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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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26화
226화
독고무령은 즉시 언덕을 내려가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곧 덩치 큰 자가 숲에서 나오더니 걸음을 멈췄다.
진사혁이었다.
“어? 회주!”
진사혁의 곰이 울부짖는 것 같은 목소리가 이리도 반가울 줄이야!
독고무령은 미로에서 출구를 발견한 기분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숲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관조운과 사공화정 등 천룡방까지 동행했던 사람들이었다. 종리청과 모용설이 한무종과 도일성으로 바뀌었을 뿐.
“사혁! 어찌된 일인가?”
“그야 회주 찾으러 나왔지. 근데 무슨 일이야? 뒤에 업은 사람은 또 뭐고?”
독고무령은 대답 대신 등에 업힌 장소천을 묶은 장포를 풀고는, 장소천의 몸을 조심스럽게 돌려 안고 진사혁에게 내밀었다.
“이 사람을 철저히 보호하도록 하게. 조심해야 하네. 내상이 깊어서 충격을 주면 위험하니까.”
“누군데?”
진사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독고무령과 장소천을 번갈아보았다.
“내 친구.”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그거면 되었다.
진사혁은 독고무령의 친구라는 말에 장소천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러다 무엇을 느꼈는지 언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그때, 백리환과 영호진광이 제왕성 무사들과 함께 언덕을 넘어섰다.
언뜻 봐도 오륙십 명이 넘는 인원. 어둠에 몸을 묻은 채 밀려 내려오는 그들의 기세가 삼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을 본 진사혁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지?”
독고무령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백리환과 영호진광. 거기다 제왕성의 무사들도 있지. 이제부터 저들에게 암천사신의 무서움을 알려줄 생각이야.”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온 순간, 진사혁의 두 눈에서 형형한 살광이 흘러나왔다.
“이보쇼, 석 형이 이 사람을 좀 맡아주쇼. 나는 회주와 함께 저놈들을 상대할 테니까. 꼭 내 손으로 죽여야 할 놈들이 있거든.”
석도명이 진사혁의 손에서 장소천을 넘겨받았다.
그때 사공화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분은 두세 명이 호위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호위할 사람만 남기고 모두 싸우지요.”
적들 중 우려되는 자는 백리환과 영호진광을 비롯해서 대여섯 명 정도다. 사공화정의 말대로 몇 명이 호위한다면 당장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다.
독고무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덕을 내려오는 자들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그 뒤를 진사혁과 관조운, 사공화정, 전유곤, 한무종, 염부중이 나서고, 석도명과 감가기와 도일성이 장소천을 호위하기 위해 남았다.
백리환과 영호진광은 독고무령에게 일행이 있음을 알고 멈칫했다.
하지만 상대의 숫자는 기껏해야 열 명 안짝. 게다가 부상자를 돌보려면 두세 명 정도는 빠질 것이다.
자존심이 있지,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암천회 놈들인가? 좋아! 네놈들이 왜 혈왕을 구해 가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죽여주지!”
백리환은 짐짓 큰소리를 내지르고는 언덕을 내려갔다.
후우웅!
사선으로 눕힌 검에서 흘러나온 나직한 울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흐른다.
적이 십여 장 앞까지 다가온 상황.
독고무령은 밀려드는 제왕성의 무사들을 보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사혁, 자네가 영호진광을 맡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사혁이 훌쩍 몸을 날렸다. 영호진광을 향해서.
물론 한소리 내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왕 영호진광! 네 머리는 내가 부숴주마!”
독고무령은 진사혁이 영호진광을 향해 곤을 내려치는 걸 보고는 백리환에게 다가갔다.
백리환은 독고무령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갑자기 바윗덩이가 얹힌 것처럼 가슴이 묵직해졌다.
부상자를 업었을 때도 어찌하지 못한 독고무령이다. 그런데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백리환 같은 고수가 어찌 그 차이를 모를까.
‘제길, 추적을 그냥 포기했어야 했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천하의 장왕이 패배감에 젖다니!
그런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겼다.
네놈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랴! 그런 오기 말이다.
“오냐, 이놈!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버럭 소리친 그는 쌍장에 전 공력을 끌어올리고는 한 마리 붕새처럼 독고무령을 향해 날아갔다.
독고무령은 날아드는 백리환을 향해 검을 뻗었다.
일순간, 검첨에 시커먼 어둠 한 덩어리가 맺히는가 싶더니, 백리환을 향해 쭉 뻗어나갔다.
승천만화의 구결을 응용한 천뢰광혼이었다.
장소천의 부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당연히 이전과는 판이한 위력일 수밖에 없었다.
백리환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자 본능적으로 쌍장을 내려쳤다.
쾅!
일성 굉음이 일며 백리환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독고무령도 멈칫했지만, 그 시간은 촌각에 불과했다.
그는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재차 백리환을 향해 검을 떨쳤다.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는 수십 줄기의 검강!
항거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닌 시퍼런 벼락이 당장이라도 몸을 꿰뚫어버릴 것만 같다.
천뢰무적파천검이 연이어 펼쳐지자, 어둠으로 물든 대기가 진저리치며 비명을 토해냈다.
콰아아아!
쩌저저적!
승천만화를 대성하고 무심천지연의 경지조차 완성의 단계에 오른 독고무령이다. 그의 연속된 공세는 장왕이라 불리는 백리환조차 기겁할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뿜어냈다.
정신없이 독고무령의 공세를 막던 백리환은 오 초가 지나기도 전에 숨이 턱 막혔다.
그는 한 수 한 수 전력을 쏟아내야만 펼칠 수 있는 공세를 쉴 새 없이 퍼붓는 독고무령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 눈앞이 환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거대한 검영이 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수천제마구겁무의 네 번째, 뇌룡망망겁(雷龍亡亡劫)의 거대한 손 그림자가 검영으로 화해서 떨어지는 것이다.
백리환은 아연한 표정으로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물러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검영은 그가 물러나면 물러나는 만큼 가까워졌다.
물러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
찰나 간에 상황을 깨달은 백리환은 해쓱해진 표정으로 전력을 다해 독고무령의 공세를 막았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울림과 동시, 반경 오 장 안의 어둠이 용권풍에 휘말린 것처럼 회오리쳤다.
“커억!”
백리환은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뒤로 날아갔다. 삼 장을 날아가 땅에 처박힌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 달리, 힘이 빠진 두 다리는 그의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
휘청.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을 더 물러선 그는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고수들 간의 싸움이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몇 초나 겨루었다고 이런 꼴이 된단 말인가.
천하에 장왕이 애송이의 검에 형편없이 패한 것을 강호의 친구들이 안다면…….
“이,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자신에 대한 분노. 상대에 대한 적의.
백리환은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리는 충격에 눈을 부릅떴다.
“크으윽!”
분노가 극한에 이른 그는 저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는 기운을 일깨웠다.
마지막 수단을 써서라도 암천사신을 이기고 싶었다. 아니, 죽이고 싶었다. 자신 역시 죽는 한이 있어도!
화악!
선천진기가 터진 둑에서 물이 쏟아지듯이 흘러나오며 전신을 치달렸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시뻘겋게 충혈된 눈!
백리환은 고함을 내지르며 독고무령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암천사신! 내가 바로 백리환이니라!”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백리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기운이 폭주했다. 상태로 봐서 선천진기를 끌어올린 듯하다.
‘오늘 이후 사대천왕은 삼대천왕으로 불리겠군!’
살아서 돌아간다고 해도, 기연이 없는 한 다시는 무공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장소천처럼.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는 독고무령의 눈빛이 깊게 침잠되었다.
형(形)도 마음[心]도 사라지고 공(空)만이 남았다.
들어 올린 검이 날아드는 백리환을 가리킨 찰나! 검첨에서 환한 빛이 번쩍였다.
맑은 청광. 태천일심의 기운이었다.
‘가라! 검의 혼이여!’
삼 장의 거리가 무색했다.
청광은 공간을 건너 뛴 것마냥 백리환의 쌍장에서 발출된 붕천(崩天)의 장력 중앙에 손바닥 크기의 구멍을 뚫었다.
순간!
떵!
둔중한 소리가 어둠을 흔드는가 싶더니, 백리환의 몸뚱이가 훌훌 날아갔다.
신음도 없었다. 입에서 뿜어지는 피분수가 어둠속에서 안개처럼 흩어지고, 몸뚱이는 오 장을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독고무령도 온전하지는 못했다.
처음으로 무심천지연의 경지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터였다.
검을 움켜쥔 그는 바위에 다섯 치 깊이로 박힌 발을 빼내고는 흔들린 내력을 진정시켰다.
뒤늦게 주위에서 경악과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맙소사!”
“백리 어르신이 당했다!”
한편, 진사혁은 영호진광을 향해 미친 듯이 곤을 휘둘렀다.
도왕이라는 영호진광이 질린 표정을 지을 정도의 무식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영호진광은 진사혁의 공세를 절대 얕볼 수가 없었다.
곰처럼 무식하게 힘만 자랑하는 진사혁이 아니었다. 그의 곤은 영호진광의 백령천도에서 뿜어지는 도강에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위기 때마다 펼쳐지는 관천뇌곤의 후삼식은 영호진광조차 긴장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다.
영호진광은 진사혁과 십여 초를 겨루고 나서야 상대가 진가철방의 사람임을 눈치 챘다.
“네놈은 진가철방의 사람이더냐!”
“오냐! 내가 바로 진가철방의 진사혁이다!”
영호진광은 진정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가철방이 여느 강호방파 못잖게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들이 도왕과 장왕의 공세를 막아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제 겨우 이십 대의 청년이 자신과 막상막하의 결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는 자신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몇 년만 지나면 거꾸로 될 것이 분명하다.
‘진가철방에 이런 놈이 있었다니!’
하지만 지금은 진사혁 때문에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백리환이 밀리고 있다. 제왕성의 무사들도, 성난 사자처럼 달려드는 여섯 명의 적을 처리하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고 있는 상태다.
그는 전 공력을 끌어올려 도에 집중시켰다.
일단 앞에 있는 놈을 먼저 죽이고, 그런 연후 백리환과 함께 암천사신을 상대할 작정이었다.
바로 그때! 제왕성의 무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백리환이 당했다!
‘빌어먹을!’
백리환이 당했다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는 백령천도를 폭풍처럼 휘돌렸다. 백색 안개가 어둠을 가득 메운 채 진사혁을 향해 밀려갔다.
진사혁은 눈사태처럼 밀려드는 백색도강의 물결을 보고는, 일갈을 내지르며 곤을 뻗었다.
“타아아앗!”
한 줄기 묵광이 쭉 뻗어나가더니, 밀려드는 백색도강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관천뇌곤의 일식, 무음관천(無音貫天)이었다.
떠더덩! 콰광!
어둠이 진저리치며 터져 나가고, 영호진광과 진사혁의 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튕겨졌다.
진사혁은 급히 중심을 잡고 영호진광을 쳐다보았다.
의외로 영호진광은 재차 공격을 하지 않고 한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백리환이 널브러져 있는 곳으로.
숨을 깊이 들이쉰 진사혁은 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원수를 잡기는커녕 눈을 멀뚱히 뜨고 놓치다니.
더구나 영호진광은 회주와 한바탕 싸워서 공력소모가 많은 상태였지 않은가.
그런 상태인데도 이기기는커녕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났다.
자신의 머리통을 곤으로 후려치고 싶을 만큼.
‘제길! 부동관천만 제대로 익혔어도 이길 수 있었을 텐데. 하다못해 공력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그 와중에도 관조운과 전유곤, 사공화정, 한무종, 염부중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적을 상대했다.
어둠 속에서 언제 도검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 오직 감각만에 의존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다섯 사람은 신들린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며 적을 도륙했다.
피가 튀고, 비명이 울리고, 악에 받친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들은 사나웠고 용맹했다. 늑대의 무리 속에서 날뛰는 광포한 호랑이 같았다.
오히려 육십 명에 달하는 제왕성의 무사들이 그들의 기세에 두려움을 느껴서 뒤로 물러섰다.
“모두 돌아간다!”
영호진광은 백리환의 몸을 안아들자마자 악을 쓰며 뒤로 몸을 날렸다.
독고무령을 잡겠다는 생각은 이미 구만리 밖으로 달아난 상태였다.
육십 명에 달하던 제왕성의 무사들 중 서 있는 자는 삼십여 명 정도. 그들은 영호진광이 소리치자, 기다렸다는 듯 부상당한 동료를 끌어안고 피로 물든 장내를 벗어났다.
독고무령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진사혁도 사라지는 영호진광을 노려보기만 했다.
‘나중에 내 손으로 직접 죽일 것이다, 영호진광!’
그때 독고무령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만 가세. 내 친구의 몸이 좋지 않아. 빨리 태원으로 가야 할 것 같네.”
“누군데 그러나? 회주 친구면 내 친구이기도 한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