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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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35화
35화
그사이 절혼당의 무사들이 풍천 일행을 공격했다.
풍천만 뒤로 처져서 구경할 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절혼당의 무사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했다.
석초산과 나한조, 궁이정은 둘셋씩 맡은 채 일단 절혼당 무사들의 전진만 막았다.
비검당 사조원들도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절혼당 무사들이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했다.
용수명과 진관악을 비롯한 수호검단의 단원들은 그사이를 누비며 절혼당 무사들을 뒤로 밀어냈다.
그들의 실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백초령의 안전을 생각해서 방어에 주력했다.
반면 구양종은 기회가 왔다는 듯 한껏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그의 검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석초산이 급히 자제시켜야할 정도였다.
“구양 공자, 죽이면 일이 복잡해질지 모르오! 최대한 손에 사정을 두시오!”
구양종은 피를 보는 게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석초산의 말이 뜻하는 바를 알기에 살수는 최대한 자제했다.
그동안에도 강도위는 화청백의 방어막을 뚫기 위해 칠도를 더 휘둘렀다.
쩌저저정! 떠덩!
그러나 화청백이 펼친 방어막은 철옹성처럼 견고했다.
강도위는 화청백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오히려 검세에 밀려서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예상 밖으로 강력한 화청백의 검세에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네놈은 누구냐?”
화청백은 자신의 이름을 바로 밝히지 않았다.
묻는 걸로 봐서 자신을 모르는 듯했다. 그렇다면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냥 보내려던 마음이 달라질지 모르니까.
그런데 풍천이 뒤에서 불을 질렀다.
“신검일수 화청백이라는 이름을 들어는 보았나, 덩치 큰 자라 양반?”
강도위도 그 이름을 들어보았다. 그 이름에 어느 정도의 무게가 실려 있는지도 잘 알고 있고.
흠칫한 강도위는 화청백을 노려보았다.
“그대가 백무천의 대제자란 말이지?”
화청백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화청백이오. 오늘 일은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소만.”
강도위는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다른 놈도 아니고 신검문주의 대제자가 눈앞에 있다. 잡든지 죽이든지 할 수만 있다면 어지간한 죄는 용서가 될 것이었다.
“화청백, 미안하지만 그대는 보내줄 수 없다. 모두 전력을 다해서 이놈들을 쳐라!”
강도위는 수하들을 향해 고함을 치고는,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리고 화청백을 공격했다.
쉬이이익! 후우우우웅!
그가 도를 휘두를 때마다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귀신의 울음소리, 귀명(鬼鳴)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청백도 상대를 얕보지 못하고, 자신이 익힌 세 가지 검법 중 하나 청라십팔검을 펼쳤다.
상대는 천혈궁의 칠당 중 하나인 절혼당의 당주, 여유를 부릴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천혈궁과는 어차피 불구대천의 관계, 검을 쓰기로 한 이상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풍천은 자신이 질러놓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긋이 구경했다.
‘형의 죽음과 연관된 자들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거야.’
형의 부탁으로 몸담고 있다지만, 신검문 역시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형이 유령총과 연관되었다는 게 확실하다면, 신검문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관여한 천혈궁이나 신마성과는 대가를 치르는 방법이 다르기야 하겠지만.
“풍 조장! 뭐하는 거냐? 조원들을 도와줘!”
풍천이 구경만 하고 있자, 석초산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풍천은 천천히 검을 빼들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귀찮은데 억지로 끼어드는 사람처럼.
“죽어라!”
절혼당의 무사 하나가 그런 풍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풍천은 슬쩍 몸을 틀고는, 달려드는 자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달려들던 자는 서너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다음, 돌부리에 발이 걸린 사람처럼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그리고 곧 그의 옆구리와 등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풍천은 간단하게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또 다른 자가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쫓아가서 상대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알아서 달려드는데 왜 쫓아다닌단 말인가.
절혼당 무사들은 쓰러진 자가 풍천에게 당했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저 자식은 운도 좋군!
그렇게 생각한 그들은 굳이 협공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한 사람씩 덤벼들었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충분한 상대라 생각한 듯했다.
풍천은 휘청거리듯이 몸을 움직이며 공격을 피했다. 그러고는 빈틈이 보이면 검을 밀어 넣었다.
일류 수준도 못 되는 절혼당 무사들의 공격에는 수많은 빈틈이 있었다. 풍천의 눈에는 그게 한 번에 몇 군데씩 보였다.
어디를 쑤셔야 힘을 덜 들이고 효과적으로 적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는 그것을 고민하며 손을 썼다.
곧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자가 힘 한 번 못 써보고 꼬꾸라졌다.
“크윽!”
“꺼억!”
단순한 공격. 엉겁결에 검을 뻗은 것처럼 보였다. 거기다 갈대처럼 흔들리며 좌우로 오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당황한 삼류 무사였다.
하지만 그런 풍천의 검에 네 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절혼당 무사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 자식 옆으로 가지 마!”
“재수 옴 붙은 놈이다!”
강도위는 자신마저 화청백에게 밀리는 마당에 수하들의 피해가 커지자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다.
자신을 자라라고 모욕한 놈을 죽이지 못한 게 불만이었지만, 이대로 싸움이 길어지면 자신조차 위험해질지 몰랐다.
“모두 물러서라!”
강도위가 소리치자 절혼당 무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흥! 어딜 가려고!”
구양종이 검을 앞으로 뻗으며 코웃음 쳤다.
“구양 형, 그들을 놔두시오!”
화청백은 구양종을 멈춰 세웠다.
자신이라 해서 어찌 저들을 그냥 보내고 싶을까. 남김없이 죽여도 시원치 않거늘.
그러나 지금은 참아야 했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놈들은 신마성의 부탁이고 뭐고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될 테니까.
수호검단의 단원들과 비검당의 무사들도 멈춰 서서 화청백의 명을 기다렸다.
신검문 사람들은 사조원 중 여공위와 백승문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수호검단 단원 중 두어 사람도 몸에서 피가 보이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닌 듯했다.
반면 절혼당은 삼십 명 중 서 있는 자가 열일곱 명이었다. 쓰러진 자는 열세 명, 그중 여덟 명은 죽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강도위는 예상보다 피해가 크다는 걸 알고 화청백을 노려보았다.
“화청백, 오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풍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기는 사람이네. 자기가 먼저 공격해 놓고 왜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 거야? 아마 우리가 약했으면 죽인 다음 유령적을 가로채려 했을걸?”
“풍 조장!”
화청백이 눈에 힘을 주고 풍천을 바라보았다.
풍천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만족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한 번 붙은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하수들은 복수의 대상도 아니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천혈궁 놈들이 아니지. 아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일을 설욕하려고 할 거야. 마도 놈들은 자신들이 남에게 끼친 피해는 생각도 않고,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풍천의 입가로 싸늘한 냉소가 떠올랐다.
2
풍천 일행은 여공위와 백승문을 대충 치료한 후 그곳을 벗어났다.
강도위가 천혈궁에 사실을 알리면 고수들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위태곤이 부탁을 해놨다곤 해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그대로 참을 자들이 아니었다.
위태곤의 체면을 지켜주는 것과 피의 대가를 받아내는 것. 그사이에서 최대한 손을 쓸 것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삼십 리를 벗어난 그들은 실개천이 보이자 간단하게 목을 축였다.
풍천도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을 적셨다. 그때 바로 뒤까지 다가온 화청백이 화를 내며 다그쳤다.
“대체 어쩌자고 일을 벌이는 건가?”
풍천은 얼굴의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화청백을 돌아다보았다.
다른 사람들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풍천은 물기 묻은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넘기고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화를 낸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화 공자는 화도 안 나쇼?”
“무슨 말인가?”
“천혈궁 놈들이 어떤 놈들입니까? 지금도 기회만 되면 신검문과 경천산장 사람들을 공격하는 놈들 아닙니까? 그런 놈들을 만났는데, 그럼 그냥 보내고 싶었단 말입니까?”
말은 그럴 듯했지만, 사실 핑계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화청백은 일시지간 말문이 막혔다.
아마 백초령의 일만 아니었다면, 그 역시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전력을 쏟았을 것이 분명했다. 천혈궁은 물리쳐야 할 적이지 타협할 자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과 싸울 수 없는 사정이 있지 않은가.
“초령이의 목숨이 걸렸다는 걸 잊었나?”
“둘째 아가씨의 목숨을 그놈들이 쥐고 있나요 뭐? 위태곤이 쥐고 있지?”
화청백은 풍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맞붙으면 위험해질까 봐 꺼린 것일 뿐, 그들이 백초령의 목숨을 쥐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하면 백초령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니, 백초령의 목숨과도 무관하지만은 않았다.
‘사마공유의 사제만 아니어도 여기서 갈라설 텐데, 하다못해 사부님이 밀고 있는 놈만 아니어도…….’
여기서 확실하게 잡아두지 않으면 또 무슨 말썽을 피울지 모르는 일. 숨을 크게 몰아쉰 화청백은 풍천을 짓누를 것처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분명히 말하지. 한 번만 더 허락하지 않은 일을 벌이면 용서하지 않겠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풍천도 화청백을 마주보고 말했다.
“나도 한마디만 하겠수. 공자묘에서 나를 가만 놔두기만 했어도 이미 둘째 아가씨를 구했을 거요. 잘못은 화 공자가 먼저 했단 것만 알아두쇼.”
“자네 정말……!”
화청백이 발끈한 표정을 지으며 풍천을 노려보았다.
풍천은 모른 척 그냥 고개를 돌렸다.
“쳇, 지휘를 맡으라고 하지를 말든가. 지휘를 하라고 해놓고 왜 결정적일 때 훼방을 놓는 거야?”
화청백은 풍천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심하게 앞서나가는 것 같아서 지휘권을 빼앗았지만, 그 전까지는 잘해 주고 있었다. 가짜 유령소를 구입하고, 그걸 이용해서 적을 흔든 것도 풍천이었고.
정말 자신이 잘못한 걸까?
‘아냐, 만약 거기서 저놈을 말리지 않았으면 초령이가 다쳤을 거야.’
그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을 고집했다.
어벙하게 생긴 풍천이 자신보다 뛰어난 판단을 내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처음부터 저놈에게 지휘권을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사부님은 왜 저놈을 중시하는지 모르겠군.’
그가 노려보는 사이, 풍천은 사조원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가 수호검단의 단원들이 있는 곳을 지나갈 때였다. 진관악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풍 조장, 단주께 무례하지 말게. 계속 그러면 참지 않을 것이네.”
걸음을 멈춘 풍천은 만사 귀찮은 표정으로 툭 쏘아붙였다.
“당신들이나 잘하셔.”
“뭐야?”
“상관이 잘못된 판단을 하면 아래서라도 잘 잡아줘야 할 거 아뇨.”
“그게 무슨 말인가?”
“모르면 말고.”
진관악이 발끈해서 눈을 치켜떴다.
“정말 끝까지 그럴 건가?”
석초산이 두 사람을 말렸다.
“그만하게. 풍천, 자네도 그만해.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땐가?”
진관악은 수호검단의 조장이었다. 수호검단이 문주의 직접 명령을 받는 특수한 단체라는 걸 생각하면 그의 위치가 석초산의 아래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든 공식적인 지위는 석초산이 위였다.
진관악은 풍천을 노려보며 석초산의 말에 따랐다.
“알겠습니다, 부당주.”
그러나 풍천은 힐끔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사조원이 있는 곳으로 가며 말했다.
“우리 사조는 시키는 일이나 착실히 하자고.”
‘제발 좀 그래라. 너만 보면 조마조마해서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다, 인마!’
석초산은 풍천을 속으로 잘근잘근 씹고는 화청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 공자, 그만 출발하지요.”
화청백도 풍천과 더 이상 말다툼하기 싫었다. 이상하게도 말이 길어질수록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그럽시다.”
풍천은 맨 뒤에서 사조원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며 입술을 비틀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둘 줄 알고? 그럼 우리 노마가 웃을걸?’
용수명이 그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하도 조용하다 보니 풍천조차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흠, 나오길 잘했군. 저 친구 때문에 정말 재미있어.’
남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도 성격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