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4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화
24화
“음? 더 말할 게 없다고 했는데?”
“저기…… 혹시 주기로 한 은자 두 냥은 주었습니까?”
“아직…….”
“사람이 말이죠, 그럼 안 되는 겁니다. 주기로 했으며 줘야죠. 설마 떼먹으려고 한 건 아니죠?”
“그것도 내가 줘야 하나?”
풍천은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구양종을 흘겨보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주기 싫으면 마세요. 제가 주죠. 남자가 쪼잔하게 두 냥 가지고…….”
얼굴이 벌게진 구양종은 홱, 몸을 돌렸다.
“지금 가서 주면 되잖아!”
풍천은 화영쌍검의 추적 의지를 가볍게 꺾고 다시 객잔으로 돌아갔다.
그인들 어찌 쫓아가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서두른다고 잡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거리도 수백 리 떨어졌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또한 그는, 지금쯤 납치범들이 신검문에 뭔가를 요구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곧 어떤 연락이 있을 터. 지금은 서두르기보다, 상황을 정확히 알고 움직여야 할 때였다.
‘개자식들, 만약 초령이 몸에 이상만 있어봐라.’
객잔주인은 날아간 봉이 다시 돌아왔다 생각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풍천은 객잔주인에게서 문방사우를 얻어 서신을 썼다.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은 필체였다. 용사비등(龍蛇飛騰)까진 아니어도.
하지만 누구도 그의 필체에 감탄하지 않았다. 정말로 날아갈 것 같은 필체여서 알아보기가 힘들었으니까.
‘저게 무슨 글자야? 저렇게 쓰려고 해도 힘들겠네.’
‘정말 글을 제대로 알고 쓰는 걸까?’
그래도 풍천은 나름 노력을 기울여서 서신을 작성했다. 특히 마지막 줄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성들여서 또박또박 썼다.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한 손으로 살짝 가리고.
[납치범이 배를 타고 회하를 따라 내려갔음. 현재까지 밝혀진 인원은 모두 넷. 대나무처럼 마른 노인, 바위 같은 인상의 중년인, 칼을 찬 장한, 고급스런 옷을 입은 청년. 그들과 같은 용모를 지닌 일행에 대해서 수소문해 주기 바람. 식현을 지나친 걸로 봐서 좀 더 동쪽으로 간 다음에 남하할 것으로 생각됨.
추신.
경비로 은자 백 냥을 보내주기 바람. 더 보내줘도 상관없음.]
풍천은 서신을 다 쓴 다음 자신이 먼저 읽어보았다. 중요한 내용은 다 쓴 듯했다.
그는 만족한 표정으로 서신을 몇 번 접은 다음 발이 빠른 은초당에게 내밀었다.
“은 형, 이걸 최대한 빨리 선가장에 전해 주쇼.”
은초당의 귀에는 그 말이, 힘들더라도 쉬지 말고 달리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알겠습니다, 조장.”
은초당이 객잔을 나가자 구양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건가?”
풍천은 그런 구양종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했다.
“으아아아아음.”
순간 구양종이 얼굴이 벌게졌다.
“내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리는가?”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오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이해해주쇼. 어제 둘째 아가씨 걱정하느라 잠을 한숨도 못 자서 그런 거니까.”
풍천은 대충 핑계를 대고 눈을 돌렸다.
코까지 골고 잔 구양종은 그 말을 듣고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
“좋다, 그럼 내가 말한 것에 대해서 네 생각을 말해 봐라.”
풍천은 엽차로 목을 축이고는, 툭 던지듯이 물었다.
“납치범들이 어디 있는지 아쇼?”
모른다.
“그걸 알아보자는 거 아니냐?”
“그럼 놈들이 누군지 아쇼?”
“천혈궁 놈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사람은 너일 텐데?”
“만약 천혈궁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냐?”
“만약 납치범들이 천혈궁 놈들이 아니라, 신마성 놈들이라면 어떻게 할 거요?”
구양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화영쌍검과 검각의 제자들, 비검당의 사조원들도 굳은 표정으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천혈궁과 신마성은 격이 달랐다.
신마성은 천하 오패천의 하나로 강서성 전체와 안휘 일부, 절강, 호남에까지 힘이 미치는 거대 세력이다.
천혈궁은 그 신마성의 하부 세력으로 안휘의 곽산과 천주산 일대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고.
둘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일 대 일로 신마성과 맞싸울 수 있는 곳은 같은 오패천뿐, 신검문과 검각과 경천산장이 힘을 합한다 해도 신마성과 싸운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신마성 놈들이 왜 백초령을 납치한단 말이냐?”
“그야 필요한 게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수?”
“그들이 하남을 넘본다면, 천의맹과 구룡회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때 듣고만 있던 정태민이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
“전에 회하에서 싸울 때 최심조를 쓴 자와 싸웠잖습니까?”
정태민도 당시 최심조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자를 아느냐?”
“그자를 아는 게 아니고, 최심조라는 무공을 익힌 자에 대해서 안다고 봐야겠죠.”
“그가 신마성 사람이란 말이냐?”
“지금은 모르겠고, 오십 년 전에는 신마성의 팔대신마 중 한 사람이었죠.”
정태민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신마성의 팔대신마는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거마들이었다. 대문파의 주인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자들.
“으으음······.”
“납치범이 신마성 사람인지,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니 두려워할 것까진 없습니다.”
누가 두려워해!
짜증이 난 정태민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닫고 있는 게 낫지. 하여간 그놈 말하는 것 하고는······.’
풍천은 간단하게 정태민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는, 졸린 눈으로 구양종을 바라보았다.
“때론 말이죠, 참고 기다리는 것이 더 빠를 때가 있는 법이죠.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봅시다. 그래도 추적을 계속하고 싶다면 알아서 하시고.”
구양종은 속이 이상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정말 상대가 신마성이라면 신중을 기하는 게 나았다.
“음, 알겠네. 풍 조장 말대로 기다려보세.”
진작 그럴 것이지. 왜 사람 힘들게 말을 시켜.
풍천은 결론이 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올 곳이 있으니까, 쉬고 있으쇼.”
2
객잔을 나온 풍천은 식현의 중심지로 들어갔다.
식현은 큰 도읍은 아니었지만, 과거 식국(息國)이 있던 곳으로 하남성 남부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강호로 따져보면 북으로 신검문, 남으로 경천산장, 서쪽에 검각, 동남쪽에 천혈궁을 두고 있는 만큼 강호의 온갖 소문을 듣기에 좋았다.
해서 식현에는 하오잡배들의 모임이자, 개방과 함께 강호의 정보통인 하오문의 일백 분타 중 하나가 존재했다.
풍천은 이 년 전에 그곳을 한번 이용해 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엉뚱한 정보를 주면 확 뒤집어 버려야지.’
이전에 전해 준 정보도 사실 전혀 엉뚱한 정보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이 바라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어서 돈만 낭비하고 말았을 뿐.
대로 끝에 있는 작은 주점 앞에서 걸음을 멈춘 풍천은 깃발을 바라보았다.
[만풍루(萬風樓)]
이름 하나는 그럴 듯했다. 하지만 온갖 바람이 분다는 이름 때문인지, 인근의 주루보다 작고 허름한 만풍루는 입김만 불어도 무너질 것 같았다.
술 파는 일보다 다른 걸 파는 일에 더 전문인 곳, 만풍루.
아마 주루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전에 한 번 발칵 뒤집어놓았을 것이다. 한 번 받은 돈은 절대 돌려주지 않는다며 엉터리 정보를 주고도 돈을 환불해 주지 않았으니까.
촤르르르.
주렴을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간 풍천은 주인을 찾아보았다.
주방 안쪽에서 술단지를 옮기던 주인이 고개를 돌리더니, 미친개에게 물린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키가 작고 얼굴이 통통한 주루의 주인은 마치 십 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반기듯이 활짝 웃으며 나왔다.
속이야 ‘이놈이 왜 또 왔을까?’하는 마음이었지만.
“잘 있었죠?”
‘네가 안 보여서 마음이 편했지.’
주루의 주인인 염 씨가 속으로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장사가 여전히 잘되나 보네요?”
“하하하, 그럭저럭 됩죠. 그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요?”
“뭐 좀 살게 있었어요.”
“뭘 사시려고······?”
주루주인은 머리를 빠르게 돌리며 물었다.
이 자식이 또 뭘 알아보려고 왔을까? 오늘 아침에 이상한 바람이 부는 게 수상하던데, 문을 일찍 닫을 걸 그랬나?
“별건 아닌데······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아, 그럽죠.”
주루주인은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속이야 똥 씹은 것처럼 구겨졌지만.
‘지미, 나도 모르겠다.’
“혹시 요즘 강호의 이상한 동태에 대해서 아는 것 없수?”
풍천은 엽차를 냉수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고는 탕! 소리가 나도록 탁자에 내리치며 물었다.
주루주인이자 하오문 식현 분타의 분타주인 모도형은 탕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질문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난데없는 놈들이 나타나서 조금 긴장했습죠.”
나이로 따지면 조카에 불과한 놈이었다. 아니 조금 일찍 자식을 봤으며 자식이나 같은 놈이었다. 그런 놈이 찻잔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말하다니.
저런 놈은 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쳐야 하는데······.
하지만 이 년 전에 풍천의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지 직접 목격한 그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해 간다는 마음으로 분노를 꾹 참았다.
“어떤 놈들이었습니까?”
“저기, 정보료는······?”
모도형은 자신의 책무를 잊지 않았다.
풍천도 그의 마음을 잘 알았다. 하기에 정보료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었다.
“줍니다. 왜? 못 믿겠습니까? 준다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모도형은 일단 풍천의 말을 믿었다. 그날도 준다는 돈은 주었었다. 막돼먹긴 했지만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놈은 아니었다.
“흑응파의 조무래기 몇이 나타나서······”
모도형의 말이 몇 마디 진행되기도 전에 탁자에 또다시 찻잔이 떨어졌다.
탕!
“그 흑도의 조무래기 말고 더 있을 텐데요?
모도형은 말을 멈추고 풍천을 쳐다보았다.
대체 뭘 원하는 거야, 인마!
마음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조용히 물었다.
“알고 싶은 게 뭡니까, 공자?”
“천혈궁의 조무래기들이 나타난 적 없습니까?”
헉! 천혈궁?
왜 이놈이 천혈궁에 대해서 묻는 거지? 그런데 천혈궁의 마도 고수들을 조무래기라고?
‘세월이 지나면서 간덩이가 더 부었군.’
모도형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
“그럼 신마성의 미친놈들은?”
크헉!
네놈이 진정 미쳤구나! 신마성의 마웅들을 미친놈들이라니!
모도형은 더 이상 겁을 내지 않고 풍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장난으로 물어본 거겠지.
그런데 풍천의 표정이 제법 심각하게 보였다. 장난이 아니라는 말.
모도형은 잠시 눈알을 굴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빈 쪽에 이상한 놈들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습죠. 하지만 그게 답니다. 신마성은 저희가 함부로 건들 곳이 아니어서······.”
회빈?
풍천의 눈빛이 진짜 미친개처럼 번뜩였다.
“그놈들이 신마성 놈들이 확실합니까?”
“가능성은 반반 정도죠.”
하오문이 반이라고 말한다면 확실하다는 말이나 거의 같았다.
“흠, 회빈 쪽에 나타났단 말이죠?”
“저희는 정확히 모릅니다. 말만 들었을 뿐.”
당연히 당신들은 무조건 모른다고 하겠지.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길 테니까.
풍천은 모도형을 빤히 쳐다보았다.
“몇 놈이나 됩니까?”
“그건 진짜 모릅니다.
하오문이 그렇게 나온다면 정말 모른다는 말이었다. 정보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돈 될 일을 마다할 리는 없으니까.
풍천은 그쯤에서 질문을 돌렸다.
“흠, 모른단 말이죠? 그럼 혹시…… 유령총에 대해서는 아는 게 있습니까?
“유령총요?”
모도형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풍천은 그 표정이 거짓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하오문 사람들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하는 놈들이다. 그러니 모른 척하는 것 자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말해 보쇼. 알고 있다는 거 다 아니까, 속일 생각 말고.”
미친개가 눈치도 빠르다니까.
모도형은 속여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순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로선 정보료만 제대로 받으면 되었다.
“구룡회가 황산에 있다는 전설의 유령총을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몇 달 전부터 비밀리에 돌았습죠.”
“구룡회가 유령총을?”
구룡회는 어느 한 단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오패천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아홉 개 문파가 손을 잡았는데, 그들을 일컬어 구룡회라 했다.
문제는, 신검문과 검각과 경천산장도 그 구룡회 아홉 세력에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말해 보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