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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7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71화

 

71화

 

 

 

 

 

 

잠시 후.

 

풍천은 씁쓸한 표정으로 아극령을 노려보았다.

 

아극령도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제기랄, 뭐 저런 게 있어? 보여야 잡지.’

 

‘무공을 익혔다는 지상의 인간들은 모두 풍천처럼 빠른가?’

 

풍천은 대결이 시작되자 처음에는 귀환신법과 비영산화보로 대응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천풍무영류마저 펼쳤다. 하지만 그러고도 아극령의 따귀를 한 대도 갈겨주지 못했다.

 

반면 아극령은 환신술을 펼쳤는데 풍천의 엉덩이를 걷어차기는커녕 하마터면 따귀를 맞을 뻔했다. 그것도 몇 번이나.

 

막상막하.

 

두 사람은 귀신도 눈이 돌아갈 대결을 근 일 각 이상 벌였다.

 

아수비가 나타나서 싸움을 말리기 전까지.

 

결국 두 사람 다 내심 벼르고 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대결을 멈추어야만 했다.

 

 

 

대결을 중단시킨 아수비는 눈을 치켜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왜 싸운 거죠?”

 

풍천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냥, 몸이 다 나았는지 알아보려고…….”

 

‘따귀를 때려서 버릇을 고쳤어야 하는데…….’

 

아극령은 아수비의 시선을 피하며 대충 둘러댔다.

 

“풍천이 환신술을 얼마나 익혔는지 알아보려고 그랬지 뭐.”

 

‘엉덩이를 확 걷어차서 꼬꾸라지는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너 자꾸 말썽 피울 거야?”

 

아수비가 아극령을 다그쳤다. 안 봐도 뻔했다. 보나마나 저 말썽꾸러기가 풍천을 보챘을 것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계속 그러면 할아버지께 이른다.”

 

“나는 잘못한 거 없다니까?”

 

“그럼 풍 공자가 먼저 싸움을 걸었단 말이야?”

 

풍천이 즉시 반박했다.

 

“아극령이 먼저 대결하자고 했다. 난 따라왔을 뿐이야.”

 

“들었지?”

 

아극령은 풍천을 째려보았다.

 

“야비하기는…….”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니까. 난 거짓말을 못하거든?”

 

“이…….”

 

풍천은 눈을 부라리는 아극령을 향해 씩 웃어주고 돌아섰다. 그나마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흠, 어쨌든 고맙다, 아극령. 네 덕분에 환신술의 묘리를 조금 더 알게 되었어.’

 

 

 

4

 

 

 

통로가 열린다는 날짜가 이틀 남았다.

 

풍천은 청광석으로 만든 침상에 누워서 뇌정천결과 천라신수의 무공서를 탐독했다.

 

뇌정천결과 천라신수는 둘 다 천하제일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었다.

 

그는 그동안 두 무공의 내용을 샅샅이 뜯어본 후 둘 다 자신이 익힌 천풍심법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망할!

 

그런데도 탐독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익히지 못한다 해도 다른 사람은 익힐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나중에 자식을 셋 낳아야지. 그래서 하나는 천풍의 맥을 잇게 하고, 다른 둘에게는 이 두 가지 무공을 전해주는 거야.’

 

그래서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요렇게 치면…… 내공은 이런 경로를 통해서 쏟아내고…… 그리고 팡! 부숴버리는 거야!’

 

그는 오른손으로 책을 들고 왼손으로 흉내를 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흥이 돋은 그는 무의식중에 천장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마치 적을 실제로 상대하듯이.

 

퍽!

 

일 장 높이의 천장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는 내심 만족하며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양피지를 넘기던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 석상처럼 굳어졌다.

 

‘퍽?’

 

양피지 책에서 눈을 뗀 그는 느릿하니 눈을 돌려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소리가 났던 곳에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냥 일반 사람이 주먹으로 쳐도 저 정도 흔적은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희미한 자국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자국이 진흙 펄에 한 자 깊이로 새겨진 발자국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붕, 그 자세 그대로 허공으로 떠오른 그는 천장에 찰싹 달라붙었다.

 

희미하긴 하지만 손바닥 형태가 확실하게 보였다.

 

다시 청광석 침상 위로 내려온 그는 허공에 대고 손을 휘둘렀다.

 

조금 전과 똑같이, 천라신수의 구결대로.

 

그러나 그의 손은 허망하게 허공만 저을 뿐, 천장에 조금 전과 같은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눈을 감은 그는 천풍심법을 운기했다. 그리고 진기의 흐름을 천라신수의 흐름과 연계시켜보았다.

 

진기는 천라신수의 흐름대로 흐르는 듯하다가 곧 흩어져버렸다.

 

“제길, 왜 이런 거야? 분명 조금 전에는 제대로 되었잖아?”

 

짜증이 난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허공을 향해 손을 저었다.

 

바로 그때였다. 천풍심법의 운기와 상관없이 기이한 기운 한 줄기가 뻗어나갔다.

 

퍽!

 

또 다시 천장에 흔적이 하나 새겨졌다.

 

풍천은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실마리를 얻은 것은 반 각 가량이 지난 후였다.

 

‘맞아, 벽혼계에서 내 몸속으로 들어왔던 기운들이 또 다른 길을 만들었었지. 천풍심법의 운기법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만약 그 길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다면……?

 

풍천은 벌떡 일어나서 정좌하고 앉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서 광선이 쏘아지는 것 같았다.

 

‘천풍심법에 영향 받지 않는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말 아니겠어?’

 

순간, 풍천의 입이 귀밑까지 쫙 찢어졌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장을 뚫고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크하하하! 사부님! 제자 풍천이 마침내 사문의 숙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입을 쫙 찢으며 웃고 있는데 아수비가 들어왔다.

 

“기분 좋은 일이 있나봐요?”

 

풍천은 웃음을 재빨리 지우고 고개를 돌렸다.

 

“곧 밖으로 나갈 거라는 생각을 하니 기뻐서.”

 

아수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풍천은 기쁠지 몰라도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먹을 것을 마련하고, 조각을 하고, 조상이 남긴 능력을 익히는 게 전부였던 자신에게 풍천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풍천과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은 새로운 삶을 맞이한 것처럼 즐거웠고 행복했다. 십 수 일이 십 수 년 만큼이나 값지게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이제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바깥세상은 굉장히 넓다면서요?”

 

“가도 가도 끝이 안 나와.”

 

“높고 푸른 하늘에는 새가 날아다니고, 지상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하며 살아간다고 했어요. 우리 부족의 원수인 공손곽도 여기서 열흘은 가야하는 곳에 산다고 하더군요. 아수비는 모르겠어요. 열흘을 가야 할 만큼 넓은 곳이라는 게 상상이 안 돼요.”

 

풍천은 물끄러미 아수비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아수비에게 벽라족이 이곳에 살게 된 연유에 대해 들었다. 그걸 알게 된 이후부터 그는 벽라족의 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벽라족은 태생적으로 태양빛을 견딜 수 없는 천형을 타고났대요. 태양 아래 오래 있으면 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진물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우리를 역병에 걸린 사람 취급했다고 해요.”

 

더구나 피부색이 하얗고 눈마저 파랗다보니 악마의 자식이라며 돌을 던지고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벽라족은 세상 사람들을 경악케 할 능력이 있음에도 사람들과 다투기 싫어서 자신들만이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황산 지하에서 거대한 동공을 발견하고 그곳을 자신들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수백 년, 공손곽이 신의를 배반하고 벽라동을 피로 물들이기 전까지 벽라동은 그들에게 천국이었다.

 

“그때만 해도 외부의 빛을 볼 수 있었대요. 태양 아래 나가는 것을 꺼리긴 했지만. 그런데 그 후 외부와 완전히 단절하고 살다보니 눈마저 퇴화되어서 태양빛을 볼 수가 없게 되고 말았어요.”

 

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살갗도 전보다 더 심하게 반응했다. 외부의 삶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공손곽에 대한 한을 나를 통해서라도 풀어보려고 하는 거였어.’

 

세상 사람들에게 쫓겨 왔는데, 그마저도 은혜를 베푼 자에게 악마 취급 받으며 멸족을 당할 뻔했으니 그 한이 오죽하랴.

 

‘그런데 천상신문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풍천은 한 번도 천상신문에 대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전설로도 들어보지 못했다.

 

존재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곳을 상대로 한 복수.

 

그것도 구백 년 전의 사건이어서, 설령 그들이 다른 이름으로 존재한다 해도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는 상태다.

 

사마의 무리일 수도 있고 정의의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풍천은 그들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어떤 형태로 변했든 아극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꼭 아극사의 금제가 두려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욕망과 편견으로 순수한 사람들을 절망으로 빠뜨린 자들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이 비록 구백 년 전의 일이라 해도.

 

‘최소한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당시 죽어간 벽라족의 원혼에게 용서는 빌어야하지 않겠어?’

 

그 정도면 아극사도 만족할 것이다. 어차피 그도 풍천 혼자서 천상신문을 멸문시킬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 테니까.

 

풍천은 아수비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슬쩍 운을 떼어보았다.

 

“아수비, 만약 천상신문이 이미 없어졌다면 어떻게 하지?”

 

아수비는 신비하게 빛나는 파란 눈으로 풍천을 올려다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당시 쳐들어왔던 원수들의 후인들마저 다 사라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들 중 종가의 사람을 찾아 벽라족의 원혼에게 사죄의 제를 올리라고 하세요.”

 

“죽이지 않아도 돼?”

 

아수비의 푸른 눈빛이 실바람 앞의 강아지풀처럼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는 많은 피를 원하시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피는 또 피를 부른다고 했어요. 악한 자면 죽이고, 선한 자면 죽일 것까진 없어요. 그 판단은 당신이 하세요.”

 

풍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비는 아극사나 아극타, 아극령만큼 복수의 집념이 강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복수심이 퇴색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선천적으로 순수한 마음을 지닌 듯했다.

 

‘이런 여자들을 겁간하고 찢어 죽이다니, 나쁜 놈들!’

 

차라리 마인들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원래 마인은 평범한 인간과 인성 자체가 다르니까.

 

그런데 천상신문의 놈들은 마인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악마를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온 놈들. 그저 욕망대로 움직이는 위선에 물든 무리일 뿐이었다.

 

‘그런 놈들이 마인보다 더 악랄한 법이지. 자신들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다 저지르거든.’

 

풍천은 아수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극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보나마나 반대할 테니까.

 

그가 봤을 때, 아극사보다 아수비가 더 현명해보였다.

 

성격도 더 좋고, 얼굴도 예쁘고…….

 

그런데 왜 금제로 위협이나 하는 야비한 아극사의 말을 듣는단 말인가?

 

‘어차피 벽라족의 부탁만 들어주면 되는 거니까 약속을 어기는 것도 아니잖아?’

 

그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시키고 아수비를 보며 웃었다.

 

“아수비, 배가 고픈데 우리 물고기 잡으러 갈까?”

 

아수비도 환영했다. 더 이상 무거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사실…… 배가 고파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어제 처음으로 아수비가 물고기 잡는 것을 봤다. 물속을 은어처럼 헤엄치는 아수비의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이 퍽 터질 것처럼 아름다웠다.

 

청광석에 비친 물속의 여신.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물속에 함께 들어가자고 해볼까?’

 

꿀꺽.

 

 

 

5

 

 

 

퐁!

 

아수비는 물방울도 몇 방울 튕기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천은 자기 머리통만 한 청광석 두 개를 양쪽에 놓고 바위 위에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하나를 가져왔는데 오늘은 두 개를 가져왔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흐으, 진짜 예쁘네.’

 

아수비는 물고기보다 더 빠르고 부드럽게 물속을 헤엄쳤다.

 

짧은 가죽옷은 허벅지에 착 달라붙어 있었는데, 아수비가 몸을 틀면 지느러미처럼 흔들렸다.

 

풍천은 그 모습을 볼 때면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내가 나쁜 놈이어서 이런 게 아니야, 아수비. 세상 어떤 남자도 다 나 같을 거야. 아마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난리일걸?’

 

그때 아수비가 몸을 가슴까지 물 밖으로 내밀더니 기다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조롱박 같은 가슴에서 물방울이 똑 떨어졌다.

 

‘헉!’

 

풍천의 입에서 침이 떨어지기 직전, 아수비가 그를 향해 손짓했다.

 

“오늘 물고기가 유난히 많이 들어왔어요, 함께 잡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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