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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2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27화

 

227화

 

 

 

 

 

 

“장소천이라고, 장 어르신의 아들이네.”

 

진사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홍문에 갔다던 그 아들 말인가?”

 

“맞아. 바로 그 친구네.”

 

“그런데 좀 전에 혈왕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독고무령은 진사혁의 커다란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혈왕은 죽었네. 이제는 내 친구만 남은 거지.”

 

진사혁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몸이 굳어졌다.

 

특히 한무종은 그제야 장소천의 얼굴을 떠올리고 눈을 크게 떴다. 

 

얼굴이 창백한데다가 악마 같은 기세가 보이지 않아 그렇지, 분명 혈왕과 비슷했다.

 

“정말…… 혈왕입니까?”

 

“어제까지는 그랬소. 하지만 지금은 내 친구일 뿐이오.”

 

독고무령은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섰다.

 

한무종은 그의 등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 말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는 독고무령을 믿었다.

 

반면 진사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장소천이 독고무령의 친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혈왕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사람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독고무령이 일행과 함께 격전장을 벗어난 지 일각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한 사람이 언덕 위에 모습을 보였다. 소한이었다.

 

‘혈왕과 독고무령이 아는 사이라……. 좋아, 어디 따라가 볼까?’

 

노태군도 죽었다. 위지천백과의 약속했던 일도 끝이 났다. 더 이상 산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끌렸다.

 

꼭 혈왕, 아니 혈왕이었던 장소천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소천의 몸에서 혈마단과 혈왕분의 기운을 몰아내는 불가사의한 일을 벌인 자. 암천사신 독고무령. 그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정확히는, 대체 어떤 능력이 혈왕의 능력을 몰아낼 정도인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물론 독고무령 본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갔지만.

 

‘어차피 갈 곳도 없는데, 잘 됐군.’ 

 

 

 

* * *

 

 

 

대풍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영호진광과 백리환이 백 명의 무사들을 데리고 혈왕을 쫓아갔다. 그런데 백리환은 죽고 무사들은 사십여 명만이 돌아온 것이다.

 

영호진광이 백리환의 시신을 안고 대풍전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영호진광을 향했다.

 

새벽인데도 제왕성의 간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영호진광은 백리환의 시신을 위지천백과 등후양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일의 전후를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왕을 찾아냈소. 그런데 암천사신이…….”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위지천백과 등후양은 백리환의 시신을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제까지 당당하게 천하를 논하던 백리환이 주검으로 변해 있다.

 

시신을 보니 선천진기까지 끌어낸 것 같다.

 

두 사람의 입을 닫게 만든 것은, 그러고도 단 일 검에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독고무령, 그가 그토록 강하단 말인가?

 

위지천백은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영호진광의 말이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면, 그의 무위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고 봐야 했다.

 

‘천금무원기에 필적하는 무공을 지녔다고 봐야겠군.’

 

도대체 천하에서 어떤 무공이 천금무원기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위지천백은 그 점이 의문이었다.

 

반면 등후양은 독고무령의 무위를 견식해 봤기에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가 강하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설마 그 사이에 기연이라도 얻었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둘 다 결론이 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자, 영호진광이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소제가 너무 방심했습니다. 끝까지 합공을 주장했어야 하거늘.”

 

‘글쎄, 놈이 만약 내가 생각한 것만큼 강하다면, 아마 그대가 합공했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놈에게 충격을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위지천백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영호진광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일단 백리 아우의 시신을 관제산으로 운구할 것이네. 그 후에 놈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 보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형님.”

 

“두 아우도 알겠지만, 일은 이제 반이 끝났을 뿐이네. 정말 중요한 일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암천회는 그 일이 끝난 다음에 처리해도 늦지 않아.”

 

영호진광도 모르지 않았다.

 

당장 암천회를 치려다가는 은룡산장과 싸울 때만큼이나 피해가 커질지 몰랐다.

 

그리 되어서는 안 되었다. 피해가 커지면, 진행하려는 일이 벽에 부딪칠 공산이 큰 것이다.

 

“저는 형님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등후양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아마 백리 아우도 한은 그리 없을 겁니다. 자신보다 강한 자와 싸우다가 죽었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무사의 운명이었다. 누구나 생각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운명.

 

두 사람이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자, 위지천백은 더 이상 백리환의 죽음에 대해 연연하지 않고 위지성을 향해 말했다.

 

“지금쯤 황궁에서도 일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준비할 것이 적지 않으니 날이 밝는 즉시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라.”

 

“예, 아버님.”

 

 

 

* * *

 

 

 

자금성의 깊숙한 곳에서 나직한 노성이 흘러나왔다.

 

“은룡산장이 무너졌다고?”

 

“예, 전하.”

 

탕!

 

다탁을 손으로 내려친 중년인의 입에서 거친 말투가 쏟아졌다.

 

“이런 바보 같은 늙은이! 그까짓 자존심이 뭐라고 직접 나서!”

 

중년인의 앞에는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환관이 서 있었는데, 그는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며 재촉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전하. 곧 이왕 전하께서 움직이실 겁니다.”

 

중년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앞에 서 있는 중년의 환관, 양 태감을 바라보았다.

 

“이러고 있지 않으면,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란 말이냐?”

 

“잠시 몸을 피하심이…….”

 

“흥!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몸을 피한단 말이냐? 너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느냐?”

 

“소인이 어찌…….”

 

“죄는 내가 지은 게 아니다. 노태군, 유 공공. 그 늙은이가 지은 것이지. 그렇지 않느냐?”

 

양 태감은 삼왕의 말뜻을 깨닫고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당연한 말씀이시옵니다, 전하.”

 

“너는 다른 생각 말고, 이왕 형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거나 살펴 보거라. 알겠느냐?”

 

“예, 전하!”

 

“가봐라.”

 

 

 

삼왕 주곤은 양 태감이 나간 문을 노려보았다.

 

‘흥! 절대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어!’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방법은 태자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라면 당분간 머리를 숙이지 못할 것도 없지. 내가 아는 비밀도 적지 않으니, 태자도 나를 내치지는 못할 게야. 후후후후…….”

 

그는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목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한줄기 목소리가 귀청을 파고들었다.

 

<너는 두려움 때문에 자결한 것으로 처리될 것이다.>

 

주곤은 입을 열어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목에서는 목 졸린 고양이의 그르럭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만져보았다.

 

한 자루 비수가 손에 잡혔다. 

 

‘이, 이건…….’

 

그는 손잡이의 감촉만으로도, 그 비수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금황비라는 걸 알아챘다.

 

자결한 것으로 처리된다는 것. 그제야 그 말뜻을 알 것 같았다.

 

<꿈은 꿈으로 끝나는 법이지. 저승에 가거든 밀천에서 온 사람이 보냈다고 해라, 주곤.>

 

그게 주곤이 생전에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주곤은 머릿속에 하얗게 비어가는 와중에 다탁을 덮은 하얀 천을 잡아 당겼다.

 

와장창!

 

다탁 위에 있던 찻잔이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고, 주곤이 부들부들 떨며 죽어가는 데도 누구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천하의 중심지, 자금성에 그 어느 때보다 진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걸.

 

 

 

* * *

 

 

 

독고무령은 태원에 도착하자마자 장소천을 방에 눕힌 후 회의를 소집했다. 어차피 자신의 존재가 영호진광에게 알려진 이상 더 이상은 숨길 것도 없었다,

 

 

 

-회주께서 돌아오셨다!

 

-암천사신 독고무령이 돌아왔다!

 

 

 

소식이 전해지자 고요하던 풍운장이 들썩였다.

 

무겁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열기로 바뀌고, 암천회의 사람들은 환해진 얼굴로 반색하며 환호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지 일각이 지날 즈음, 풍운전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은 가히 천하의 어떤 방파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한때 제왕오로였던 암천오로, 천하를 뒤집어 놓았던 북천삼괴, 알려지지 않은 절대고수 진원명, 전마 육풍원과 귀창 우도진, 전궁산장의 장주 설자웅, 화천문의 양우천과 공호승 그리고 나호민을 비롯해서 산서의 명숙이 아홉이나 된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 절정 이상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또 몇 명인가.

 

제왕성이 정면으로 쳐들어온다고 해도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들이 내심 뿌듯해하며 어깨에 힘을 주고 있을 때였다.

 

독고무령이 운양을 향해 말했다.

 

“운양, 어제 벌어진 일을 말씀드리게.”

 

자리에서 일어난 운양이 우현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했다.

 

“어젯밤, 귀원장에 웅크리고 있던 은룡산장이 제왕성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로써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싸움은 제왕성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의 들떴던 표정이 일순간에 바위처럼 굳어졌다. 

 

제왕성이 움직였다는 말은 이미 들었던 터였다. 하지만 막상 은룡산장이 무너졌다는 말을 듣자, 가슴에 바위가 얹힌 듯했다.

 

더구나 위지천백이 노태군을 죽였는데, 그의 신위가 가히 천신과 같았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위지천백의 그림자에 짓눌릴 즈음, 진사혁이 백리환의 죽음을 알렸다.

 

“제왕성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는 못하고 있을 겁니다. 회주가 백리환을 죽였으니까요.”

 

-암천사신이 사대천왕 중 장왕, 붕천신장 백리환을 죽였다!

 

그 사실은 또다시 사람들의 낯빛을 변화시켰다.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상석에 앉아 있는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위지천백은 노태군을 죽이고, 암천사신은 장왕을 죽였다.

 

묘한 대비였다. 

 

마치 산서의 두 하늘이 나란히 강적을 물리친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세 번에 걸친 충격적인 사실은 풍운전에 모인 이십여 명의 간부들을 팔색조로 만들었다.

 

뭘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독고무령은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그간의 일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천룡방의 일, 황궁에서 낭아산에 있는 은룡산장을 치기로 한 일 등등.

 

유하령의 일과 혈왕의 일만 빼고. 

 

문제는 천룡방이었다.

 

그들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천룡방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몇 사람이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육풍원은 입을 한 자나 내민 채 씩씩거렸다.

 

“지미, 회주는 속도 좋네.” 

 

그러나 장만익이 죽음을 무릅쓰고 수하들과 함께 되돌아 온 것을 생각해서 대놓고 욕하지는 않았다. 북리사웅이 외팔이가 된 것도 은근히 속이 시원했고.

 

그렇게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한 독고무령은, 기회라는 듯 공격하는 삼괴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일단 풍운전을 나왔다.

 

“흥, 단체의 주인이 되었으면 좀 조심해서 다녀야지 말이야.”

 

“킁,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 조심성이 없어.”

 

“허허허, 내 약을 가지고 다녔으면 다쳐도 금방 나았을 텐데. 어째 어른 말을 안 들어요.”

 

장소천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치선이 그 말을 들었으면 또 약을 먹이겠다고 방방 떴을 것이었다.

 

‘냄새가 좀 고약해서 그렇지, 나한테는 잘 맞았는데……. 희한하단 말이야.’

 

삼불곡에서의 일을 생각하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의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장소천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장소천이 누워있는 방은 철검위와 암천위가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그가 방문을 여는데, 뒤에서 석도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회주, 조금 전에 삼공께서 들르셨는데, 저희가 도공과 불공어르신을 말리는 사이, 선공께서 안으로 들어가셔서 안에 계신 공자를 보고 갔습니다. 저희들이 급히 말려서 바로 나오시긴 했습니다만…….”

 

빌어먹을!

 

독고무령은 방문을 급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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