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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4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5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49화

 

49화

 

 

 

 

 

 

틈은 먼지가 끼어서 자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다. 

 

풍천은 먼지를 긁어냈다. 그제야 검날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사각 형태의 선처럼 그어진 틈. 

 

그 의미를 짐작한 풍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석문(石門)이다!’

 

그는 문을 열 수 있는 기관장치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석문을 열 기관장치가 함정 안에 있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기에 대충 살펴본 후 찾는 걸 포기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풍천이 길 잃은 거미처럼 두 손으로 벽을 더듬거리는 걸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풍천이 이상한 행동을 멈추자, 화청백이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왜 그러는 건가?” 

 

풍천은 대답 대신 위를 올려다보았다. 

 

등청과 동광후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인질이 잡혀 있는 이상 허튼 짓을 못할 거라 생각한 듯했다.

 

그는 두 손에 공력을 잔뜩 집어넣고 석문을 두어 번 두들겼다. 

 

퍽, 퍽. 쩌저적.

 

강력한 경력이 내부에 충격을 가하자 안쪽에서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풍천은 몇 번 더 두들겨서 석문의 내부을 더욱 약하게 만들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냅다 후려쳤다.

 

쾅!

 

화청백과 백초령과 석초산은 풍천을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석문이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르.

 

석문이 반쯤 무너지자 어둠으로 물든 통로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구멍 안쪽을 쳐다보았다.

 

구멍 안쪽에는 통로가 있었다. 높이와 폭이 일곱 자는 되었다.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공으로 만들어진 통로.

 

혹시 저 안에 더 무서운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쳐다만 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그그긍.

 

벽이 진동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함정의 벽뿐만이 아니라 유령탑 전체가 울리는 듯했다.

 

“헛! 저놈들이……! 등 장로님! 빨리 와 보십시오! 놈들이 벽을 뚫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신마성 무사 하나가 대경해서 등청을 불렀다.

 

풍천은 화청백을 돌아다보았다.

 

“이판사판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죠.”

 

화청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적이 가짜라는 게 밝혀지면 순순히 보내줄 놈들이 절대 아니었다. 풍천의 말대로 이판사판의 상황인 것이다.

 

“안으로 들어갈 것이니 부상자들을 부축하시오. 풍천, 앞장서게.” 

 

화청백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풍천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화청백 등도 이를 지그시 악물고 풍천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우르르 통로 안으로 들어간 직후 등청과 동광후가 나타났다.

 

“무슨 소리야, 놈들이 벽을 뚫다니? 응? 저건 또 뭐야?”

 

“이런 빌어먹을! 통로가 함정으로도 이어져 있었나?”

 

등청은 구멍이 상당히 크고 풍천 일행이 보이지 않자 상황을 짐작하고 버럭 소리쳤다.

 

“내려가자! 모두 나를 따라와라! 놈들을 쫓는다! 소성주는 입구를 틀어막고 안전한 이곳에서 기다리게!”

 

등청과 동광후를 비롯해서 십여 명의 신마성 무사들이 함정으로 뛰어내렸다. 

 

위태곤이 그들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다른 놈은 모두 죽여도 상관없습니다만, 백초령은 살려서 데려오십시오!”

 

그러고는 홱 고개를 돌려 남호에게 명을 내렸다.

 

“남호! 입구를 막아라!”

 

등청과 동광후는 십여 명의 수하들과 함께 함정으로 내려갔고, 운조평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적이 눈치 채고 입구로 들어오면 큰일이었다.

 

입구로 달려간 남호는 입구에 있는 기관을 움직였다.

 

콰르르릉.

 

굉음과 함께 통로 입구의 천장이 밑으로 내려왔다.

 

 

 

 

 

제9장. 지옥으로의 초대

 

 

 

 

 

1

 

 

 

풍천 일행이 통로로 들어간 후 유령탑에도 변화가 생겼다.

 

입구가 막힌 대신, 거대한 유령탑 곳곳에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격전을 벌이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변화에 대경해서 싸우는 와중에도 틈이 날 때마다 유령탑을 살펴보았다. 

 

그때 신마성 무사들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유령총이 열린 것 같다! 놈들이 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저히 막아라!”

 

그 말이 구룡회와 남궁세가 무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유령총이 열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유령총이 열린다는 사실에 무덤덤할 강호인이 어디 있을까?

 

“안으로 들어갑시다!”

 

“놈들을 더욱 몰아붙여라!”

 

와아아아아!

 

구룡회와 남궁세가, 대원보의 무사들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력하게 신마성 무사들을 몰아붙였다.

 

신마성 무사들은 뒤로 물러서며 그들의 공세를 막았다. 

 

제일 먼저 남궁도영이 신마성 무사들의 방어막을 뚫고 유령탑으로 신형을 날렸다.

 

“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일시지간, 신마성 무사들의 방어막이 흔들렸다. 

 

“우리도 가자!”

 

반소규도 그 틈을 타 땅을 박찼다.

 

뒤이어 조환을 비롯한 신검문과 검각과 경천산장의 연합세력 고수들도 유령탑으로 달려갔다.

 

신마성 무사들은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격전을 벌이는 거라면 밀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몸을 빼서 유령탑으로 달려가는 것은 막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유령탑에 접근한 사람들은 새롭게 생긴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안이 사지(死地)라 해도 상관없다는 듯, 잔뜩 기대를 품고서.

 

하긴 신마성 무사들과 싸우는 것도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 누구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신마성 무사들과 싸우는 것보다는 전설의 신비를 파헤치는 모험에 손을 얹을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유령총에 있다는 보물을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구룡회와 남궁세가 쪽의 무사들이 개미굴로 들어가는 개미처럼 유령탑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신마성 무사들을 지휘하던 초로인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

 

“보물에 눈이 멀어서 그곳이 지옥인 줄도 모르고 잘도 들어가는군.” 

 

그때 전당문이 달려와 그에게 보고를 올렸다.

 

“전 장로님, 놈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전 장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에서 살광이 일렁이는 그는 팔대신마 중 한 사람인 소혼신마(燒魂神魔) 전우림이었다.

 

보고를 받은 그는 가볍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유령탑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자. 각 조를 지휘할 사람들은 통로를 숙지했겠지?”

 

“예, 장로.”

 

“후후후, 좋아, 그럼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해 볼까?”

 

전우림은 살소를 지으며 유령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전우림이 수하들과 함께 유령탑으로 들어가던 그 시각. 유령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한 명의 백의인과 열아홉 명의 흑의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듯 서슴없이 틈바구니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막고 있던 오십 명의 신마호령단 무사들은 뒤에서 나타난 그들을 보고 다짜고짜 살수를 썼다. 

 

신마호령단이 받은 명령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들어오는 자든 나가는 자든, 신마성의 사람 외에는 모두 죽여라! 

 

그런데 들어오는 자는 신마성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선 스무 명도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고 마주 손을 썼다. 

 

그들이 받은 명령도 오직 하나뿐이었다.

 

―유령곡 안에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유령곡의 비밀을 영원히 묻어라!

 

하늘은 유령총에 대한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십 대 오십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백을 셀 수 있는 시간이 지날 즈음, 신마호령단 무사들 반이 죽고, 그들의 표정에 공포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스물을 세었을 때는 오십 명 중 살아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반면, 안으로 들어온 스무 명은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신마호령단의 부단주 소구명은 자신이 당한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이 꿈이 될 수는 없었다. 그도 그 정도는 알았다. 하기에 그는 죽기 직전,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스무 명의 수장으로 보이는 하늘색 청삼 중년인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시뻘건 선혈이 튀는 격전의 중심지에 있었는데도, 청삼 중년인의 옷에는 피 한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소구명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늘 밖에서 온 사람들.”

 

그러고는 손을 들어서 허공을 그었다. 

 

서걱.

 

청삼 중년인을 바라보는 소구명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그의 목에 한 줄기 붉은 선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붉은 선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소구명은 허공을 바라보며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그는 이미 목뼈와 경동맥과 신경이 모두 끊겨서 즉사한 상태였는데, 기이하게도 웃는 표정이었다. 

 

청삼 중년인은 소구명이 쓰러지는 걸 끝까지 보지도 않고 협곡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리석은 자들. 유령총이 어떤 곳인 줄도 모르고 무작정 문을 열려고 하다니…….’

 

유령총은 금지의 땅. 절대 열려서는 안 되는 곳이다.

 

만약 욕심을 부리고 유령총을 열려는 자가 있다면, 만인(萬人)이라 해도 살려둘 수 없음이니…….

 

 

 

3

 

 

 

소구명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던 그 시각. 운조평이 석문에서 날듯이 뛰어나왔다.

 

그는 좌우를 둘러본 뒤 위태곤에게 물었다.

 

“놈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동 장로님께서 함정으로 떨어뜨렸는데, 그곳에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통로가 있어서 그곳을 통해 도주 중입니다.” 

 

“도망쳤다고?”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지금 동 장로님과 등 장로님이 쫓고 있으니 곧 잡힐 것입니다. 설령 놈들이 운이 좋아서 그분들의 손을 벗어난다고 해도 미로로 들어갔다면 사냥감이 될 뿐이지요.” 

 

“내 손으로 풍천이란 놈의 주둥이를 찢어 버려야 속이 시원할 텐데, 아쉽군.”

 

운조평은 풍천이 당장 눈앞에 있으면 씹어 먹을 것처럼 이를 갈았다.

 

위태곤은 운조평의 표정만 보고도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했다.

 

“사숙, 유령적이 가짜였습니까?”

 

“진짜였다면 내가 이렇게 화내겠느냐?”

 

운조평은 짜증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위태곤을 책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위태곤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운조평의 시선을 피했다. 

 

유령적이 가짜인 줄도 모르고 화청백 등을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은 자신의 잘못일 수도 있었다. 애초부터 유령적의 형태를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저질러진 실수지만.

 

그러나 지금은 유령적의 진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부는 유령총의 비밀을 포기하더라도 구룡회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둔 터였다.

 

“구룡회와 남궁세가 놈들도 미로로 들어갔습니다. 세 분 장로님과 본성의 무사들이 지금 사냥을 하고 있는데, 일단 그 일부터 마무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몇 놈이나 들어갔느냐?”

 

“곡 안으로 들어온 구룡회와 남궁세가 놈들의 숫자가 삼백이 조금 넘는데, 그중 안으로 들어간 자는 이백오륙십 명쯤 됩니다.”

 

운조평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좋아, 그놈들이 모두 죽으면 구룡회도 타격이 크겠군.”

 

“모두가 각 파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예 무사들입니다. 그들을 제거하면 적어도 이 할 이상의 타격은 입을 겁니다.”

 

“유령총의 비밀을 얻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 정도면 괜찮은 성과라 할 수 있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숙께서도 미로로 내려가실 겁니까?”

 

운조평의 입가에 살소가 맺혔다.

 

“그래 볼까?”

 

그때였다.

 

구구구궁.

 

한쪽 벽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밖과 통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열렸다. 

 

남호가 그 안에서 뛰어나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위태곤을 불렀다.

 

“단주!”

 

위태곤은 눈살을 찌푸리며 남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계곡의 입구에 나타났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 그게 무슨 말인가? 입구는 신마호령단의 소구명이 지키고 있지 않는가?”

 

“그게…… 아무 연락도 없는 상태에서 들어온 걸 보니, 아무래도 신마호령단이 당한 것 같습니다.”

 

“뭐야?”

 

대경한 위태곤은 운조평을 바라보았다.

 

운조평은 이마에 내천(川) 자가 그려졌다.

 

“몇 명이나 되느냐?”

 

“이십 명쯤 됩니다.”

 

“이십 명? 음,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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