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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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18화
18화
3
날이 밝자, 백초령과 부상자들을 남겨놓고 사조원 일곱 명만이 선가장을 출발했다.
어차피 선물 상자도 없고, 음식보따리도 많이 줄어들어서 노마는 데려가지 않았다.
임무를 끝마친 후 백초령을 데려가기 위해 와야 하는데, 그때 노마도 함께 데려가면 될 듯했다.
풍천은 선가장에서 이십 리쯤 떨어진 관도를 걸어가면서 기종탁에게 물었다.
“기 형, 혹시 유령총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기종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령총? 처음 듣는데요?”
그때, 백승문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령총이라면 황산 어디엔가 있다는 전설의 무덤 아닙니까?”
그 정도는 풍천도 알고 있었다. 천풍장에는 수백 년에 걸쳐서 모아진 정보가 제법 많았으니까.
풍천은 질문의 상대를 바꾸어서 백승문에게 물어보았다.
“요 근래 유령총에 대해서 들은 말 없어요?”
“없는데요.”
없다고 했다. 사조원 중 가장 눈치 빠르고 정보에 귀가 밝은 백승문이 모른다면 다른 사람도 모른다고 봐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모두 고개를 저었다.
풍천은 거기에서 작은 정보 하나를 얻었다.
이들은 유령총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백무천이 유령적을 얻은 것도 모를 것이다.
그 자체가 비밀이란 말.
그런데 신마성은 어떻게 알고 유령적을 얻으려 하는 걸까?
‘확실히 수상해.’
풍천 일행은 어둠이 밀려들 무렵 광산에 도착했다.
본래는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경천산장까지 달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객잔에서 저녁식사를 마칠 즈음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하루 쉬고 가야 할 것 같군요.”
비가 온다 해서 가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내일이 된다 해서 비가 그친다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빗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짜증나는 일이었다. 더구나 신현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산길이 아닌가 말이다.
조원들도 풍천의 의견을 반겼다.
봄비치고는 제법 굵었다. 비에 젖은 산길을 달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고생도 몇 배로 할 것이고.
“방을 잡겠습니다, 조장.”
백승문이 눈치 빠르게 풍천의 의견을 기정사실화했다.
객잔의 구석에 앉아 있던 장한은, 방을 잡기 위해 일어서는 풍천 일행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놈들, 분명 신검문 놈들이지?”
앞에 앉아 있던 청년이 슬쩍 풍천 일행을 쳐다보고는 나직이 대답했다.
“예, 형님.”
“천궁산에 있어야 할 놈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온 것 아니겠습니까?”
장한은 청년을 노려보았다.
‘멍청한 놈. 그럼 목적이 있으니까 왔겠지, 놀러 왔겠냐?’
하지만 신검문 놈들을 앞에 두고 소란을 피울 수는 없는 일. 그는 인내심을 발휘해서 꾹 참았다.
“가서 향주께 알려라.”
“예, 형님.”
풍천은 이 층으로 올라가며 손가락으로 귀를 쑤셨다.
“참새들이 많군.”
“예?”
백승문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풍천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아, 뭐 별거 아닙니다. 비가 오니 참새들이 객잔으로 들어왔나 봅니다.”
사조원들은 넌지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참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이야?
4
둥, 둥, 둥!
빗소리를 뚫고 멀리서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풍천은 불 꺼진 방에서 차를 홀짝거리며 속으로 구시렁댔다.
‘그놈들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이게 뭐야? 오려면 빨리 오지 말이야.’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럼 더 화나는데······.
다행히 적들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차를 석 잔쯤 비웠을 때 빗소리에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그리고 희미한 살기가 객잔으로 접근했다.
찻잔을 내려놓은 풍천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검을 잡았다.
‘빨리 처리하고 자야지.’
순간,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광산의 천혈궁 첩자들을 총괄하는 안등은 객잔의 불 꺼진 창문을 노려보았다.
‘개자식들, 하필 비 오는 날 나타나다니.’
봄비에 옷이 젖으면서 차가운 기운이 사타구니까지 파고들자 짜증이 났다.
신검문 놈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수하 이십 명을 이끌고 바로 달려왔다.
내일로 미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마성이 자신들 몰래 모종의 작전을 폈다가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였다. 처리를 미루다 실패하면 더 엄한 책임 추궁이 뒤따를 것이었다.
“일곱 놈이라고 했지?”
안등의 말에 바로 옆의 장한이 대답했다.
“예, 향주.”
“어떤 놈들인지 알아봤느냐?”
“아무래도 비검당 놈들 같습니다.”
안등은 옆의 장한을 쳐다보았다.
“비검당이라고?”
“예, 향주. 제가 전에 비검당 놈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놈들도 감색 무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비검당은 신검문에서도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놈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만큼 강하다는 말.
자신들의 숫자가 세 배나 되지만, 정말 비검당이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제기랄,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너무 걱정 마십시오. 특별하게 강한 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장이라는 놈도 멍청하게 생겼고요.”
안등은 수하의 말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있는 놈이었다. 그래서 항상 정탐의 최일선에 배치했고.
그 말대로라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듯했다.
“좋아, 애들에게 알려라. 칠 때는 단숨에, 시작하면 확실하게 끝내라고 해.”
“예, 향주.”
장한은 입술을 오므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리리리리.
안등은 휘파람소리를 들으며 칼을 빼들었다.
자신을 고생하게 한 대가로 처참하게 죽여주리라!
그런데 이상했다. 지금쯤 객잔을 향해서 달려가야 할 놈들이 너무나 조용했다.
“이 자식들이, 대체 뭐하는 거야?”
그에 대한 대답이 머리 위에서 들렸다.
“다들 염라대왕을 만나러 갔지.”
“헛! 웬 놈이······!”
대경한 안등은 튕기듯이 뒤로 물러났다.
그때 휘파람을 분 수하의 목이 뒤로 꺾어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바로 코앞에서 졸린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 누구······?”
안등은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그 이후의 말은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고 목 안에서만 맴돌았다.
소름이 돋은 그는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몸이 그의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우드득.
언뜻 자신의 목뼈 부러지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아, 악마······.’
5
다음 날 아침.
백승문이 문을 거칠게 두들기며 말했다.
“조장님! 이야기 들었습니까? 객잔 뒤쪽 공터에서 스무 구가 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풍천은 졸린 눈을 깜박이며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잤더니 졸려 죽겠어.’
“아무래도 천혈궁 놈들 같은데, 밤사이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이 그놈들을 죽였을까요? 듣고 계십니까?”
‘그야 내가 죽였지.’
풍천은 크게 하품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백승문의 흥분한 얼굴이 보였다.
“다들 일어났어요?”
“예, 그 일 때문에 다들 놀라서 일찍 일어났습니다.”
조장님만 신경이 무뎌서 이제 일어났죠. 꼭 그런 투로 들렸다.
신경이 무뎌서 그런 게 아니라 뒤처리까지 하느라 잠을 적게 자서 그런 건데.
풍천은 두 팔을 올리고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 다른 놈들이 올지 모르니 밥 먹고 바로 출발합시다. 모두 일 층으로 내려가라고 하쇼.”
사조원들은 식사를 대충 해결하고 객잔을 나섰다. 풍천의 말대로 언제 천혈궁 놈들이 나타날지 몰랐다. 머뭇거리다 놈들과 마주치는 건 누구도 원치 않았다.
다행히 비도 가늘어져서 이제 안개비처럼 내렸다. 땅이 질척거리긴 하지만 걷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6
아침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때렸다. 뒤로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목을 간질였다.
‘풍천! 바보 멍청이!’
백초령은 속으로 풍천을 욕하며 말을 빠르게 몰았다.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구양종과 잘해 보라니!
물론 자신의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매일 약이나 올리고 쏘아붙였으니 어쩌면 자신을 싫어하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도 멍청하게 구니까,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이나 사니까 화가 나서 그런 것이지.
그런 것도 모르고, 풍천은 형의 연인인 백서령만 지키려고 안달이었다. 자신을 구양종에게 넘기면서까지.
‘쳇, 나야 어떻게 되든 언니만 지키면 된다 이거지? 정말 멍청이라니까. 여자가 자꾸 뭐라고 하면 그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란 걸 알아야지 말이야.’
시원한 아침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응? 근데 여긴 어디지?’
백초령은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지막한 언덕을 몇 개 넘어서 이십 리 정도 달린 듯했는데, 어느새 송림을 가로지르는 숲길에 서 있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로 둘러싸인 숲은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적막감에 짓눌린 것처럼 고요했다.
“구양 공자?”
그녀는 구양종을 불러보았다.
선가장에서 구양종과 함께 나왔다. 바로 뒤를 따라올 줄 알았는데, 구양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칫, 풍천, 그 멍청이 같았으면 바로 뒤따라와서 바락바락 뭐라고 했을 텐데.’
지금이라면 그 소리도 반가울 것 같았다.
‘하여간 바보라니까.’
백초령은 더 이상 흥이 나지 않았다.
스스스스.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뚝뚝, 나뭇잎에 맺혔던 이슬이 떨어질 때마다 흠칫거리며 돌아다보았다.
왜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까?
음산한 무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느껴진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
“돌아가자, 백마야. 주인 닮아서 멍청한 그 늙은 말이 또 건들면 내가 혼내줄게.”
그녀가 막 말머리를 돌릴 때였다.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은 오직 그녀만을 향해서 불었다.
오싹한 기분이 느껴진 백초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틀었다.
순간, 전신이 얼음구덩이에 빠진 느낌과 함께 몸이 굳었다.
“누, 누구······?”
동시에 그녀가 잡고 있던 백마의 목을 시퍼런 번개가 스쳐가고, 시뻘건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케케케······.”
악마의 속삭임 같은 웃음소리가 고막을 흔든다 싶은 순간,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풍천, 나를 구해 줘······!’
그녀는 의식이 끊기기 전 간절히 빌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풍천의 얼굴만 떠올랐다.
7
풍천 일행은 쉬지 않고 달려서 미시 무렵 경천산장이 보이는 언덕 위에 도착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경천산장 전체에서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산장의 주위에 깔려 있는 경비무사들만 해도 수십 명은 되어보였는데, 단순히 산장을 지키기 위해서 서고 있는 경비와는 그 기세가 달랐다.
“분위기가 영 안 좋은데요?”
풍천이 찝찝한 투로 말하자, 기종탁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대여섯 명이 경비를 서는데 이상하군요. 여기에서도 뭔 일이 있었나 봅니다.”
“가보면 알겠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