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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15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15화

 

215화

 

 

 

 

 

 

맙소사! 여자에게 어떻게 저런 말을?

 

사람들은 조금 전과 정반대의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저러다 한소리 듣지.’

 

그런 눈빛으로.

 

모용설은 한마디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 이를 악물어야 했다.

 

‘바보 멍청이! 지금 왜 그 말을 하는 거예요!’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독고무령뿐이었다.

 

“어쨌든 다행이야. 그대가 천룡방에 남지 않겠다고 해서.”

 

‘당연하죠! 그럼 남겠다고 할 줄 알았어요?’

 

퍽!

 

모용설은 애꿎은 땅만 발로 후려차고는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하고 가요!”

 

독고무령은 그녀의 반응이 이상(?)했지만, 북리사웅 때문에 화가 난 것으로 생각했다.

 

“너무 화내지 마. 그자도 그대를 좋아해서 그런 것뿐이니까.”

 

‘누가 뭐래요! 내가 화나는 건 그 작자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라고요!’

 

모용설은 독고무령의 뒤통수를 노려보고는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엄한 불똥을 맞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걸음만 옮겼다.

 

‘회주가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아냐?’

 

모두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독고무령에게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되자 독고무령이 전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일행들의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떠올랐다.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마음인 것은 아니었다.

 

모용설은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옆에서 걷고 있는 종리청을 째려보았다. 다른 사람의 입가에도 웃음이 보이는 듯했지만, 그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종리청밖에 없었다.

 

“종리청, 왜 웃지?”

 

“예? 전 안 웃었습니다, 모용 소저.”

 

 

 

 

 

 

 

제3장 은룡산장(隱龍山莊) 혈왕동(血王洞)

 

 

 

 

 

이글거리는 시뻘건 석양이 서산으로 침몰한 무렵 석가장에 도착했다.

 

석가장의 객잔에서 밤을 보낸 독고무령은 날이 새자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보정에 들른 후 바로 뒤를 따라갈 테니, 그대들 먼저 태원으로 가시오.”

 

보정으로 가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지만, 일행에게는 하나만 말해주었다.

 

모용설과 진사혁이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저도 함께 가요.”

 

“혼자 가면 심심할 테니 함께 가세.”

 

하지만 독고무령은 평소와 다르게 강한 어조로 동행을 불허했다.

 

“지금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네. 태원에 일이라도 터지면 한 사람이 아쉬울 거야. 무조건 내 말을 따라주게.”

 

독고무령이 워낙 강경하게 말하자, 모용설과 진사혁도 더 이상 우기지 못했다.

 

 

 

그렇게 일행과 헤어진 독고무령은 혼자서 보정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오후, 보정에 도착하자마자 밀호방의 정보원을 만나기 위해 만두가게를 찾아갔다.

 

무더위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적었다.

 

그가 만두가게에 도착했을 때, 십오호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누워있는 개처럼 축 늘어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만두 좀 주시오.”

 

십오호는 잔뜩 짜증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다 독고무령을 보고는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몇 개나 사시려우?”

 

독고무령은 전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독고무령이오. 사정이 있어 인피면구를 썼으니 이해하고 태연하게 대하시오.>

 

십오호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능글맞게 행동을 바꿨다.

 

“어이쿠, 이제 보니 전에 오셨던 손님이시군요.”

 

“장사는 잘 되오?”

 

“헤헤, 그게 좀……. 뭐 그래도 굶어죽을 정도는 아닙죠.”

 

“일단 만두나 하나 주시오.”

 

십오호는 만두통을 열고는 주먹만 한 만두를 꺼내 내밀었다.

 

독고무령은 만두를 먹으며 가벼운 대화를 하듯이 입을 열었다.

 

“북경에 서신을 하나 전해줘야겠소.”

 

“금의위에 보내실 거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요.”

 

“무슨 말이오?”

 

“금의위와 도찰원 사람들이 은룡산장 주위에 집결해 있습니다.”

 

뜻밖의 사실에 독고무령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북경을 떠나 대대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는 것!

 

아마도 위지천백이 요청했을 가능성이 컸다. 노태군이 돌아갈 곳을 미연에 없애서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보려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이 근처에 와 있다면 자신에게도 나쁠 것이 없었다.

 

“금의위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소?”

 

“은룡산장에서 남쪽으로 오 리 떨어진 곳에 제법 큰 도관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진을 치고 은룡산장 사람들이 남쪽으로 향하는 것을 막고 있습죠. 그리고 도찰원 사람들은 서쪽을 막고 있고요.”

 

“혹시 천호장 전무호라는 분도 오셨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진무사 한 사람과 몇 명의 천호장이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 삼성맹의 고수들도 한 이백 명쯤 됩니다.”

 

독고무령은 마저 만두 하나를 더 먹으며 생각을 마무리하고는 손을 털었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소. 그럼, 계속 수고하시오. 만두 잘 먹고 가오.”

 

십오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만두 값은……?”

 

밀호방 사람들은 운양을 닮아서 누구나 계산이 철저했다.

 

 

 

* * *

 

 

 

석양이 질 무렵.

 

독고무령은 진양관(眞陽觀)이라는 고색창연한 현판이 걸린 도관 앞에 도착했다.

 

그가 도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서른 전후로 보이는 장한이 문 옆에서 나오더니 앞을 막았다.

 

“며칠 간 일반 향화객은 받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시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무의식중에 관원 특유의 절도 있는 행동이 엿보이는 자였다.

 

독고무령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천호장이신 전무호라는 분을 만나려고 왔소.”

 

장한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짓더니 빠르게 독고무령을 훑어보았다.

 

금의위가 진양관에 자리를 잡은 것은 비밀에 가까운 일이다. 한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지 않는가.

 

“무슨 일로 오셨소?”

 

“조카 되는 사람이오. 마침 이곳에 오셨다는 연락을 받아서 찾아왔소.”

 

장한은 의문이 일었지만, 상대가 전무호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따라 오시오.”

 

만일 수상한 자라면, 안으로 들여놓고 다루는 게 더 나을 것이었다.

 

 

 

도관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독고무령이 장한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오가던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간혹 도인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이 변복한 금의위와 삼성맹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독고무령이 마당을 가로질러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독고무령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한을 따라갔다.

 

장한은 전각을 빙 돌아가더니,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 쪽으로 갔다.

 

정원의 연못 옆에는 작은 누각이 하나 있었는데, 누각 안에선 세 사람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곧 누각 앞에 멈춰선 장한이 누각을 향해 말했다.

 

“전 천호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세 사람 중 하나, 전무호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냐?”

 

독고무령이 앞으로 나서며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전 숙부?”

 

난데없는 인사에 전무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숙부? 누군데……?”

 

독고무령이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백가 성을 가진 조캅니다. 얼굴이 조금 달라보여도 이해해 주십시오.”

 

백가 성을 가진 조카는 한 사람밖에 없다.

 

전무호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얼굴만 가리면 그가 아는 어떤 사람과 똑같았다. 옆구리의 검도 일전에 본 것이었고.

 

탁!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내려친 그는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었다.

 

“와하하하! 그럼 그렇지, 역시 살아있었어!”

 

죽은 자식이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전무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짓을 했다.

 

“휴우, 이제야 화명 형님에게 말할 수 있겠군. 자네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태산 같아서 아직 말도 못했는데 말이야. 자, 이리 오게나.”

 

독고무령은 사양하지 않고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무호와 함께 금의위 천호장인 두 사람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전무호는 장난기가 동한 듯 넌지시 말했다.

 

“흐흐흐, 내 조카라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궁금해도 참게나.”

 

참으라고 하니 더 궁금했다.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천호장이 넌지시 물었다.

 

“형님께 저런 조카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누군지 알려주면 안 됩니까? 설마 숨겨 놓은 자식은 아니겠지요?”

 

“어허, 그런 말 말게. 마누라가 들으면 큰일 나네.”

 

전무호는 짐짓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금방 환하게 얼굴을 변화시키고는 독고무령에게 물었다.

 

“그래, 함께 움직일 건가?”

 

“아닙니다. 저는 따로 볼일이 있습니다. 한데, 어디까지 손을 쓰실 계획입니까?”

 

“일단 고립시키는 게 일차 목적이네. 물론 최후에는 깨끗이 정리해야겠지만 말이야.”

 

전무호가 스스럼없이 비밀에 가까운 이야기를 털어놓자 곁에 있던 두 사람이 다급히 말렸다.

 

“헛, 형님! 그건…….”

 

“전 천호장님!”

 

전무호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말게, 이 사람들아. 도독께서 계셨으면 아마 직접 조카에게 다 말해줬을 거네.”

 

“예?”

 

“험, 일단 그렇게만 알게.”

 

전무호는 헛기침을 하며 두 사람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독고무령에게 물었다.

 

“도찰원도 함께 움직였다는 건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부도어사를 만나볼 생각인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저에 대한 것을 알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보다 동창에서는 아직 별 다른 움직임이 없습니까?” 

 

“흥, 아마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거네. 노태군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리면 도독께 아양을 떨기 위해서 달려가겠지. 노태군의 목숨보다는 자신들의 목숨이 더 중요할 테니까 말이야.”

 

권력에 빌붙어 있는 자들의 속성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이 없다. 지금의 동창이라 해서 뭐 다를까.

 

독고무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룡방의 일을 부탁했다.

 

“일단 한단 쪽 일을 먼저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한단?”

 

“천호소 두어 군데가 천룡방을 압박하고 있는데, 노태군의 명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만 손을 떼도 천룡방이 움직일 수 있지요.”

 

“흠, 그들과 오간 이야기가 있나 보군.”

 

불곰처럼 생긴 거와 달리 제법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전무호다. 독고무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성 쪽의 입장에선 뜻밖의 적이 하나 생기는 셈이 될 겁니다.”

 

전무호가 씩 웃었다.

 

“그거 괜찮군. 천호소 정도라면 굳이 도독께 보고할 것도 없네. 진무사께 말씀드리고 사람을 보내서 다시는 허튼짓을 못하게 만들지. 자존심도 없는 놈들, 대명의 장수라는 놈들이 남자 같지도 않은 놈들의 명에 고개를 숙이다니…….”

 

그리만 된다면 보다 빠르게 천룡방이 움직일 수 있을 터, 독고무령도 만족했다.

 

그런데 전무호가 투덜거릴 때였다. 전각 안에서 남진무사 좌호정이 백의와 청의를 입은 두 명의 중년무사를 대동하고 나왔다.

 

전무호가 그들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셨군. 가세.”

 

독고무령은 묵묵히 전무호의 뒤를 따라갔다.

 

좌호정은 모르는 사람이 보이자 슬쩍 고갯짓을 하며 물었다.

 

“누군가?”

 

전무호가 장난스럽게 히죽 웃었다.

 

“제 조캅니다.”

 

좌호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추궁하듯이 반문했다.

 

“조카? 자네 조카가 어떻게 여길?”

 

“걱정 마십시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자네가 책임질 수 있는가?”

 

“걱정 마시라니까요.”

 

전무호는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데도 하늘이 두 쪽 나도 걱정 없다는 듯 자신 있는 말투다.

 

좌호정은 독고무령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

 

독고무령은 전음으로 정체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밝히지 말라는 주문과 함께.

 

순간 좌호정의 눈이 전무호만큼이나 커졌다.

 

“아! 자네가 바로……!”

 

평상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좌호정이 놀란 표정을 짓자, 두 중년무사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데 그러십니까, 진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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