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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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44화
244화
사마초는 입을 꾹 닫고 위지성을 노려보았다.
그도 잠시, 그는 뒤로 한걸음 물러선 후 옆으로 돌아섰다.
“가시게.”
위지성은 빼어든 검을 거꾸로 잡고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장로.”
“제길,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군.”
사마초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어린 매가 아니라 이미 사냥을 할 수 있을 만큼 다 큰 매였어. 그걸 성주와 우리들만 몰랐을 뿐.’
위지성은 장유유와 장이생 부부를 제왕성에서 이십 리 떨어진 곳까지 데려가 주었다.
“잘 가시오.”
“고마워요, 위지 공자.”
“나는 이제 당신을 잊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도 제왕성에서의 안 좋았던 일을 잊어주시오.”
장유유는 위지성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추억은 오래 간직할 이유가 없었다.
* * *
위지천백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랬는가?”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그 안에는 노기가 묻어 있었다.
그런데도 사마초는 무릎을 꿇은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공자가 커 보였습니다.”
위지천백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그 아이가 커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직 둥지에 있는 새끼 매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제 다 커서 혼자서도 사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흠…….”
위지천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사마초를 바라보았다.
사마초는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화가 풀리고 흐뭇한 마음마저 들었다.
‘녀석, 마음고생을 한 것이 헛된 짓은 아니었나 보군.’
그래도 겉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짐짓 꾸짖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허락도 없이 그 아이를 보내준 것은 잘못이네.”
노기가 현저히 수그러진 목소리다.
사마초는 고개를 들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벌을 받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리 마음먹었다면 내가 어떤 벌을 내려도 받겠군.”
“말씀하시지요.”
“이제 곧 본격적인 건국(建國)이 시작되면, 보나마나 황궁에서 우리를 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네. 자네는 오늘부터 그 아이의 그림자가 되게. 그 아이가 죽게 생겼으면, 자네가 죽어서라도 그 아이의 목숨을 지켜야 하네.”
사마초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하지요.”
제5장 몰려드는 사람들
둥! 둥! 둥! 둥!
힘찬 북소리가 관제산 산자락에 울려 퍼졌다.
“충!!”
외마디 충성을 알리는 목소리가 제왕성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 제왕성의 정문이 활짝 열리고, 수백 필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관제산을 내려와 사방으로 흩어진 기마무사들은 산서의 모든 강호문파들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닷새가 지날 무렵, 산서 전역이 한 가지 소식으로 뒤흔들렸다.
[천하의 모든 무림문파 동도들에게 알리노라!
나 위지천백이 천자의 부름을 받아 무림왕에 올랐도다. 이는 나 혼자만의 영광이 아니라, 전 무림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이에 구월 구일, 관제산 제왕성에서 제왕대전을 열고, 동도들과 함께 기쁨을 같이하고자 하노니, 모두가 참석하여 무림의 경사를 축하해주기 바라노라!]
* * *
독고무령은 풍운장에 모인 각 세력의 간부들을 풍운전으로 소집했다.
“제왕성에서 제왕대전에 참석하라는 배첩이 왔습니다.”
그 일에 대해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장내 분위기가 마치 수만 근의 바윗덩이에 눌린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제일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북리중현이었다.
“회주의 의견을 듣고 싶군.”
독고무령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위지천백은 제왕대전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려 할 겁니다. 해서, 전 제왕대전을 전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볼 생각입니다.”
북리중현이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보나?”
“저들의 사기는 최고조로 올라 있습니다. 잘해야 사 할에 불과하지요.”
“그런데도 제왕대전에서 모든 걸 결정하겠다는 건가? 그건 무리네. 차라리 나는, 저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서서히 압박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네만.”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암천회가 천룡방까지 끌어들여 힘을 키웠다고 해도, 아직 제왕성에 비해 부족한 것만은 분명한 일, 제왕성과 직접적인 정면충돌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산서의 중소문파들이 제왕성의 손발이나 다름없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힘들었다.
독고무령도 모르지 않았다.
“저 역시 우리가 저들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위지천백이 나라를 세운다면 황도를 어디로 정할 것 같습니까?”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곳은 두 곳, 태원과 대동이다.
크기나 훗날을 생각하면 태원이 나았다. 반면 황궁의 공세를 피하기엔 대동이 유리했다.
문제는, 암천회의 거점이 있는 태원을 놔두고 대동을 황도로 삼는다는 것은, 저들에겐 배에 날선 칼날을 꽂고 있는 거와도 같다는 것이었다.
“나라면 태원을 황도로 삼을 것이네.”
“저 역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저희를 무릎 꿇리려 하겠지요.”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한 암천회가 자신들의 요구를 무시하면 무력으로 처단하려 할 것이다.
태원성을 피로 뒤덮는 한이 있어도!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아마 위지천백은 제왕대전을 이용하려 할 겁니다. 그 여세를 몰아 저희를 압박하겠지요. 사실 저희로선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다른 선택이 없다?
사실이 그랬다. 제왕대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위지천백은 천하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제왕성을 친다는 것은 지금보다 몇 배나 더 힘든 일이 될 터. 아니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모두가 상황을 인식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으음……. 좋네. 그건 자네의 생각이 옳다고 하지. 한데 산서의 군부도 위지천백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들었네만, 그들에 대한 대책은 있나?”
“어차피 우리가 군까지 직접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군은 군이 책임지고, 우리는 제왕성만 상대하면 됩니다.”
“저들의 편으로 돌아선 군부를 막아낼 군사가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그에 대해선 나름의 조치를 취했지요. 또한 지금쯤 북경의 어림군도 은밀히 태행산을 넘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산서로 들어오면, 위지천백을 따르는 군부는 우리의 움직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북리중현은 수염을 쓸어내렸다. 내심의 경악을 억누르기 위함이었다.
군부와 황궁을 움직인 것은 분명 독고무령일 것이 분명했다.
언제 그런 대책을 세워놓았단 말인가?
황궁과 가깝다는 것은 알지만, 설마하니 어림군을 움직일 정도였단 말인가?
암천회와 손을 잡기로 한 것에는 나름의 계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웃기는 소리였다.
방주인 자신이 직접 나섰을 때는 그만큼 더 큰 것을 얻기 위함이었다.
제왕성을 무너뜨리려면 암천회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설령 암천회가 져도 제왕성 역시 그만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천룡방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을 테지만, 두 세력의 피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천룡방은 칠 할이 한단에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자신만 무사할 수 있다면, 산서가 통째로 들어올 수도 있는 일. 까짓 거 모험을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흘러가는 상황이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위지천백이 무림왕이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가 나라를 세우려 한다는 것도 그렇고, 독고무령에게 군부와 황궁을 움직일만한 힘이 있다는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으음, 너무 성급했어. 내가 직접 오지 않아도 되었거늘.’
문제는 이제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
“흐음, 군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 번 해볼 만하긴 한데…… 군이 회주의 생각대로 움직여줄지 모르겠군.”
그때 북리중현의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 아직 회주가 어려서 잘 모를지 몰라 하는 말인데, 세상은 생각대로 흐르지 않을 때가 많은 법이라네. 만일 군이 회주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양쪽을 모두 상대해야 할 텐데, 그에 대한 대책은 있나? 설마 군이 회주의 뜻대로 움직여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천룡방의 팔대장로 중 하나인 구환마(九環魔) 혁련장욱이었다.
묵묵히 앉아 있던 전무호가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관의 사람으로서 최대한 끼어드는 것을 자제했다. 그런데 마치 독고무령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탕!
탁자를 때려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그가 말했다.
“어허! 아직 모르시나 본데, 회주께선 태자 저하를 대신해 황명을 집행하는 용검령주시오! 말을 좀 조심해주셨으면 좋겠구려! 태자 저하 앞이었어도 그리 말하실 거요?”
혁련장욱의 입이 꾹 닫혔다.
북리중현도 모르고 있던 사실에 안색이 급변했다.
‘빌어먹을! 그랬었군!’
단순히 암천회주일 때의 독고무령과 태자의 대리인인 용검령주와는 신분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잘못하면 한단의 총방에 불똥이 떨어질지 모르는 일.
“미처 몰랐구려, 회주께서 용검령주였다니…….”
북리중현의 말투가 당장에 달라졌다. 혁련장욱도 황급히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숙였다.
“이 늙은이가 말을 실수한 것 같소이다, 회주.”
하지만 독고무령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대꾸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저번에 황궁의 일을 하나 처리해주었더니, 태자께서 더 부려먹으려고 감투를 하나 준 것뿐이니까요.”
그러고는 무심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무호야 무심결에 기분이 상해서 그리 말한 것뿐이었다.
하나 그로 인해서 분위기가 완전히 독고무령을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북리중현은 먹지도 못할 땡감을 씹은 기분이었다.
독고무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이 꾹 닫힌 북리중현을 압박했다.
“천룡방의 무사들을 좀 더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가능하겠습니까?”
북리중현은 입 안에 가득 찬 땡감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만 같았다.
말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지, 내놓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속으로야 절대 응낙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독고무령이 태자의 분신인 용검령주만 아니었다면.
“얼마나……?”
“그거야 방주님의 판단에 맡겨야지요.”
북리중현은 태원으로 온 것이 후회 막심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자신은 이 자리에 있거늘.
‘할 수 없지.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어차피 사람을 불러야만 된다면, 이 기회에 천룡방의 위세를 보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가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알겠네, 사람들을 최대한 불러오지.”
“감사합니다, 방주.”
한쪽에 앉아 있던 장만익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꼭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내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자신만만하시더니…….’
* * *
“태원의 상황은 어떠한가?”
위지천백의 질문에 능효가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너무 놔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자세히 말해보게.”
능효는 그간에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태원의 상황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천룡방의 무사들마저 태원에 들어섰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천룡방은 이전에도 있었다. 잠시 백천산 계곡에서의 일 이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데 그들이 다시 암천회에 무사들을 보낸 듯했다.
하지만 위지천백은 북리중현이 직접 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이가 없군.”
위지천백은 정말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찌푸렸다.
기껏해야 한 달여. 그 사이 암천회의 무력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가히 강호사에 유래가 없는 급격한 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쳐야 했거늘…….’
이제는 후회를 해봐야 소용없는 일.
그는 후회하느니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황제위에 오르면, 놈들도 내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후후후후, 암천사신, 나에게 무릎 꿇기 싫다면, 산서를 도망치듯이 떠나야만 할 것이다.’
물론 그를 자신의 수하로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들에게도 배첩을 보냈겠지?”
“예, 전하.”
“보다 더 자세하게 알아봐라. 특히 놈들 중 주요 인물에 대한 것은 빠짐없이 파악해 보도록 하고. 이번 제왕대전에서 놈들을 반드시 무릎 꿇릴 것이니라.”
“알겠습니다, 전하.”
위지천백은 능효가 나가자마자 허공에 대고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뒤쪽의 휘장이 젖혀지고 밀천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