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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0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0화

 

10화

 

 

 

 

 

 

2

 

 

 

풍천이 신검문에 들어온 지 칠 일째 되던 날.

 

검을 맨 열세 명의 무사가 신검문을 방문했다.

 

나이는 이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 고루 섞여 있었는데, 모두들 검과 일심동체를 이룬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일행의 중심에 서 있는 이십대 청년은 가히 군계일학이라 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이었다.

 

비검당을 나서던 풍천은 멀리서 그들을 보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누구지?’ 

 

그의 궁금증을 덜어주려는 듯 뒤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응? 검각의 제자들이 웬일이지?”

 

검각?

 

풍천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나한조가 눈살을 찌푸리고 서있었다.

 

“저 사람들이 검각 사람들입니까?”

 

“맞네. 특히 저 청년은 아마도 검각의 각주인 구양곤 대협의 아들 구양종이 아닌가 싶군.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장로인 화양쌍검 정씨 형제고 말이야.”

 

동백산에 있는 검각은 그 위상이 신검문 못지않았다. 

 

그들은 하남보다 호북 쪽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인지 강호에 끼치는 영향력만큼은 신검문보다 더 클 거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러한 곳의 소주인이 무엇 때문에 신검문을 방문한 걸까? 장로 두 사람을 대동하고서.

 

풍천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구양종을 보며 물었다.

 

“정말 저자가 구양종입니까? 전에 본 적이 있나요?”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네. 다만 예전에 구양곤 대협을 본 적이 있는데, 많이 닮았군.”

 

“그럼 다른 아들일 수도 있잖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검각 각주에게 아들이 셋 있다던데.”

 

그 자식, 사람 말 못 믿기는.

 

나한조는 풍천을 흘겨보며 말했다.

 

“자네 말대로 구양곤 대협에게는 아들이 셋 있네. 하지만 그중 이십 대 중후반의 청년은 하나뿐이지.”

 

“자주 오는 사람은 아닌가 보죠?”

 

“내가 알기로는 이삼 년 사이에 처음인 것 같군.” 

 

“근데 동백산에서 여기까지 왜 왔죠?”

 

“글쎄······.”

 

“혹시 짐작되는 일은 없습니까?” 

 

나한조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군.”

 

풍천은 홱,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사람과 더 이야기 나눌 것 없다는 듯 매몰차게.

 

그러고는 들릴 듯 말듯 중얼거렸다.

 

“누구 아는 사람 없나?”

 

나한조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 자식이! 물어볼 땐 언제고, 그거 하나 모른다고 그렇게 쌀쌀맞게 고개를 돌려? 

 

그는 머리를 쥐어짰다. 

 

문득 한 가지 소문이 떠올랐다.

 

“흠,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긴 한데, 왜 그걸 알려고 그러는 건가?”

 

형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검각의 소각주가 왔다. 평소 왕래도 없던 자가.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하지만 풍천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되물었다.

 

“나 조장님은 안 궁금합니까? 검각의 소각주가 왔는데 말이죠.”

 

궁금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풍천이 비웃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들었던 소문을 말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듣기로는, 구양곤 대협이 이 년 전에 매파를 보냈다고 하더군. 서령 아가씨를 며느리로 삼고 싶다고 말이야. 혹시 그 일로 온 것 아닐까? 구양 공자도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다던데.”

 

풍천의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게 사실입니까?”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사실일 거네.”

 

“정말 구양종이 서령 아가씨를 신부로 삼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세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 그런데 그게 자네하고 무슨 상관있다고 그리 정색하는 건가?”

 

상관? 당연히 있지!

 

“기분 나쁘잖습니까.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자가 불쑥 나타나서 서령 아가씨를 신부로 삼겠다는데.”

 

형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절대 안 되지!

 

‘차라리 초령이를 데려가라. 그럼 내가 귀찮음을 각오하고 도와줄 테니까.’ 

 

풍천이 씩씩거리자 나한조가 피식 웃었다.

 

“훗, 자네가 왜 열을 내는지 모르겠군. 자네 설마…… 엉뚱한 욕심내는 건 아니겠지? 서령 아가씨를 좋아 한다던가…….”

 

이 양반이 미쳤나?

 

“걱정 마쇼. 여자에게 한눈 팔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도 서령 아가씨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걸?”

 

이미 봤수!

 

“나 조장님이나 많이 좋아하쇼. 가만, 혹시 나 조장님이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풍천이 되받아치자, 나한조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나는 내 주제를 아네. 서령 아가씨는 나 같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 돌아가신 사마 당주님이라면 몰라도.”

 

뭐야? 알고 있었어?

 

“형이 서령 아가씨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는 거 아시고 계셨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

 

신검문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그걸 모를 거라 여긴 네가 더 이상한 거지.

 

“그런데 그런 말을 해요?”

 

“아쉬움이야 많지만 어쩌겠는가? 당주님은 돌아가셨는데. 설마 서령 아가씨가 혼자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네. 그러니 함부로 추측해서 나서지 말게.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어차피 결정은 문주님과 서령 아가씨께서 내릴 것이니까.”

 

그건 맞는 말이다. 진짜로 구양종과 백서령이 맺어진다 해도 자신이 나서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형이 살아 있다면 몰라도.

 

‘그렇다고 멍하니 보고만 있진 않겠어!’

 

내심 각오를 다진 풍천은 나한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깨를 두들겨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나 조장님, 조금 전 자신의 주제를 아신다고 하셨는데, 그렇게까지 자학하실 것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자신을 가져야죠. 그러다 진짜로 총각귀신이 되면 억울하잖습니까?”

 

‘이 자식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서른 넘도록 장가 못 간 것도 억울한데, 지금 누굴 놀리나?’

 

나한조는 풍천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풍천은 그의 기분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오히려 도움을 요청했다.

 

“그건 그렇고, 저자들의 목적이 정말 서령 아가씨인지, 어떻게 알아볼 방법이 없을까요?”

 

“그걸 왜 나에게 물어보나? 목마르면 자네가 우물 파!”

 

나한조는 툭 쏘아붙이고 고개를 돌렸다.

 

‘왜 성질을 내?’

 

풍천은 자신의 말에 성질을 내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쩝, 다들 속이 그렇게 좁아서야 원…….’

 

 

 

3

 

 

 

백무천은 검각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게 누구야? 허허허허, 검각의 화영쌍검이 봄기운과 함께 찾아왔군. 정말 반갑네.”

 

중년인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문주님.”

 

“삼 년 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백무천은 밝게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나야 잘 지내고 있지요. 한데 어쩐 일이시오?” 

 

두 중년인 중 키가 큰 중년인이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포권을 취했다.

 

“검각의 구양종이 문주님을 뵙습니다.”

 

백무천의 눈이 커졌다.

 

“음? 자네가 구양 형의 둘째란 말인가? 이런, 그러고 보니 구양 형의 젊은 시절과 많이 닮았군. 아주 멋진 청년으로 컸어.”

 

“감사합니다, 문주.”

 

“흐음, 장로인 화영쌍검에 구양 형의 아들까지 오다니. 이거 심상치 않은데? 어디 말해 보게나. 무슨 일인가?”

 

화영쌍검 중 첫째인 정태민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각주님께서 이 년 전의 일에 대한 답변을 원하십니다.” 

 

“이 년 전이라면…… 혼사 문제 말이오?”

 

“예, 문주. 저희가 알기로는 첫째 아가씨께서 아직 혼인을 하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야 그렇소만…….”

 

“혹시 다른 곳과 혼사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라도 있으신지요?”

 

“그건 아니오.”

 

“후우, 다행이군요. 그럼 문주님께서 허락만 하시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군요.”

 

“글쎄. 나보다는 서령이의 마음이 더 중요할 것 같구려.”

 

그때 구양종이 나섰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직접 서령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자네가? 하긴 젊은이들의 일은 젊은이들이 해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왜 이리 급하게 서두르는가?”

 

“아버님의 회갑이 석 달 남았습니다. 아버님께선 그 전에 며느리를 보시고 싶은가 봅니다.”

 

“회갑이라, 허어, 벌써 그렇게 되셨던가?”

 

그때 정태민이 말했다.

 

“만약 신검문이 저희 검각과 혼사로 맺어진다면, 저희도 천혈궁의 일에 대해서 최대한 도울 것입니다.” 

 

“그건 구양 형의 뜻이오?”

 

“그렇습니다, 문주.”

 

백무천은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검문의 입장으로 봐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검각만 도와준다면 천혈궁의, 실질적으로는 신마성의 팽창을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딸이 과연 이 혼사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그도 백서령과 사마공유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딸은 이미 혼사를 치르기에 늦다 싶을 정도로 나이를 먹은 상태.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딸의 혼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일단 둘을 만나게 한 후 서령이에게 결정을 내리도록 해야겠군.’

 

 

 

4

 

 

 

구양종이 검향원으로 백서령을 만나러 갔다는 소식이 풍천의 귀에 들어간 것은, 백무천이 결정을 내린 지 반 시진 뒤였다.

 

풍천은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 정말로 혼사 때문에 온 모양이군.’

 

형이 너무 불쌍했다.

 

형은 왜 이리 일찍 죽어서 저런 놈이 사랑하는 사람을 넘보게 한단 말인가.

 

‘바보 같은 형.’

 

보고 싶었다. 빨리 달려가서 막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젠장!

 

‘문주도 그렇지. 뻔히 알면서 왜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거야? 형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머리 위에 불똥이라도 떨어졌어? 뭐가 그리 급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밖으로 나갔다.

 

사조원들은 슬쩍슬쩍 그를 훔쳐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말썽꾸러기 조장이 또 어딜 가는 거지?’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조장을 잘 만나야 하는데, 정말 암담하군.’

 

그러든 말든, 방을 나온 풍천은 마구간으로 가기 위해 비검당을 나섰다.

 

오늘 같은 날은 노마라도 괴롭혀야 짜증이 풀릴 것 같았다.

 

‘노마가 성공했을까?’ 그것도 궁금했고.

 

그런데 비검당을 나선 그가 털레털레 걸어갈 때였다. 저만치 검향원 쪽에서 몇 사람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검각의 무사들이었는데, 그중에는 구양종도 있었다.

 

풍천은 눈을 반짝이며 그들을 향해서 걸어갔다.

 

‘화양쌍검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은 없군.’

 

그들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풍천과 검각 사람들이 막 스쳐갈 즈음, 풍천이 검각 사람들을 확 째려보았다.

 

단지 째려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검각의 장한 중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가?”

 

옳지! 물었군!

 

내심 쾌재를 부른 풍천은 눈을 치켜뜨고 툭툭 쏘듯이 말했다. 

 

“내 눈으로 내가 보는데, 왜 시비를 거는 거요?”

 

“누가 시비를 걸었단 말인가? 자네가 먼저 째려보지 않았는가?”

 

“저야 본문의 무사가 아닌 사람들이 검향원 쪽에서 오니까 수상해서 본 것뿐……. 아, 맞아! 당신들 누구요? 누군데 본문 안에서 마음대로 오가는 거요?”

 

느닷없이 풍천이 다그치자 장한은 머뭇머뭇 대답했다.

 

“우리는 검각에서 온…….”

 

풍천은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검각 사람들이 왜 본문에 왔단 말이오? 혹시 우리를 공격하려고……?”

 

원수를 보듯 검각 사람들을 둘러본 풍천은 옆구리의 검에 척, 손을 얹었다. 

 

이놈은 뭐야?

 

검각 사람들은 혼자 열 내는 풍천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수록 풍천은 더 날뛰었다.

 

“거기 젊은 분, 이름이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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