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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08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08화

 

208화

 

 

 

 

 

 

그가 감가기를 보며 물으려는데, 독고무령이 그의 말을 끊었다.

 

“일단 별원으로 안내하시오.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오.”

 

막도환은 눈을 돌려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말을 중간에서 싹뚝 잘라먹다니, 그자와 성격이 비슷하군.’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가기와 일행인 자를 건들 생각은 없었다.

 

보나마나 암천사신의 졸개일 게 분명하니까.

 

“음, 좋소. 나를 따라오시오.”

 

인피면구를 쓰고 목소리까지 변형시킨 독고무령이 아닌가. 그로선 상대가 누군지 꿈에도 몰랐다.

 

 

 

별원에 도착한 막도환은 급히 추월에게 사람을 보냈다.

 

일각이 지나기도 전, 추월이 호위로 보이는 중년 여인 둘을 대동하고 별원에 나타났다.

 

그녀가 나타나자 일행 대부분이 반쯤 넋이 빠진 표정으로 추월을 바라보았다.

 

특히 모용설은 그녀를 보고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 여인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인가?’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남자들 아니던가.

 

하물며 추월 같은 여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모용설은 속이 아려왔지만,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마음을 다독였다.

 

‘예쁘긴 되게 예쁘군. 저러니 수많은 남자들이 꼬이지…….’

 

하지만 독고무령은 모용설의 마음은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 다가오는 추월만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에 봤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느낀 이유를 곧 깨달았다. 

 

이전의 추월에게는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채워져 있는 것이다.

 

무엇이 저 여인을 변하게 했을까?

 

그가 추월의 변화를 생각하는 동안, 추월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독고무령이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잔뜩 기대했던 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곧 표정을 감추고, 본연의 범접키 힘든 차가움으로 입을 열었다.

 

“태원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독고무령이 대답했다.

 

“그렇소.”

 

일순간 독고무령을 살펴보던 추월의 표정이 보일 듯 말듯 흔들렸다.

 

처음에는 대충 보았다. 그런데 어디서 본 체형이다. 

 

그리고 저 눈빛.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는, 조금 전보다 온기가 도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회주의 명으로 조 학사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소.”

 

추월은 담담한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직시했다.

 

“무령이란 분이 부탁한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요?”

 

“그렇소. 오래 머물 시간이 없으니 안내해 주면 좋겠소만.”

 

추월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당신만 들어가야 해요.”

 

 

 

밖에 남은 사람들은 독고무령이 추월과 함께 지하석실이 있는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뒤늦게 숨을 길게 내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후우, 저런 여인이 정말로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군.”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어.”

 

“허어, 오늘 눈이 호강했군.”

 

하지만 진사혁은 오직 외길이었다.

 

“나는 그래도 우리 누님이 더 예뻐.”

 

모용설이 별원의 전각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뾰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해요? 다른 사람이 접근 못하게 경비라도 서야죠!”

 

일행들은 평소와 다른 모용설의 반응을 괴이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모용설이 성난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몸을 돌리고 전각을 둘러쌌다.

 

‘회주가 천하절색의 여인과 단 둘이 방 안으로 들어가니 질투가 나나 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막도환과 두 중년여인은 암천회의 사람들이 설치는데도 그대로 놔두었다.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이미 이전의 경험으로 깨우친 것이다.

 

루주가 순순히 뜻을 받아들이는 걸로 봐서 별 말썽이 날 것 같지도 않았고.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자 추월이 물었다.

 

“무령 공자, 맞죠?”

 

자신을 두말없이 안으로 들였다는 것 자체가 눈치를 챘다는 뜻.

 

독고무령은 순순히 인피면구를 벗으며 대답했다.

 

“맞소.”

 

추월은 인피면구를 벗은 독고무령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떨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문을 열었다.

 

 

 

독고무령이 조병탁의 맞은편에 앉자, 추월이 한쪽 의자를 차지했다.

 

“오늘은 나가지 않을 거예요. 두 분이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쳐서 독고무령의 축객령을 미연에 막았다.

 

독고무령도 어차피 그녀를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게도 물어볼 말이 있었으니까.

 

“좋을 대로.”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조병탁에게 물었다.

 

“유하령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있소?”

 

“아직……. 알아낸 것이 없소.”

 

조병탁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독고무령은 그런 조병탁을 똑바로 바라본 채 다시 물었다.

 

“그럼 알아보고는 있소?”

 

“무, 물론이오.”

 

“누구를 시켜서 알아보고 있는 것이오?”

 

“그야 아랫사람을 시켜서…….”

 

“그럼, 추월루의 총관이나 부총관도 유하령이라는 이름에 대해 알겠군요.”

 

바로 그 순간, 추월의 뇌리에 어젯밤 태원에서 도착한 서신이 떠올랐다.

 

‘혹시 이 사람이 바로 모종경을 만난 사람?’

 

그렇다면 모종경이 유하령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때, 조병탁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소.”

 

그녀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공자, 그게 아니라…….”

 

순간이었다. 독고무령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부드러운 기운이 주위를 휘돌았다.

 

추월은 몸이 천근 바위에 눌린 것마냥 무겁게 느껴지자, 독고무령의 뜻을 간파하고 다급히 외쳤다.

 

“무령 공자, 무슨 짓이에요!”

 

독고무령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그는 그녀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녀가 자신의 기운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약하지 않은 무공을 지녔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태천일심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능히 절정의 경지를 뛰어넘어 초절정에 이른 고수.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서 독고무령은 추월을 더 수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는 곧 알게 될 거요.”

 

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조병탁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거짓말을 용납지 않겠소. 본디 무력으로 귀하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었지만, 예가 아니라 생각해서 참았소. 한데 귀하는 나에게 거짓말만 했소.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작정이오.”

 

“너무 그분을 몰아세우지 말아주세요. 그분도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추월이 애원하듯이 말했다.

 

독고무령은 그 말에도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가볍게 휘둘러, 추월이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혈도를 제압해 버렸다.

 

“내 일이 끝나면 풀어주도록 하겠소. 그리고 당신에게도 몇 가지 물을 게 있으니 기다리도록 하시오.”

 

추월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처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독고무령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을 이렇게 쉽게 제압할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은근히 오기가 생긴 그녀는 전력을 다해 제압된 혈도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제압된 혈도는 꿈쩍을 하지 않고, 오히려 무리하는 바람에 내력만 뒤틀렸다.

 

‘크윽!’

 

독고무령은 안색이 창백해진 추월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조병탁이 혼자의 생각으로 거짓 정보를 보냈을 리가 없다. 분명 추월과 상의해서 그리했을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녀니까.

 

당연히 그로선 추월을 보는 눈이 고울 수가 없었다.

 

“당신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을 거요. 그러니 무리하지 마시오. 자칫하면 몸만 망치니까.”

 

추월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원망과 애원, 슬픔이 내재된 복잡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녀의 눈빛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기녀들은 마음에 없어도 웃어야 하고, 울기도 해야 한다.

 

추월은 개봉 제일의 기루인 추월루의 주인.

 

그녀는 추월루의 어떤 기녀보다 그 방면에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을 것이었다.

 

“어설프게 또 나를 속이려 한다면, 당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알려줄 거요. 물론 당신도 예외가 아니오.”

 

조병탁이 그 광경을 보고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한 거요!”

 

“별일 아니오. 당신이 진실한 대답만 한다면 곧 풀려날 테니까. 하나 또 나를 속이려 하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요.”

 

조병탁은 독고무령과 추월을 번갈아보며 다급히 말했다.

 

“무, 물어보시오. 뭘 알고 싶은 거요?”

 

“태원에서 모종경을 만났소. 그는 유하령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있더구려. 다시 말해, 당신이 그녀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지.”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조병탁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독고무령은 그의 말을 끊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낼 마음이 없소. 말해 보시오. 정말 그녀에 대한 것을 알아보았소?”

 

조병탁은 절벽 끝에 선 심정으로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모험일지라도 말하는 수밖에. 말하지 않으면 추월(유하령)이 다칠지 모르는 것이다.

 

단, 그 전에 확인할 것이 있었다.

 

“왜 그렇게 그녀를 찾으려는 것이오? 그것만이라도 알려주시오. 행여나 내 입이 걱정된다면, 나중에 나를 죽이면 될 것이 아니오?”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듯 결연한 눈빛.

 

의외였다.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난 것일까?

 

독고무령은 조병탁의 흔들리지 않는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힘으로 해결하기로 한 이상, 오해하더라도 상관없는 일.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한 분의 부탁을 받았소. 그분의 이름은 유백하. 유하령이라는 여인의 부친이오.”

 

순간, 조병탁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어찌 보면 어이가 없다는 표정 같기도 했고, 다르게 보면 반쯤 얼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그분은 제왕성에 잡혀갔는데?”

 

“맞는 말이오. 그분은 내가 살던 비옥에 갇혔소. 그리고 그곳에서 돌아가셨소.”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비옥이 죄수들을 가두는 뇌옥 같은데, 자신이 살던 뇌옥이라니?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조병탁은 힐끔 추월을 바라보고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덜덜 떨려나왔다.

 

“어떻게…… 언제 돌아가셨소?”

 

어차피 시작한 것. 독고무령은 사실대로 말했다.

 

“팔 년 전, 내 나이 열여섯 살 때, 내가…… 직접 숨을 끊어 드렸소.”

 

조병탁은 멍하니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저자가 지금 제정신일까?

 

열여섯 살 때 자신이 직접 죽였다고?

 

“미친…… 그걸 말이라고…….”

 

“비옥십팔호실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오. 나는 그곳에서 그분을 만났고, 그분의 숨을 끊어 드린 후 그곳을 빠져나왔소.”

 

“그, 그, 그럼 당신 말이 사실이란 말이오?”

 

“믿든 말든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조병탁은 입가를 타고 침이 흐르는데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당신이 그분을 죽였단 말이지? 당신이……?”

 

떨리는 목소리가 적을 앞둔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처럼 들린다.

 

생각했던 대로 자신이 유백하를 죽인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 듯했다.

 

독고무령은 거두절미하고 간단히 자신의 마음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소만, 이것 하나만은 아시오. 내가 아니어도 그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그분도 그걸 알기에 스스로 나에게 목숨을 맡겼고, 나는 그분을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드렸소. 돌아가실 때의 그 웃음……. 나는 그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요. 내가 인간임을 깨우쳐 주신 분이 마지막으로 남긴 웃음이니까.”

 

진정이 깃든 목소리.

 

무심하기만 하던 눈에선 아련한 그리움마저 보인다.

 

조병탁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독고무령이 유백하를 죽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단순한 죽음, 그 이상의 것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까, 유 소저를 찾는 이유가 그분의 부탁 때문이란 말이오?” 

 

“그렇소. 나는 그분과 약속했소. 딸이 살아있다면 찾아주기로. 그리고 그녀에게 그분이 부탁한 말을 전해주기로 말이오. 이제 당신이 말해 보시오. 당신은 그녀에 대한 것을 얼마나 알고 있소?”

 

독고무령이 대답을 재촉한 순간, 홱 고개를 돌린 조병탁은 벼락이라도 맞은 표정으로 추월을 바라보았다.

 

추월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어딘가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이런!’

 

그가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루주를! 루주를 풀어주시오!”

 

독고무령은 그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부했다.

 

“아직 당신은 대답을 하지 않았소. 당신의 말을 다 듣기 전에는 절대 풀어줄 수…….”

 

“이 멍청한 사람아! 루주가 바로 당신이 찾는 사람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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