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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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39화
39화
답을 받으려면 아무리 빨리도 사흘은 걸린다. 반면 유령총은 이틀이면 도착할 것이고.
그동안 정보를 받을 수 없다면 결국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악진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최후의 방법을 써서라도 이십 냥으로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위에다 연락하고 상황을 지켜볼 것인지.
문제는 최후의 방법을 쓰고도 놈이 굽히지 않았을 때였다. 그럼 백무천에 대한 청부도 저절로 파기 된다.
‘더 주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미친놈!’
물론 유령총의 주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정도 돈은 큰 것이 아니다. 풍천의 능력으로 그걸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그렇지.
‘제길, 모험을 해봐?’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욕먹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당장 득이 되는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나중에 죽이고 회수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악진표는 풍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으음……. 좋아, 자네 말대로 위에다 말씀드려보지. 단, 선불을 받은 만큼 기본적인 정보는 전해 줘야 하네.”
풍천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악진표는 주기 싫은 걸 억지로 주는 것처럼 머뭇거리며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주머니를 가볍게 낚아챈 풍천은 배부른 표정을 지으며 별걱정 다한다는 듯 말했다.
“내가 뭐 공짜나 좋아하는 도둑놈인줄 아쇼? 그 정도야 협조해야죠.”
남들 다 아는 정도 알려주는 게 뭐 힘들겠어?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쬐끔이라도 빨리 알게 해주지. 난 받은 만큼 주는 사람이거든. 하, 하.’
풍천은 흐뭇한 마음으로 술병을 기울여 술잔을 채웠다.
악진표는 그런 풍천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 자식, 도둑놈이라는 말, 나에게 한 말 같은데……. 죽일 때 이를 모조리 부수고, 얼굴 껍질을 벗겨 버려야겠어.’
풍천도 이를 가는 악진표를 흘겨보며 술잔을 들었다.
‘어서 연락해라. 움직임이 많아지면 틈이 보이지 않겠어? 흥, 네놈들이 먼저 약속을 어겼으니 나를 원망하지 마.’
청부를 주고받을 때 무언의 약조가 행해진다. 서로의 정체에 대해서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약조를 어겼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술잔을 비운 풍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보겠수. 재미있게 노쇼.”
“하루에 한 번씩 연락하겠네.”
풍천은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 방을 나섰다.
악진표는 풍천이 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악진표와 나이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이는 왜소한 장한이었다.
악진표는 그제야 술을 한 잔 목구멍에 털어놓고 입을 열었다.
“다 들었지? 주군께 그대로 연락해.”
“예, 령주.”
풍천은 계단을 내려와 밀월루의 입구로 향했다. 그때 한쪽 칸막이 안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 계집이 어디서 말을 안 들어!”
짝!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여인이 튀어나오더니 바닥을 굴렀다.
풍천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바로 옆까지 굴러온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옷이 풀어헤쳐지고 얼굴에 붉은 손자국이 나 있는 여인. 그녀는 다름 아닌, 들어왔을 때 자신을 잡은 여인이었다.
풍천은 순간적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은 눈물로 인해서 분이 볼썽사납게 얼룩져 있었는데, 입술을 악물고 바르르 떠는 그녀의 두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이 깃들어 있었다.
맞은 고통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삶의 고통이 쌓이고 쌓여 가슴에 딱지가 내려앉은 사람만이 지닌 그런 아픔이었다.
‘제길, 그렇게 아프면 그만두지…….’
풍천이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그녀를 밖으로 내던진 자가 칸막이에서 나오더니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퉤, 잡년 때문에 기분만 상했네. 이년아, 벗으라면 벗지, 나이 처먹은 게 뭐 감출 것 있다고 빼?”
“돈도 안 줄 거 아냐!”
여인이 악을 썼다.
“네년 같은 노계는 내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돈은 무슨 돈이야? 뭐 볼 게 있다고? 미친 년.”
“흑흑흑…….”
여인은 바닥에 엎드린 채 서럽게 울었다. 갈수록 울음소리가 커져가자, 장한이 건들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조용히 안 해? 이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그쯤 하시지?”
풍천이 장한을 차디찬 눈으로 쳐다보며 제지했다.
장한은 피식 웃으며 턱을 쳐들었다.
“넌 뭐야, 이 개자식아. 이년 기둥서방이라도 되냐?”
“너 같은 양아치새끼 잡는 저승사자다, 씨, 발, 놈. 아!”
“뭐, 뭐? 이 새끼가……·.”
장한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미처 말을 다 맺기도 전에 허공을 날았다.
퍽!
일권이 턱을 후려치면서 장한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장한은 이 장을 날아가더니 칸막이 안으로 떨어졌다.
느닷없는 소란에 밖으로 나온 사람이 대여섯 명 정도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어떻게 맞아서 날아갔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풍천은 한 주먹에 장한을 날려 보내고 손을 털었다.
턱이 으스러지고 골에 심한 충격을 받아서 앞으로 정상적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도 성한 이는 몇 개 없을 터, 죽을 때까지 먹고 싶은 것 제대로 못 먹고 지낼 것이다.
하는 짓 보니 그 정도 벌을 받아도 싼 놈이었다.
“저자는 더 이상 걱정 마쇼.”
풍천은 똥파리 한 마리 잡은 것처럼 가볍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여인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 고마워요, 공자.”
풍천은 어깨를 으쓱 추켜올렸다.
“고맙기는요. 저런 놈은 맞아도 싸죠. 몸은 괜찮아요?”
여인은 대답 대신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서 가세요, 공자. 저놈의 일행이 곧 올 거예요. 무척 사나운 놈들이니 마주치지 않는 게 좋아요.”
“일행? 어떤 자들이오?”
“흑표회(黑豹會)라고, 이 지방에서 제일 사나운 놈들이에요. 놈들이 오면 제가 둘러댈 테니 어서 가세요.”
그 말이 떨어지자, 구경하던 자들이 슬그머니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풍천은 대충 상황을 깨닫고 여인에게 말했다.
“당신도 여길 벗어나지 그럽니까?”
여인은 눈물을 소매로 대충 닦고, 풀어헤쳐진 가슴을 여미면서 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돈을 얼마 못 벌었어요. 애들 먹일 것 사고 부모님 약값 하려면 더 벌어야 돼요. 그러나 저는 걱정 말고 어서 가세요.”
풍천은 이마를 찌푸렸다.
애들 먹을 양식 사는 데 돈이 얼마나 들겠는가. 약값이 비쌀 수도 있지만, 보아하니 비싼 약을 쓸 처지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그 돈이 없어서 위험한 이곳에 남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안쪽에서 중년인과 장한 둘이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홍매야! 무슨 일이냐?”
“주인 나리, 그게 어찌 된 일이냐 하면…….”
여인은 중년인과 풍천을 번갈아보며 말을 더듬었다.
풍천이 나서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치듯 말했다.
“저놈이 갑자기 나에게 욕을 하지 뭐야? 그래서 내가 한 대 팼지! 마음 같아서는 죽여 버리고 싶은데, 이 여자가 말려서 참았다니까? 당신이 주인이야? 왜 저런 놈이 설치게 놔두는 거야?”
중년인은 홍매와 풍천을 번갈아 보았다.
풍천은 그쯤에서 일을 확실하게 매듭지었다.
“만약 또 욕을 하면, 정말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욕먹는 걸 무지 싫어하거든!”
버럭 소리친 그는 밀월루의 중앙에 있는 아름드리기둥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쾅!
우르르릉!
천둥이라도 친 듯 건물이 통째로 흔들렸다.
하지만 중년인은 꼼짝도 하지 않고,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기둥만 바라보았다.
기둥 한가운데에 주먹 모양의 구멍이 깊게 파여 있었다.
중년인 뒤에 서 있던 장한들도 그걸 보더니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몸을 움츠렸다.
“혹시라도 저놈들 일행이 오거든 말해! 만약 본 공자의 기분을 더럽게 하면, 흑표회를 흑서회(黑鼠會)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이야.”
중년인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굽실거렸다.
“아, 알겠습니다요, 공자님.”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풍천은 홍매를 바라보았다.
“이보쇼, 몸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오늘은 그만 들어가지 그래요?”
“하지만 공자…….”
“아아, 먹을 것 하고 약 살 돈은 내가 줄 테니까, 내 말대로 하쇼.”
“예, 공자…….”
홍매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렸다.
흑표회 놈들이 오면 제일 먼저 자신을 닦달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풍천이 기둥에 낸 구멍을 보면 함부로 못할 것이다.
거기다 돈까지 주겠다고 하니 은인이 따로 없었다.
밖으로 나온 풍천은 밀월루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후 홍매에게 두 냥 크기의 은자를 주었다.
홍매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또 눈물을 흘렸다.
은자 두 냥이면 한 달 동안은 양식과 약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풍천은 눈물을 흘리는 홍매를 보며 담담히 웃었다.
베푼다는 것은 언제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일단 집으로 가서 쉬쇼. 애들이 기다릴 거 아뇨.”
홍매는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모든 걸 아낌없이 주기로 했다. 집에는 조금 늦게 들어가도 되었다. 애들은 어차피 다 자고 있을 테니까.
“공자님, 어디에 머무실 겁니까? 소첩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공자님을 따라가 하룻밤 모시…….”
헉!
숨이 턱 막힌 풍천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퍽, 꺼지듯이 사라졌다.
“응? 공자님이 어디로 가셨지?”
홍매는 앞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풍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아, 정말 마음에 드는 공자님이었는데…….’
4
풍천은 창문을 통해 나왔으니 창문을 통해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객잔의 뒤쪽으로 돌아가는데 저만치 구석진 곳에 숨어 있는 자가 보였다.
달빛에 비친 그의 모습은 저녁 식사할 때 봤던 평범한 무사 중 하나였다.
‘으흥, 우리가 목적이었단 말이지?’
풍천은 바람처럼 뒤로 빠져서 다른 곳을 살펴보았다. 그때 건너편 건물의 이 층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곳도 객잔이었는데, 열린 창문 틈으로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워낙 틈이 좁아서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머리에 영웅건을 두른 것은 확인이 되었다.
‘저긴 나중에 들어온 놈이 있군.’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자들이 두 무리 이상은 된다는 소리였다. 천혈궁까지 합하면 셋이고, 자신에게 청부를 한 무리들까지 하면 넷이나 되었다.
‘복잡해지는군. 그럼 귀찮은 일이 많아지는데…….’
풍천은 잔뜩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객잔의 입구를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는 빗장이 걸려 있었는데, 그런 것 여는 것쯤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이 층으로 올라가자 경비를 서던 기종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장님, 어디 다녀오십니까?”
“속이 좀 안 좋아서…….”
기종탁은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구양종이 먹던 것까지 뺏어먹었으니 탈이 날 만도 했다.
‘그러게 작작 드시지 그랬수.’
풍천은 배를 쓰다듬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이 늦은 밤에 어디 갔다 오는가?”
화청백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풍천은 탁자 앞에 앉아 있는 화청백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가 된 사람은 언제든 흔들리지 않는 법이지.’
그는 자신에 찬 표정으로 되물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화청백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냉랭히 말했다.
“일 각 전에 왔네. 한데 내 질문에 왜 대답을 하지 않는가?”
일단 의자에 앉은 풍천은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고, 머리를 화청백 쪽으로 바짝 내밀었다.
“수상한 놈들이 있어서 어떤 놈들인지 알아보려고 나갔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놈들이 있지 뭡니까. 그것도 각기 다른 두 무리가 말입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