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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0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1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02화

 

202화

 

 

 

 

 

 

밀려드는 제왕성 무사들의 위세는 가히 폭풍을 타고 날아드는 독수리 떼 같았다.

 

가히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광경!

 

바람도 숨을 죽이고, 하늘을 날던 새들도 사방으로 도망쳤다.

 

강호의 어떤 문파도 제왕성의 전격적인 공세를 대한다면, 두려움에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일반 강호의 무사들과 달랐다.

 

그들 중 일부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수 년 간 지옥의 수련을 겪어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또한 강호에서 유입된 자들도 동창의 세뇌를 받아서, 명이 떨어지면 지옥의 유황불 속이라도 뛰어들 수 있었다.

 

그들은 해일처럼 밀려드는 제왕성의 무사들을 보며 무기를 빼들었다.

 

“크크크, 몇 놈 안 되는군! 몽고 놈들 십만이 몰려오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잖아?”

 

“킬킬킬, 대신 발톱이 사나운 놈들이니 목을 조심하라고!”

 

그때 뒤쪽에서 명이 떨어졌다.

 

“쇠뇌대는 앞으로 나서라!”

 

쇠뇌를 든 삼백 명의 무사가 앞으로 나섰다.

 

명이 이어졌다.

 

“현재 적의 위치 전방 이백 장! 백 장 이내로 들어오면 사격을 개시한다! 입사(立射) 준비!”

 

일반 병사가 아닌 무사들인데다, 그들이 쓰는 쇠뇌는 일반 쇠뇌보다 조금 크고, 시위도 더욱 강력했다.

 

강호의 무사를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제조한 쇠뇌였는데, 제왕성과의 전면전을 예상하고 은룡산장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다만 삼백 개만 가져온 것이 지금 상황으로썬 조금 아쉬웠다. 오백 개만 되었어도 두 사람당 하나는 되었을 터. 초기 타격에 훨씬 더 유용했을 것이 아닌가.

 

무사들은 쇠뇌를 허공으로 비스듬히 치켜들고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차디 찬 목소리로 명령이 떨어졌다.

 

“백 장 이내로 들어왔다! 쏴라!”

 

순간!

 

투두두두둥! 

 

쒜에에엑!

 

삼백 발의 화살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미처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두 번째 화살이 또 허공으로 솟구쳤다.

 

숨을 서너 번 쉬는 사이, 각자에게 주어진 백 발의 화살이 쇠뇌를 떠나 제왕성 무사들을 향해 쏟아졌다.

 

제왕성의 무사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쳐내며 앞으로 달렸다.

 

하지만 쇠뇌에서 쏘아진 화살은 일반 화살과 확연히 달랐다. 살대가 굵고 긴 데다 위력 또한 강력해서 튕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잘못 튕겨진 화살은 옆의 동료에게 날아가기가 일쑤였다.

 

순식간에 삼사십 명의 무사들이 쇠뇌의 제물이 되었다.

 

“크억!”

 

“으헉!”

 

“쇠뇌다! 조심해!”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오며, 달리던 그대로 풀썩 쓰러지는 자가 속출했다.

 

“멈추지 말고 흩어져서 달려라!”

 

“겁먹지 마라! 화살 따위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다!”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쇠뇌가 아무리 강하게 개조되었다 해도 강호의 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은룡산장 측에서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쇠뇌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낸 상태였다.

 

사람 하나 상하지 않고 수십 명을 꺼꾸러뜨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제왕성 무사들이 쇠뇌공격을 뚫고 대풍장으로 접근하자, 이번에는 적수천이 나서서 제왕성 무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강호의 무뢰배들이 감히 역모를 꾀하려 하는구나! 구족이 멸족당하고 싶어 안달이 났단 말인가!”

 

역모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제왕성을 돕기 위해 참가한 무사들 중 상당수가 동요했다.

 

하지만 제왕성 쪽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누가 역모를 꾀한단 말이냐? 네놈들이야말로 황상을 기만하는 무리들이 아니더냐! 모두 굴하지 말고 놈들을 쳐라! 저놈들을 물리친다면, 오히려 황궁에서 상을 내릴 것이다!”

 

격장지계의 심리전이 벌어지는 사이, 제왕성 무사들의 선두가 대풍장의 담까지 바짝 접근해 담장을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천에 달하는 무사 대부분이 대풍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풍장 전역이 지옥의 격전장으로 변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특히 대연무장은 수백 명이 뒤엉켜 말 그대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등후양과 백리환, 영호진광, 제천각의 장로 등 제왕성의 고수들도 일제히 싸움에 나섰다.

 

사령마안과 백골마존이 구구객을 이끌고 그들을 막아서자, 대연무장의 상황은 점입가경을 향해 치달았다.

 

비명과 악다구니에 고막이 먹먹할 지경이다.

 

사지가 잘린 곳에서 뿜어지는 피가 바닥을 적시고, 바닥을 기는 무사들의 입에서는 공포에 질린 신음만이 흘러나온다.

 

격전이 절정을 향해 달려갈 즈음, 위지천백이 제왕밀위와 함께 대풍장 안으로 들어섰다.

 

“노태군!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나와 겨뤄보자!”

 

대풍전 삼 층에서 전세를 살피던 노태군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였다.

 

“흥! 위지천백! 얼마 전만 해도 내 앞에서 개처럼 기던 놈이 힘 좀 얻었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그는 슬쩍 발을 창밖으로 내딛었다.

 

그러더니 허공을 밟고 유유히 위지천백을 향해 날아갔다.

 

극상승의 경공인 허공답보를 자연스럽게 펼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위지천백의 표정도 서서히 굳어졌다.

 

‘과연 노태군! 진신무공을 삼 푼 숨기고 있었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노태군이 자신의 실력을 감추었듯이, 그의 능력을 아는 자 역시 아무도 없는 것이다.

 

“좋아! 그 정도면 나와 겨룰 자격은 있겠군! 모두 물러서라! 저 늙은이는 본좌가 직접 상대할 것이니라!”

 

위지천백은 한 소리 내지르고는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허공을 밟고 내려오던 노태군이 냉랭히 코웃음 치며 손을 휘둘렀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나 보구나! 오냐! 어디 네놈의 실력 좀 보자!”

 

찰나, 시뻘건 기운이 한 마리 혈룡처럼 용틀임하며 위지천백을 향해 나아갔다.

 

위지천백도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노태군을 향해 뻗었다.

 

“제법이구나, 노태군!”

 

창백하게 느껴질 정도의 시퍼런 기운이 그의 두 손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혈룡을 감싸고 휘돌았다.

 

콰아아아아!

 

일순간, 시뻘건 기운과 창백할 정도로 시퍼런 기운이 뒤엉키며 천지를 뒤집을 것 같은 굉음이 일었다.

 

콰르르릉!

 

대기가 진저리치며 터져 나갔다.

 

대연무장의 바닥에 깔린 청석이 쩍쩍 금이 가고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바닥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기운에 휘말린 것은 무엇이든 성치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두 기운이 폭죽처럼 터지며 두 사람을 중심으로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쩌저저저적!

 

상대의 심장에 검을 꽂지 못해 안달하던 사람들은 대경하며 뒤로 물러섰다.

 

미처 피하지 못한 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튕겨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바로 그때!

 

먼지구름 속에서 청광이 비늘처럼 번쩍였다.

 

천금무원기(天禁武原氣) 중의 천광린(天光鱗)!

 

마침내 천벽의 무공 중 하나가 구백 년의 시공을 건너뛰어서 위지천백의 손을 통해 펼쳐진 것이다.

 

“어디 천하를 조롱해온 네 실력을 마음껏 펼쳐봐라, 노태군!”

 

노태군도 지지 않고 전력을 다해 혈왕마공(血王魔功)을 끌어올렸다.

 

싸움에서 지더라도 위지천백만은 자신이 꺾고 싶었다.

 

그리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흥! 어림없다, 위지천백!”

 

혈왕이 펼쳤던 것과 비슷한 핏빛 구(球)가 노태군의 두 손에서 쏘아지며 위지천백을 향해 날아갔다.

 

찰나였다!

 

쩌저적! 콰광! 

 

번천지복의 굉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두 사람 사이의 공간 삼 장여가 통째로 솟구쳤다.

 

동시에 노태군의 신형이 철벽에 튕겨진 구슬처럼 뒤로 날아가고, 위지천백은 발이 무릎까지 땅에 박힌 채 뒤로 일 장가량 밀려났다.

 

그 여파가 어찌나 강하던지, 십여 장 밖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충격을 해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시지간, 대연무장의 격전이 멈추었다.

 

 

 

한편, 별원과 외곽 쪽에서는 지옥을 방불케 하는 접전이 이어지며 피가 내처럼 흘렀다.

 

그 중심에는 등후양과 백리환과 영호진광이 있었다.

 

그들은 단 세 명이서 백골마존과 사령마안을 비롯한 은룡산장의 실질적인 고수들의 발을 묶었다.

 

그로 인해, 개개인의 무위가 뛰어남에도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제왕성의 무사들을 막기가 벅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은룡산장 쪽이 형편없이 밀릴 때였다. 한쪽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제왕성의 무사들을 상대하던 구구객이, 갑자기 단체로 미쳐버린 것처럼 광란하며 날뛰었다.

 

마침내 방유경이 복용시킨 광혼단의 마력이 폭주한 것이다.

 

“죽어라! 크하하하! 모두 죽어!”

 

“크크크크,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말겠다, 이놈들!”

 

“네놈들의 심장을 씹어 먹고 말리라!”

 

광기에 젖은 그들은 곧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살이 갈라지고 피가 쏟아져도 멈추지 않았다. 팔다리가 잘린 상태에서도 광소를 터트리며 제왕성의 무사들을 공격했다. 심지어 갈라진 배에서 내장이 흘러내림에도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천각의 장로들도, 사전 삼단의 간부들도, 산서 일대에서 몰려든 강호의 고수들도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십여 명의 광기에 젖은 고수들이 본래 지닌 무력보다 두세 배의 강력한 힘으로 달려든다.

 

격전을 벌이며 공력을 소모했으니 힘이 떨어져야 하는데 어찌 된 게 더 강해진단 말인가!

 

승리를 자신하던 제왕성의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그들의 공세를 피했다.

 

하지만 광혼단의 광기에 지배당한 구구객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그들은 광소를 터트리며 적의 진영으로 뛰어들고는, 상대의 공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그렇게 구구객이 광기에 물들자 싸움의 양상이 급변했다.

 

조금 전보다 더욱 처절하고 참혹한 혈투!

 

대풍장이 서서히 지옥으로 변했다.

 

 

 

시간이 흐르며, 서연을 휘감고 흐르는 청류천에 맑은 물 대신 시뻘건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땅은 핏빛으로 변하고, 허공에선 피보다 더 진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늘과 땅을 뒤덮은 욕망의 광기!

 

태양은 인간들의 추악한 욕망에 질렸는지, 시커멓게 몰려드는 먹구름 속으로 얼굴을 감춰버렸다.

 

제이차 서연대혈전(西煙大血戰)!

 

훗날 산서 강호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대혈전은 피로 물든 대지가 질척거릴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산 자도, 죽은 자도 알지 못했다.

 

그날의 대혈전이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 * *

 

 

 

“제왕성이 노태군을 친다고 합니다, 도독. 도찰원과 함께 은룡산장의 움직임을 제어해 달라는 서신이 왔습니다.”

 

“그래?”

 

동방명은 전무호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

 

제왕성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었다.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노태군과 은룡산장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은 자명한 일. 그거면 되었다.

 

그때 북진무사 연도평이 물었다.

 

“도찰원의 움직임은 어떤가?”

 

“움직임이 부산한 걸로 봐서 곧 출동할 것 같습니다.”

 

전무호의 대답에 동방명이 허리를 펴고 말했다.

 

“좋아, 그럼 우리도 움직이지. 모두 준비하라고 해.”

 

동방명의 명이 떨어지자, 남진무사 좌호정이 물었다.

 

“동창부터 정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은룡산장만 무너지면 동창은 걱정할 것이 없다. 굳이 그들을 친다고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어. 자칫하면 이왕의 심기만 건드려서 역습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도찰원이 삼왕과 줄이 닿아 있다면, 동창은 이왕과 한배를 타고 있는 상황. 드러내놓고 동창을 치면 이왕이 가만있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두 사람은 즉시 수하들을 변복시켜서 대기시키고, 전 천호, 자네는 삼성맹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즉시 은룡산장으로 가라고 해.”

 

북진무사 연도평과 남진무사 좌호정, 전무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도독!”

 

 

 

그날 저녁, 도찰원과 금의위의 관원 오백 명이 변복을 한 채 북경을 빠져나왔다.

 

이백여 명의 삼성맹 무사들이 북경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지 반시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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