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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8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화

장천운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쯤에서 우문각이 나섰다.

“백리 전주, 장 조장의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것 같소. 좀 더 조사해본 후에 결정을 내리는 게 어떻겠소?”

장천운의 말에서 허점을 찾지 못한 백리호는 끓는 속을 억지로 눌렀다.

“좋소. 그럼 육선기를 당분간 뇌옥에 감금하고 조사를 진행하겠소.”

“뇌옥에 감금하는 건 내가 허락할 수 없네!”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태상호법 여철숭이 나타났다. 그가 노기 띤 표정으로 백리호를 직시했다.

“이미 육 호법은 부상이 심한 상태네.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도주하지도 못할 것이니 그의 방에서 치료를 받게 할 것이야. 그래도 걱정된다면 감시무사를 상주시키든 마음대로 하게.”

 

***

 

우문각이 거처로 돌아가면서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덕분에 육 호법이 위기를 모면한 것은 다행이다만, 너무 위험한 일을 했어.”

“저도 압니다. 사실 저도 나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냥 놔두면 육 호법께서 죽을 게 뻔한데 그냥 있을 수도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총사께서 그런 상황에 처했는데, 제가 가만있으면 좋겠습니까?”

백리호야 육선기를 바로 죽일 수 없다. 문제는 육선기 스스로가 목숨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는 점이다.

아마 조금만 늦었다면 자신의 잠력을 격발시켜서 심맥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총사라는 우문각이 왜 그걸 모르겠는가.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진 그는 슬쩍 말을 돌렸다.

“앞으로 백리호가 너를 노리게 될 거다.”

“후우,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안 그래도 저를 쳐다보는 독고민 일당의 눈빛이 수상한데, 백리 전주까지 적으로 삼았으니. 오지랖 넓으면 명이 짧아진다는데…….”

사실 명의 길고 짧음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무창의 점쟁이들마다 자신을 보면 말했다. 명이 길다고. 자신처럼 명 긴 사람은 처음 본다고.

장천운은 명이 짧아지는 것보다 귀찮아질까봐 더 걱정이었다.

 

백리호의 보고를 받은 공손백의 미간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일이 귀찮게 되었군.”

“죄송합니다, 사형. 그 애송이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틀어졌습니다.”

“계획은 좋았다만 너무 성급하게 처리했어.”

“육선기가 몇 놈과 모의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놈들의 정체만 밝혀냈으면 좋았을 텐데…….”

“놈들도 지금쯤 놀라서 당분간 숨죽인 채 옴짝달싹 못할 거다. 일단은 그 정도로 만족해.”

“예, 사형.”

공손백은 잠시 허공을 응시한 채 생각을 정리했다. 차갑게 느껴지는 그의 눈빛에서 순간적으로 한광이 번뜩였다.

“종탁의 입을 막아라.”

“예?”

“입안의 종기는 번지기 전에 일찍 터트려서 없애버릴수록 좋은 법이지.”

“지금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아끼다가 썩는 것보다는 나아. 아까워하지 말고 꼬리를 끊어낼 때는 완벽하게 끊어내도록 해.”

백리호는 차가운 공손백의 표정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가 알던, 몇 달 전의 공손백과 느낌이 달랐다.

말투도, 눈빛도.

자리가 달라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본래 그런 사람이었던가?

숨을 몰아쉰 그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사형.”

 

 

17장: 땀을 한 방울 더 흘리면, 피를 한 방울 덜 흘린다!

 

 

장천운은 수혼대에서 소천전을 오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두문불출하며 무공만 수련했다. 총사에게 가는 것도 자제했다.

당분간은 외부와 발을 끊고 수련이나 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한 것이다.

긴급한 일이 있으면 총사가 연락하겠지.

사흘 동안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그 동안 흑월조만 장천운의 담금질에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그날도 흑월조와 함께 수련을 하고 방으로 가는데 저만치서 걸어오는 류화와 연송하가 보였다.

그가 걸음을 멈추자 류화가 먼저 물었다.

“수련하고 오나 보지?”

“웬 일로 둘이 함께 다니는 거야?”

“식사하러 가는 길이야.”

장천운은 의심스런 눈빛으로 류화를 쓱 훑어보고는 연송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송하야, 혹시 류화가 너 괴롭히거나 하진 않아?”

“그런 건 없어.”

“혹시 그런 일 있으면 말해. 오빠가 혼내줄 테니까.”

류화는 눈을 치켜뜨고 장천운과 연송하를 번갈아보았다.

“흥. 누군 좋겠네? 장래 낭군님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항상 챙겨주니까.”

연송하는 그 말에 홍조를 드리운 채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자 류화가 한마디 더했다. 입술을 비틀면서.

“하긴 내가 봐도 둘은 잘 어울려. 신분도 거기서 거기고.”

양 볼에 홍조를 띠었던 연송하가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장천운이 그 모습을 보고는 눈에 힘을 주었다. 류화를 한번 노려본 그가 홱 고개를 돌려 연송하에게 말했다.

“연송하.”

“응?”

“오빠만 믿고 어깨 펴. 네가 뭐가 딸려서 그래? 솔직히 얼굴 빼면 너도 류화에게 뒤질 것 없거든? 몸매는 네가 훨씬 낫고. 가자, 밥 먹으러. 나도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침이 튈 것처럼 말을 마구 쏟아낸 장천운은 할 말 다 했다는 듯 돌아섰다.

연송하는 벙 찐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고 걸음을 옮겼다.

반면 류화는 도끼눈을 치켜뜨고 장천운의 등을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흑도 건달 주제에……!’

그때 뒷마당에서 나오던 구산이 류화를 보고 활짝 웃었다.

“하하하, 이게 누구야? 류화잖아? 나를 기다린 거냐?”

홱 고개를 돌린 류화의 눈초리가 위로 쭉 올라갔다.

“내가 왜 곰을 기다려?”

빽 소리친 그녀는 매몰차게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를 떴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구산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좋으며 좋다고 해. 그럼 내 넓은 가슴으로 받아줄 테니까.”

“헛소리하지 마! 나는 곰은 싫거든?”

 

***

 

총사가 사람을 보내온 것은 나흘 째 되던 날이었다.

장천운이 어슬렁거리며 비령각에 찾아가자, 우문각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종 장로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어디서 발견되었습니까?”

“구석진 창고에서 찾았다더군.”

설홍검(雪紅劍) 종탁. 남조연과 함께 소성주파로 분리되었던 사람이다.

소성주 쪽 고수가 죽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

공손백파가 소성주파를 압박하기 위해서 죽였다고 하기에는 장소가 어울리지 않았다.

충격을 주려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보다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게 나았다.

그래야 소성주파가 더욱 움츠러들 테니까. 겁에 질린 자는 돌아설 수도 있고.

“어떻게 죽은 겁니까?”

“자신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

“자결했단 말입니까?”

“시신을 발견하고 조사한 벽호당에서는 그렇게 말하더군.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자결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래. 종탁은 자결할 이유가 없거든. 그리고 자결할 거면 뭐 하러 구석진 창고로 가서 하겠느냐? 자신의 방에서 그냥 죽으면 되는데.”

그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저들이 죽였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왜 창고에서 죽였을까요? 아니, 왜 종 장로는 구석진 곳에 있는 창고로 나갔을까요? 남 장로님이 살해당한 후부터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어졌다는 걸 잘 아실 텐데요.”

우문각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육선기사건 때도 느꼈던 바지만, 추론하는 것 하나는 대단했다.

자신이 일각이나 걸려서 생각해낸 걸 말 몇 마디 하던 중에 깨닫다니.

“나 역시 그게 의문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더군.”

장천운이 멈칫하더니 우문각을 바라보았다.

“혹시…… 토사구팽(兎死狗烹)?”

우문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가능성이 크다. 종 장로가 비록 남 장로와 가깝게 지내긴 했지만, 심지가 굳은 사람은 아니었거든.”

“그게 사실이면 저흰 결국 지금까지 헛수고만 한 셈이 되었군요.”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의 조사 덕분에 저쪽에 빌붙어 있는 자들을 몇 알아냈으니까.”

“그건 그렇군요.”

“문제는 지금부터다. 종탁이 정말 남 장로를 죽인 범인이라면 저들은 이제 거리낄 게 없으니 앞으로 더 강하게 나올 거다. 너도 조심해.”

“저보다 총사께서 더 조심해야 할 겁니다. 사실 저들이 총사만 끌어들이면 싸움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죠. 아마 계속 버티면…….”

우문각이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안 그래도 연락이 왔다. 결정을 내리라더군. 그런데 말하는 투를 보니, 나만 회유하면 너는 자동으로 따라올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총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따라갈 거라 보십니까?”

우문각이 그 질문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소리지. 네가 내 말을 순순히 들을 놈이었으면 진즉 비령각으로 끌어들였을 거다.”

장천운도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총사님은 저를 잘 아시는군요.”

“그래봐야 반이나 알까?”

“에이, 왜 이러십니까? 제 속까지 들여다보신 분이.”

우문각은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장천운이 처음으로 무섭게 느껴졌다.

‘적이 될 상황이면…… 제일 먼저 제거해야 될 놈이야.’

그와 동시에 장천운이 흠칫하며 이마를 찡그렸다.

“응? 왜 이리 등골이 오싹해지죠?”

‘헛!’

“아무래도 누가 저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있나 봅니다. 꼬투리 잡히기 전에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설마 나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아니겠지?’

그때 장천운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각주님의 마음이 저를 이곳으로 데려올 때와 변함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구천대전 서쪽의 천혼전과 철혈단 사이에는 약 천 평 크기의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비령각에서 무화원으로 돌아가려면 그 정원을 가로질러야 했다.

구름이 꾸물거리며 몰려드는 오후, 장천운은 이마를 찌푸린 채 터덜터덜 서쪽 정원을 가로질렀다.

‘제길, 갈수록 소성주만 힘들어지는군. 이러다가는 해가 가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저쪽으로 넘어가겠어.’

이미 간부 중 십여 명이 공손백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빠른 속도로 늘어난 공손백파의 전력이 마침내 오 할의 벽을 넘겨서 역전이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더 빨리 벌어질 터.

‘이러다가 이대로 밀려나는 거 아냐?’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총사도 그걸 알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성주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사실로 드러나기만 하면 방법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성주는 지병으로 죽었다. 몇 년 간 성주를 치료한 신의 황사중이 결론을 내렸지 않은가.

결국 성주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버티지 못하고 자결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성주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다.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하긴 그 말 이후의 파장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 늦으면 밝혀진다 해도 소용이 없어.’

그때는 공손백이 구천성을 완전히 장악한 뒤일 테니까. 밝혀져 봐야 피바람만 불겠지?

‘에이, 골치 아픈 생각은 나중에 하자. 나도 미쳤지. 흑도 건달 출신이 언제부터 대 구천성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그는 발밑의 마른 나뭇가지를 툭 차서 앞으로 날렸다.

그런데 날아가는 나뭇가지 사이로 저만치 앞에서 다가오는 자들이 보였다.

‘어? 저 자식들이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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