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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6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63화

 

63화

 

 

 

 

 

 

백초령은 입술을 꽉 깨물고는 홱 고개를 돌렸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위태곤에게 다시 잡히느니 죽음을 무릅쓰고 풍천과 모험을 해보는 게 나았다. 그런데 풍천은 자신처럼 죽음을 무릅쓸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바보, 멍청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니까…….’

 

풍천은 어깨가 잘게 떨리는 백초령을 억지로 외면했다.

 

‘백초령, 조금만 참고 견뎌! 내가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살아난다면.

 

‘아니, 나는 반드시 살 거야!’

 

그때 천장과 벽이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렸다.

 

쿠르르릉! 투두둑!

 

뒤이어 여기저기서 돌조각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다급해진 풍천은, 입술을 깨물고 있는 백초령의 허리를 잡고 위태곤을 향해 던지듯이 밀었다.

 

“위태곤, 데려가라!”

 

백초령의 몸이 위태곤을 향해 날아갔다.

 

운조평과 등청은 그 모습을 보고도 풍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백초령을 이용하고도 남을 놈이 풍천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치사하고 입이 더러운 놈, 한눈을 팔면 눈알을 빼가고도 남을 놈.

 

백초령에게 정신이 팔리면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들지 몰랐다.

 

“잘 생각했다, 풍천!”

 

위태곤은 손을 뻗어서 날아오는 백초령의 팔을 잡아당긴 후 몸을 안으려 했다.

 

하지만 백초령은 몸을 틀어서 위태곤의 뜻을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위태곤에게 다시 잡히는 입장이 되었지만 자존심까지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손대지 마!”

 

위태곤을 향해 빽 소리친 백초령은 홱 고개를 돌리고 풍천을 쳐다보며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바보 멍청이! 꼭 살아서 나가!’

 

우르르릉. 투두둑.

 

위태곤은 돌조각이 점점 더 많이 떨어지자 백초령의 팔을 잡은 채 통로를 빠져나갔다.

 

“후후후, 백초령, 앙탈부리지 말고 따라와라.”

 

“이거 놔! 따라갈 테니까!”

 

풍천은 위태곤이 백초령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등청과 운조평을 향해 쇄도했다.

 

“영감태기들! 이제부터는 사정이 조금 다를 거다!”

 

“미친 놈!”

 

“네놈은 이곳을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꿈 깨라, 이놈!”

 

등청과 운조평 역시 지고 싶은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둘이 합공하고도 풍천을 빠져나가게 한다면 그게 무슨 창피란 말인가.

 

그 사실이 알려지면 강호인 모두가 비웃을 게 뻔했다.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려면 장강에 뛰어들어서 석 달 열흘 동안은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개 같은 경우가 벌어지도록 놔둘 순 없지!

 

문제는 풍천의 실력이었다. 특히 풍천의 신법은 신법의 대가인 운조평조차 잡을 수가 없고, 혼을 빼앗는다는 탈혼도로 옷깃조차 자르기 힘들 만큼 괴이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신법만 뛰어날 뿐 다른 무공은 별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은 풍천의 신법이 괴이 신랄하다는 걸 알기에 일단은 통로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에만 주력했다.

 

풍천으로선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차라리 죽이겠다고 덤비면 빈틈이 보일 텐데, 방어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태기들!’

 

그는 전 공력을 끌어올리고 두 사람의 방어막에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한바탕 격렬한 충돌이 이루어지면 빈틈이 보일지 몰랐다.

 

실낱같은 틈, 그것만 있으면 충분했다.

 

일순간, 세 사람의 기운이 뒤엉켰다.

 

떠더덩! 쩌정!

 

사방으로 퍼져나간 충돌의 여파가 그러잖아도 흔들리는 통로를 거세게 두들겼다.

 

그렇게 삼 초의 격돌이 이어지고, 풍천은 두 사람과 부딪친 충격으로 일 장 가량 튕겨졌다. 운조평과 등청도 서너 걸음 물러선 후 급히 중심을 잡았다.

 

순간, 풍천의 눈이 반짝였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석 자로 줄어들어 있었다. 간격이 줄어들었으니 빠져나가기가 더 힘들 것 같지만 풍천의 생각은 달랐다.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보니 운조평은 강력한 장법을 펼칠 수가 없고, 등청은 탈혼도를 휘두를 수가 없다. 자칫하면 풍천을 공격하다가 자신들이 다칠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머리카락 하나만큼의 빈틈.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은 찰나의 순간뿐이다.

 

풍천은 흔들린 진기를 진정시켰다. 운조평과 등청의 공세를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내상을 입었는지 진기가 들끓고 가슴이 먹먹했다.

 

이를 지그시 악다문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기회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눈치를 채면 상황이 더욱더 어려워질 터, 그 전에 뚫고나가야 한다.

 

‘바로 지금!’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궁!

 

그 어느 때보다 통로가 심하게 흔들리고 제법 커다란 돌조각들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세 사람의 기운이 부딪치며 발생한 충돌의 여파가 통로의 붕괴를 더욱 앞당긴 것이다.

 

몸을 날리려던 풍천은 주먹만 한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지자 멈칫했다.

 

그때, 고개를 번쩍 들어 천장을 바라보던 운조평이 기겁하며 뒤로 몸을 날렸다.

 

“등 형님, 뒤로 빠지십시오!”

 

거의 동시에 등청이 뒤로 날아가고 풍천도 지체 없이 바닥을 박찼다.

 

운조평과 등청의 머리 위쪽 천장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런데 풍천이 쏘아진 살처럼 날아가는 순간, 넓이만 근 일장에 달하는 천장이 굉음을 내며 내려앉았다.

 

쩌저저적, 콰과광!

 

운조평과 등청은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풍천은 그들과 거리가 삼 장이나 떨어져 있던 터였다.

 

진짜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이라 해도 깔릴 수밖에 없는 상황. 대경한 풍천은 검을 뻗어서 무너지는 천장을 찍고 그 반동력을 이용해서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천장이 무너진 곳은 전면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천장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 당황한 풍천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뒤쪽은 아직 돌조각만 떨어지고 있었다.

 

탑 전체가 비명을 질러대는 바람에 귀가 먹먹했다.

 

앞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가자니 의미가 없다.

 

이제 끝장인가?

 

‘제기랄! 내가 무슨 의혈협사라고…….’

 

그때였다.

 

“크하하하하! 풍천! 백초령은 내가 잘 돌봐주마! 저승에 가서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 정 살고 싶으면 지하로 이어진 곳까지 똥줄이 빠지게 달려봐라. 혹시 아느냐? 재수가 좋으면 숨겨진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지! 물론 그것도 광장과 통로가 다 무너지기 전에 도착한 이후의 일이겠지만 말이야!”

 

무너진 천장과 벽 사이의 틈으로 위태곤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백초령은 백초령대로 얻고 풍천은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무척 즐거운 듯했다.

 

‘나쁜 새끼! 내가 죽는 게 그렇게 즐겁냐?’

 

통로의 뒤쪽에서 울리는 소리로 인해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뜻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풍천은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전력을 다해 뒤쪽으로 달렸다.

 

위태곤이 한 말의 진위여부는 따져보지도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뒤쪽의 통로도 붕괴되기 직전인 상태. 광장에선 이미 돌조각들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라면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마다할 때가 아니었다.

 

풍천은 떨어지는 돌조각을 피하고, 그래도 피할 수가 없으면 검으로, 손으로 쳐내면서 눈썹이 바람결에 빠질 정도로 정신없이 달렸다.

 

통로의 등잔 중 반 이상이 꺼져 있었고, 먼지마저 자욱해서 눈앞이 침침했다.

 

게다가 미처 쳐내지 못한 돌조각들이 그의 어깨와 머리, 몸을 두들겼다.

 

윽! 큭! 아이고 머리야!

 

전 공력을 끌어올린 채 호신공(護身功)을 펼치고 있는데도 돌덩이에 얻어맞은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더구나 동광후를 죽이고 운조평과 등청을 상대하면서 내상까지 입은 몸이 아닌가.

 

그러나 풍천은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학대에 가까울 만큼 심한 수련을 받지 않았다면 걸음을 멈추던가, 하다못해 비틀거리기라도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충격이 크면 클수록 악다문 이에 더욱 힘을 주고 앞으로 달려갔다.

 

‘이 정도 위기는 일곱 살 때부터 겪었어! 우리 사부가 얼마나 지독한 분이었는지 아느냐, 위태곤? 아마 너 같으면 하루도 못 버티고 뒈졌을 거다!’

 

자신은 눈물만 조금 보이고 말았지만. 소리 내어 울면 사부가 더욱 심하게 다그쳤으니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날의 일이 떠오르자 풍천은 더욱더 위태곤에게 화가 났다.

 

곽구에서 교환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냐?

 

‘다음에 만나기만 해봐라. 똥통에 거꾸로 처박아버릴 테니까!’

 

그렇게 통로를 나온 풍천은 광장을 가로질렀다.

 

광장의 천장도 그물처럼 금이 가 있었는데, 갈라진 바위가 밀려 내려오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미로로 통하는 곳도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우르릉, 끼끼끼끽! 투두두둑!

 

멀쩡한 곳은 오직 하나, 그가 부수고 나온 석문 안쪽뿐이다.

 

석문까지의 거리는 오 장, 그는 온 세상의 모든 신을 찾으며 석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여기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해!’

 

풍천의 신형이 부서진 석문 안으로 빨려들어 간 순간, 뒤쪽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우르르릉! 콰과광!

 

실오라기 한 올 차이로 통로와 광장이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풍천은 멈추지 않고 곧장 지하로 내려가는 곳까지 달려갔다. 이번에는 석문 안쪽의 통로에 금이 가고 있었다.

 

쩌저저적!

 

미칠 일이었다.

 

 

 

2

 

 

 

“콜록, 콜록, 콜록.”

 

풍천은 기침을 하며 먼지를 털어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들어서자마자 통로가 마저 무너지며, 구름 같은 먼지가 그를 덮쳤다.

 

아마 한 걸음만 늦었어도 그를 덮친 것은 먼지구름이 아니라 수만 관 바위였을 것이었다.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풍천은 대충 옷을 털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하 쪽은 입구 일부만 무너졌을 뿐 안쪽은 무너지지 않았다. 위태곤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통로에서 천장이 통째로 무너졌으니 풍천이 광장을 통과하지 못한 채 깔려 죽을 거라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무사히 도착한다 해도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인가.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걸 상상하며 즐기고 싶었겠지? 나쁜 새끼.’

 

어쨌든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앞뒤가 꽉꽉 막힌 상태. 갑자기 묵직하고 답답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 감정의 정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죽는다는 게 이토록 두렵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남과 싸우다 죽는 거라면 이토록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말 두려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제 스물 셋, 인생의 반도 못 살았다. 나쁜 짓 하는 놈들도 오래오래 잘만 살던데…….

 

‘아냐, 내 명은 길다고 했어!’

 

고개를 세차게 턴 그는 엉뚱한 생각을 떠올려서라도 밀려드는 두려움을 떨치려 했다.

 

‘만약 거짓말이면 귀신이 되어서 그 돌팔이 점쟁이를 찾아가 죽을 때까지 괴롭힐 거야!’

 

품속에 엄청난 돈이 든 주머니가 있는데 한 푼 써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란 말인가.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나는 충각 귀신이 되고 싶지 않아!’

 

문득 백초령을 업었을 때 등에 느껴지던 푹신한 기분이 떠올랐다.

 

‘겉보기보다 가슴이 제법 컸어. 서령 아가씨보다 더 클 거 같아.’

 

꼭 살아서 초령이의 가슴이 얼마나 큰지 구경해봐야지!

 

역시 순수한(?) 총각다웠다. 백초령의 가슴에 대한 생각을 하자 두려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풍천은 머리에 쌓인 먼지를 마저 털어내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입구 쪽의 등잔은 먼지구름이 밀려들며 모두 꺼진 상태. 지하의 계단 저 아래쪽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풍천은 반 시진에 걸친 운기로 내상을 대충 진정시킨 후 지하의 계단과 통로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하다못해 벌레가 드나든 흔적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석문이 있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어디에도 숨겨진 비밀통로는 없었다.

 

하긴 신마성과 구룡회 사람들이 얼마나 세밀히 조사해보았겠는가. 그들도 찾지 못한 것이 자신의 눈에만 띨 리가 없었다.

 

“길이 없다 이거지? 후우, 좋아. 없으면 뚫지 뭐.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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