 

“한 근 정도는 틀릴 수도 있어요.”

 

“남자도?”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얼핏 봤지만, 거의 정확할 거요.”

 

어스름이 짙게 밀려든 시간이었다. 거리도 백여 장이나 떨어진 곳이었단다. 

 

그렇게 먼 곳에서 얼핏 본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정확히 안다고?

 

‘이 새끼가 지금 나를 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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