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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04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04화

 

204화

 

 

 

 

 

 

그러더니 이 기회에 무천련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고 작정했는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어차피 말이 나왔으니, 내 확실히 말하겠네. 앞으로는 무천련이라는 이름으로 본문을 강압하려하지 말게나. 우리는 더 이상 무천련에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관조운은 독고무령에게 받은 무천패를 꺼내들었다.

 

“여기에 보면 문주님의 함자도 적혀 있습니다. 설마 화천문의 이름을 걸고 했던 맹서를 지키지 않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그건 이제 아무 소용도 없네. 무천련이 와해된 이상 맹서에 대한 의무도 저절로 깨어진 것이나 마찬가질세.”

 

“무천련은 와해된 것이 아닙니다. 암천회로 재탄생한 것일 뿐. 그러니 화천문의 이름으로 한 맹서는 지켜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분명히 말했네. 더 이상 무천련과 같은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이야.”

 

그때였다. 양우천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화천문은 무천련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무천련의 뜻을 이어받은 암천회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벽도정이 홱 고개를 돌려 양우천을 쏘아보았다.

 

“자네……!”

 

“화천문의 이름으로 맹서한 일입니다. 본문이 신의를 저버린 문파라는 소리를 듣길 바라는 건 아니시겠지요?”

 

벽도정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소리쳤다.

 

“무천련은 이미 끝장났는데, 무슨 신의를 저버렸단 말인가! 이 일은 문주인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자넨 조용히 있게나!” 

 

평소의 양우천이라면 그쯤에서 물러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어깨를 편 채 당당히 말했다.

 

“본문의 제자들은 신의를 저버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정녕 문주께서 그리하시겠다면, 저희 양가는 문주와 다른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화천문 사람들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벽도정을 비롯한 화천문 장로들은 안색이 급변한 채 양우천을 쳐다보았다.

 

“자네 지금 뭐라 했나!”

 

“문주께서 암천회와 손을 잡지 않겠다면, 우리 양가만이라도 암천회와 함께 제왕성을 상대하겠단 말입니다.”

 

단호한 말투. 자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듯 결연한 눈빛이다.

 

벽도정은 가슴이 철렁했다.

 

양가가 빠져나가면 화천문의 힘이 오분의 일은 줄어든다. 

 

호시탐탐 화천문의 권역을 노리는 산서 남부의 세력들이 엉뚱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는 일. 그러한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벽도정은 한 발을 들어 쿵, 바닥을 구르고 버럭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절대 용납할 수 없네!”

 

양우천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선 문주의 말씀을 따르지 못할 것 같군요.”

 

“뭐라? 그대가 감히 본문을 배신하겠다는 건가!”

 

“배신이라……. 본문을 오래 다스리다 보니 잊으신 거 같군요. 화천문은 오롯이 벽가만의 문파가 아닙니다. 벽가는 단지 본문의 대표일 뿐이지요. 설마 저희 양가와 공가를 벽가의 가신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훗! 가신? 좋아, 말이 나온 김에 솔직히 말하지. 그럼, 아니었나? 지금처럼 대우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거늘, 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하겠다고?”

 

벽도정이 깊숙이 감춰졌던 속마음을 드러내자, 양우천은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그런 생각이셨습니까? 그럼 더 이야기 나눌 것도 없군요. 우리 양가는 벽가의 가신으로 살기 싫으니 그만 떠나는 수밖에요. 물론 우리 지분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산도 정리해서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떠난다고? 내 허락도 없이? 흥! 그게 가능할 것 같나?”

 

“저희를 막겠단 말씀입니까?”

 

“나는 나를 배신하고 떠나는 자를 용서할 정도로 마음이 넓지 않다! 더구나 그런 자들에게 재산을 떼어줄 생각은 더더욱 없지! 계진, 들어와라!”

 

벽도정이 노성을 내지른 순간이었다.

 

덜컹거리며 전각의 문이 열리고, 이십여 명의 무사가 쏟아져 들어왔다.

 

화천문 최고의 정예이자 벽가의 기둥과 같은 화정대였다.

 

그들을 이끌고 들어온 벽계진이 벽도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아버님!”

 

“양가의 가주께서 본문을 떠나겠다고 하신다. 이는 본문을 배신하는 행위이니 그를 본문의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제압하라!”

 

바로 그때였다. 공가의 가주인 공호승이 앞으로 나섰다.

 

“잠깐 기다리시지요!”

 

“왜 그러는가?”

 

“우리 공가 역시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호승, 자네까지?”

 

벽도정의 안색이 굳어졌다.

 

양우천 혼자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양우천은 본래부터 머리가 비상해서 언젠가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공호승은 달랐다. 그는 이런저런 욕심도 부리지 않고, 화천문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위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가? 뭐가 불만이어서 본문을 떠나겠다는 건가? 내가 가신이라고 한 것 때문인가? 그 때문이라면 걱정할 것 없네. 나는 자네를 내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공모는 무사로서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자네도 암천회에 들어가겠다는 건가?”

 

“문주께서 당장이라도 암천회와 함께 제왕성을 상대하겠다고 하신다면 그럴 이유가 없지요.”

 

입술을 질끈 깨문 벽도정이 공호승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가담한다고 해서 암천회가 제왕성을 상대할 수 있다고 보나? 흥! 웃기는 소리! 암천회의 힘으로는 절대 제왕성을 상대할 수 없어! 나는 화천문의 영화가 내 대에서 끝장나는 것을 원하지 않네!”

 

“안타깝지만, 그럼 더 이야기할 것이 없구려.”

 

순간 벽도정의 두 눈에서 싸늘한 한광이 쏟아졌다.

 

홱, 고개를 돌린 그는 독고무령 일행을 바라보았다.

 

“네놈들만 오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거늘! 뭐하느냐? 즉시 저들을 제압하라!”

 

그의 입에서 분노에 찬 명령이 떨어졌다.

 

화정대는 즉시 양우천과 공호승을 포위하고, 벽도문을 비롯한 네 명의 장로는 관조운과 독고무령과 사공화정을 향해 다가갔다.

 

그때 밖에서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쾅!

 

“비켜라!”

 

건물을 뒤흔드는 목소리.

 

진사혁이 일갈을 내지르는가 싶더니, 전각문이 부서지며 화정대의 무사 하나가 안쪽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진사혁이 부서진 문을 가볍게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고, 석도명 등이 따라 들어왔다.

 

“제왕성과 싸울 용기도 없으면서 우리를 제압하겠다고?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자식새끼만 겁쟁인 줄 알았더니, 그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군.”

 

진사혁이 곰답지 않게 벽도정의 감정을 건드렸다.

 

“이 건방진 놈들이! 뭐하느냐? 죽여도 상관없으니까, 모두 제압해!”

 

벽계진이 즉시 명을 내렸다.

 

“모두 제압해라!”

 

화정대는 무기를 빼들고 독고무령 일행을 압박했다.

 

진사혁은 조금도 눌리지 않고 곤을 뽑아들었다.

 

“좋아! 어디 오늘 화천문이 얼마나 강한지 볼까? 어디 덤벼봐라!”

 

순간 화정대의 무사들 중 대여섯 명이 공격을 감행했다.

 

진사혁은 성큼 그들 속으로 뛰어들며 곤을 휘둘렀다.

 

웅혼한 기세가 해일처럼 밀려가자, 화정대 무사들의 안색이 해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진사혁의 곤은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그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쩌저저정!

 

귀청을 찢을 것 같은 날카로운 굉음이 연이어 울리며 화정대의 무사들이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진사혁 뒤쪽에 서 있는 암천회의 고수들이 화정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석도명, 감가기, 종리청, 염부중, 모용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화정대를 하나하나 제압했다.

 

순식간에 혼전이 벌어지며 여기저기서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독고무령 일행은 하나같이 절정에 이른 고수들. 애초부터 화정대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벽도정은 암천회에서 온 자들이 예상 외로 강함을 알고 장로들에게 명을 내렸다.

 

“장로들은 저놈들을 잡게!” 

 

“예, 문주!”

 

벽도문이 관조운을 향해 공세를 펼치고, 여조청과 벽도현과 갈추인이 독고무령과 전유곤과 사공화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독고무령을 공격한 자는 절혼조(絶魂爪)라 불리는 여조청이었다.

 

독고무령은 여조청의 쇠갈고리 같은 손이 눈앞에 다가온 다음에야 움직였다.

 

좌수로 취접라를 펼쳐 여조청의 손목을 움켜쥔 독고무령은, 경악한 눈을 부릅뜬 여조청의 가슴에 귀월인을 떨쳤다.

 

가히 번개처럼 빠른 일수!

 

쾅!

 

“커억!”

 

격한 신음이 터져 나오며 여조청의 몸뚱이가 사정없이 나가 떨어졌다.

 

여조청이 어이없이 무너지자, 벽도정이 노성을 내지르며 신형을 날렸다.

 

“이놈!”

 

그의 눈에는 독고무령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조청이 방심했다가 당한 것처럼 보였다.

 

여조청은 화천문의 장로. 그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리도 쉽게 당한단 말인가.

 

독고무령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벽도정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벽도정은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암흑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은 그는 아껴두었던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독고무령은 벽도정의 공세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걸 보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찰나였다. 거대한 손 그림자가 벽도정의 몸을 뒤덮었다.

 

수천제마구겁무 중 첫 번째, 뇌락절혼겁이 태천일심의 기운을 싣고 펼쳐진 것이다.

 

‘헛!’

 

숨이 턱 막힌 벽도정은 이를 악물고 연속 팔 권을 쳐냈다.

 

“차앗!”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위력의 권세가 손 그림자를 연속적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그러한 공격으로는 수천제마구겁무의 손 그림자를 조금도 흔들지 못했다.

 

독고무령이 두 손을 휘돌리며 앞으로 뻗는 순간!

 

콰과광!

 

굉음과 함께 벽도정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아버님!”

 

“저희가 맡을 테니 물러나십시오!”

 

벽계진이 다급히 벽도정에게 달려가고, 화정대의 무사 두엇이 독고무령을 공격했다.

 

퍽! 쾅!

 

독고무령은 간단한 손짓 두어 번으로 화정대 무사 둘을 날려버리고 벽도정을 형해 걸음을 옮겼다.

 

벽계진이 벽도정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독고무령이 권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알고 검을 뽑아들었다.

 

“너는 내가 상대해주마!”

 

독고무령은 벽계진의 검이 보이지도 않는 듯 스윽, 한 발을 내딛으며 우수로는 탈월인을 좌수로는 취접라를 펼쳤다.

 

온몸을 저밀 듯이 밀려드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

 

안색이 하얗게 질린 벽계진은 반사적으로 검을 뻗었다.

 

검첨에서 뿌연 검기가 거미줄처럼 흘러나오며 독고무령의 공세를 휘감았다.

 

당장이라도 독고무령의 손이 난자되며 피가 튈 것 같았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벽계진의 검을 후려쳤다.

 

쩡!

 

검날이 파르르 떨며 옆으로 밀려났다.

 

“흡!”

 

벽계진은 손목이 터져나가는 충격에 눈을 홉떴다.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손목을 타고 전해진 충격이 발끝까지 전해지며 몸마저 굳어버렸다.

 

“계진아! 물러서!”

 

대경한 벽도정이 다급히 소리치며 신형을 날렸다.

 

벽도정의 공세가 밀려드는데도, 독고무령은 좌수로 벽계진의 멱살을 태연히 움켜쥐고는 한 바퀴 휘돌렸다.

 

워낙 빨리 벌어진 상황이어서, 마치 벽계진 스스로 공중제비를 돈 듯했다.

 

부웅!

 

공중을 한 바퀴 빙 돈 벽계진의 몸뚱이는 달려드는 벽도정 앞쪽에 처박혔다.

 

쾅!

 

“커억!”

 

“계진아!”

 

발작적으로 소리친 벽도정은 벽가의 비전무공인 개벽신권(開闢神拳)을 펼쳤다.

 

“이놈!”

 

쌍권이 비틀리며 그 가운데에서 가공할 압력이 쏟아졌다.

 

독고무령은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벽도정의 공세를 바라보며 손을 들고는, 허공을 밀듯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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