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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4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5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4화

 

4화

 

 

 

 

 

 

‘가만, 그자가 천혈궁의 장로라고 했지? 천혈궁을 확 뒤집어엎어?’

 

문제는 천혈궁 그 자체였다.

 

천혈궁은 대별산맥 끝자락인 천주산(天柱山)과 곽산(霍山) 사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안휘성 남부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남궁세가조차 그들과 싸우지 않으려고 한다던데······.’

 

무사들의 수가 천 명이 넘고, 고수라 할 만한 자도 수십 명은 된다고 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점은, 강서와 안휘 남부의 맹주이며 천하오패천 중 하나인 신마성(神魔城)이 그들의 배후에 있다는 것이었다. 

 

혼자서 천혈궁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 놈, 한 놈 몰래 제거하면 언젠가는 망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얼마나 걸릴지 그 자신조차 예측할 수가 없어서 문제지. 

 

일 년? 삼 년? 아니 십 년이 더 걸릴지도······.

 

‘끄응, 복수만 하다 늙어죽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해서 형을 죽게 만든 자들을 가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원수를 놔둔 채 나 몰라라 하면 형이 매일처럼 꿈에서 나타나 자신을 원망할지 몰랐다.

 

방법을 찾아보자, 복수할 방법을!

 

‘천혈궁!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철천지원수다!’

 

풍천은 각오를 다지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근데 수행하던 비밀 임무라는 게 뭐지?’

 

탁자가 원수라도 되는 듯 탁자 위를 뚫어지게 노려보던 풍천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저기, 그 모종의 비밀 임무가 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미안하네만, 그건 말해 줄 수 없네. 본문의 비밀이라서 말이야.”

 

누가 비밀인 줄 모른데? 비밀 임무니까 당연히 비밀이겠지.

 

“정말 안 됩니까?”

 

“안 되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군.”

 

풍천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조환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다그친다고 입을 열 사람 같지가 않았다.

 

‘흥, 좋아, 말 안 한다고 내가 못 알아낼 줄 알아?’

 

그는 조환의 입을 여는 걸 포기하고 말을 돌렸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그렇다네. 사마 당주가 남긴 유서가 하나 있네. 해독이 어렵다는 걸 알고 죽기 전에 썼나 보더군.”

 

풍천의 눈이 조금 커졌다. 

 

“형이 유서를 남겼다고요?”

 

“자네에게 남긴 것이네.”

 

풍천은 이마를 찌푸린 채 불쑥 손을 내밀었다.

 

조환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게 없네. 문주님께서 갖고 계시지.”

 

신검무제 백무천이 갖고 있다고?

 

“유서를 돌려받으려면 그분을 직접 만나야 하는 겁니까?”

 

“물론이네. 문주님도 사마 당주의 사제가 어떤 사람인지 매우 궁금해하시더군.”

 

왠지 모르게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긴 살인청부의 당사자를 만나야 하는데 기분이 좋으면 그게 이상했다.

 

‘젠장, 안 만날 수도 없고······.’

 

하지만 조환은 그가 머뭇거릴 틈을 주지 않았다. 

 

“지금쯤 자네가 왔다는 사실이 문주님께 보고되었을 거네. 함께 가세.” 

 

풍천은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었다. 형이 유서를 남겼다면, 지옥의 염라대왕이 가지고 있어도 봐야 했다. 

 

 

 

2

 

 

 

문주의 집무실은 신검문에서 가장 큰 전각인 신검전이었다. 

 

삼 층으로 된 전각의 내부는 넓이만도 백 평이 넘어 보였는데, 그 안에는 백무천 단 한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풍천은 위압감이 느껴질 법한데도 태연히 주위를 둘러보며 조환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 그의 신경은 온통 태사의에 앉아 있는 백무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저 사람이 신검무제 백무천인가 보군.’

 

고요한 가운데 은은한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휘돈다.

 

부드럽게 느껴지면서도 만인을 압도하는 기운. 

 

‘후우, 정말 굉장한 자군.’

 

저런 자를 죽이라고? 미친놈들!

 

풍천은 느릿하니 숨을 들이쉬며 백무천을 향해 다가갔다. 

 

탄탄해 보이는 어깨. 각진 얼굴. 검은 수염이 턱에 덥수룩한 그는 사십 대 후반의 나이답지 않게 주름 하나 없었다.

 

‘사부님은 저 나이에 얼굴이 주독으로 빨갛게 달아오르고 검버섯까지 피었었는데······.’

 

풍천이 사부와 백무천을 비교하고 있는데, 조환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문주님께 아룁니다. 사마 당주의 아우를 데려왔습니다.”

 

백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게나. 사마 당주가 그리운 터에 그 사제를 보니 정말 반갑군.”

 

풍천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풍천이라 합니다. 솔직히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아직도 형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그러겠지. 워낙 갑작스런 일이었으니까 말이야.”

 

백무천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가리켰다.

 

“그리 앉게나. 조 당주도 앉게.”

 

조환과 풍천이 자리에 앉자 백무천이 물었다.

 

“조 당주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네만, 사마 당주가 남긴 유서가 한 장 있다네.”

 

“예, 들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절대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을 거요.’

 

백무천은 품에서 두 번 접은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풍천을 향해 내밀었다.

 

“이게 바로 자네 형이 남겼다는 유서네. 보게나.”

 

풍천은 접혀진 종이를 천천히 펴보았다.

 

그리고 죽 읽어가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가망이 없을 것 같아 아우에게 이 글을 남긴다.

 

우형은 아우가 더 이상 천풍장에 얽매여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제 그만 멍에를 벗고 세상으로 나가 네 마음껏 살도록 해라. 

 

추신(追伸).

 

죽음을 앞두고 문주님께 너를 받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당장 높은 지위를 내리지는 않으시겠지만, 서운하게 대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우형이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미안하구나.]

 

 

 

‘뭐야, 나에게 신검문 사람이 되라고?’

 

풍천이 한참 동안 유서를 들여다보고 고개를 들지 않자 백무천이 말했다.

 

“본좌는 사마 당주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네. 자네만 좋다면 자리를 마련해 보지.”

 

누구 맘대로! 누가 신검문에 들어가고 싶데?

 

풍천은 어이가 없었다. 

 

신검문에 들어가면 규율에 얽매여야 한다.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신검문에 몸을 담는단 말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솔깃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신검문이라면 형의 복수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천혈궁에 비해서 세력도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자신이 신검문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백무천을 죽여 달라고 청부한 놈들도 당장 위약금을 물어내라고 못할 것이다.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신검문에 있는 걸로 알 테니까. 

 

‘가만, 혹시 천혈궁 놈들이 청부를 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더더욱 청부를 이행할 수 없었다. 원수의 뜻대로 해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시간을 벌면서 삼십 냥을 만들어야지. 그걸로 위약금을 물고 깨끗이 끝내는 거야.’

 

그리고 철저히 복수를 하는 거다! 

 

‘가만, 차라리 큰딸을 지켜달라는 청부를 받아들일까? 아냐, 아냐. 거기에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몰라. 그 일은 일단 지켜보면서 결정해야지.’

 

풍천은 그 이후로도 신중하게 생각하는 척 이마를 찌푸리고 한참 동안 입을 닫았다.

 

그러다 조환과 백무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좋습니다. 형이 바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지위를 주실 생각이십니까?”

 

백무천은 조환을 바라보았다. 

 

조환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자네 형의 체면도 있으니, 내 생각으로는 일단 조장 정도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조장이면 어느 정도 지위일까? 적어도 십부장 정도는 되겠지?

 

풍천도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말단 무사는 자존심 상해서 싫고, 너무 지위가 높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터, 그건 귀찮아서 싫었다.

 

“그렇게 하죠. 그런데 기왕 인심 쓰시는 거, 비검당으로 보내줬으면 좋겠는데요.”

 

 

 

3

 

 

 

조환은 풍천을 신검문 제일 뒤쪽에 위치한 건물로 안내했다.

 

“여기가 비검당의 거처네.”

 

풍천은 조환의 뒤를 따라가며 건물을 휘휘 둘러보았다.

 

건물이 낡긴 했지만 천풍장의 건물에 비하면 매우, 아주 양호한 상태였다.

 

좋게 말하면 고풍스럽다고나 할까?

 

건물 안에는 십여 명이 있었는데, 조환과 풍천이 안으로 들어가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당주님께서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그들 중 한 사람이 일어나며 물었다. 목소리가 제법 굵어서 무게 좀 나가게 생긴 목소리였다. 

 

하지만 일어선 자는 키가 조금 클 뿐 젓가락처럼 빼빼 마른 자였다.

 

“진 조장, 여기 이 사람은 사마 당주의 사제 되는 사람이다. 인사라도 나누지 그러나.”

 

빼빼 마른 자, 진노교는 눈빛을 반짝이며 풍천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사마 당주의 사제’라는 말에 자세를 바로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나는 진노교라 하네. 좀 더 좋은 일로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풍천입니다.”

 

“당주님의 유품을 가지러 왔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그때 풍천의 말을 끊으며 조환이 나섰다.

 

“이 사람도 이제부터 비검당의 사람이 되었으니 앞으로 잘 지내도록 하네.” 

 

진노교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요?”

 

“일단 비어 있는 사조 조장 자리를 맡겼네.”

 

 

 

신검문에는 모두 오당(五堂)이 있었다.

 

그중 비검당은 인원이 모두 사십육 명으로 다른 사당에 비해서 반밖에 안 되었다.

 

당주와 부당주. 그 아래에 네 명의 조장이 있고, 각 조장이 열 명의 조원을 거느리는 형태였는데, 진노교는 바로 그 네 명의 조장 중 일조 조장이었다. 

 

풍천은 진노교를 따라 사마공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침상과 탁자 등 간단한 가구만 있었다. 평소 사마공유의 성품을 말해 주는 듯 어디에도 값나가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검소한 분이셨지. 수하들도 잘 챙겨주셨고. 나이가 젊은 데도 우리는 모두 당주님을 존경했다네.”

 

풍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럼 유품을 정리하도록 하게. 나는 밖으로 나가 있겠네.”

 

진노교가 풍천 혼자만 남겨놓고 밖으로 나갔다. 

 

풍천은 한참 동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가 형이 살던 방이란 말이지?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때 한쪽 검대에 놓여 있는 검 한 자루가 보였다.

 

그곳으로 다가간 풍천은 검을 들어 쓰다듬었다. 파란 검집에 별다른 문양도 없는 평범한 검이었는데, 손잡이를 잡자 형의 손에서 전이된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형은 바보야. 차라리 사부님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 아냐. 저승에 가면 사부님에게 혼날걸?’

 

혼나도 쌌다. 자기 혼자만 남겨놓고 죽다니.

 

검을 내려놓은 풍천은 벽에 붙어 있는 서랍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랍장에는 여섯 개의 서랍이 있었다.

 

그는 서랍을 하나하나 뽑아보았다. 

 

서랍 안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검병에 다는 수실도 있었고, 옥으로 만든 고리도 있었고, 무사건과 손목에 차는 보호대도 십여 종류나 있었다.

 

귀한 것은 없었지만, 손때가 많이 묻은 걸 보니 형이 애지중지한 듯했다.

 

 

 

풍천은 서랍을 모두 확인하고 털썩, 침대에 드러누웠다.

 

손을 깍지 껴서 뒷머리를 받친 그는, 눈을 감고 몇 년 전에 본 형을 떠올려보았다.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은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맞아, 형은 귀중한 것을 항상 침대 밑에 숨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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