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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40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40화

 

40화

 

 

 

 

 

 

화청백은 풍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거기다 탁자 위에는 쟁반에 담긴 술병과 안주가 있고.

 

어디를 간 걸까? 정보가 새어나가면 안 되니 함부로 개인행동을 해서는 안 되거늘. 혹시 밖에 나가서 엉뚱한 짓이라도……? 

 

그 생각이 들자 걱정이 태산 같았다. 풍천이 하는 짓을 보면 누구라도 자신처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상한 놈들이 있어서 그들을 살펴보러 갔다고?

 

눈빛을 보니 거짓말이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사실인가?”

 

“아까 저녁 식사할 때 들어온 놈들 있죠? 바로 그놈들이더군요. 한 무리는 골목 구석에 있고, 한 무리는 건너편 객잔 이 층에 있습죠.”

 

“천혈궁인가?”

 

“그건 아닌 것 같던데요?”

 

화청백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으음, 누가 냄새를 맡았나 보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들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일단 그대로 놔두었지요.”

 

“잘했네.”

 

일이 커지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해졌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풍천이 벌인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 정도야 당연히 제가 알아서 할 일이지요.”

 

풍천은 씩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화청백은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는 미리 말하고 움직이게. 하마터면 비상을 걸어서 자네를 찾으러 다닐 뻔했잖은가?”

 

“걱정 마십시오. 제가 뭐 어린애입니까? 하, 하.”

 

‘어린애라면 차라리 낫지.’ 

 

화청백은 쓴웃음을 지으며 못 미더운 눈으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그때 풍천이 쟁반 위에 있는 술병을 들어 술잔에 기울였다.

 

“어차피 여기까지 오셨으니 한잔하시……. 어? 술이 다 날아갔나? 쪼끔밖에 없네?”

 

“자네 기다리다 심심해서 내가 한잔했네.”

 

심심해서라기보다 초조해서 마신 거지만.

 

풍천은 술병을 거꾸로 들고 혀를 내밀었다. 한 방울도 아깝다는 듯.

 

머쓱해진 화청백은 그 모습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네. 새벽에 보세.”

 

“쩝쩝, 그러죠 뭐.”

 

바로 그때, 돌아선 화청백이 멈칫하며 코를 킁킁거렸다.

 

“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군.” 

 

“이상한 냄새요?”

 

“분 냄새 같기도 하고…….” 

 

의아해하던 풍천은 곧 그 냄새의 진원지가 자신의 팔임을 깨달았다. 홍매가 매달리는 바람에 싸구려 향내가 옷에 배인 것이다.

 

갑자기 이마에 땀이 맺힌 풍천은 너스레를 떨며 별소리 다한다는 투로 말했다. 

 

“하, 하, 하. 객잔이라는 곳이 원래 이런저런 손님 받는 곳 아닙니까? 제가 들어왔을 때부터 냄새가 조금 나더군요. 창문을 열어놔서 다 빠진 줄 알았는데…….”

 

“하긴…….”

 

화청백은 그 말도 일리 있다 생각하고 걸음을 옮겼다.

 

풍천은 화청백이 나간 뒤에야 이마의 땀을 닦았다.

 

‘후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따스한 햇살 아래 드러누운 배부른 개처럼 침상에 벌렁 누워서 입이 쫙 찢어지도록 웃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백초령 납치사건 덕분에 돈이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그렇게 고민했던 일이 한 가지 해결되었다.

 

‘크하하하, 드디어 위약금을 다 챙겼다!’

 

뿐이랴! 집을 고칠 돈까지 생겼다. 

 

이제 조금만 더 벌면, 마누라를 얻어도 고생시키지 않을 수 있으리라.

 

‘아주 이쁜 마누라를 얻어야지. 아니, 아니지, 마음씨 좋은 마누라를 얻어야지! 초령이처럼 덤벙거리는 여자보다는…….’

 

그런데 백초령을 떠올린 순간, 하늘을 날 것 같던 기분이 갑자기 땅이 푹 꺼진 것처럼 가라앉았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풍천은 반쯤 감긴 눈을 껌벅이며 턱을 괴었다.

 

‘초령이도 성질만 고치면 나쁘지 않은데, 고 계집애는 고집이 세서 쉽게 고쳐지지 않을 거야. 에이, 내가 왜 고생을 사서해?’

 

풍천은 다시 뒤로 벌렁 누웠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맑았다. 평소라면 뒤로 누워서 열을 세면 잠이 드는데, 반각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백초령이 떠다니고 있었다. 

 

제기랄!

 

 

 

 

 

제6장. 왜 사람을 귀찮게 해?

 

 

 

 

 

1

 

 

 

풍천 일행은 해가 뜨기 전에 객잔을 나섰다.

 

하늘에는 구름이 옅게 끼어 있고 산들바람이 부는 전형적인 봄날이었다. 장강까지는 이백 리 정도, 해가 지기 전에 강을 건너려면 서둘러야 했다. 

 

두어 번 이 길을 가봤다는 석초산이 선두를 맡고, 풍천은 뒤로 처져서 사조원과 함께 걸었다.

 

말이 걷는 것이지 그들의 걸음은 일반인이 뛰어가는 것만큼 빨랐다. 

 

동성 동남쪽으로는 산이 거의 없고 평지가 대부분이어서 그리 힘든 길은 아니었다.

 

백 리를 이동한 일행은 잠시 숨을 돌렸다. 

 

여기저기 둘레가 갈대로 뒤덮인 크고 작은 호수가 보였다. 장강이 가까워진 듯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일행은 객잔에서 가져온 만두와 육포로 대충 점심을 때웠다. 

 

“천혈궁이 포기했나 보군요.”

 

구양종이 육포를 질겅거리며 말했다.

 

화청백도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대원보가 가까우니 그들도 무리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요.”

 

여강(廬江)에 있는 대원보(大原堡)는 백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중소 문파로, 현 가주인 원소청의 부인이 남궁세가의 사람이었다. 대원보를 건드리면 남궁세가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천혈궁이 대원보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원보는 무사 수 이백 정도의 중소 문파지만, 그 힘만은 대문파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강했다. 

 

특히 현 보주인 절운검호(絶雲劍豪) 원소청은 대원보 역사 이래 가장 걸출한 인물로, 안휘성 내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는 고수였다. 

 

오죽하면 남궁세가가 그를 세가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먼저 혼사를 청했을까. 

 

하지만 풍천은 두 사람과 생각이 조금 달랐다.

 

‘속단은 이르죠. 천혈궁은 대원보를 두려워할 놈들이 아니거든요?’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화청백이 방을 나간 후, 그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한 시진을 보내야 했다. 이원심법도 소용이 없었고, 물구나무서서 숫자를 백아흔아홉까지 세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그 모든 잘못을 밖에서 감시하는 놈들에게 뒤집어씌웠다.

 

‘생각해 봐, 누가 쳐다보고 있는데 잠이 오겠어?’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면서. 

 

결국 그는 감시하는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때 그놈들 말고도 수상한 다른 놈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두 무리 중 하나, 천혈궁 놈들이었다.

 

물론 그 사실은 화청백에게 말하지 않았다.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우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며. 남들이야 뭐 어떻게 생각하든.

 

‘어차피 공격할 의지가 없어 보였거든.’

 

대신 약간 잔머리를 써서 그들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감시하던 다른 자들과 숨바꼭질을 하게끔 해준 것이다.

 

‘그건 그렇고, 화 공자도 코를 제법 심하게 골던데, 부인이 힘들겠어. 코골면 옆에 사람이 무지 괴롭다던데.’

 

풍천이 자신의 부인을 걱정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화청백이 말했다. 

 

“장강을 건너면 동릉에서 쉬지 않고 곧장 청양까지 이동할 거요. 그러니 배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오.”

 

구양종이 화청백을 바라보았다.

 

“장강을 건너면 어두워질 것 같습니다만.”

 

화청백은 그제야 감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있소. 천혈궁은 아니고, 아무래도 안휘의 대문파들이 우리가 유령총으로 가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소. 그러니 동릉으로 들어가서 쉬는 척하면서 허를 찌를 생각이오.”

 

미리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경계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고, 그럼 감시자들이 더욱 조심할 게 분명했다. 하기에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화청백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진관악을 비롯한 수호검단 사람들은 이미 말을 들었는지 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때 용수명이 풍천의 옆으로 다가와 털썩 앉았다.

 

“풍 조장은 알고 있었나?”

 

“뭘요?”

 

“감시자가 있다는 거.”

 

그 정도야 뭐…….

 

사조원들은 당연히 그렇게 말할 줄 알고 풍천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풍천은 그들의 예상을 깨끗이 깨고, 한 단계 경지가 더 오른 말투와 표정으로 대꾸했다.

 

“용 형은 몰랐습니까? 생각보다 둔하시네요?”

 

용수명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풍천이 아무리 엉뚱하다지만 설마 그리 대답할 줄이야.

 

“하, 하. 내가 잠이 깊게 들었나 보군.”

 

그는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머쓱하게 대답했다.

 

풍천은 용수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고의로 비웃었다. 범인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용수명은 달랐다.

 

‘역시 수호검단의 겉멋만 든 사람들하고는 많이 달라.’

 

그동안 몇 번이나 엉뚱한 짓을 했는데도 용수명은 한 번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심지어 사조의 조원조차 한두 번은 찌푸렸거늘.

 

왜 그런 걸까?

 

둔해서? 그건 아닐 것이었다.

 

‘그럼 신무전의 촉망받는 기재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겠지.’

 

자신에게 호감이 가서? 그건 자신이 싫었다.

 

‘느끼하잖아.’

 

그럼 왜!

 

풍천이 직접 물어보았다.

 

“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요?”

 

용수명이 피식 웃으며 간단하게 답했다.

 

“재미있는 사람 같아서.”

 

풍천은 그 대답을 듣고 용수명과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지. 냉정하게 사람을 분석해서 보거든.’

 

그는 자신의 속을 용수명이 들여다보는 걸 원치 않았다.

 

“관심 끄쇼. 나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니까.”

 

“훗, 역시 재미있는 친구야.”

 

“나 당신 친구 아니거든요?”

 

“친구라……. 그것도 괜찮겠군. 어떤가? 우리 친구하지 않겠나? 나이야 내가 몇 살 많겠지만, 객지에서 만나면 십 년 차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이라지 않는가?”

 

풍천은 더 상대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용수명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사람은 여기서 그만둘 텐데, 정말 끈질긴 사람이었다.

 

“어이, 풍 조장. 그럼 이제부터 친구처럼 지내는 거네?”

 

이 사람이 정말! 

 

‘좋아, 한 번 해보자 이거지?’

 

눈을 두어 번 껌벅인 풍천은 홱, 고개를 돌리고 버럭 소리쳤다.

 

“용수명! 너 정말 그럴래? 왜 사람을 귀찮게 해!”

 

“…….”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용수명도 풍천의 반격에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풍천은 주위가 조용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쉴 만큼 쉰 거 같은데, 그만 가죠?”

 

사람들은 풍천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두 사람,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한 사람은 모두가 신경 쓰이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하게 있던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갑자기 친구를 하자고 하지를 않나, 진짜 친구처럼 부르면서 화를 내지 않나,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곤혹스럽기는 화청백도 마찬가지였다.

 

‘용 형이 왜 풍천하고 친구를 하겠다고 하는 거지?’ 

 

그가 아는 용수명은 아무나 친구로 삼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신분은, 나이가 한참 어리고 엉뚱한 성격을 지닌 풍천과 친구로 지낼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도무지 용 형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군.’

 

그렇다고 꼬치꼬치 묻기도 어정쩡한 상황. 그는 일단 그곳을 뜨기로 했다.

 

“출발합시다.”

 

 

 

풍천은 용수명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용수명은 다행히 억지로 쫓아다니지는 않았다.

 

‘성격도 참 별난 사람이네.’

 

―그런 너는!

 

아마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그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격을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쳐다보든 말든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흔들리는 갈대 사이를 걸어가는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런 곳에서 복수의 칼을 뽑는다면 제법 멋질 것 같았다.

 

‘바람이 부는 갈대밭에서 복수를 하다! 멋지잖아?’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것은 장강을 이십 리 정도 남겨놓았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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