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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60화 (완결)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60화 (완결)

 

260화

 

 

 

 

 

 

“이곳을 폐쇄한다며?”

 

독고무령이 염상소에게 말했다.

 

“그럴 생각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곳은 존재할 이유가 없었지.”

 

비옥은 욕망이 만들어낸 곳.

 

그랬다. 이런 곳은 애초부터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또 다른 비옥을 만들어낼 것이 분명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니까.

 

 

 

여명이 숲을 뚫고 수만 발의 화살처럼 쏟아진다.

 

장소천은 독고무령만 들여보내고는, 비옥 밖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곳이라 했다. 척 봐도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밀감옥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아온 걸까?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공연히 아픔만 상기시킬까봐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에이,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뭐.’

 

그렇게 일각가량 지났을 때였다.

 

숲 쪽에서 한 사람이 나오더니 비옥 쪽으로 다가왔다. 오십 대 후반의 나이, 암천회의 복장을 한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를 바라보던 장소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머리 모양이 달라지고 옷이 바뀌긴 했지만,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당신! 소한이지?”

 

장소천은 소한을 알아보고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한은 별반 대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장소천의 손에 몸을 맡겼다.

 

이상함을 느낀 장소천은 살수를 쓰지 않고 소한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무슨 뜻이야?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야? 내가 그런다고 죽이지 못할 줄 알고?”

 

소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회주에게 물어볼 것이 있네. 죽이려거든 그 후에 죽이게나.”

 

“무령에게?”

 

그때 독고무령이 비옥에서 나왔다.

 

“놓아주게, 소천.”

 

장소천은 소한을 노려보고는, 슬쩍 밀치며 멱살을 놓아주었다.

 

독고무령은 나오면서 들었기에 상대가 바로 장소천을 혈왕으로 만든 소한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을지 모르는 곳에 나타났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나에게 뭘 물어보려고 그러는 거요?”

 

“위지천백과 싸울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을 들었네. 독고헌이라는 이름도.”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소한은 물끄러미 독고무령을 쳐다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 삼십 년 전의 이름이…… 독고한이라면 설명이 되겠나?”

 

독고무령의 눈이 커졌다.

 

“귀하가…… 독고한?”

 

“그렇다네. 내가 소한으로 살아온 것에는 많은 사연이 있지.”

 

 

 

이십여 년 전, 그는 피맺힌 한을 풀기 위해 사천과 호북의 경계를 뒤졌다. 

 

언젠가 황궁서고에서 봤던 낡아빠진 강호야사라는 책에, 전설의 혈왕총에 대한 것이 쓰여 있었는데, 그게 떠올라 무작정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뒤진 지 삼 년 만에 정말로 혈왕총을 발견하고, 일 년에 걸쳐 도굴한 끝에 혈왕의 시신과 혈왕이 남긴 책자를 찾아냈다.

 

처음에 그는 그 책자를 읽고 두려움에 손발이 떨리고 오한이 들었다.

 

혈왕의 시신은 단순한 시신이 아니었다. 그의 시신에는 그가 평생 수련한 사악한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책자에는 그 기운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원한은 두려움을 짓누를 정도로 컸다.

 

이를 악문 그는 혈왕의 힘을 이용해 원한을 갚기로 작정하고, 그때부터 책자에 쓰인 방법을 연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도 복잡하고,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뛰어난 기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 모습을 완벽히 바꾼 후 노태군을 찾아갔네. 그자라면 그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도 있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자니까.”

 

그 다음부터는 독고무령도 대충 알고 있었다.

 

독고무령은 그렇게 찾던 독고한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기분이 착잡했다.

 

결국 독고한으로 인해서 많은 기재들이 죽어간 셈이었다. 장소천도 죽을 뻔했고. 

 

아무리 복수를 위한 일이긴 해도, 그로인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긴 것은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백부가 아닌가?

 

그는 독고한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소질이 백부님께 인사드립니다.”

 

독고무령이 인사하자, 오히려 독고한이 당황했다.

 

비록 동생을 아버지라 부르긴 해도, 친아버지가 아니다. 게다가 자신과 독고무령, 장소천 사이에는 묘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 그럴 것까지는…….”

 

“아버지의 형이시니 저에겐 당연히 백부가 되시지요, 안 그런가, 소천?”

 

장소천은 정신이 없었다.

 

느닷없이 소한이 나타난 것도 황당한데, 그 소한이 독고무령의 백부란다. 그 말을 듣고도 멀쩡하게 대꾸한다면 심장이 쇠로 된 사람일 것이었다.

 

“응? 어, 그거야…….”

 

“자네 설마 지난날의 잘잘못을 따지겠다고 내 백부님께 손을 쓰지는 않겠지?”

 

“내가? 그게 말이네……. 뭐 친구의 백부님인데…… 내가 어떻게…….”

 

하지만 장소천도 계속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더구나 어디 친구이기만 한가? 자넨 내 동생의 남편이 될 사람이잖아. 안 그래, 매제?”

 

독고무령은 그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독고한을 바라보았다.

 

“일단 가시지요. 어떻게 된 일인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습니다.”

 

 

 

* * *

 

 

 

유하령은 애초부터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영빈원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당분간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는 그곳에 있는 수밖에 없었다.

 

장소천은 그녀를 찾아가서 자신이 한 일을 자랑했다. 그리고 독고무령을 헐뜯었다.

 

“그 친구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소. 알탄이 어떤 사람이오? 더구나 그곳에는 십만이 넘는 군사가 있는데, 그런 사람을 나더러 만나라니! 음하하하, 뭐 그래도 일단 만나서 담판을 지었소. 아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유하령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주절거리던 장소천이 갑자기 입을 닫고 유하령을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이제 전에 내가 말했던 청에 대해 대답을 들어야겠소.”

 

“장 공자…….” 

 

“내 사람이 되어 주시오, 유 소저.”

 

유하령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허공을 쳐다보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잘근 깨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장 공자.”

 

“유 소저…….”

 

“저도 장 공자가 싫지는 않아요. 아니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하지만…….”

 

“무령이 때문이오?”

 

“굳이 마음을 숨기지는 않겠어요. 이미 장 공자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장소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내가 왜 모르겠소? 그래서 더 잘 보이려고 했는데……. 후우…….”

 

“정말 미안해요.”

 

장소천은 하늘을 쳐다보며, 짐짓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너무 신경 쓸 거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뭐 사람 마음을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고…… 쳇, 누구는 두 사람을 차지하고도 또 한 사람이 더 있고, 누구는 계속 혼자고. 유유에게 바람둥이하고 헤어지라고 했다가는 내가 오히려 유유에게 한마디 들을 거 같고……. 에이, 기분도 그런데 술이나 한잔할까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장소천은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화라도 내지,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니 화보다는 공허한 마음만 들었다.

 

‘어디 멀리 여행이나 떠날까? 말로만 들었던 장강도 보고, 동정호도 구경해보고, 항주와 소주도 보고. 맞아! 항주와 소주에는 예쁜 아가씨가 많다던데…….’

 

그냥 해본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꾸 생각하다 보니 정말로 가고 싶어졌다. 

 

멀리 떠나면 비어버린 가슴에 뭔가가 채워지지 않을까?

 

‘그래, 한번 가보자. 일단 아버지하고 어머니부터 만나보고 출발해야지. 말려도 가는 거야!’

 

혈왕 장소천이 강남으로 간 이유는, 그렇게, 순전히 여자에게 차였기 때문이었다.

 

강남 사람들에겐 재앙일지 복일지 모르겠지만.

 

 

 

* * *

 

 

 

알탄은 보고를 받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암과 두지청은 초조한 표정으로 알탄의 답을 기다렸다.

 

“대왕이시여, 놈들을 그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결정은 내가 내린다, 황암.”

 

“하오나 대왕의 이복동생이 중원 놈들에게 죽었사온데…….”

 

“황암, 네가 아직 나를 모르고 있구나.”

 

“대왕……?”

 

“흠, 어쩌면 그대의 말 덕분에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겠군.”

 

황암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오면 소장의 뜻을 들어주시는 것이옵니까?”

 

알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황암의 뒤쪽에 조용히 서 있는 장한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서른쯤. 키가 칠 척은 되어 보이는 거한이었는데,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몸매마저 완벽히 갖춰져서 예사로 보이지 않는 자였다.

 

“쿠얄, 네 말대로 정리는 깨끗이 하도록 하는 게 낫겠구나.”

 

쿠얄이라 불린 장한이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하옵시면 저의 뜻대로 해도 되겠사옵니까?”

 

“그렇게 하라.”

 

알탄이 승낙한 순간이었다.

 

번쩍!

 

쿠얄의 손이 허리를 쓸어가고, 한 줄기 번개가 파오를 휩쓸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함을 느낀 황암이 급히 몸을 날리려 했을 때는, 이미 쿠얄의 휘어진 도가 황암과 두지청의 목을 스쳐간 뒤였다.

 

“끅!”

 

“컥!”

 

두 사람이 약해서 당한 것이 아니었다. 쿠얄이 뒤에 서 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알탄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두 사람을 압박한 것도 이유였고, 쿠얄이 북원 최강의 무예를 익힌 무사라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쿠얄은 땅에 떨어진 황암과 두지청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이들의 머리를 그자에게 예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달단의 아들아.”

 

“너무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지금은 강호와 황궁이 뭉친 상황, 때가 아니옵니다. 하오나 삼 년, 삼 년이면 황궁과 강호는 다시 서로를 경원시하게 될 것이옵니다. 황궁은 힘이 강한 자를 원치 않는 법. 또한 암천사신이라는 자도 그때쯤이면 더 이상 황궁의 일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쯔쯔쯔, 위지천백, 그는 너무 자신만만했어. 큰 것을 얻으려면 애초부터 무리를 해서라도 싹을 제거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보다는 암천사신이란 자, 정말 대단하옵니다. 누가 그 짧은 세월에 위지천백을 무너뜨릴 힘을 얻을 거라 생각했겠사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는 능히 제왕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은 자야. 그의 친구인 장소천이라는 자만 봐도 그의 크기를 알 것 같구나. 단신으로 나를 찾아오다니. 허허허허.”

 

“두고 보십시오. 삼 년 후, 소자가 그 이름을 꺾을 것이옵니다. 반드시! 그리고 저 넓은 땅을 달단의 땅으로 만들 것입니다!”

 

강하게 말을 맺는 쿠얄의 두 눈에서 황금빛 광채가 쏟아졌다.

 

‘장소천! 다음에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 * *

 

 

 

시월이 시작될 무렵, 태자가 독고무령을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독고무령이 제왕성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자금성에 도착하자 태자가 직접 그를 맞이했다.

 

두 사람은 이전처럼 지하밀실이 아닌 태자궁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대 덕에 모든 일이 잘 처리되었네. 정말 고맙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전에 자네의 별호를 물은 적이 있지?”

 

“예, 저하.”

 

“태자의 이름으로, 아니 앞으로 황제가 될 사람의 이름으로 자네에게 별호를 하나 선물하겠네.”

 

“제 별호를 말입니까?”

 

“그렇다네. 앞으로 짐은 자네를 암천의 제왕, 암천제(暗天帝)라 부를 것이네. 무림왕에게는 암천사신보다 암천제라는 별호가 어울리지 않겠나?”

 

독고무령을 무림왕(武林王)에 봉(封)한다는 말!

 

독고무령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이미 암천회는 산서의 절대세력이다.

 

대세력을 이룬 이상 명예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하.”

 

독고무령이 고개를 숙이자, 태자의 눈에서 위엄 있는 눈빛이 흘러나왔다.

 

“부왕께서 사흘을 넘기기 힘드시네. 나는 곧 황제가 될 게야. 하나 아직 나에게는 힘이 부족하네. 앞으로도 그대가 나를 좀 도와주면 좋겠어.”

 

독고무령이 고개를 들고 무심한 어조로 답했다.

 

“저하께선 황제가 되시어 낮을 통치하십시오. 밤은 제가 맡겠사옵니다. 저하께서 내려주신 암천제라는 이름으로!”

 

백성은 황제가, 강호무림은 암천제가!

 

어찌 들으면 오만불손을 넘어 대역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었다. 황제와 똑같은 위치에 서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지만 태자는 고요한 눈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더니, 느닷없이 두 손을 내밀어 독고무령의 손을 잡았다.

 

“자네, 내 아우가 되지 않겠나? 그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네만.”

 

독고무령도 태자의 손을 마주잡았다.

 

“대명의 황제 폐하가 될 분을 형님으로 모시다니, 제가 너무 많은 득을 보는 것 같군요.”

 

“글쎄, 내가 그만큼 부려먹을 것이니 그리 득도 아닐 거네.” 

 

“제가 좀 게을러서 부려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다룬다네.”

 

“아마 쉽지 않을…….”

 

“할 수 있대도.”

 

“제 부인될 여자가 좀 드세서 부인 말도 들어야 되고, 많이 바쁠 것…….”

 

“예쁜가?”

 

“굉장히 예쁩니다. 그리고 셋이나 되지요.”

 

“험, 욕심도 많군.”

 

“그런데 언제까지 잡고 계실 겁니까?”

 

“우리 술이나 한잔할까?”

 

“괜찮으시다면, 나가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 백모님께서 요리를 아주 잘하십니다.”

 

“그럴까? 흠, 오늘은 마음껏 취해보고 싶군.”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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