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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8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8화

 

28화

 

 

 

 

 

 

[내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곽구(霍邱)의 동쪽 초입에 있는 공자묘로 와라.]

 

 

 

“이놈들이……!”

 

화청백이 노성을 내질렀다. 

 

회빈에서 교환이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놈들도 돌머리는 아닐 테니까. 

 

그래도 이렇게 먼 곳에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터였다. 정가장의 무사들이 놈들을 찾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회빈에는 아예 머무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풍천은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연락할 놈만 남겨놓고 곧장 회하를 타고 곽구로 간 것 같군요.”

 

“처음부터 회빈 인근에서 교환할 의사가 없었단 말이군.”

 

“아마 시간을 벌어서 거리를 벌리고, 우리의 대응을 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겁니다.”

 

“놈들이 정말 곽구에 있을 거라고 보나?”

 

화청백이 물었다. 석초산이 이를 지그시 악물고 말했다.

 

“어쩌면 그곳에 가도 다른 곳으로 오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리 각오를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풍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납치범들도 피해자의 가족만큼이나 마음이 다급한 게 일반적이죠. 왜냐하면, 누군가를 납치했을 때는 그만한 목적이 있는데, 극한 상황이 되면 피해자들이 포기할 경우가 있거든요. 그럼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계속 쫓겨서 이리저리 손해니까, 웬만하면 자신들이 정한 때에 적당한 선에서 처리를 하려고 하죠.”

 

풍천은 납치를 많이 해본 사람처럼 말했다. 

 

말 몇 마디 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그가 제법 그럴 듯한 말로 길게 설명하자,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석초산도 그를 수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놈들이 그곳에 있을 거란 말인가?”

 

“곽구는 신검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죠. 천의맹의 남궁세가나 구룡회의 적련방이 있지만, 신검문에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시간도 없고요. 특별한 일만 없다면, 놈들로서도 더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양종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토를 달았다.

 

“곽산으로 유인할 수도 있잖은가?”

 

“간단히 따져보죠. 만약 둘째 아가씨가 곽산에 있다면 구양 공자는 가겠습니까?”

 

구양종은 일시지간 말을 못했다.

 

곽산은 천혈궁의 무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그들이 인질과 물건을 교환했다고 해서 잘 가라며 그냥 놔둘 리가 없다. 

 

물건도 얻고 일행들을 죽이려 하겠지. 

 

죽을 가능성이 큰 정도가 아니라 십중팔구 죽게 될 것이다.

 

과연 갈 수 있을까?

 

구양종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래도 갈 거라고 하자니 그건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짓이다. 갈 수 없다고 하면 협의를 저버리는 셈이고.

 

풍천이 그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입술 끝을 비틀며 말했다. 

 

“보쇼, 바로 말하지 못하겠죠? 나 같으면 안 갑니다.”

 

“그건 비겁한 짓…….” 

 

“참나, 자신이 못 가는 건 이유가 있는 거고, 상대가 안 가는 것은 비겁한 짓입니까?”

 

풍천은 구양종의 입을 달라붙게 만들고 말을 이었다. 

 

“대신 저는 적과 협상을 할 겁니다. ‘이판사판이다. 그곳에는 죽어도 못 간다. 유령적을 얻고 싶으면 밖으로 나와라.’ 그렇게 말이죠. 저들의 목적이 유령적에 있는 한 적당한 곳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간이 아까웠다.

 

화청백은 풍천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단 곽구로 가세. 시간이 없으니 즉시 출발해야 할 것 같군.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세.”

 

 

 

5

 

 

 

백초령이 눈가리개를 벗은 것은 이틀이 지난 후부터였다. 아혈마저 풀려서 말도 할 수 있었다.

 

남호는 백초령의 기해혈을 봉한 후 밧줄로 묶기만 하고 더 이상의 금제를 하지 않았다. 이제 목적지에 가까이 온 듯했다. 

 

백초령은 도망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도망가 봐야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뻔히 아는데다, 잡히면 더 괴롭힘을 당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흘째가 되던 날 새벽. 기둥에 묶여 있는 그녀에게 위태곤이 다가갔다. 

 

그는 백초령의 밧줄을 풀어주고 구운 토끼를 내밀었다. 

 

“먹어라, 계집.”

 

“안 먹어!”

 

백초령을 굶어 죽으면 죽었지 먹기 싫었다.

 

비록 말처럼 대놓고 구경하지는 않았지만,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을 만큼 굴욕감이 느껴졌었다.

 

덜 먹으면 덜 쌀 터, 어차피 굶어도 하루만 견디면 되니, 그때까지는 물만 먹을 작정이었다.

 

“케케케, 정말 대가 센 계집이군.”

 

“늙은이는 꺼져!”

 

“크카카카,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계집을 보는구나. 백무천의 속 꽤나 썩였겠는데?”

 

백초령은 더 상대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도 이제는 이들이 누군지 알았다. 

 

신마성의 마인들. 

 

이들은 신검문의 이름으로 겁을 줄 수 없는 자들이었다. 하기에 나중에 가만두지 않겠다는 둥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시마충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백초령의 간을 철렁하게 하는 말을 했다.

 

“이공자, 심심하시오? 내 잠시 나가 있을 테니 재미 좀 보구려.”

 

순간 백초령의 얼굴이 하얘졌다. 

 

“빼빼 말라서 한 대 치면 허리 부러질 늙은이가 어디서 개소리야! 만일 내 몸에 손대면 콱,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릴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왈칵 겁이 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위태곤은 강제로 여자를 범할 마음이 없었다.

 

“시 장로, 저는 마음도 없는 계집을 범하고 싶은 마음이 없소이다. 제가 뭐가 아쉬워서 강제로 계집을 범하겠습니까?”

 

‘변태가 웬일로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네.’

 

백초령은 내심 안도하며 시마충을 쏘아보았다. 시마충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백초령의 눈빛을 받아내며 킥킥거렸다.

 

“케케케, 하긴 이공자는 여자를 보는 눈이 까다롭지요. 저렇게 대가 센 계집은 눈에 안 찰 겁니다.”

 

위태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안 여자들 중 백초령처럼 말하는 여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백초령의 얼굴은 어떤 여인보다 예뻤고, 몸매도 황홀할 정도로 완벽했다.

 

비록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백초령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라, 성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유령적도 얻고, 마음에 드는 계집도 얻고.

 

하지만 너무 급하게 욕심을 부리면 자칫 둘 다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자신은 영원히 후계자 다툼에서 멀어질 것이었다.

 

그거야말로 최악의 상황. 그는 그런 상황이 닥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천천히, 솜에 물이 스며들듯이 마음을 바꾸게 만들고 말겠어.’

 

내심 마음을 정한 위태곤은 다시 백초령의 입에 고기를 내밀었다.

 

“계집, 정말 오늘도 먹지 않을 것이냐?”

 

“잔소리 말고 물이나 줘!”

 

위태곤은 백초령이 소리 지르는 걸 즐기며 물통을 내밀었다.

 

‘성난 고양이 같은 게, 정말 귀엽단 말이야.’

 

그때 남호가 사당 안으로 들어왔다.

 

“대주, 놈들이 삼십 리 안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 모두 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해라. 여차하면 피를 봐야 할지 모르니까.”

 

“예, 대주!”

 

 

 

 

 

제2장. 초령아, 미안하다! 오빠를 이해해다오!

 

 

 

 

 

1

 

 

 

회하에서 피어난 안개로 새벽 어스름이 뿌옇다.

 

이제 곽구까지 남은 거리는 십 리 정도. 다행히 놈들이 제시한 시간보다 늦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부근의 지리를 잘 안다는 이유로 구출대의 가장 앞에서 달리던 석초산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공자,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저 고개만 넘으면 곽구가 보일 겁니다.”

 

“일단 속도를 늦추시오.”

 

화청백이 말하며 자신도 걸음을 늦추었다. 곧 닥쳐올 상황 때문인지 절정 고수인 그조차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길게 늘어져서 달리던 사람들이 걸음을 늦추고 화청백 주위로 모여들었다. 

 

뒤쪽에서 사조원과 함께 느긋하니 달리던 풍천도 속도를 늦추었다.

 

그는 청색 무복을 한 다른 사람과 달리, 감청색 비단 장포를 몸에 걸치고, 머리에는 황금빛 모란이 새겨진 영웅건을 맨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런 차림을 한 풍천을 보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반쯤 졸린 눈만 아니라면, 임풍옥수라는 말에 완벽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옷이 날개라더니, 까마귀가 학이 되고, 삼류 낭인이 절정 고수의 풍모를 풍기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차려입자, 백무천의 숨겨놓은 아들이라고 해도 누구든 믿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번 일의 성공 가능성을 일 할 이상 높게 잡았다.

 

하지만 풍천은 그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짜증이 났다.

 

첫째, 일반적인 무복보다 훨씬 불편했다. 

 

둘째, 옷이 더러워질까 봐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멋진 옷을 입어봤는데 말이야.

 

셋째, 사람들의 바라보는 눈이 거북스러웠다. 본래 잘생긴 사람인데, 꼭 옷 때문에 잘난 것처럼 쳐다보지 않는가 말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옷이 너무 비쌌다.

 

‘미쳤지, 은자를 열다섯 냥이나 주고 옷을 사 입다니. 한 냥이면 두 벌을 살 수가 있는데…….’

 

그래도 자기 돈으로 산 것이 아니어서 큰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백초령을 구하기 위해 꾸민 것이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기로 했다.

 

‘혹시 백초령이 내 모습을 보고 반하는 거 아냐?’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대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풍천이 엉뚱한 고민을 하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선두의 화청백 일행이 고개 위로 올라갔다.

 

“저기가 공자묘입니다.”

 

석초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풍천도 바삐 걸음을 옮겨서 고개 정상으로 올라갔다.

 

왼쪽으로는 안개를 자욱이 피어 올리며 회하가 흐르고, 오른쪽에는 큰 마을이 있었다. 

 

공자묘는 마을을 가로막은 산의 아랫자락에 있었다. 건물은 낡은 것처럼 보였는데 크기는 제법 컸다. 

 

“오 리 정도 될 것 같군요.”

 

석초산이 대충 거리를 가늠하고 말했다. 그러자 풍천이 그의 예측을 교정해 주었다.

 

“정확히…… 육 리 하고도 이십오 장이네요.”

 

사람들이 모두 풍천을 바라보았다. 

 

지금이 장난할 때인가? 그렇게 나무라는 표정으로.

 

하지만 풍천은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별것도 아닌데 존경하는 눈으로 쳐다보기는…….’

 

 

 

언덕을 내려간 구출대는 곧장 공자묘를 향해 직진했다.

 

주위에 적이 숨어 있을지 모르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적도 물건을 얻기 전에는 공격을 하지 못할 테니까.

 

공자묘와의 거리가 백여 장으로 줄어들 즈음, 숲에서 무사 셋이 나와 앞을 막았다. 그중 가운데 서 있던 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물었다.

 

“신검문에서 왔소?”

 

석초산이 대답했다.

 

“그렇소. 아가씨께선 어디 계시오?”

 

“그대가 책임자요?”

 

귀혼신마대 무사의 눈이 자연스럽게 풍천을 향했다.

 

순간 풍천이 뒷짐 진 채,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걸어 나갔다.

 

“본 공자가 책임자다. 네놈은 그쪽의 책임자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본 공자를 찾는 거냐?”

 

귀혼신마대 무사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거슬렸다. 다짜고짜 ‘네놈’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너 따위가 감히 왜 나를 찾는 거냐?’는 투의 말도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기분 나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분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물건은 가져오셨소?”

 

“네가 그쪽의 책임자냐?”

 

“그건 아니오, 하지만…….”

 

“아니면 넌 꺼져! 그리고 책임자 나오라고 해!”

 

무사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뒤에 서 있던 화청백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거만하게 행동하라고 주문하긴 했지만, 너무 지나칠 정도로 앞서나가는 것 같았다. 

 

저러다 백초령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된다면 큰일이었다. 그는 급히 전음을 보내서 주의를 주었다.

 

[적당히 하게, 풍천!]

 

하지만 풍천은 못들은 사람처럼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언제까지 사람을 기다리게 할 거야! 회빈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여기까지 달려오게 했으면 최소한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냐! 설마 초령이가 여기에 없는 건 아니겠지?” 

 

어찌나 기세등등하게 다그치는지 무사는 자신도 모르게 중요한 정보 하나를 토해냈다.

 

“그녀는 여기에 있으니 걱정 마시오.” 

 

오호! 있긴 있단 말이지? 

 

간단히 하나 건졌군.

 

“그래? 좋아, 그럼 얼굴을 보자! 어디 있지? 저 공자묘 안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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