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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2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22화

 

222화

 

 

 

 

 

 

* * *

 

 

 

제왕성이 공격을 시작한 지 이 각이 넘어가자 귀원장에 있던 은룡산장의 무사 중 반 이상이 죽음을 당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참담한 비명소리!

 

참혹한 시신에서 흘러내린 피가 내가 되어 흐른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참상이 벌어진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제왕성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한밤중에 쏟아진 쇠뇌로 인해 백여 명이 죽거나 다쳤고, 귀원장에 설치된 기관에서 쏘아지는 암기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쓰러진 터였다.

 

하지만 오늘로써 모든 것을 끝낼 작정을 한 터. 제왕성 무사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을 공격했다.

 

그 선두에는 위지성과 삼왕이 있었다.

 

위지성은 적수천을 몰아치고, 삼왕은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을 비롯한 은룡산장의 고수들을 여유 있게 상대했다.

 

거기다 제천각의 장로들과 신무전의 고수들마저 가세하자 상황이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노태군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고 귀원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장원을 벗어나기도 전에 후퇴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그의 마음을 짐작한 위지천백이 미리 퇴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어딜 가려고 하는가, 노태군!”

 

나타난 자는 위지천백만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제왕밀위가 첩첩이 포위망을 구축한 채 빠져나갈 길을 완벽히 막고 있었다.

 

노태군은 위지천백의 철저함에 이를 으드득 갈았다.

 

“오냐, 위지천백! 누가 죽나 한번 해보자!”

 

“하하하하! 그거야말로 반가운 말이군!”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소리치고 신형을 날렸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상대를 죽이면 끝날 일이거늘!

 

콰르릉! 쩌저적!

 

밤하늘에 벽력음이 울리며 두 사람의 기운이 어우러졌다.

 

오 초의 격돌이 이루어지는 사이, 아름드리나무가 가루가 되고, 정원의 바위도 모래처럼 부서졌다.

 

귀원장 뒤뜰이 완전히 폐허로 변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십 초가 지날 무렵이었다.

 

쾅!

 

반경 십여 장을 휩쓰는 광풍과 함께 두 사람이 뒤로 밀려났다.

 

비록 두 사람이 함께 밀려났지만, 그 결과는 판이했다.

 

위지천백이 세 걸음을 물러선 반면, 노태군은 삼 장이나 밀려난 것이다.

 

“우웩!”

 

충격이 큰지 노태군이 핏물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위지천백은 오연한 자세로 노태군을 바라보았다.

 

극심한 내상을 입은 노태군은 더 이상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손만 뻗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자.

 

그게 현재의 노태군이었다.

 

위지천백은 노태군을 놔둔 채 주위의 상황이 완료되기를 기다렸다.

 

자신이 노태군을 상대하는 동안 귀원장의 싸움은 마무리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

 

노태군은 싸움이 마무리된 후, 좀 더 극적인 상황에서 죽여도 되었다.

 

 

 

일각이 지나자 비명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싸움이 끝나간다는 뜻.

 

바로 그때, 추양양의 도움을 받은 적수천이 위지성의 손을 벗어나서 귀원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몇 사람이 빠져나간 것을 제외하면, 제왕성의 완벽한 승리였다.

 

와아아아아!

 

승리를 알리는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위지성과 삼왕은 물론, 제왕성의 간부들이 모두 뒤뜰로 모여들었다.

 

위지천백은 그제야 노태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노태군, 이제 우리의 질긴 인연을 정리할 때가 온 것 같군.”

 

담담한 위지천백의 말에 노태군의 노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는 핏물이 배인 입술을 달싹거려 노성을 내질렀다.

 

“위지천백! 실컷 길러줬더니 보답이 겨우 이거더냐!”

 

“보답? 그대가 보답받을 일을 하긴 했던가? 우하하하! 그야말로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로구나!”

 

“이놈! 내가 아니었다면 네놈이 어찌 제왕성의 주인이 될 수 있었겠느냐!”

 

“그건 거래였을 뿐이지. 그 후로 내가 그대에게 바친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대가 과한 대가를 받은 것 아닌가?”

 

“입이 뚫렸다고 마음대로 말하는구나!”

 

“흥! 죽을 때까지 그대의 세상이 이어질 줄 알았겠지? 그대 뜻대로 되지 않아서 안 됐군.”

 

“네놈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니라! 폐하께서 결코 용서치 않을 게야!”

 

“혹시라도 동창을 믿고 있는 거라면 포기하도록. 물론 삼왕도 마찬가지만.”

 

“뭐, 뭐라?”

 

“후후후후, 지금쯤 제독동창인 정 공공은 이왕께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다. 삼왕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고 말이야.”

 

노태군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위지천백의 멸망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동창과 삼왕 때문이었다.

 

한데 위지천백의 말을 듣자니,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지 않은가?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앞으로 황궁은 오늘 일에 대해 잊을 게야. 당연히 그대의 죽음도 잊을 것이고. 아! 은룡산장도 지금쯤 금의위와 도찰원이 접수했을 걸?”

 

위지천백은 조소를 머금은 채 노태군에게 다가갔다.

 

노태군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위지천백이 말했다.

 

“안 됐지만, 황궁은 그대를 절대 돕지 않아. 혹시 태자를 믿고 있다면 그 생각도 버려야 할 게야. 태자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한 사람이 아니거든. 설마 그가 멸망의 문턱에 들어선 당신 편을 들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대충의 상황을 깨달은 노태군이 악을 쓰듯이 말했다.

 

“네, 네놈이 황궁에 손을 썼구나!”

 

“하늘은 그대를 버리고 나를 택했지. 우선은 그렇게만 알고 죽어라, 노태군.”

 

담담히 말하는 위지천백의 두 손에서 휘황한 빛이 구체를 이루며 피어났다.

 

위협을 느낀 노태군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위지천백이 손을 휘두른 순간, 그는 채 이 장을 날아가기도 전에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끄어어억!”

 

노태군의 하반신이 가루로 변하며 허공에서 흩어진다.

 

핏빛 안개가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

 

보는 이로선 가히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사람들은 경악과 탄성을 내지르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럴 수가!”

 

“맙소사! 형님의 무공이 저 정도였단 말인가?”

 

천금무원기로 펼칠 수 있는 세 가지 무공 중 천금만홍구(天金滿紅球)의 위력이었다.

 

위지천백이 굳이 전력을 다해 그 무공을 펼친 것은, 노태군을 일수에 죽여서 모든 이에게 자신의 위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그의 뜻대로 되었다.

 

심지어 사대천왕에 속한 세 사람조차 경의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지 않는가 말이다.

 

위지천백은 상반신만 남은 채 땅으로 떨어진 노태군을 보며 말했다.

 

“황궁의 일을 처리한 사람이 누군지, 누가 혈왕을 빼돌렸는지 아는가?”

 

노태군은 마지막 힘을 다해 고개를 들었다. 그도 궁금했다. 대체 어떤 놈이 자신의 일을 망쳐놨는지.

 

위지천백은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만 나와 보게나.”

 

그 말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한 사람이 위지천백의 뒤에서 걸어 나오더니 노태군을 향해 다가갔다.

 

소한이었다.

 

노태군은 그를 보고는 부들부들 떨며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시뻘건 핏물만 쏟아졌다.

 

소한이 그런 노태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면 억울해 할 것도 없을 거다, 노태군.”

 

뒤이어 나직한 전음이 노태군의 귀청을 울렸다.

 

<삼십 년 전의 일을 기억하나? 나는 뼛속 깊이 사무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데 말이야…….>

 

전음이 이어지면서 노태군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것이 노태군의 마지막 반응이었다.

 

털썩.

 

노태군은 머리를 바닥에 처박으면서도 끝내 눈을 감지 못했다.

 

소한이 대신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발로 밟아서.

 

와직!

 

머리까지 부수며.

 

“이렇게 죽인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유 공공. 원래는 돼지에게 먹이로 주려고 했으니까.”

 

소한은 이를 으드득 갈고는 돌아섰다.

 

그토록 원하던 노태군의 멸망을 보고, 자신의 손으로 노태군의 마지막을 장식했는데도 답답한 속이 풀리지 않았다.

 

그때 위지천백이 물었다.

 

“혈왕은 어떻게 된 건가?”

 

소한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소이다. 갑자기 엉뚱한 자가 나타나서 데려가는 바람에…….”

 

“그가 누군지 모르는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보지를 못했소이다.”

 

“추적할 수 있겠나?”

 

소한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독고무령이 마음에 걸렸다.

 

“해보기는 하겠소만,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할 수 없소이다. 대신 믿을 수 있는 고수를 붙여주시구려.”

 

위지천백은 백리환과 영호진광을 바라보았다.

 

혈왕은 물론이고 그를 데려간 자도 귀천사사에 뒤지지 않는 고수다. 어설픈 사람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네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이 사람을 도와주게. 내일 밤까지 찾아보고, 못 찾겠다 싶으면 돌아오도록 하게.”

 

혈왕을 잡는 일이라면 백리환과 영호진광도 흥미가 이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위지천백은 그 정도로 혈왕에 대한 일을 마무리하고 위지성을 불렀다.

 

“성아야.”

 

“예, 아버님.”

 

“최대한 빨리 정리를 마쳐라. 모든 것이 끝나는 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서 노태군의 시신을 수습해라.”

 

“노태군의 시신은 왜……?”

 

“노태군의 시신을 원하는 사람이 있느니라.”

 

위지성은 누가 노태군의 시신을 원하는지 의아했다.

 

그러나 위지천백이 이름을 말하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을 터,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위지천백은 위지성이 돌아서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룡산장을 무너뜨렸다고 해서 자신의 계획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아우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 * *

 

 

 

운양이 제왕성의 움직임을 전해들은 지 두 시진이 지났을 무렵, 양천에서 보낸 첫 번째 서신이 전해졌다.

 

혈왕이 낭자관을 넘어 산서로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지글거리는 태양이 동쪽 산정에서 솟구치기 전, 두 번째 서신이 도착했다.

 

운양은 두 번째 서신을 받아보고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독고무령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회주가 혼자서 혈왕의 뒤를 쫓아 우현으로 갔다고?’ 

 

제왕성이 움직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네 시진, 혈왕에 대한 소식을 들은 지 한 시진 만이었다.

 

혈왕을 발견한 시간과 독고무령이 나타난 시간의 차이도 그쯤 될 터. 시간의 이격(離隔)이 너무 짧았다.

 

황궁에 연락을 취하려고 보정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혈왕과 한 시진 간격으로 양천에 도착하다니.

 

문득 독고무령이 떠나기 전에 내린 명령이 떠올랐다.

 

 

 

“호북에서 산서로 넘어오는 길에 정보원들을 깔아놓게. 혈왕이 그쪽에서 나타날지 모르니까 말이야.”

 

 

 

회주는 어떻게 혈왕이 그쪽에서 나타날 거라는 걸 알았을까? 

 

혹시 보정으로 간 진짜 목적은 혈왕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혈왕이 위험인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누구보다 회주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부상을 당했으니 자신의 손으로 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완전히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왜 무리해가면서 직접 우현으로 간 것일까. 한 시진 차이면 꼬리를 잡기도 전에 혈왕이 먼저 귀원장에 도착할 것이거늘.

 

설마 적진에 쳐들어가서 혈왕을 잡을 생각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칫하면 혼자서 은룡산장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머리 쓰는 거라면 귀신 뺨을 치고도 남을 회주가 그렇게 우둔한 짓을 할까?

 

‘절대 그럴 회주가 아니지.’

 

운양은 서신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후우……. 분명 뭐가 있기는 있는데, 그걸 모르겠군.”

 

좌우간 중요한 것은 독고무령이 우현으로 갔다는 사실이었다.

 

제왕성도 움직인 상황. 여차하면 제왕성과 회주가 충돌할지 몰랐다.

 

양천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독고무령도 제왕성이 움직일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했다. 전력을 집중시키고 상황을 주시하라는 것을 봐서는.

 

하지만 이대로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그때였다. 밖에서 진사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돼?”

 

“들어와.” 

 

문이 열리고 진사혁이 들어왔다.

 

운양은 가자미눈으로 진사혁을 바라보다 말고 벌떡 몸을 세웠다. 진사혁의 뒤를 따라 한 사람이 들어오는데, 다름 아닌 진소영이었다.

 

“오빠,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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