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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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56화
256화
주호성과 우덕청이었다. 여기저기 피가 묻어있고, 옷자락마저 찢겨진 것이 심한 격전을 치른 듯했다.
그들을 본 독고무령과 위지천백의 표정이 엇갈렸다.
한 사람은 쾌재를 부르며 반겼고, 한 사람은 이를 악물고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잘 오셨습니다.”
“그대들이 끝내 내 뜻을 거부하다니…….”
주호성이 호박 같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손해 보는 일을 할 수는 없잖은가? 나는 성주 대신 독고 회주와 거래를 하기로 했다네.”
우덕청은 위지천백을 쳐다보지도 않고 독고무령에게 말했다.
“밖의 일은 다 정리되었다. 등후양이란 놈도 결국은 내 동환에 맞아 뒈졌지.”
그 말에 위지천백의 안색이 급변했다.
“설마 네놈들이……?”
그의 질문에 답하듯 정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밤하늘을 흔들었다.
쾅!
뒤이어 수백에 이르는 그림자가 지붕을 넘고 건물을 돌아 나왔다.
동쪽에서 나타난 자들 중에서 육풍원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회주! 우리가 왔네!”
남쪽에서는 암향단을 이끄는 풍호검 백기원과 무천단을 이끄는 설자웅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뒤를 이어 암천회와 천룡방의 일천 무사가 개미떼처럼 몰려왔다.
그들은 중앙을 압박하고 있는 제왕성 무사들의 뒤를 공격했다.
비명과 악다구니가 관제산을 흔들고,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강맹한 기운이 부딪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울렸다.
이제 숫자에서도 밀리지는 않는다. 적들 중 두어 명의 강자들만 처리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상황.
독고무령이 인환과 지살객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 노선배와 우 노선배께선 저들을 막아주십시오!”
북리중현이 자신 있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밀천객만을 상대하면서도 좀처럼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인환과 지살객이 삼성맹의 사람들을 몰아치고 있었는데, 단 몇 초식 흐르는 사이 서너 명이 이미 그들의 손에 죽어간 상황이었다.
주호성은 인환과 지살객의 무공이 가볍지 않음을 알고 흔쾌히 응낙했다.
“두당 은자 만 냥이네!”
거래는 확실히 하고서.
외상인데 무엇을 망설일까. 독고무령이 즉시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우덕청은 덩달아 움직였다.
그는 돈보다 지살객의 무공에 관심이 있었다. 꼭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무공. 잡아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두 사람에게 삼비객 중 둘을 맡긴 독고무령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떤가? 이래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위지천백!”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만 흐르지 않았다.
위지천백은 천금무원기를 십성 끌어올리고 하얗게 웃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천하를 얻으려는 내가 네놈 때문에 이런 일을 겪다니. 하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꿈에서 못 깨어나는군!”
“과연 그럴까? 제왕수호대는 저 늙은이들을 처리하라!”
순간이었다. 십여 장 뒤쪽에 떨어져서 눈치만 보던 무사들 중에서 십여 명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야조처럼 어둠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곧장 주호성과 우덕청을 덮쳤다.
위지천백이 위기에 처하지 않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초절정의 고수 열다섯. 그들은 위지천백이 지난 이십 년 동안 직접 키운 자들이었다.
셋이면 절대고수도 상대할 수 있다는 자들. 그러한 자들이 다섯 명씩 한 조가 되어 주호성과 우덕청을 공격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주호성이 버럭 소리치며 황금으로 된 주판을 휘둘렀다.
우덕청도 손목에 찬 동환에 내력을 집중시키고 두 팔을 휘둘렀다. 그가 두 손을 휘두를 때마다 동환에서 뿜어진 금광이 상대의 무기를 튕겨냈다.
그 사이 제왕수호대의 나머지 다섯 명은 각진 대사와 허운 진인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정말 끝도 없구나!’
전세가 나아지는가 싶더니 제왕수호대로 인해 상황이 또다시 뒤집혔다.
안색이 침중하게 굳은 독고무령은 태천일심의 기운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무심천지연을 넘어 태천무극에 발을 디딘 그였다.
의지가 일어난 순간 기가 절로 움직이며 무형의 기운이 그의 전신을 보이지 않게 맴돌았다.
“위지천백! 어디 그대가 자랑하는 천벽의 무공을 펼쳐봐라!”
위지천백의 두 눈에서 홍광이 번뜩였다.
“네놈이 어떻게 천벽을 아는지 모르겠다만, 어차피 죽여야 할 놈. 일단 네놈의 사지를 부순 뒤에 물어보겠다.”
찰나, 그의 양손에서 홍광이 눈부시게 피어나며 독고무령을 향해 몰려갔다.
노태군의 두 다리를 일장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어지간한 무공으로 상대하다가는 기회를 잡을 새도 없이 당할지 모르는 일.
독고무령도 처음부터 수천제마구겁무를 펼치며 천금무원기에 맞섰다.
쿠구구궁!
두 사람의 기운이 뒤엉키자 둔중한 소리가 관제산을 뒤흔들었다.
이미 사람들은 멀찌감치 물러선 상황.
방원 십 장이 두 사람의 기운에 휩싸이며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는 공포의 지역으로 변해버렸다.
밀천객도, 그를 상대하던 북리중현도, 주호성이나 우덕청조차 그 모습을 훔쳐보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당금 강호의 절대고수들인 그들로서는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이 자신하던 절대의 경지를 한 단계 넘어선 사람들이다.
굳이 말한다면 초인의 경지라고나 할까?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앞에 있는 적을 물리치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리도 한번 제대로 붙어볼까!”
호승심이 치민 북리중현은 전력을 끌어올려 밀천객을 몰아붙였다.
밀천객은 자신의 무위가 북리중현보다 미약하게나마 뒤처지는 것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상대의 기운을 흘렸다.
한편, 진사혁은 영호진광과 대등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전과 또 달라진 그의 모습에 영호진광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단 한 달 사이에 자신과 대등할 정도로 강해지다니!
‘괴물 같은 놈!’
이러다 몇 달 더 지나면 자신을 넘어서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을 하니 분노가 끓어올랐다. 더구나 등후양마저 놈들에게 당한 듯하다.
진사혁은 독고무령의 친구. 놈을 죽여서라도 등후양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흥!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다!’
그때 진사혁이 광소를 터트리며 곤을 뻗었다.
“우하하하! 저게 바로 내 친구지! 영호진광! 이제 끝장을 보자!”
소리 없는 곤강이 그의 곤 끝에서 쭉 뻗었다.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가공할 압력이 밀려든다.
“오냐, 이놈! 네놈의 목은 반드시 내가 잘라주마!”
영호진광은 짐짓 호기롭게 소리치고는, 백령천도를 휘두르며 진사혁의 곤에 마주쳐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진사혁은 전신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지지 않는다! 멀쩡하게 살아서 소현 누님에게 돌아갈 것이다!’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린 그는 구양소현을 떠올리며 다시 곤을 쳐들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영호진광을 가리켰다.
반드시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실린 부동관천이었다. 탁무원에게 펼칠 때와는 또 달랐다.
고오오오!
영호진광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뭐, 뭐지?’
그는 황급히 백령천도에 전 공력을 쏟아 넣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압박해 들어오는 기세에 맞섰다.
콰르르릉!
벽력음과 함께 영호진광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밀려든다. 영호진광은 자신이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는 걸 알고 눈을 부릅떴다.
‘빌어먹을, 놈에게 밀렸어!’
진사혁은 느낌으로 자신이 우세를 잡았다는 걸 알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하하하! 이게 바로 천하제일곤 관천뇌곤이다, 영호진광!”
하지만 진사혁과 달리, 한무종과 관조운 등 나머지 호위무사대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들이 단기간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지만, 상대 역시 제왕성의 최고위급 간부들이었다. 더구나 숫자도 많고 부상이 심한 동료들마저 신경 써야 했다.
악전고투.
시간이 갈수록 격전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혼돈으로 치달았다.
그 사이 독고무령과 위지천백의 격전은 점점 더 가경할 지경으로 치달았다.
쩌저저적!
독고무령은 어둠이 터져나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연신 검을 떨쳤다.
뇌룡망망에 이어 전룡참마, 그리고 참마뇌전이 연이어 펼쳐지자, 수십 수백 줄기의 뇌전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며 위지천백을 향해 밀려갔다.
그럼에도 위지천백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독고무령의 연환공격을 무산시켰다.
연무장 바닥은 이미 폭발이라도 한 듯 엉망이 된 상태.
두 사람은 허공에 이 장가량 떠서 서로를 공격했다.
삼 초 연환공격을 받아낸 위지천백은, 독고무령이 연속된 공격을 펼치고 순간적으로 멈칫한 틈을 타 공세로 전환했다.
“이놈! 이번에는 내 공격을 받아보아라!”
그의 양손에서 피어난 홍광이 두 자 크기의 구체를 이루는가 싶더니, 독고무령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노태군의 두 다리를 소멸시킨 천광만홍구를 펼친 것이다.
독고무령은 상대의 공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수천제마구겁무의 일곱 번째, 멸양(滅陽)을 펼쳤다.
콰아아앙!
일시지간 고막을 먹먹케 하는 굉음과 함께 홍광으로 빛나던 구체가 산산이 부서지며 소멸되었다.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두 사람이 각기 삼 장가량 밀려나고, 그들 사이의 바닥에서 먼지구름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땅에 내려선 위지천백은 굳은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천광만홍구마저 독고무령에게 별 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결국 천금대원기(天金大原氣)만이 놈을 쓰러트릴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천금대원기를 펼칠 경우, 자신의 내력 역시 반은 소모될 거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함부로 펼칠 수 없었다.
독고무령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천제마구겁무를 익히지 않았다면, 무심천지연의 단계를 넘어 태천무극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면 막아내지 못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칠 장가량 거리를 둔 채 서로를 직시했다.
그들에게 칠 장거리는 그저 한 걸음에 불과했다. 찰나의 틈만 보여도 선공을 당할 터. 눈을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조심해야 했다.
태천일심의 기운을 전신으로 한 바퀴 휘돌린 독고무령이 먼저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로만 들었던 천벽의 무공이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군.”
위지천백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체 네놈이 어떻게 천벽을 안단 말이냐?”
“어떻게 아냐고? 지금 그렇게 물었는가, 위지천백? 그럼 나도 묻겠다! 그대는 어떻게 천벽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더냐?”
“그게 네놈과 무슨 상관이라고…….”
“누군가를 고문해서 알아낸 것이 아니더냐?”
위지천백의 표정이 괴이하게 이지러졌다.
“어이가 없구나. 네놈이 누군데……. 가만, 혹시 오로가 말해준 것이더냐?”
위지천백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의아했다.
자신이 어떻게 천벽에 대한 것을 알아냈는지 제왕오로라면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도 천벽에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공이 적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때 독고무령이 한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셨다, 위지천백!”
“네 아버지가?”
위지천백으로선 더욱더 의혹만 깊어졌다.
독고무령이 다시 말했다. 그의 입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억할지 모르겠군, 독고헌이라는 이름을.”
“독고헌이라고?”
“그대는 그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슬퍼하실 테니까. 수십 년을 비옥 안에서 지내신 분이시다. 그런데도 그렇게 만든 사람이 이름조차 기억 못한다면 얼마나 슬프겠느냐?”
“비옥? 설마…… 비옥십팔호실이라면…… 그럼 네놈이……!”
말을 더듬는 위지천백의 표정이 몇 차례나 바뀌었다.
독고무령은 그런 위지천백을 똑바로 바라본 채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겐 두 분의 아버지가 있다. 나의 또 다른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있는가?”
위지천백은 뚫어져라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안색이 급변했다.
“너…… 네가 그럼…… 장명이의, 고은선의 아들이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